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3화(3/105)
2. 아빠를 살려 보겠습니다
‘아빠를 살려야 해.’
흥. 나는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독수리 석상을 향해 콧방귀를 내뿜었다.
아빠의 죽음은 친척 중 한 명이 외부의 세력과 공모한 결과였다.
아주 안타깝게도 또 다른 나는 친척들 중 누가 범인인지도, 외부의 세력인 공범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내게는 아빠를 살릴 방법이 있었다.
‘5년 주기로 돌아오는 별채 쟁탈식!’
트라벨 백작 가문은 실력 우선주의로, 대대로 능력이 있는 직계를 가주 후계자로 뽑았다.
그리고 가주의 자식들은 별채를 하나씩 갖게 되는데, 현관문 위의 독수리 석상 눈에 박힌 보석으로 후계자 순위를 구분했다.
1순위 다이아몬드, 2순위 사파이어, 3순위 에메랄드, ……, 최하위 보석 없음. 통칭 ‘돌멩이 하우스’.
‘아빠는 일부러 최하위를 택했어.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는 데다가, 권력 싸움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별채는 트라벨 내에서 권력의 상징이었다.
기억 속에서 큰아버지가 고모한테 다이아몬드 하우스를 내줄 때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었다.
‘1순위가 되면 아빠는 전쟁에 못 나가. 그게 트라벨의 룰이니까.’
앞으로 남은 별채 쟁탈식은 두 번. 내 나이를 기준으로 열 살, 열다섯 살이 되는 해였다.
나는 그 두 번째에 아빠를 가주 후계자 1순위에 올릴 거다.
‘능구렁이 헤반트 큰아버지, 하이에나 마리안 고모, 여우 요셀 작은아버지.’
미안하지만 8년 뒤에 가주 후계자는 우리 아빠가 될 거지롱.
미래는 싫지만 미래를 아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일지도.
“크히히.”
나는 승리자의 기분에 도취해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악당처럼 웃었다.
“왜 겉옷도 안 입고 밖에 나와 있어? 감기 걸려.”
“아, 아빠아-. 지금 중요한 생각 중이었다구우.”
“겉옷 입고 해.”
“응.”
금방 아빠에게 대롱대롱 잡혀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
목표가 생겼으니 계획을 세워야 했다. 물론 티가 나서는 안 됐고.
“아, 보습제. 잠시만 계세요. 금방 가져올게요.”
“으응.”
목욕 시중을 들어 준 셰리 언니가 잊은 물건을 찾아 욕실을 나갔다. 나는 커다란 수건을 몸에 칭칭 두른 채, 쪼그려 앉아 바닥을 짚었다.
“오, 바닥 따뜻해.”
트라벨 백작가는 광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열을 내는 광물인 열석도 그곳의 특산품 중 하나였다.
주먹 하나 크기의 열석 가격이 평민 노동자의 한 달 월급. 이 욕실 바닥에만 수십 달 치의 월급이 심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아빠와 살던 집에서는 씻자마자 물기를 닦고 후다닥 옷을 입어야 안 추웠는데.
지금은 욕실 전체가 벽난로 앞에 앉은 것처럼 후끈후끈.
‘이래서 어른들이 돈이 최고라고 했나 봐!’
심지어 여기는 돌멩이 하우스인데도.
큰아버지의 다이아몬드 하우스나 할아버지가 있는 본채는 월급 수백 달 치가 우습게 깔려 있겠지?
친척들이 후계자 자리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조오오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친척들의 경계심을 받는 건 최대한 늦추는 게 좋을 거야.
‘다음 저택 쟁탈전까지는 아빠가 최하위를 유지하는 게 좋겠지? 괜한 견제를 받으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조용히 힘을 길러야 하는데, 할아버지의 귀에 모든 게 들어가는 트라벨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 누가 알았겠어요. 전하께서 저희 가문에 계셨다는 사실을. 견습 기사로 들어가신 전하를 저희 작은아버지께서 쫓아내셨다면서요?
– 그랬었지.
– 가끔은 그때 전하와 친해지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그랬더라면, 아빠가 출전한 전쟁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볼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나만 아는 보석이 하나 있지~
남들은 진흙 묻은 돌멩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견제받을 일도 없는.
“어떻게 친해지나아-.”
“누구랑요?”
때마침 보습제를 찾아온 셰리 언니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장난스레 웃었다.
누구냐면-.
“셰리 언니랑?”
“어머.”
트라벨에서 가장 크게 될 연줄이자, 미래의 조력자가 될 인물.
‘테온 필 이그셀로나 황태자.’
내 첫 번째 계획은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다.
“아빠아!”
보습제를 바른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오니,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욕실에서 내내 아빠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했던 탓인지 아빠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넘어진다. 조심해.”
아빠는 뛰어오는 나를 붙들고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아빠의 목덜미에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베리가 너무 보고 싶었잖아.”
“어쩐 일이야? 어리광을 다 부리고.”
웃으며 말하는 아빠한테서 코롱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아빠도 목욕하고 온 모양이었다.
“우리 베리베리가 아빠한테 원하는 게 있나?”
“그냥, 반가워서 그러지이-.”
“베리.”
“넹.”
“세수 안 했지.”
잡았다, 이놈. 수사관이 된 아빠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억울할 데가.
“아, 아닌데?”
당황스러워서 말을 더듬었는데, 그게 아빠의 의심을 더 사 버린 듯했다.
아빠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정말 닦았어?”
“어허, 레이탄 씨. 지금 딸내미를 의심하십니까.”
“네. 전적이 워낙 많으셔서요.”
“어어? 억울해! 셰리 언니한테 물어봐!”
셰리 언니는 아빠를 돌봐 준 유모의 딸이었다.
그 때문인지 트라벨 백작가에 유독 경계심이 많은 아빠도 셰리 언니는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었다.
“세수도 꼼꼼하게 하셨어요.”
우리 대화를 듣던 셰리 언니가 쿡쿡 웃으며 내 편을 들어 줬다.
그러고 나서도 아빠의 의심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서 나는 허공에 대고 세수 시연까지 해야 했다.
“…큽.”
중간중간 두 사람이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기분 탓이었겠지?
왜냐면 나는 진지했으니까. 진지한 아이를 놀리는 어른은 없을 거야. 그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옙.”
아빠의 사과로 나의 해명이 끝났다.
휴, 결백 증명하기 힘드네.
벌써 밤이었다. 셰리 언니가 잘 시간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레이탄 도련님과 함께 주무시죠?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침대 옆의 끈을 당겨 주세요. 아래층에 제 방이 있답니다.”
“응! 잘 자, 언니!”
“아가씨도 좋은 꿈 꾸세요.”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셰리 언니를 배웅했다.
언니가 나가자 방에는 아빠와 나만 남았다. 아빠의 방은 옆방이었는데, 바뀐 환경에 혼자 잘 내가 걱정됐는지, 오늘만 함께 자기로 했다.
고개를 대각선으로 올리자 아빠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헤실헤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난다.”
“왜?”
“아빠랑 자는 거 오랜만이잖아! 너무 신나는데 어쩌지? 계속 잠이 안 오면?”
***
오산이었다.
포근한 침구, 옆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는 아빠의 목소리.
베리에게는 수면제가 따로 없었다. 눈꺼풀은 점차 무거워지고, 배를 덮은 이불 위에 펼친 동화책의 곰 그림이 없어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잠시 뒤, 방에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남았다. 레이탄은 잠든 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작은 손은 무엇이 걱정되는지 레이탄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 아무리 의젓하게 보여도 베리는 아직 일곱 살.
‘떠나야 해.’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
베리는 똑똑한 아이였다. 돈이 굴러가는 이치를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 트라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주의 자질을 가진 사랑스러운 딸.
자기 형제들이 베리에게서 위협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맹수는 새끼일 때 싹을 밟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짐승들이니까.
“…….”
레이탄의 서늘한 시선이 창밖에 닿았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에서 옷자락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꼈는지, 베리가 칭얼거렸다.
레이탄이 머리를 쓰다듬자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 금방 다녀올게.”
그는 잠든 딸에게 속삭이고는 1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 적색 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찾아가려고 했는데 먼저 왔군.”
트라벨 백작의 보좌관인 칼렛이었다.
칼렛은 레이탄의 살갑지 않은 말투에도 덤덤히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