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19화(19/105)
제프리가 병에 걸린 건 작년이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몇 안 되는 재산을 치료비로 모두 사용하고, 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누나는 네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선 뭐든지 할 거야.”
제프리는 앤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싫었다.
고작 여섯 살이지만, 제프리는 왜 앤이 그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걸렸는지 모를 병이 앤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말해도, 앤은 웃으며 돈을 벌러 밖으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 부인의 진주 귀걸이가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사들이 찾아왔다. 더는 이곳에서 살지 못한다고 했다.
제프리는 이불 안에 있는 저를 끄집어내는 기사들의 손길에 반항했다.
“이거 놔! 물어 버린다!”
앤은 돌아올 거다. 제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제프리는 악화된 병세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발톱을 세우며 침대를 붙들었다.
북. 북. 낡은 매트리스가 발톱에 긁혀 나갔다. 발목을 잡은 기사의 우악스러운 힘을 버티지 못한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제프리는 송곳니를 세우며 으르릉거렸다.
“놔! 누나는 어디에 있어?!”
“쪼끄만 게 성질은. 귀? 가만. 너 늑대족 혼혈이냐? 내가 또 짐승들 다루는 법을 알지.”
기사는 이종족 차별자였다.
꽈악! 그는 제프리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한 손으로 꽉 잡았다.
그러고는 같이 온 기사들에게 자랑하듯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제프리를 흔들어 보였다. 기사가 비열하게 웃음 지었다.
“어린 것들은 이렇게 하면 조용해진다고.”
제프리의 몸이 벌벌 떨렸다. 떨어진 체온 때문인지, 앤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리는 건지 몰랐다.
기사는 짐승을 던지는 것처럼 제프리를 바깥담의 문밖으로 던졌다. 그 광경에 충격을 받은 여관 주인이 아이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오한은 점점 심해졌다.
‘나 때문이야.’
현실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돈이 없는 것도, 누나가 도둑으로 몰린 것도. 모두 나 때문이야. 내가 없어지면 돼. 이대로 죽으면 누나는-.
우욱!
제프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강한 쓴맛. 거기에 깨어난 감각이 아이의 정신을 현실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누군가 제게 뭔가를 먹였다.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온 액체를 반사적으로 삼켰다. 약이라 생각했지만, 이건 뭔가 달랐다. 쓰고 뜨겁다.
불을 삼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와 가슴께에서 사그라들었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크릉…….”
“헉. 테온, 조심해. 맛없어서 화났나 봐.”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이어 남자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좀 더 먹일까?”
“아니, 한 스푼 정도가 딱 좋아.”
제프리는 제 머리맡에서 들리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아프지 않았다.
‘따뜻해?’
이상했다. 어제부터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요 며칠 제프리는 얼음 호수에 온몸이 잠긴 것 같은 추위 속에 있었다.
한데, 가슴께부터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간다. 마치 누나가 끓여 준 따뜻한 수프를 마셨을 때처럼.
제프리는 온몸의 긴장감이 풀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오. 정신을 차렸어? 내 얼굴 잘 보여?”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에 분홍색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목소리로 여자애인 걸 알았다. 제프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구. 약 기운이 퍼져서 그래. 계속 수축했던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생기는 현상이걸랑. 조금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목소리도 안 나오지?”
어려운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프리는 눈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에 마음을 놓고,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바로 깨어나서 다행이다. 약 먹는 법을 말해 줘야 했었거든.”
‘약 먹는 법……?’
“이거, 여기에 올려 둘까?”
“응! 거기 좋다.”
여자애의 말에 남자애가 침대 헤드 옆 협탁에 바구니 같은 걸 올려놓았다.
여자애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건 2년을 산 달맞이꽃의 잎사귀야. 매일 한 움큼씩 입에 넣고 즙이 나올 때까지 씹어서 삼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여관 뒤뜰에서 채집하면 돼. 1년 동안 먹으면 네 병이 나을 거야. 아, 사탕도 두고 갈게! 약 먹고 하나씩 먹으면 됩니당.”
쫓기는 사람처럼 복용법을 와다다 설명한 여자애는 곧 떠날 것처럼 몸을 돌렸다.
‘내 병이 낫는다고?’
제프리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제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긴 채, 같이 온 남자아이와 창문으로 방을 나갔다.
“약 꼭 챙겨 먹어야 해! 아프면 네가 아니라 가족이 제일 슬퍼한단 말이야.”
***
그날 저녁.
여관에서 나온 우리는 아빠의 지갑과 맞바꾸어 얻어 낸 전리품들을 가지고 귀가했다.
옷들이 마차의 짐칸을 가득 채웠는데, 배달 올 옷들이 더 남았다는 게 놀라웠다.
셰리 언니도 마차를 보고 놀란 듯했다.
“옷 가게를 사셨어요? 도련님은 어릴 적부터 그러셨다니깐요. 다른 건 관심도 없으신 분께서, 옷 가게만 가시면-.”
“셰리. 그 이야기는 안 해도 돼.”
“어머, 죄송해요. 제가 별소리를 다 했네요.”
셰리 언니는 옷을 정리해야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베리 아가씨랑 테온 님이 이렇게 귀여운 옷을 입으실 줄 알았더라면 저도 데리고 가 달라고 할걸 그랬어요.”
특히 테온의 옷이 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했다. 테온이 가지고 있었던 옷은 단 두 벌뿐이었고, 셰리 언니는 어제 테온의 용돈 발언을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아, 테온 님, 같이 올라가서 옷 정리를 할까요? 용도에 따라서 옷장을 구분해야 하는데, 테온 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마음대로 구분해도 상관 없…….”
“상관이 없기는요! 테온 님 옷장이잖아요? 따라오세요. 빨리요.”
셰리 언니가 테온의 손을 덥석 잡았다. 테온은 셰리 언니한테 잡혀가듯 돌멩이 하우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당황한 테온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베리…….”
“잘 정리해~!”
테온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줬다. 빈 마차 앞에 아빠와 둘만 남자, 나는 아빠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빠, 우리 앞으로 괜찮을까?”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요?”
“갑자기 가계 지출이 확 늘었어.”
테온 앞에서는 그저 좋은 척했지만, 나는 인생 전부를 서민으로 살아왔단 말이지.
이런 과소비는 처음이었다. 너무 떨려.
“앞으로 100 코나짜리 빵만 먹어야 할지도…….”
가게에서 미끼 상품으로 파는 100 코나 빵은 딱딱하고 푸석푸석했다. 빵을 씹는 건지, 신문지를 씹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물론 트라벨에서 그런 빵을 먹을 일은 없겠지만. 그 정도로 걱정이 되는 소비였다는 거지.
으. 빵 맛을 떠올리며 몸서리치고 있자니, 아빠가 내게 말했다.
“베리베리.”
“넹.”
“트라벨 백작 가문의 직계는 열여섯 살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품위 유지비라는 걸 받거든? 옷이나 장신구를 사라고 주는 돈이야.”
나는 아빠를 올려다봤다.
오늘 소비의 자금 출처가 아빠의 비상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6년 치 품위 유지비를?”
“벌써 눈치를 챘군.”
“개이득.”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이크. 잔소리의 징조다.
때마침 셰리 언니가 아빠를 불렀다. 테온의 옷 중에 도통 착용법을 모르겠는 옷이 나왔는데, 와서 확인해 달라는 거였다.
“저녁이니까 나는 내 방에 가 있을게-.”
나는 내 용돈 사수를 위해 2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하녀 언니들이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흐음. 앤은 언제 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있었으면 남동생한테 가 보라고 할 텐데. 0 코나의 기적을 앤이 당장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베리 아가씨.”
소파로 걸어가는 나를 하녀 언니가 불러 세웠다.
“소매 단추가 풀려 있네요. 다시 채워 드릴게요.”
“오. 고마워.”
아무 생각 없이 팔을 내밀었는데, 하녀 언니가 내 손에 무언가를 넣고 주먹을 쥐게 했다.
“어…?”
매끈한 종이 질감과 손바닥을 살짝 찌르는 모서리. 나는 하녀 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녀 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손끝이 떨렸다.
긴장하는 그 모습에 나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앤이랑 친하게 지내는 언니잖아. 설마 마리안 고모가 다른 첩자를 심어 뒀나? 나한테 쥐여 준 건 뭐지?
“몰래 보시래요.”
단추를 잠근 하녀 언니는, 내게 은밀히 속삭이고 옷을 정리한다며 자리를 떴다.
몹시도 수상쩍은 행동거지였다.
나는 주먹 쥔 왼손을 슬쩍 펼쳐 보았다. 작게 접은 종이였다. ……편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금 펴 볼지 말지 고민하는 중에,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베리, 옷 말인데-.”
“화, 화장실 갔다 올게!”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혹시 몰라 낮은 발판에 올라가서 문을 걸어 잠그기까지 했다.
이 하녀 언니는 그냥 열심히 일하는 하녀 언니일 텐데. 왜 나한테 쪽지를….
분주한 손으로 접힌 쪽지를 확 펼친 때였다.
———-
준 것은 잘 가지고 있느냐?
불시에 확인할 테니 항시 들고 다니는 게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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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악. 협박 편지잖아.
나는 종이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밤새 잠을 설쳤다.
돌멩이는 내 수중에 없는데, 할아버지가 언제든 내 방문을 열고 찾아올 거 같았다.
결국 사색의 방에 들어가서 반성문을 열 페이지나 적고, 마리안 고모를 골탕 먹일 계획을 열 개나 세웠다.
눈그늘이 진 채로 본채에 갔더니, 세르베르 아저씨가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트라벨 가의 직계 수업을 받게 되시는군요. 우리 베리 아가씨께서.”
“……네?”
잘못 들었나.
……우리 베리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