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6)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46화(46/105)
넓은 갑판 위.
부둣가에 정박한 거대한 배는 트라벨 백작 가문의 수송선이었다. 드디어 선수상에 축복을 받는 날이 온 것이었다.
하지만 트라벨 백작, 락세크는 심기가 불편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아까부터 배알이 살살 꼬였다. 어쩌면 선수상에 축복을 내리고 있는 저 대교주 때문인지도 모른다.
‘뭔가가 있군.’
원래라면 고위 사제 한 명을 보내고 말았을 거다. 한데 이번에는 신성력이 남는 이가 저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며 직접 행차를 하신 것이다.
락세크는 대교주가 축복을 끝낼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 대교주가 락세크에게로 걸어왔다. 허허 웃는 대교주의 눈이 자꾸 한 곳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시엘, 칼립스, 하티, 마티가 있었다. 지난번에 쌍둥이가 항구를 보고 싶다고 말해서, 이번 기회에 선수상의 축복을 견학하러 나온 것이었다.
“손주분들이 참으로 귀엽습니다.”
“뭐, 저 연령대 애들이야. 다 귀엽지 않소.”
락세크의 옆에 대교주가 섰다. 두 사람은 나이가 엇비슷했으나 트라벨 백작의 키가 훨씬 컸다.
‘얼굴이 폈군. 살판이 났어.’
락세크는 대교주를 곁눈으로 내려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교단에게 좋은 일을 해 준 꼴밖에 되지 않았다.
교단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레이탄을 찾았고, 골칫덩어리 성검을 제 아들에게 떠넘겼으며, 트라벨 백작가에서 낸 기부금도 한 푼 돌려주는 것 없이 고스란히 받았다.
되짚어 떠올려 보니 열이 올랐다.
락세크는 슬쩍 대교주를 저격했다.
“한데 염려되는구려. 대교주께서 직접 오셨으니, 한 가문에 사사로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면 어쩌오?”
“허허. 그런 시선이 대수겠습니까. 그랜드 마스터께서 계신 가문 아닙니까. 도움이 필요하시면 교단에서 도와야지요.”
허. 선수상을 축복하는 일로 절 협박할 때는 언제고. 잘도 선심 쓰는 척하는구먼.
하여튼 저 늙은이는 젊을 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열불을 내봤자 우스워지는 건 자신이었다. 락세크가 다음을 기약하며 속을 삭이던 때였다.
“그런데 제일 작은 손녀가 안 보입니다? 대신전에서 트라벨 백작가로 충분히 돌아올 시간이 되었을 텐데.”
대교주의 말에 락세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신전을 방문한 제일 작은 손녀라면 그 아이밖에 없지 않은가.
‘이, 이놈이?’
대교주, 저 좁쌀보다 속이 작은 인간이 지금 이 락세크 아이언 트라벨의 막내 손녀딸에게 관심을 가져?
그래, 아까부터 손주들을 보며 뭔가를 찾는 듯하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기가 불편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내 감은 못 속인다. 이놈아.’
제 감이 어떤 감인가. 트라벨 백작가를 역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놓은 감이었다.
락세크를 아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실력이나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사업에서는 감과 운이라는 게 있어야 했다.
락세크 본인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확신이 들어서 행동하면 그게 정답이었다.
예순이 넘는 세월 동안, 락세크는 자신과 같은 이를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천부적인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트라벨 백작가가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었다.
막대한 부를 쌓았으니 그것을 지킬 후대가 필요했다.
락세크는 차기 가주로 저와 같은 감각을 가진 이를 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자식 중에는 없었다.
브라운, 그 녀석이 입적을 앞두고 사고를 당하지만 않았어도.
갑자기 속이 쓰렸다. 락세크는 대교주와의 대화에 다시 초점을 맞췄다.
“우리 작은 손녀는 왜 찾으시오?”
“대신전까지 레이탄 님을 따라왔지요. 참으로 귀엽더군요. 저를 할아버지, 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어찌나 천사 같던지.”
“뭐-ㅅ.”
락세크는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호통을 가까스로 삼켰다.
‘뭐! 네놈이 어찌 우리 손녀딸한테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
저도 아직 맘껏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하, 할아버지.”
저만 보면 겁을 먹고 굳어 버리니. 그런데도 할 말은 다 하는 맹랑한 구석도 있었다.
막내 손녀딸의 분홍 머리통이 생각난 락세크는 입매를 슬쩍 올리다가 인상을 썼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친할아버지가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는데.’
피도 안 섞인 대교주가 왜 제 손녀딸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있냔 말이다.
“제 손녀딸이 어려서 대교주께 실례를 했나 봅니다. 오면 제대로 호칭을 말하라고 교육하겠소.”
“아닙니다.”
대교주가 허허 웃으며 답했다.
“어린아이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어찌 실례입니까? 마침 저도 그렇게 불러 주는 이가 없어서 쓸쓸했는데, 이번 기회에 손녀 하나 생긴 셈 치지요.”
“아니요. 그런 경우 없는 일을 겪게 하실 수는 없으니, 단단히 교육하도록 하지요.”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습니다.”
정면을 보던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시선이 마주친 둘은 웃는 낯이었으나, 그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었다.
‘어딜 넘봐? 사제들한테나 가서 할아버지 노릇 하시지.’
‘할아버지 소리 독점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나셨군, 그래.’
허허, 허허허.
웃음소리를 비집고 고위 사제 한 명이 대교주를 찾았다.
락세크는 다시 멀어지는 대교주의 뒷모습을 보며 콧바람을 뿜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나이가 든 모양이었다. 이런 유치한 신경전이라니.
“칼렛.”
락세크는 근처에 있는 제 보좌관을 불렀다.
칼렛은 들고 있던 수첩을 품에 집어넣고 락세크에게로 걸어왔다. 직계들에게 무역업을 가르치는 선생이 무언가를 적고 건네준 칼렛의 수첩이었다.
“언제 온다더냐?”
“짐마차들은 오전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오늘 출항 계획에 차질은 없도록-.”
“거, 말고.”
락세크가 크흠, 큼 헛기침했다.
칼렛은 유능한 보좌관이었다. 트라벨 백작이 요즘 저렇게 말을 돌려 안부를 묻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베리 아가씨께서는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몰라? 왜?”
“전보를 보냈지만, 아직 답신이 없으셨습니다. 같이 간 기사에게 보고가 왔는데, 근처 마을에서 레이탄 도련님께서 불러 주실 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답니다.”
“레이탄 녀석이 지금 어디 묵고 있기에?”
“리프 마을입니다.”
영주령도 아닌 시골 마을이었다. 락세크는 처음 듣는 이름에 눈썹을 들썩였다.
“테온이라고, 레이탄 도련님 제자의 고향이라더군요.”
“대신전에서 바로 갔나 보지?”
“네, 홀트 사제님께서 베리 아가씨가 귀엽게 작별 인사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자랑을 전해 들은 락세크의 귓가에 손녀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교주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아니지.
방금 것은 상상이 만들어 낸 환청이었다.
락세크는 가볍게 코웃음 쳤다.
대신전으로 떠날 때 저한테도 안 한 작별 인사를, 대교주한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칼렛.”
“네.”
“내일하고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되지?”
***
테온과 나는 칼립스, 아니, 포치를 데리고 통나무집 대문에 도착했다.
포치는 토마토 할머니께서 키우는 치와와의 이름이었다.
“얌전하네.”
피크닉 바구니를 한 손에 든 테온이 포치를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저래 봬도 목청이 크더라.”
주인 할머니와 떨어진 포치는 꼬리를 축 내리고 우리 뒤를 터덜터덜 쫓아오는 중이었다.
나는 산책 줄을 잡은 손을 가볍게 앞뒤로 흔들며 테온에게 말했다.
“본웰 마을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개는 늑대랑 같은 개과랬어. 그래서 종은 달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충분히 된대.”
“제프리가 하는 말을 포치가 알아들을까?”
“확인해 봐야지~!”
인간을 혐오하는 들개족을 산속에서 내려오게 하려면, 인간들의 말보다는 개들의 말이 효과가 좋을 터였다.
발 없는 말이 하룻밤에 수십 킬로미터를 간다는 속담도 있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때마침 제프리가 양동이를 끌며 현관 밖 데크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제프리!”
“어? 베리 누나! 테온 형!”
시무룩했던 제프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양동이를 내팽개치고 우리 앞으로 달려온 제프리가 킁, 하고 콧잔등을 씰룩였다.
“개?”
“끼잉. 낑.”
“오잉.”
제프리랑 눈이 마주친 포치가 냅다 배를 뒤집고 누워 낑낑 소리를 냈다.
“제프리한테는 꼼짝을 못 하네?”
“늑대는 개보다 강하니까!”
제프리가 뿌듯한 듯 허리에 양손을 올렸다. 나는 그런 제프리를 불렀다.
“제프리, 제프리.”
“응?”
“얘랑 대화할 수 있어?”
“기본적인 것 정도는.”
오. 나는 테온과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그러면 얘한테 말 좀 전해 줄 수 있어?”
“뭐야? 내 도움이 필요해? 그래!”
***
효과는 엄청났다. 포치를 집에 데려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들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졌다.
컹컹 짖는 소리에 하울링까지.
“거,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길을 걷던 마을 어르신이 화가 나 빽 하고 지르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