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2화(2/105)
그러니까 오늘 아침.
기절한 상태로 하룻밤 숙면하고 일어난 때였다. 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 커튼이 달린 차양 침대.
이런 건 공주님 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 침대에 누워 있네.
“역시 대부호 트라벨 백작 가문. 최하위 가주 후계자 별채에도 차양 침대를 놔 주는……. 내가 왜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아.”
트라벨 백작가에 처음 온 나였다.
아무것도 몰라야 정상이잖아? 그런데 주변의 상황이 모두 익숙했다.
이곳이 돌멩이 하우스의 내 방이라든지, 내가 스물네 살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든지.
“확실한 거 맞아? 거짓말 아니야?”
나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이불 끄트머리와 같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저 멀리 벽난로가 뒤집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내 시야가 거꾸로 된 거였다. 다리를 침대 프레임에 기댄 채 벽난로를 빤히 보았다.
정확히는 덩굴이 조각된 벽난로의 대리석 기둥.
“…마샬 할머니가 사람은 항시 의심을 하여야 한댔어.”
사실 어제 할아버지를 본 순간부터 기절했던 거야.
이 기억들은 단순히 내 꿈일지도.
“그치?”
반박할 구실이 생기니 힘차게 움직일 기운이 생겼다.
흐랏챠. 나는 몸을 일으켜 벽난로로 걸어갔다. 이 기억들이 내 상상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왼쪽 기둥의 꽃 장식들을 순서에 맞게 돌리면 비밀 공간이 나타난다니~”
그런 뻥 같은 소리가 진짜일 리가 없잖아. 다 꿈이야, 꿈.
씩씩하게 걸어왔지만, 막상 기둥에 조각된 덩굴 곳곳에 있는 여섯 개의 금속 꽃 장식을 마주하자 머뭇거리고 말았다.
벽난로의 기둥은 내 키만 했다. 여섯 개의 꽃을 순서에 맞게 돌리는 데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다.
아니, 그 전에. 저게 진짜로 돌아가기나 하겠어?
“돌아갈 리가 없지~ 이건 다 꿈……일…….”
왜 돌아가는데.
끄악. 울고 싶은 마음을 삼키며 손을 움직였다.
끼이익. 철컥.
벽난로 옆의 붙박이 장식장이 옆으로 움직이며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났다.
“…….”
방은 숨겨진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환영하는 듯이, 불을 켜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화려한 광경을 목격하며, 마지막 꽃 장식에서 차마 손을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커다래진 눈을 깜빡일 수도, 떡 벌어진 입을 닫을 수도 없었다.
비슷한 거 그림책에서 본 적 있어.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타는 서민이 신비한 동굴을 찾았을 때…….
“뻥…….”
나는 가만히 꽃들을 다시 돌렸다.
드르륵. 드르륵. 끼이익. 철컥.
원래대로 돌아간 붙박이 장식장을 뒤로한 채, 털레털레 침대로 돌아왔다.
방금 본 건, 일단 외면.
“흐유우.”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돌멩이 하우스고 뭐고, 이런 기억이 있는 건 별문제가 안 되었다.
오히려 멋진 일이지. 미래를 아는 초능력자인 거잖아?
다만.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이상한 기억들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문제였다.
– 이곳에 모인 이들은 레이탄 쿼츠 트라벨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할 것이며…….
제국의 깃발을 얹은 관 앞에서 엄숙하게 말하는 신관, 검은 옷을 입고 멍하니 관을 바라보는 열여섯 살의 나.
황제의 명으로 이종족과의 전쟁에 참전한 아빠는, 그 관에 실려 돌아왔다.
나는 아빠를 땅에 묻은 그날부터 본채 앞에 섰다. 독대 한번 한 적 없는 할아버지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시위였다.
– 아가씨,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겁니까. 벌써 열흘째입니다. 몇 날을 바깥에서 드시지도, 자지도 않으신다 해도, 가주님께서는 아가씨의 말을 들어 주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 칼렛 아저씨는 이상하지 않아요? 아빠 친구니까 잘 알잖아요. 아빠가 얼마나 강한지. 그랜드 마스터가 그런 작은 전쟁에서 사망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 전쟁터입니다. 그리고 레이탄은…. 레이탄은, 아가씨께서 이러시는 걸 바라고 있지 않을 겁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바랐다. 트라벨이 가진 권력과 재력이라면, 심증뿐인 의심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밝혀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트라벨의 누구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열여섯 살의 나는 홀로 움직였다. 가문의 지원도 없이, 친척들의 견제를 피해 가며.
8년간의 눈물 나는 고군분투 끝에 범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손에 쥐었지만-!
단서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다. 누가 뒤에서 검으로 푹 찔렀거든….
‘다른 나는 바보야….’
부르르.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 몸이 절로 떨렸다.
적어도 누가 찔렀는지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개고생을 해 놓고 복수는커녕 범인도 못 찾다니. 억울해.
어른이 된 나도 너무 억울해서 나한테 이런 기억을 준 건가?
“흐잉. 몰라.”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시골 촌구석에서 아빠와 오순도순하게 살던 나였다.
현상금 사냥꾼들이 마샬 할머니의 약초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만 않았어도, 오늘 아침은 아빠가 해 준 계란프라이를 먹고 있었을 거다.
“이런 기억도, 부자 할아버지도 필요 없어….”
트라벨에 오자마자 이런 날벼락을 맞다니.
부자 할아버지가 곰 인형을 사 주려나? 하던 내 소박한 바람은 와장창.
“베리, 언제 일어났어?”
때마침 아빠가 방으로 들어왔다. 귀가 쫑긋 세워지는 목소리에, 나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이불을 발로 밟으면…. 아니다. 몸은 어때. 아픈 곳은 없어? 어제 일은 기억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상태를 살피려고 급히 다가오던 아빠가 걸음을 멈칫했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데? 아빠가 눈빛으로 물었다.
“아빠한테 베리가 일자리를 제안하겠습니다.”
“…일자리?”
“옙. 들어 봐 봐?”
아빠가 죽는 미래 따위를 믿고 싶지는 않아. 그렇지만, 이 기억이 맞는지 좀 더 확인해야 했다.
나는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오늘 하루 돌멩이 하우스를 찾아올 사람들의 신상을 내 새로운 기억과 비교해 보는 거다!
“뭔데?”
아빠는 나를 안아 들었고, 나는 수사관 놀이를 핑계 삼아 아빠에게 조사관 역할을 부탁했다.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그래서! 아빠가 방에 오는 사람들한테 정보를 물어보는 거야! 이름이랑 나이랑 이것저것! 그러면 나는 숨어서 듣고 있다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거지!”
내 완벽한 계획을 들은 아빠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빠는 그거 안 하고 싶은데.”
“그치만 베리의 장래 희망이 유능한 수사관인뎅. 그리고… 베리는… 아직 기절한 후유증이…. 아이고오, 아프다.”
“…….”
“도와주실 건가요? 레이탄 조사관님?”
“…예. 베리베리 수사관님.”
***
그리고 다시 오늘 오후. 결과는….
백 점 만점에 백 점.
‘세르베르 집사장 아저씨가 잉크사 주식을 산 것까지 맞혀 버렸어.’
나는 거울 속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사실 잉크사 이야기는 안 해도 됐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후임으로 오는 제이콥은 쫌생이란 말이야.’
세르베르 아저씨는 주식 투자 실패로 집을 잃고 전 재산까지 홀라당 날려 버린다.
건강까지 잃고 마른 잎사귀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고 제이콥이 후임 집사장으로 들어오는데!
‘먹을 걸로 치사하게 구는 악질!’
본채의 집사장은 직계들의 별채에 의식주 관련 지원 품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제이콥이 집사장이 되고 나서부터 들어오는 품목이 점점 줄었다니까. 특히 먹을 거.
디저트는 설탕이 적게 들어가는 종류만 선택할 수 있었고, 아침은 늘 빵과 수프인 데다가, 점심과 저녁은 메인 디시 한 가지밖에 나오지 않도록 제한했다.
‘아빠의 별채가 돌멩이 하우스라는 이유였지? 흥이다.’
그러니까 세르베르 아저씨가 집사장인 게 더 나아.
세르베르 아저씨도 큰아버지의 측근이지만, 최악보다는 차악이….
‘어라.’
뭔가 이상했다. 조금 전부터 생각하는 게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든단 말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울 속 나를 보았다. 여전히 일곱 살이었다.
–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어요.
스물네 살까지 살았던 다른 나의 기억이 새롭게 생긴.
‘범인은 너였구나…!’
그래서 내가 치약인지 차악인지 같은 생각을 한 거야!
방심했다. 하마터면 새로운 기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뻔했다.
이렇게 네가 겪은 일을 진짜 미래라고 여기게 할 셈이지? 나는 말이지-!
“베리, 거울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져.”
“넹.”
코앞까지 가져온 거울을 아빠가 내 손에서 떨어트렸다.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올라간 탁상거울 속에, 옆자리에 앉은 아빠의 얼굴이 비쳤다.
그런 미래 따위 없어도 되는데.
“왜 그래?”
“베리는… 큰 베리가 싫어.”
입을 삐죽거렸더니, 아빠가 내 뺨을 살짝 잡고 흔들었다.
“일곱 살이 된 게 좋다고 몇 달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면서.”
“발언 취소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런데 베리베리 수사관님.”
“넵.”
“제가 질문이 있습니다만.”
질문?
나는 고개를 올려 아빠를 바라봤다.
의심스러운 눈초리. 별로 달가운 질문이 아닐 것 같은 예감.
“아까 세르베르에게 물어본 주식 이야기는 뭐지요? 제가 수사관님한테 드린 정보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요.”
“오….”
이런 불리한 질문을 하다니.
수사관 놀이는 종종 하던 거라 의심 없이 넘어갔는데, 잉크사 주식 얘기는 의심 없이 넘어가기 힘들겠지…?
“마샬 할머니가 피터 아저씨한테 잉크사 주식은 퐁싹 망할 거니까 사지 말라고 했거드은. 아빠도 피터 아저씨 알지? 카드로 그림 맞추는 거 좋아하는!”
그리고 이럴 때는 연륜이 깊은 어른을 모셔 오는 게 상책이지. …라고 또 다른 내가 말한 기억이 있었다.
“마샬이?”
아빠의 의심이 조금 누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샬 할머니가 누구냐면, 아빠를 약해지게 만드는 유일한 어른이자, 우리 부녀의 은인이다.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자주 아팠는데, 그때마다 마을 약제사인 마샬 할머니가 내 상태를 봐줬다.
“집사장 아저씨를 보니까 갑자기 그 생각이 난 거 있지? 피터 아저씨랑 집사장 아저씨, 얼굴이 비슷하지 않아?”
“…닮긴 했지….”
“그치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헤헤 웃었다.
아빠는 입을 다물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내게 물었다.
“베리베리, 아빠랑 약속 하나 할까?”
“으음, 뭔데? 들어 보고.”
“할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베리가 유능한 건 비밀로 하기로.”
나는 아빠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들은 아빠가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만큼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눈에 걱정이 한가득.
“할아버지 집에는 오래 안 있을 거야. 그동안만.”
– 베리, 미안해. 생각보다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기억 속 우리는 평생을 트라벨에서 살았다. 아빠는 평생을 나를 지키려 애를 썼고-.
– 친척들은 다 짐승들이야.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를 물어뜯을 생각밖에 없지.
짐승들 중 하나가 아빠를 죽였다.
“그런데 유능한 걸 어떻게 비밀로 해?”
“베리가 잘하는 걸 못하는 척을 하는 거지. 할 수 있겠어?”
“해 볼까? 아빠가 부탁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믿고 싶지 않은 기억을 무시할 수가 없다.
백의 백의 백의 백의 백분의 일의 확률로.
아빠의 죽음이 진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