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5)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25화(25/105)
“……4번 님……?”
고조된 목소리로 경매 금액을 높이던 경매사마저 마리안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에게 의사를 물었다.
마리안은 심호흡했다. 안정을 되찾으려 부채를 흔들었으나, 연결 부속이 떨어진 탓에 부챗살과 깃털이 볼품없이 흩어졌다.
“여보, 그만하시는 게…….”
그녀의 남편이 부채를 가져가며 눈치를 살폈다. 데릴사위로 들어온 그는 늘 마리안의 심기를 거스를까 노심초사했다.
“…….”
1억짜리, 아니. 가품이라 했으니, 백만 코나의 값어치도 없을지 모르는 진주 귀걸이가 10억이 되었다.
‘어떤 멍청이가 저걸 그 값에 사냔 말이야!’
레이탄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품에 대한 실책은 누가 물게 되겠는가.
“이 추세라면 4년 뒤에 누님 별채가 내 것이 될걸.”
테이블 아래에 숨긴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다.
마리안은 이를 악문 채 입술을 움직였다.
“12억.”
그녀의 말에 모든 이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된 차림의 남자는, 지금의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여유를 유지했다.
레이탄의 입가가 비틀렸다.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으나, 곧바로 이어 나온 말에 묻혀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포기하겠소. 너무 비싸군.”
레이탄이 손에 들고 있던 숫자판을 내려놓았다.
“…4, 4번 님께 슈슈비아 제도의 진주 귀걸이가 12억에 낙찰되었습니다!”
경매사의 경매봉이 세 번 나무판을 두드렸다.
땅.
요셀은 화장실이 급하다며 자리를 떴고.
땅.
레이탄은 위로를 건네는 홀트 사제에게 어깨를 으쓱했고.
땅.
마리안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요지부동하게 앉아 경매품이 올라간 단을 노려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리안의 수중에 가품 귀걸이가 떨어지고, 12억 코나가 사라졌다.
레이탄과 요셀.
그녀의 화는 두 사람에게 향했지만, 레이탄에게 치밀어 오르는 화가 더 컸다. 이렇게 된 이상, 레이탄의 저 태평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꼴이라도 봐야 했다.
그래야 속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이제 곧!’
저 단 위로 징벌방에서 일부러 도망치게 한 하녀가 나와, 레이탄이 자신에게 한 짓에 대한 억울함을 읍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아우바우트 교단의 고위 사제, 홀트에게 들리겠지.
마리안은 숨을 가라앉히며, 하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안 나와……?”
경매품이 단 밖으로 이동하고, 경매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단 위는 잠잠했다.
마리안의 손에서 숫자판이 허망하게 굴러떨어졌다.
***
“기사들을 물리고 시종을 시켜 문을 열어 주마. 경매장으로 오는 너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마리안이 자신에게 했던 말대로, 늦은 오후가 되자 징벌방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앤은 문 뒤에 숨어 있었다. 없는 척을 하면 시종이 저를 찾으러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혹여 호흡하는 소리가 들릴까 하여 앤은 숨까지 참았다. 양철 주전자를 잡은 손에는 힘을 꽉 주고.
“나와라. 앤.”
“…….”
“왜 대답이 없지? ……참 나. 요즘 하녀들은 살기 편하군. 징벌방에서 반성은커녕 잠이나 자고 있다니.”
시종은 녹슨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이불 아래에 짚을 넣어 사람이 자는 것처럼 꾸민 것이었다. 시종이 이불로 손을 뻗은 그때였다.
“일어나라. 마님께서-.”
퍼억!
때를 노린 앤이 손에 든 주전자로 시종의 무방비한 뒤를 힘껏 가격했다.
시종은 침대 위로 엎어져 기절했고, 앤은 숨을 몰아쉬며 시종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님?”
‘아가씨’가 아닌 ‘마님’이라고 말했다. 트라벨 백작가에서 마님이라 칭할 수 있는 분은 백작 부인뿐인데.
의문이 들었으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앤은 징벌방을 벗어나 본채 밖으로 빠져나갔다.
일몰이 찾아오고 있었다.
쏴아아아.
주변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려 빗줄기 같은 소리를 내었고, 저 멀리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앤은 본채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오른쪽으로 가면 경매가 진행 중인 연회장. 왼쪽으로 가면 트라벨 백작가를 몰래 나갈 수 있는 통로.
‘……믿을 수밖에 없어.’
앤은 어젯밤 찢어 삼켰던 쪽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
계획: 마리안이 무엇을 하도록 지시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 것.
※트라벨 백작가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 남동생은 히스포트 타운 달맞이꽃 여관에 있음.
(중요) 만 코나는 달맞이꽃 여관 뒤뜰의 오줌싸개 조각상 아래에 묻어 두시오.
(중요) 이 쪽지에 관한 건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됩니다. 내용을 볼 수 없게 씹어 삼키십시오.
(트라벨 백작 저 탈출 약도)
———-
마리안이 준다고 약속한 금화는 금화일 뿐.
돈은 아무리 있어도 제프리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 앤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었고, 그녀는 어제 그 기적의 일부를 엿봤다.
“꺅…! 이불이 푸드덕대고 있어…!”
“지푸라기가 춤을 춰……!”
“……아우바우트 님……이세요?”
분명 저밖에 없는 방 안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무생물체들. 그건 생명을 창조하는 아우바우트 신의 능력을 연상케 했다.
지금껏 그런 건 본 적이 없었다.
그 쪽지의 말을 들어서, 제프리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만 코나가 아니라 내 목숨도 낼 수 있는걸.’
앤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한참을 달렸다. 인적 없는 사냥터의 입구가 보였다.
저기로 가면 트라벨의 안쪽 담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나온다.
“…….”
해는 완전히 넘어갔다. 커다란 나무들이 사냥터 입구에 스산하게 뭉쳐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앤의 시야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나무의 그림자일까 생각했으나 가까이 갈수록 형태가 명확해졌다. 사람이다.
들키면 안 돼. 도망쳐야 해.
앤은 뒤로 돌았다. 내달리려고 했으나 발을 꼼짝할 수 없었다.
‘어디로?’
그녀의 눈앞에 자신이 달려왔던 거대한 트라벨의 부지가 들어온 탓이었다. 경사가 있는 언덕에서는 트라벨을 두른 길고 높은 두 개의 담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앤은 그것들이 마치 자신을 가둔 우리처럼 느껴졌다.
“가지 마. 약 따위 필요 없어.”
제프리. 나는-.
사냥터 인근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작은 소리도 낮보다 선명하게 들린다.
앤의 귓가에 자신의 숨찬 호흡 소리와,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달깍.
‘맙소사.’
앤은 사냥터 입구에서 내려오는 이에게서 나는 소리에 절망했다. 요 며칠 동안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징벌방을 지키던 기사들이 움직일 때 이따금 들리던 소리.
허리춤에 찬 검이 금속 고리와 부딪히는 소리였다.
“…….”
발소리는 바로 제 등 뒤에서 멎었다. 앤은 두 입술 안쪽을 말아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부디, 아우바우트 신께서 제 목숨을 받아 제프리를 살려 주시길.
마지막을 예감한 앤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