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15화(15/105)
직계들은 돌멩이 하우스에 오지 않는다.
단순한 이유였다.
가까이 가면 재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최하위의 기운이 묻어 실적에 영향이 간다는 미신 같은 소리였지만, 그걸 신경 쓸 만큼 다들 후계자 순위에 목을 맨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쟤들이 왜 여기까지 왔어?’
나는 측백나무 뒤에 붙어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로 반대쪽을 살피는 중이었다.
키득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울면 할아버지가 걔를 쫓아내시겠지?”
“아버지께서 그러셨잖아. 개구리가 어제 할아버지한테 혼나서 또 울었다고. 빽빽 우는 울보는 트라벨에 필요 없어.”
얼굴이 똑 닮은 아이 두 명이 서 있었다. 작은아버지네 이란성 쌍둥이 남매, 하티와 마티였다. 올해 아홉 살.
곱슬기가 있는 금발에 천사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쟤들은 악마였다.
– 선생님! 최하위가 교재를 연못에 빠트렸대요!
– 진짜? 그거 우리 아버지가 버신 돈으로 산 교재잖아. 레이탄 큰아버지는 능력이 없어서 돈도 못 버시니까!
– 가서 주워 와. 염치가 있으면 새 교재를 달라는 소리는 못 하겠지.
문득 다른 나의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수업 시간에 당한 괴롭힘 대부분은 쟤들이랑 고모의 열 살 된 아들, 칼립스의 소행이었으니까.
‘칼립스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다른 나를 아예 상대도 안 했는데, 쌍둥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었지. ……얼마나 괴롭혔으면 다른 내가 커서도 치를 떨며 쟤네를 싫어했을까!’
쟤들한테는 얕잡아 보이면 안 돼.
내 야생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티, 개구리가 할아버지 사탕을 훔치려다가 혼났다잖아. 도둑질을 한 벌을 받아야지.”
쌍둥이 중 남자인 마티가 들고 있는 자루를 휙휙 흔들었다.
‘…개구리는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트라벨에 온 첫날에 우는 나를 보고 쟤네들이 비웃었잖아?
“한심해. 저게 진짜 트라벨이야? 시끄러운 게 꼭 개구리 같아.”
“개구리? 그러면 가을까지만 보겠네. 겨울에는 구덩이 속으로 기어 들어갈 테니까.”
나는 마티가 든 자루를 주시했다. 끈으로 입구를 조이는 방식으로, 사냥꾼들이 새나 작은 동물을 잡을 때 사용하는 자루였다.
하인을 시켜 새 같은 걸 잡은 모양이었다. 자루가 조금씩 움직이는 걸 보니 살아 있나? 저걸 나한테 던질 계획인 거지?
‘흐음.’
나는 눈매를 좁히고 몸을 낮췄다. 쌍둥이는 내가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대화하기에 바빴다.
전방에 목표물 포착. 공격 개시하겠습니다.
“빨리 던져 버리자. 징그러워.”
“개구리가 이쪽으로 오면.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아까 밖으로 나오는 걸 봤는… 으아아악!!”
“꺅! 왜, 왜, 왜 그래?!”
“다리……! 뭐가 내 다리를 물었어!”
쌍둥이는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나쁜 짓을 하려니까 그렇지. 손으로 붙잡은 건데.
“개굴개굴.”
“…….”
하티와 마티가 내 쪽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 측백나무 밑동 사이로 얼굴만 내민 채 쌍둥이를 올려다보며 씩 웃어 줬다.
“개구리 찾았어?”
“꺄아악!”
“뭐, 뭐야!”
쌍둥이는 유령이라도 본 얼굴로 자리에서 도망쳤다.
털썩. 마티가 던지듯 손에서 놓친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흥. 별것도 아니네.”
겁쟁이들.
나는 나무 사이를 마저 기어 나와 손을 털었다. 내일부터 쟤네들이랑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한숨이 나온다.
“뭘 던지려고 한 거야?”
허리를 숙여 꿈틀거리는 자루를 집으려던 때였다. 나보다 먼저 자루를 잡는 손이 있었다. 테온이었다.
“만지지 마.”
“어? 테온. 아빠랑 훈련 끝났어?”
테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뒤를 돌아봤다. 쌍둥이가 도망친 방향이었다.
텅 빈 길을 주시하는 흑안이 낮게 가라앉았다가, 내 쪽을 볼 때는 원래의 빛을 띠었다.
“이건 내가 처리할게.”
“그게 뭔데?”
“황소개구리.”
펄떡펄떡. 연이은 외부 자극에, 테온이 든 자루 안에서 무언가가 사납게 요동쳤다.
속이 안 좋아졌다.
나는 테온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빠랑은 같이 안 왔어? 첫 수업은 어땠어? 아빠 엄청나게 잘 가르치지?”
이번에도 눈을 반짝이며 수업 소감을 늘어놓을까 기대했지만, 테온은 특유의 무표정에 걱정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훈련은 도중에 끝났어.”
“왜?”
“백작 부인께서 스승님께 할 말이 있다고 사람을 보내셔서.”
***
쏴아아아아-.
트라벨 본채 앞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있었다.
대지 아래에 흐르는 기이한 수맥을 끌어다 쓰는 분수대는, 극심한 가뭄이 와도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
“물줄기가 참 시원해. 언제 보아도 멋지지 않니?”
트라벨 백작의 첫째 부인, 프리실라는 자신이 애용하는 티 룸의 커다란 창으로 분수대를 품은 정원을 바다보다, 뒤를 돌았다.
“트라벨에 내려진 주신의 축복이지.”
그녀의 시야에, 소파에 앉은 밀밭 색 머리칼의 미남이 들어왔다.
인상이 사납지만 뭘 해도 태가 나는 자였다. 사람을 끄는 태생적 매력도 있었다. 제 배로 낳지 못한 것이 이따금 아쉬울 만큼.
“축복이군요.”
레이탄은 한쪽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프리실라가 그의 오른편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그간 잘 있었니? 6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었으니, 소식을 모르겠구나.”
“죄송합니다. 육아가 바빠서.”
“이해한단다. 나도 꽤 자식을 많이 키워 보지 않았니. 요즘은 요셀까지 제 자식들을 봐달라며 성화를 부린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백작 부인의 손은 주름졌지만 고왔다. 물이 묻으면 안 되는 귀한 장신구까지.
딸깍. 레이탄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응시했다.
프리실라는 레이탄이 돌아온 때에 잠시 얼굴을 비추고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본채로 돌아갔다. 의붓아들이 돌아온 상황에 치미는 화를 홀로 삭일 시간이 필요했다.
레이탄도 그녀에게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올 만큼 살가운 자식은 아니었으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건 레이탄이 트라벨에 돌아온 뒤로 처음이었다.
프리실라는 레이탄의 푸른 눈을 마주할 때면 늘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불쾌한 감정도 따라왔다.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에까지 오른 검술 천재.
“차남이 유력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저 아이를 차기 가주의 재목으로 보았다.
한결같은 최하위 순위에 그런 말이 쏙 들어간 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이가 생기면 남자는 달라지지.’
아빠가 되어 돌아온 레이탄이 백작 부인은 염려되었다.
혹여 제 자식들의 후계자 자리를 위협하는-.
“연대 책임을 물으라 하셨지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제안 주신대로 주최하시는 자선 경매에 제 물건을 내놓겠습니다.”
“미안하구나. 그깟 진주 귀걸이가 무엇이라고. 하지만 어쩌겠니. 주인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집안의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것을.”
“괜찮습니다.”
볼일이 끝나자 레이탄은 짧은 인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프리실라는 티 룸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저 아이는 아비가 되어도 한심하구나.
딸깍.
티 룸을 나온 레이탄의 푸른 눈이 낮게 빛났다. 자선 경매는 함정이군.
‘어쩔까.’
레이탄은 복도를 걸으며 고민했다. 그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트라벨의 망나니가 되어 그들의 계획을 망치거나, 엎거나, 되갚아 주거나…….
“네 딸은 몇 년을 더 살 것 같으냐?”
참거나.
베리의 병이 이곳에서만 낫는 병이라면, 자신은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눈에 거슬리는 싹은 밟히는 땅이다.
13년 전의 제가 당한 마차 사고가, 7년 전의 형의 죽음이 그와 관련 있었다.
베리만큼은 짐승들의 견제 바깥에 살게 해야 한다.
“저, 도련님.”
“…….”
“도련님…?”
깊은 생각에 잠겼던 레이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본채의 집사장, 세르베르였다.
“용건이 있나?”
“저, 그게….”
세르베르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려는 듯 주변을 살폈다.
레이탄이 백작 부인을 좋은 일로 보고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볼 것이 있었다.
“베리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잉크사 주식 말입니다….”
몽트 남작에게 다시금 물어보고, 잉크사에 문제가 없다는 것도 직접 확인했다. 그럼에도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그 어린 아가씨와의 첫 만남에서 들은 이야기가 도통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제 셰리에게 식재료를 뜯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한나절을 들들 볶아도 내주지 않았을 거다.
“잉크사?”
“예, 예…! 아가씨께서 어디서 주워들으신 이야기라 하셨는데….”
일곱 살이 무얼 알겠는가. 레이탄 도련님께서는 최근까지 바깥에 계셨다.
그러니까 그 정보의 출처가 레이탄 도련님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마이너스 손에게 투자 관련 정보를 묻는 것도 우습지만, 집과 전 재산이 걸려 있으니-.
“빙빙 돌리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해.”
“처분해야 할까요?”
세르베르는 거의 울먹였다. 중년의 남자가 제게 애걸하는 건 전쟁터에 살던 레이탄에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약간의 연민도 들지 않았다.
잉크사 주식이라. 알 게 뭔가.
“처분해.”
“…네!”
레이탄의 말에 세르베르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신의 계시라도 받은 모양새였다. 이내 민망한 듯 헛기침하며 표정을 바꿨지만.
그 찰나의 변화를 목격한 레이탄이 고개를 짧게 가로젓고는 세르베르를 두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