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94)
어썸 룬(2)
내가 무슨 못 할 말을 했나?
김채민은 딱딱하게 굳은 우희재를 보며 자신의 말을 되새겼다.
못 할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물어볼 만한 말 아니었나?
김채민이 알기로 우희재의 동생은 열 살. 객관적으로 봐도 어린 나이인데 연구소에서 오래 지냈다고 들었다. 연구소에서 나오면 하고 싶은 게 많지 않겠는가?
그럴 나이잖아!
“우… 선생님?”
김채민은 조심스럽게 우희재를 불렀다. 최대한 부드럽게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우희재는 화들짝 놀랐다.
우희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반쯤 들어 올린 팔을 내렸다.
“글, 쎄요. 걔가 뭘 하고 싶은지는….”
그러나 뭔가 떠오른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내뱉었다.
“아마 학교에. 학교에… 다니고 싶었, 다니고 싶을 겁니다.”
“학교요?”
“…네.”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요? 보통 그런 걸 더 좋아하잖아요.”
우희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또 뭐 잘못 말한 거야?!
김채민이 속으로 패닉에 빠지든 말든 우희재의 얼굴빛은 밝아지지 않았다.
“아뇨. 걘 배우는 걸 좋아해서요.”
“학구열이 대단한 친구군요! 그런 부분은 우 선생님을 닮았으려나? 우 선생님도 아는 게 많잖아요.”
“아는 게 많은 것과 배우고 싶어 하는 건 다르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보았으면 동생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듯한 얼굴이다.
우희재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고 있는 김채민이었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거짓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쁜 의도를 가졌다면 우희재가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순간은 많았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간혹 홍석영이 일부러 틈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지내면 동기에 대해서 고찰을 해 볼 수밖에 없다. 우희재는 처음부터 한결같이 말해 왔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그동안 잘 참아 왔지. 동생이 어디 있는지 단서조차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초조해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해냈다. 그 점만큼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역시 뭔가 더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쓸모없는 헌터의 감이 아니라 대마법사의 직감이다.
분명 우희재는 능력을 숨기고 있다. 룬 설계도를 하루 만에 뚝딱 그려 내는 걸 보아라.
룬을 설명할 때는 아는 마법사가 만든 거라며 자긴 이해도 못 하고 외우기만 한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룬 설계도는? 아직 룬에 대해서는 걸음마 단계인 김채민이지만 어지간한 룬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그려 내면서?
룬처럼 외웠을 수도 있지. 하지만 수십 개나 되는 룬을 외우고, 룬 설계도를 외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김채민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방주의 말단 청소부라고 하기에는 능력이 너무 좋잖아.’
어쩌면 우희재는 본인이 말하던 것보다 직급이 높았을지도 모른다.
“학교야 다니면 되는 거고. 놀이동산 같은 데도 데려가고 그래요. 홍 선생님도 그런 일이라면 휴가 주실걸요.”
“휴가까지는…. 수업도 있는데.”
“홍 선생님은 일주일 통으로도 쉬었는데요? 우 선생님도 일주일은 쉬어야죠!”
우희재는 대답하지 않은 채 김채민의 말을 들으며 웃기만 했다.
김채민은 그 모습을 보다가, 그냥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던전 공략을 앞두고 예민해진 헌터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던전 공략이 아니지만, 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범죄 조직의 손에 동생을 맡겨 놨다가 되찾기 직전이니 그동안 잘 숨겨 왔던 초조함이 드러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우 선생님 동생이면 완전 귀엽겠다!”
“…….”
“동생 좋아하는 거 있어요? 좋아하는 음식?”
김채민은 자신의 말이 길어질수록 어두워지는 우희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 * *
AWESOME!
김채민은 수백 번도 더 봤던 동영상을 또다시 보고 있었다.
영상 길이는 1분 남짓.
짧은 영상은 짧은 길이만큼이나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했다.
가시화된 마력이라니. 던전 안에서나 보던 현상이다. 그걸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또 보고 있어요?”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던 김채민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미선은 평소보다 편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 바지인 건 똑같았지만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정장 재킷을 벗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이미선은 김채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거 안 지겨워요?”
동영상.
김채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요.”
“김 선생님 볼 때마다 그걸 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재밌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요?”
“아뇨.”
김채민은 가벼운 목소리와 달리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마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요.”
“흐음.”
“룬이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제가 아는 마법사들은 다른 말 하던데.”
“룬으로는 마법을 흉내 낼 수 없다?”
“비슷하죠.”
김채민이 아는 마법사들도 죄다 비슷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긴 했다. 들어 주다 못해 전부 차단을 해 버렸을 정도니까.
며칠간 징글징글하게 울리던 휴대폰을 떠올리니 진저리가 났다.
“그거 알아요, 이 헌터?”
“어떤 거요?”
“지금 학회에서 그 영상 찍은 마법사가 누군지 찾고 있는 거.”
“…어머. 마법 학회에서요?”
“다연의 후원을 받는 길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룬을 연구했다고 누가 믿겠어요? 당연히 마법사들이 먼저 시도해 봤죠.”
“그랬어요?”
“마법사 커뮤니티 이야기예요.”
김채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마 이거 봐라, 다선에서도 이렇게 돈을 낭비한다. 이거 뭐 비리 아니냐, 감사해 봐야 한다… 할 의도였을걸요? 실제로 그렇게 분위기가 흘러가기도 했어요.”
“그걸 그냥 놔뒀어요?”
사뭇 억울하게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이미선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장난스럽게 키득거리고 있는 모습이 조카와 닮았다. 결국 같은 피라는 이야기였다.
“그쪽 여론이 필요했더라면 이 헌터가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았겠어요?”
“그렇긴 해요.”
“그래서 나도 구경했죠.”
다선을 비웃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다선에서 발표한 논문 표지와 노란색 포스트잇에 쓰인 글씨.
[C’est génial !]그 글씨체를 알아보지 못하면 마법사라고 할 수 없다.
불과 여섯 살의 나이로 대마법사가 된 세기의 대천재. 그녀가 발견한 마법 이론은 현대 마법 이론을 재정립했으며, 마법의 수준을 한 단계 이끌어 올렸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 사람이 멋지다는 말을 남겼다.
모두가 비웃었던 룬을 향해.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저희 쪽에 들어온 말은 없었는데.”
“마법사가 워낙 폐쇄적이어야죠.”
마법사는 국제이능협회에 속하지 않는다. 이미선이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어쨌든 극찬을 하는데, 이유를 모르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때 커뮤니티 분위기를 이 헌터가 봤어야 하는데!”
김채민은 깔깔 웃었다.
“다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서는…. 걔네가 그렇게 룬을 열심히 그려 본 건 처음 마법 수련했을 때 말곤 없을걸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기는요. 확인했죠.”
그래도 프랑스의 불세출의 천재처럼 솔직하게 감탄하는 이는 없었다. 하나같이 점잔을 빼며 말했다.
‘아, 그, 요즘 룬이란 게 많이 발전했더군요.’
‘룬이요? 거… 쓸 만한 효과를 내는 종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스웠던 만큼 재미가 없었고, 재미가 없었던 만큼 짜증이 났다.
“그러고 나서 이 헌터가 이걸 보여 줬죠.”
김채민은 잠깐 멈춰 놓았던 영상을 재생했다.
“재밌다니까요. 젠체하면서 어느 나사 빠진 놈이 이걸 외부에 공개하냐고….”
이번엔 이미선도 김채민의 곁에서 집중해서 영상을 보았다.
사실 새롭게 알게 되는 건 없었다. 이미선도 이미 질릴 정도로 돌려 보았던 영상이다. 카메라를 향해 장난스럽게 흔드는 손이며….
“게시글에서는 마법사가 갑자기 수십 장씩 그렸다고 했었는데.”
“그걸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죠?”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전 원래 이게 자연스럽게 발견되길 원했을 뿐이니까요.”
“학회 돌아가는 꼴이 웃겼던 마법사가 작업 쳤을 가능성이 커요. 이 헌터한테만 말해 주는 건데, 북미 쪽 마법사들이 이번에 독립한다고 했거든요.”
“…그걸 저한테 알려 줘도 괜찮아요?”
“북미 일인걸요. 난 한국 마법사니까.”
김채민은 작게 웃었다.
“북미 마법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건 아니고요, 프랑스 쪽도 같이 움직일 거예요.”
“프랑스가요?”
“학회를 양분하고 싶은 모양이더라고요. 너무 한곳에 모여 있다고. 마력은 그러면 안 된다나 뭐라나.”
이미선은 접근하기 힘든 마법사회의 정치에 대해 더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김채민은 모른 척했다.
어차피 이 이상으로 아는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대마법사라는 위치상 남들보다 조금 더 듣게 되는 일은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김채민은 마법사다. 대마법사. 자신의 손안에서 피어나는 장미 한 송이가 더 소중한 그런 마법사.
마법사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싸우든 말든 김채민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설사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자신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게 대마법사가 가지는 위상이다.
“자, 그것보다! 이 헌터. 이걸 봐요.”
“네?”
김채민은 동영상을 멈추고 휴대폰을 옆으로 치웠다. 빈 테이블에는 우희재가 주었던 룬 설계도가 올라왔다.
이미선은 금방 설계도를 알아보았다.
“우 선생님이 그려 줬던 건가요?”
“네. 그거예요. 이번에 시범고 건물 짓는다면서요.”
“아, 네…. 필요하신 게 있으세요?”
“제가 지낼 숙소를 만들어 주세요.”
“…학교에서 지내시게요?”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가서 필요한 것보단 그냥 한 번에 지어 버리는 게 좋잖아요? 필요 없어지면 다른 용도로 써도 돼요.”
“어떤 식으로 해 드리면 될까요?”
“별채면 돼요. 다른 사람이랑 같은 건물 쓰는 건 좀 곤란해서.”
“…혹시 지금도?”
“그 정도로 까탈스럽진 않아요.”
김채민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목재 건물이면 좋겠는데. 통나무집 같은 거요. 어차피 제가 식물로 덮을 거라 외관은 크게 신경 안 써도 돼요. 창문만 넓으면 됐고. 수업 듣는 건물들과는 멀어야 해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저야 감사한데요. 대마법사가 영역으로 선포하면.”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그래도 이미선은 고마운 일이라며 싱긋 웃었다.
김채민은 괜히 볼을 긁적이다가 우희재의 룬 설계도를 펼쳤다.
“아이들 교실 만들 때, 가장 높은 층에… 명상실 하나 만들어 줄래요? 강당으로 해도 좋아요. 거기에 이 룬을 새길 거라.”
“이거요?”
“마력 정화 기능이 있으니까 마법사 아이들에게 도움이 돼요. 기왕 우 선생님이 해 줬으니 써먹어야죠.”
“…룬 작업은.”
“그건 제가 할 테니 밑 작업만.”
김채민은 아, 하며 덧붙였다.
“학교 보안도 제가 손볼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우 선생님이 쓸 만한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 선생님이 말한 룬 중에 분명…. 우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김채민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멍하니 대마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미선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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