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97)
스노우볼(2)
작은 등이 발소리를 듣고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는다.
어린 나 자신과 마주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좀 더 낙관적인 성격이었다면 즐거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희망찬 인간이 아니다.
원래라면 홍석영이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내가 아니라.
되지도 않은 인사를 건네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혀 앉는다. 손을 내밀어서.
‘그새 많이 컸다? 아저씨 기억하지?’
나는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홍석영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 손을 내밀었다.
결국 손을 잡았다. 홍석영은 환하게 웃었다.
‘그때 아저씨가 네 이름을 못 들었는데.’
‘12호요.’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아저씨는 널 그렇게 부르고 싶진 않은데. 아저씨가 널 뭐라고 불러 주면 좋겠니?’
지금 생각하면 그게 최후의 기로였다. 앞으로 내가 무엇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그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우희재요.’
‘희재? 예쁜 이름이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홍석영은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쥐고 있는 내 손을 흔들었다.
‘희재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미 이상한데요.’
‘아저씨랑 갈래?’
‘경찰에 신고해도 돼요?’
‘아니, 그건 참아 줬으면 좋겠는데….’
홍석영은 어수룩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아들 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싫어요.’
당연히 거절했지. 내가 뭘 믿고 수상쩍은 사내의 아들이 되겠는가.
그래도 홍석영은 끈질겼다. 바쁘지도 않은지 부지런하게 얼굴을 내밀고, 자기 아들이 되면 뭐가 좋은지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 결국 먼저 항복한 건 나였다.
‘아, 알았어요! 아저씨 아들 할게요!’
그렇게 우희재는 홍석영의 아들이 되었다.
그게 뭐라고 홍석영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활짝 웃었다.
내 입양 의사가 결정 나고 나서는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홍석영은 서류 작업을 해야 할 게 있다며 바쁘게 굴었다.
그러다가 한 번 묻기는 했다.
‘희재야. 성도 바꿀 수 있는데. 내 성으로. 어때?’
‘싫어요.’
‘싫어?’
‘홍희재는 어감이 이상하잖아요.’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홍석영 별말 하지 않고 내 말을 들어주었다.
홍석영의 아들 우희재.
이제 두 번 다시 그렇게 불릴 일은 없다.
저 애는 아저씨에게 입양될 수 있겠다며 울컥했던 게 우습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는 아이는, 어린 우희재, 아니, 우희재도 아니구나. 아무튼 저 애는 홍석영에게 입양되어… 행복해졌다. 연구소 시절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비웃을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나는 저 아이에게서 그런 어린 시절을 빼앗았다.
내가 누려 봤기에 아는 그 달콤한 시간을. 아버지가 날 위해 해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을.
아니, 아버지 그 자체를.
빼앗았다.
저 아이는 이제 아버지가 있다는 느낌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따스한 감정을 알게 될 가능성을 내 손으로 없애 버렸으니까.
“누구야?”
아이는 낯선 사람의 등장을 경계했다. 야생 고양이처럼 빳빳하게 서서는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발을 바닥에 문질렀다.
눈이 마주쳤다.
저 아이가 나임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멸망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날은 평화로웠고, 매미가 울고 있다.
평범한 날이다. 과거의 나를 줍는 것도 평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포기하자.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고집을 피우고 있냐.
우주가 폭발이라도 하거든 그걸 핑계 삼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는다. 그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어차피 홍석영과 이미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도망가는 선택지 따윈 애초에 없었고….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무릎에 흙이 묻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가 아버지를 빼앗았지만, 형은 되어 줄 수 있다.
다시 한번, 나는 내가 무엇으로 살아갈지 정했다. 이로써 홍석영의 아들 우희재는 영원히 사라진다.
“이록아.”
아이의 눈이 커진다.
“나야.”
“…….”
“형이 너무 늦게 왔지? 많이 기다렸어?”
이젠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목소리를 흉내 냈다.
제발 쟤가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은 것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더 오래되었다. 저 아이도 얼굴을 본 지는 오래되었을 테니….
“…혀, 형?”
못 알아보겠지.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그래. 형이 아니면 누구겠어.”
아이의 경계심은 금방 풀렸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어깨가 떨리고,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 같았던 발이 나를 향한다.
타닥타닥.
곧 어린아이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이 들렸다. 내 품 안으로 따뜻하고 말랑한 살덩이가 달려들었다.
“희재 형!!”
나는 아이를 꽉 껴안았다.
이대로 품에 안긴 아이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린애를 죽일 수 없다는 이성이 그걸 막았다.
내 목을 껴안고 훌쩍거리느라 애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분명 보여 줄 만한 얼굴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목소리만은 다정하게. 아버지가 내게 하던 것처럼. 형이 나를 달래던 것처럼.
“형이 데리러 온댔잖아.”
“응, 응. 나, 형, 그, 너무.”
“괜찮아, 괜찮아.”
우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아이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린 나는 코알라처럼 나에게 매달려 왔다.
나는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형이랑 가자.”
“응!”
납치는 너무 쉬웠다.
* * *
최초의 기억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어두운 조명이나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떠오르긴 했다. 내 곁에 느껴지는 작은 온기. 스치는 손가락. 칭얼거리는 아기 울음소리.
문득 나는 그 울음소리 중 하나를 내가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기억은 그것보다는 선명하다.
자동차 창문은 새까맣다. 바깥이 어두운 탓도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서 창문에 달라붙어 밖을 구경했다. 이 짧은 순간이 내가 밖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운전석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앉아야지.’
이다음 기억부터는 선명하다.
내 어깨를 끌어당기는 다정한 손.
내 몸을 끌어안는 따뜻한 품.
내 귓가에 낮게 웃는 목소리.
‘쉿.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갈까?’
‘진짜? 그래도 돼?’
‘뭐, 어때. 우리 둘만 알면 되지.’
형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연구소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거나 하면 항상 형이 나를 데리고 나갔다.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형이 가면을 쓰지 않아 얼굴을 실컷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형이 뒤를 돌아보았다.
노이즈가 낀다.
부리가 긴 까마귀 가면이 있다.
밖에서 운전하는 동안 형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가면이 사라졌지만 노이즈는 그대로다.
‘10분만 쉬었다 가자.’
형은 차를 세웠다. 산속 도로를 달리는 차는 우리뿐이었다. 형은 문을 열고 나를 안아 들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에 바람이 부딪친다. 그 감각이 신기해서 한참을 웃었다. 벽이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무는 또 어찌나 그리 많은지. 바람에 엉망이 되는 머리카락마저 재밌기만 했다.
형은 웃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렴풋이 보이려다가도 다시 흐릿해진다. 형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애초에 내가 연구소를 나왔을 때도 이미 가물가물했다. 언제부터 형이 가면을 벗지 않았더라. 나에게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보여 준 걸 엄마와 아빠에게 들켰을 때부터였을 거다.
‘형아.’
‘응?’
‘얼굴 볼래.’
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길쭉하게 튀어나온 부리를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고집을 피우면 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에게 불려 간 뒤로 형은 가면을 벗지 않았다.
‘안 되는데…. 형 이제 얼굴 더 못 보여 줘.’
‘왜?’
‘엄마랑 아빠가 엄청 혼냈거든.’
‘그래도! 살짝만 벗었다가 다시 쓰면 안 돼?’
‘미안해.’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지만, 그 안에는 단호함이 있다. 이건 형이 내 고집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가면을 잡고 몇 번 더 흔들었다. 형은 그런 날 안아 주었다.
‘그러엄, 대신에.’
‘대신에?’
‘내 이름 불러 줘.’
‘…….’
날 껴안은 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방에는 카메라는 있지만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나에게만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록아.’
‘응.’
‘이록아.’
‘응.’
‘이록아.’
형이 이름을 잔뜩 불러 주자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형 이름 불러도 돼?’
‘응. 대신, 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
‘맞아. 우리 이름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니까.’
‘형이 지어 줬으니까 형만 불러야 해.’
‘그건…. 형은 이록이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불러 줬으면 하는데?’
‘비밀인데 어떻게?’
‘……그렇네. 그럼 형만 불러 주는 걸로 하자.’
가면 때문에 그 말을 하는 형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신이 나서 형을 불러 댔을 뿐이다.
‘형. 희재 형.’
‘이록아.’
‘희재 형.’
‘이록이, 내 동생.’
‘희재 형.’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건 우리 둘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 번이라고 불렀다. 엄마와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었다.
처음에 그렇게 말하자 형은 화를 냈었다. 아마 형을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일 거다.
‘그건 이름이 아냐.’
나는 형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 아냐?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이름이… 형이, 지어 줄게.’
‘진짜?’
‘응. 엄마랑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비밀이야?’
‘그래. 비밀이야.’
다음 날 형이 왔을 때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이록. 이록이야. 어때?’
‘그게 무슨 뜻인데?’
‘음… 이는 기쁘다라는 뜻이고, 록은 초록색이야. 초록색 좋아한다며?’
‘맞아! 그럼 형 이름은 뭐야?’
‘내 이름?’
아. 생각해 보니 이때 형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까마귀 가면이 사라지고 흐릿한 얼굴로 대체되었다.
‘내 이름은… 희재. 희재야. 우희재.’
‘우?’
‘아빠 성이잖아. 너도 우이록이야.’
우이록.
내 이름.
내 진짜 이름.
‘봐. 내 이름에 들어가는 희도 기쁘다는 뜻이거든? 이록이 이름도 그렇지?’
‘우리가 형제라서?’
‘응. 우리가 형제라서.’
내가 내 이름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그 이유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형의 품에 파고들면서 형을 불렀다.
‘희재 형.’
‘응.’
‘형도 내 이름 불러 줘야지!’
‘어, 어어. 그래. 이록아.’
‘희재 형.’
‘이록아.’
아마 한 시간은 족히 그랬을 거다.
둘이서 이름을 부를 때만큼은 더 이상 이 번도, 까마귀 새끼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다.
형은 내가 연구소에서 구출되기 일 년도 더 전에 사라졌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얘들아, 안녕.’
아버지에게 구출되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에는 경찰이 있었다.
‘너희 이름이 뭐니? 아저씨가 엄마랑 아빠랑 만날 수 있게 도와줄게.’
엄마와 아빠는 죽은 지 오래다. 살아 있더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형은 어디 있을까. 연구소에 있지 않으면 날 찾아오기 힘들 텐데. 일기에 적어 두긴 했지만, 형이 그걸 볼 수 있을까.
같이 온 다른 아이들은 앞다투어 자기 이름을 외쳤다. 부모님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그것도 함께 말했고, 주소나 부모님 전화번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애들도 꽤 되었다.
나는 경찰이 나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다른 아이의 등을 밀었다.
이름? 이름이라고?
내 이름은 형과의 비밀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긴 싫었다. 하지만 형이 나를 찾아오려면 형이 알아볼 수 있는 걸로 해야 한다. 형은 분명 날 찾아올 테니까. 금방 돌아온다고, 그럼 같이 나가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도와주는 사람을 찾았다고.
‘얘? 이름 말해 줄 수 있어?’
아이는 더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희재. 우희재요.’
형의 이름을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