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4)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34화(34/105)
나는 석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작은 쿼츠! 여기 어디야? 힘이 막 넘치네!]아큠, 아큠이었다.
주머니에 있어야 할 내 소중한 돌멩이가 아우바우트 신의 석상 눈동자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네가 왜 거기에 있어?!’
분명 트라벨 밖에서는 강제로 잠을 자야 한다고 했잖아.
믿을 수 없어서 눈을 비비고 봤다. 그래도 저건 아큠이었다.
“베리, 눈이 아파?”
“괜찮아?”
아빠와 테온이 말을 걸었고, 대교주님도 나를 봤다. 그뿐인가. 내가 아큠을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지른 소리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이건 뭐지? 거대한 놈이네!]찰팍. 찰팍. 아큠이 아우바우트 신상의 이마를 앞발로 때렸다. 대교주님과 사제님들이 신성 모독이 벌어지는 이 참사를 몰라서 다행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일단 아큠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가슴 앞으로 두 손을 꼭 그러모아 쥐었다.
“아! 아우바우트 신님……!”
“오호, 레이탄 님. 베리가 신앙심이 깊군요.”
한데, 배달 사고가 났다.
아큠이 아닌 대교주님에게 내 말이 닿았다. 신실한 어린 신도의 모습이 대교주님의 감동을 산 모양이었다.
“……예. 몰랐는데, 그렇군요.”
아빠가 찜찜한 말투로 대답했다.
“기특하구나. 아이의 신앙심은 순수하기에 더욱 값지지.”
죄송합니다. 순수하지 않습니다.
[신난다! 여기 트라벨 아니지? 내가 모르는 곳이 있을 리가 없잖아!]“신이…….”
“신께서, 라는 표현이 옳은 거란다.”
양심을 찌르는 대교주님의 말을 뒤로하고 아큠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자니, 대교주님이 내 말을 고쳐 주었다.
신께서, 신이 나서, 그러니까.
[작은 쿼츠! 나 밖에 좀 돌아보고 와도 돼?]“아……!”
안 돼!
대교주님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여기서 내가 안 돼, 같은 소리를 하거나 고개를 저으면 저 인자한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아우바우트 신께서 움직이시는 줄 알았어요! 우와…!”
신상이 손을 움직여 아큠을 잡아 주는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랐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아하. 인간들이 많아서 대답 못 하는구나? 나는 여기 좀 돌아다녀야겠어. 재밌어 보이는 게 많거든!]아큠은 그 말을 끝으로 석상에서 내려와 폴짝폴짝 주신전의 문밖으로 나갔다.
뜨악.
말릴 수도, 말릴 새도 없었다. 작아서인지 아큠은 빠르기도 무척 빨랐다.
지난번 트라벨에서 아큠이 사라졌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따라가야 해!’
우리가 대신전을 나가기 전에 아큠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큠을 찾지 못한다면 트라벨 부지는 관리자를 잃고, 나는 내 병과 트라벨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될 거다.
할머니의 유품을 잃어버렸다고 실망하는 아빠나 할아버지를 보는 것도 싫었다.
“베리, 왜 그래.”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눈치챈 모양인지, 아빠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걱정이 담긴 아빠의 다정한 푸른 눈.
사라져 버린 내 동업자를 연상케 하는 저 푸른색.
“아빠, 나 밖에 구경 더 하고 와도 돼?”
“밖?”
“아까 하얀 길 옆에 있던 작은 석상들 보고 싶어서! 역사 시간에 배웠는데, 대신전의 꽃은 석상들이래. 마담 프레아가 체험 학습에서 뭘 봤냐고 물으면 대답할 게 있어야 하니까-.”
“‘비움의 길’에 있는 신의 사자들 말이구나. 석상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은 학습이지.”
“정말요? 대교주 할아버지?”
때마침 대교주님까지 좋은 생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윈디스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게 누구였더라.”
“생각이 바뀌었어! 아빠가 윈디스가 있는 방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이따가 테온 할아버지네도 가야 하는데, 시간 아껴야지.”
급조한 것치고 나름대로 괜찮은 핑곗거리라 생각했는데, 변수가 있었다.
“가자.”
“아빠도 같이 가게?”
혼자여야만 하는 내 여정에 아빠가 따라오겠다고 한 것이었다.
“나도 갈 거야.”
테온도 냉큼 아빠의 옆에 서서 내게 의사를 밝혔다. 방금까지 윈디스를 보겠다고 잔뜩 긴장한 애가 맞나 싶었다.
다만, 대교주님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빨리 윈디스를 봐 주셔야…….’라며 뒤쪽의 사제님들 사이에서도 작게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에이, 나 혼자 갈게. 위험한 것도 없어 보이고. 대교주 할아버지, 맞죠? 여기 하나도 안 위험하죠? 그리고 아빠는 빨리 윈디스를 달래 줘야 하니까요!”
“그, 그렇구나.”
급해서 파는 우물이라면 같이 파는 게 빠르다. 대교주님과 나는 눈빛 교환 한 번으로 동맹을 맺었다. 대교주님이 말했다.
“하나도 위험한 것이 없지. 아무렴. 오늘 외부인은 한 명도 들이질 않았으니까. 밖에 혼자 다녀도 내 집 거실처럼 안전할 거다.”
“와! 그러면 저 혼자 구경해도 되겠어요!”
“그렇지. 별일 있으면 이 할아버지가 해결할 테니 마음 놓고 다니거라.”
“대교주 할아버지 말씀 들었지? 나는 내 할 일 할 테니까 아빠랑 테온은 윈디스 보고 와~”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
“…….”
아빠랑 테온이 미심쩍은 눈빛을 했다. 스승이랑 제자 아니랄까 봐, 그새 눈빛이 똑 닮아졌다.
안 되겠다. 설득은 무리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급할 때는 편법도 방법이었다.
나는 울먹거리며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나… 신뢰… 못 해…?”
이대로 아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섞여 조금 울고 싶었기에, 연기하지 않아도 코끝이 살짝 찡해졌다. 연기였다면 아빠한테 들켰을지도 모를 테니, 이 편이 좋았다.
“하지.”
“왜 못 해.”
아빠랑 테온이 동시에 말했다. 허락도 떨어졌겠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잡힐세라 주신전을 후다닥 빠져나갔다.
“그러면 갔다 올게! 이따 봐!”
***
“아, 아큠.”
그렇게 나온 건 좋았으나, 문제는 트라벨이나 대신전이나 아큠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거였다. 이렇게 넓은데 그 코딱지만 한 애를 어디서 찾냐, 이거지.
주신전 주변에는 아큠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만나지 못할까 발걸음이 초조해졌다.
‘어디로 간 거야아-.’
아큠을 찾으러 헤맨 지 십여 분째. 나는 이 천국 같은 대신전의 단점을 하나 발견했다.
너무 하얘서 눈이 아프다.
“안녕하세요, 귀여운 어린 신도님.”
심지어 마주치는 사제님들의 옷도, 모자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밥은 어떻게 먹을지 걱정될 정도로 하얬다.
“안녕하세요-!”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걸 다들 아는 모양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호의적인 미소로 내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나 때문이 아닌, 레이탄 쿼츠 트라벨 때문에 짓는 미소겠지만.
‘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큠은 트라벨의 수맥을 관리하잖아.
주신전 주변에 없다면, 이동 거리를 더 길게 가늠해야 했다. 나는 앞에 서 있는 사제님에게 뒤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제님! 저-어기는 어떻게 가요?”
“저기요?”
사제님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나무로 조경한 언덕 아래, 인공적으로 만든 하얀 돌벽을 타고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
“주신전의 뒤로 가시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어요. 제일 오른쪽 길로 가면 인공 폭포가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온답니다.”
나는 체험 학습이라는 핑계로, 사제님을 통해 인공 폭포로 가는 길을 알아냈다.
‘저기라면 아큠이 있을지도!’
있어야 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달리 마땅한 곳을 추측할 수 없으니까.
그나마 좀 나은 건, 인공 폭포가 있는 장소로 오자 색이 비교적 다채로워졌다는 거였다.
높은 폭포대를 제외하고는 인위적인 흰색이 없는 곳이었다. 아큠도 없었지만.
“…….”
혹시 물에 잠수해 있는데 안 보이는 건 아닐까.
보호색이잖아.
나는 인공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가둔 물받이 앞에 서서 맑고 투명한 물을 내려다보았다.
“아큠.”
“…….”
“멀리서 말하면 잘 안 들리려나.”
양 갈래로 딴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물받이의 하얀 대리석을 두 손으로 짚고 수면에 얼굴을 바짝 대고 말했다.
“거기 있어?”
“뭐 찾는 거야?”
깜짝이야. 너무 놀라서 물에 얼굴이 빠질 뻔했다.
안타까운 건 머리카락을 사수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상체가 기울어질 때 쏟아진 머리카락의 아래쪽이 흠뻑 젖었다.
‘으악.’
이건 또 언제 말리지. 울상을 짓는 내 뒤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놀라게 했나 보네.”
유리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고운 소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