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7)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27화(27/105)
다음 날 아침.
황도의 트라벨 가문의 저택에서 경매 사건에 대한 칼렛의 보고를 받은 락세크는, 얼굴 근육이 움직일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쉽구나. 황제 폐하의 부름만 아니었으면. 그 재밌는 구경을 놓쳐 버렸어.”
칼렛은 그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경매의 결과는, 마리안이 진주 귀걸이를 12배는 비싸게 샀다는 것이었다.
경매에 참여한 레이탄의 변덕에 의해서!
‘아버지가 되면 철이 들 줄 알았건만…….’
칼렛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제 소꿉친구야, 지옥 불에 던져 놔도 살아남을 인간이지만.
‘베리 아가씨가 걱정이군.’
징벌방에 있던 하녀는 레이탄의 서명이 있는 출입증으로 트라벨 백작가를 나갔고, 마리안은 얻은 것 없이 손해만 봤다.
그 여파가 베리에게 닿을지 모른다.
“마리안 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을 겁니다. 마님께서도-.”
“프리실라가?”
소파에 앉은 락세크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이마와 턱을 짚었다. 황금안을 품은 주름진 눈가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칼렛, 어제 황제 폐하를 뵌 자리에 대교주도 있었다.”
“그러셨지요.”
“대외비라면서 알려 주기를, 레이탄이 어제 그랜드 마스터 복귀 의사를 밝혔다더군.”
“도련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지. 괘씸한 짓을 해 놓고도 입이 근질거리는 걸 참지 못하고 내게 말을 걸었던 걸 보면.”
연신 미소를 잃지 않던 대교주는, 레이탄이 건 ‘조건’을 꺼내며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레이탄 님께서 계약서를 요청하시더군요. 그랜드 마스터 자리에 계시는 동안 저희 쪽에서 트라벨 가문 선수상의 축복에 필요한 신성력을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한데, 어째서 레이탄 님이 아닌 헤반트 님의 이름이 서명란에 있는지…….”
대교주는 그게 못마땅해 제게 계약서 내용까지 말한 게 분명했다. 그도 트라벨 가문의 사람이 실적이라면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
락세크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레이탄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멍청한 놈이 또 주변에서 달라는 대로 제 실적을 버렸군, 그리 생각했다.
그랬으나-.
“계약서는 거래였어.”
“헤반트 님과의 거래입니까?”
“쯧쯧. 지금 시점에서 그 녀석이 헤반트를 포섭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느냐?”
마리안이 판을 짜고 프리실라가 묵인한 상황에서, 레이탄이 승기를 쥐었다.
그렇다면, 그 계약서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인물이 누구겠는가.
‘프리실라.’
제 배로 낳은 자식들, 그중에서도 장남인 헤반트를 가주 자리에 앉히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제 아내가 아니겠는가.
가주는 직계들의 일에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지만, 백작 부인은 달랐다.
트라벨 백작가 내에서 프리실라가 개입하지 못할 곳은 없었다.
늘 궁금했다.
‘레이탄 녀석이 정말로 마이너스의 손일지.’
문제가 생기면 검을 사용하거나 아예 손을 놓는, 무책임한 행동. 그러나 왠지 모르게 결과는 레이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묘한 간극이 있었다. 그 때문에, 락세크는 황금안을 가지고도 레이탄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다.
‘한데, 이번에는 그 녀석이 그토록 싫어하는 트라벨의 방식을 사용했단 말이지. 옛날 같으면 하녀를 빼내든, 경매를 망치든, 앞뒤 가리지 않고 내키는 대로 할 놈이었는데. 뒤처리를 위해 프리실라와 손을 잡았다? 아비가 되니 마냥 머저리 연기를 하면서 살 수는 없었던 게지.’
그래서 락세크는 칼렛의 보고를 받고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확신했다.
아무리 봐도 그놈은 제가 가진 패를 제 뜻대로 이용할 줄 아는 놈이었다.
그 뜻이 최하위 유지 같은 것에 있으니, 문제지만.
“아까운 놈.”
락세크는 혀를 찼다.
“브라운의 망령을 언제까지 쫓을는지.”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나온, 죽은 자식의 이름에 멈칫했다. 칼렛도 마찬가지였다.
침묵이 찾아왔다. 락세크는 헛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가자. 마차에 저것도 꼭 챙기고.”
“예. 한데, 가주님. 저건 어디에 사용하실 겁니까?”
칼렛은 락세크가 챙기라 한 상자를 보며 물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유아들이 글을 익힐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지금 트라벨 가문에서는 딱히 쓸 사람이 없었다.
“크, 흠. 그, 강아지 닮은 조그만 녀석, 있잖느냐.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베리 아가씨 말씀입니까?”
그냥 베리 아가씨라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굳이 돌려 말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허. 내가 언제 내 막내 손녀딸이라 했느냐? 하여튼 그 집에 몰래 갖다주거라.”
“…….”
이유를 묻는 듯한 칼렛의 시선에, 락세크가 가만히 말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단다.”
아. 칼렛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
꿈이 아니다.
히죽히죽.
이른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배게 안에 손을 넣어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전날 자기 직전까지 보고 잤는데도, 여전히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
비밀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에 부하가 되겠습니다.
하티 로제 트라벨
마티 로제 트라벨
———-
쌍둥이가 직접 적은 부하 각서가 내 손에 들어왔거든!
어제 경매 사건의 전리품이었다.
‘뭐, 실제로 효력은 없지만-.’
침대에 엎드린 채 다리를 흔들거리는 중이었다. 아큠이 몸을 비집고 들어와서 자리 잡을 공간을 만들어 줬다.
찰랑. 찰랑.
아큠의 등에 난 물 같은 돌기들이 흔들렸다.
‘닿아도 아무런 느낌이 안 나는 게 신기하네. 손으로 건드리면 물방울처럼 통과하는데.’
내가 아큠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아큠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푸른 눈으로 부하 각서를 읽었다.
[쿼츠, 계약서 쓰는 법부터 배워야겠어. 네 이름도 뭣도 없잖아. 이건 그냥 종이 쪼가리라고.]“일부러 한 거야. 이름을 적으면 증거가 되잖아.”
[증거?]“내가 쌍둥이들 대장이 된 걸 어른들이 알면 그때부터 어른 싸움이 되걸랑. 그러면 아빠가 골치 아파지지.”
각서는 세 장이었다.
하티와 마티가 한 장씩 갖고, 내가 한 장을 가졌다. 누구한테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신중하게 적는 게 좋았다.
[하여간에. 트라벨 인간들은 복잡하게 군다니까.]아큠이 흥, 콧김을 내뿜었다.
“복잡하게 굴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계약서 작성하는 법은 열한 살 때쯤 배우려나?
그때까지 쌍둥이는 이걸로 조용히 시킬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칼립스인데…….’
칼립스는 마리안 고모의 외아들이었다.
어머니인 마리안 고모가 12억을 손해 봤다는 걸 알면 당장 오늘부터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칼립스를 어떻게 해야 평화롭게 수업을 받으려나.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부하 각서를 숨겨 두는 게 좋을 듯했다.
‘사색의 방에 두고 와야겠다.’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자, 아큠이 자연스럽게 어깨 위로 점프해 올라왔다.
[작은 쿼츠, 나랑 관리자 일 같이 해 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응. 흐름이 약해진 수맥을 복구해 주면 되는 거야?”
나는 벽난로 기둥의 꽃 장식을 돌리며 대답했다. 끼이익. 붙박이 장식장이 옆으로 움직이며 비밀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아큠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맞아! 땅에서 고대어가 올라오거든? 자주 보이는 건 아니지만, 보이면 그걸 읽어 주면 돼!]아큠이 말하길, 트라벨의 땅 아래에는 수맥을 연결하는 고대어들이 있다고 했다.
땅속의 고대어는 아주 느린 속도로 솟아오르는 특징이 있는데, 지면을 뚫고 나오게 되면 물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해 그 부분의 수맥이 막힌다고 했다.
관리자의 역할은 지면까지 올라온 고대어를 찾아서 다시 땅속으로 내려보내는 것이고.
[쉽게 말하면, 고대어에 양분을 줘서 무겁게 하는 거야. 인간들도 밥을 많이 먹으면 무게가 늘잖아? 고대어는 언어의 한 종류니까, 말로 양분을 주는 거지!]다만, 트라벨의 부지가 작은 아큠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넓고, 그러다 보니 올라오는 고대어를 찾는 데 꽤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쿼츠가 도와줘서 편했는데. 이번 잠은 너무 오래 잤나 봐. 수맥이 약해진 게 느껴지는데 고대어를 다 못 찾았어.]“글자가 빛나야 고대어가 내려간다고 했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에이. 걱정하지 마. 네 할머니랑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걸! 내가 읽지도 않은 고대어가 막 빛났지. 깜짝 놀랐지 뭐야? 고대어를 보고 읽을 수 있는 인간은 쿼츠가 처음이었으니까.]“그러면 내가 두 번째?”
[맞아. 너 때도 깜짝 놀랄 뻔했어!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네가 쿼츠의 손녀였고, 자고 일어났더니 쿼츠가…….]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는지, 아큠은 울 것같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서둘러 아큠을 달랬다.
“그, 그래도 깨어났을 때 내가 있어서 다행이지? 지금은 안 졸려? 잘 때는 돌멩이로 돌아가 있어야 한다며.”
[별로? 지금은 아침이잖아. 빨리 침대로 가자. 셰리라는 하녀가 깨우러 오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지!]아큠은 나를 친구의 손녀 정도로 생각하는지, 종종 내 상황을 챙겨 주곤 했다.
도마뱀에게 챙김을 받는 어린이라니. 뭔가 이상했지만, 그 말도 맞기 때문에 부하 각서를 두고 곧장 사색의 방을 나가 침대로 걸어갔다.
아큠이 내 어깨에서 신나서 말했다.
[작은 쿼츠는 나를 볼 수 있으니까, 고대어도 볼 수 있을 거야!]“응!”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하다.
마치 우리 아빠가 그랜드 마스터였으니까, 너도 윈디스를 휘두르는 그랜드 마스터가 될 거야. 라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비현실적인 일은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혹시 내가 글자를 읽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아큠이 없을 때 글자가 한번 보이면 좋겠는데…….’
동업자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연습 기회를 바라던 때였다. 꾸물꾸물 침대로 올라가려는 내 뒤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잉?”
셰리 언니 목소리가 아닌데.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앤 언니?”
“네!”
앤 언니가 왜 돌멩이 하우스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