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5화(5/105)
빛, 불, 바람, 흙.
주신의 이능을 가진 네 개의 성검.
레이탄은 바람의 이능이 있는 ‘윈디스’의 선택을 받아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6년 전, 그의 육아 퇴직과 동시에 윈디스는 대신전에 보관되었고, 성검은 현재까지도 다음 주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칼렛, 그 성검 말이다. 주인이 없으면 쌓인 힘을 발산하지 못해 폭주한다지?”
“네. 성검의 폭주는 신성력으로 억눌러야 하는데, 최근 4년간 교단의 신성력 상당량이 그 용도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트라벨 백작의 시선을 받은 칼렛이 곧장 아는 내용을 보고했다.
레이탄 또한 윈디스의 새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교단과 상관없는 외부인이었다. 윈디스를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베리를 지키기 위한 과거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레이탄은 일말의 미련을 털어 내듯 손가락을 튕겼다.
“교단의 신성력이 낭비되는 게 트라벨이 움직일 이유가 됩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신실하셨다고.”
트라벨 백작가와 교단은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득을 보는 이해관계에 얽힌 사이였다.
트라벨은 돈을 제공하고 교단은 그에 따른 편의를 제공한다.
그 이해관계를 교단이 무너트린 것이다.
“교단에서 올해부터 선수상에 축복을 내려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주신의 힘인 신성력을 한 가문에만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요.”
노기로 입을 다문 트라벨 백작을 대신해 칼렛이 설명했다.
트라벨 백작가의 주 사업 중 하나는 해상운송업이었다.
선박의 앞머리에 달린 신성력을 머금은 조각상은 배를 자연재해로부터 지켜내 준다.
이 때문에 트라벨은 매해 교단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며 선수상에 축복을 받았다. 태풍이 잘 부는 해역을 주로 지나는 트라벨 가문의 배에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염치도 없는 것들.”
트라벨 백작이 이를 갈았다.
몇 주 전, 대교주가 허허 웃으며 지껄였던 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가 계신 가문이라면 상황이 다르겠지요. 주신께서 이능을 사용하도록 허하신 분들이시니, 그분들의 가문을 위해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주신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은퇴한 레이탄을 찾아서 그랜드 마스터로 복귀하도록 도우란 소리였다.
자신들의 정보력으로는 레이탄을 찾을 수 없으니, 트라벨 백작가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감히 그딴 소리를 해?”
올해 초에 기부금으로 수억 코나까지 받아 놓고서!
주신께 헌납된 돈이니 환급도 안 된다며!
그 시커먼 속과 절 협박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있나.
“빚은 나중에 갚아 주게 해야지.”
폭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연구에 성공했다는 연금술사 놈들의 말을 듣고 배를 출발시켰다가 해역 한가운데에서 전복돼 큰 손실을 본 후였다.
선수상에 축복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런 일을 당할 테니, 이번에는 그 장단에 놀아나 주는 수밖에.
“레이탄 도련님께서 이번 일을 해결하시면 다음 별채 쟁탈전 평가에 크게 반영될 겁니다. 아마 2순위까지 무리 없이…….”
“닥쳐. 칼렛.”
레이탄의 목소리에 살기가 실렸다.
실적, 가문의 이익, 후계자 순위…. 그걸 위해서라면 혈육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는 짐승들의 세계.
“아버지! 제발……!”
“시끄럽다! 돈도 안 되는 그깟 일에 네놈이 왜 나서!”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떠났다.
6년 만이어도 여전하군. 이곳은.
레이탄은 실소했다.
“원하시는 대로 대교주를 설득해 보죠. 선수상에 축복 내려 주는 일을 계속해 달라고.”
“음.”
“대신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베리와 저는 일이 끝나면 떠날 테니,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 백작님의 망나니 자식 놈이 깽판 치고 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시면.”
레이탄의 어깨 위로 푸른 오러가 얕게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제 아버지에게 경고한 레이탄이 문고리를 잡은 때였다.
“네 아이 말이다.”
레이탄이 고개를 돌렸다. 락세크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예상했지만, 대단하신 트라벨 백작에게 제 경고 따위는 모기 날갯짓보다도 못했다.
“몸은 어떠냐.”
“…무슨 의미입니까?”
“잔병치레는 없냐는 말이다.”
“…….”
관계가 틀어진 부자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맴돌았다.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트라벨 백작은 둘째 아들을 바라봤다.
“눈이 죽은 네 어미를 똑 닮았더구나.”
3. 붉은 독수리 기사단
자고 일어났더니 해가 중천이었다.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었다.
트라벨에서는 게으름뱅이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까. 설레기 시작한 내 마음은 단박에 무너졌다.
“늦잠 자는 건 오늘만이야.”
아빠는 하녀 언니가 들고 있는 벨벳 보관함에서 커프스단추를 골라 집으며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은 아빠의 모습에 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주변의 하녀 언니들도 아빠를 힐끔힐끔 엿보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일어나서 아침 먹어야지. 잠옷은 안 갈아입더라도.”
아빠는 내가 쿨쿨 자고 있던 사이, 씻고 아침을 먹고 옷까지 갈아입었다.
나는 아직도 잠옷 차림으로 셰리 언니한테 빗질을 받고 있는데.
아빠 방 소파에 두 발을 뻗고 앉은 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뜨악. 삶이 팍팍해.”
투덜거렸더니 아빠가 내 정수리에 손을 얹고 살짝 흔들었다.
“한창 클 때니까 어쩔 수 없지. 성장기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 게 좋다잖아.”
셔츠 소매에 뿌린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킁킁. 아빠한테서 귀족 냄새가 난다.
“그런데 왜 외출복이야? 어디 가?”
알면서 물어보는 거였다. 윈디스 때문에 가까운 신전에서 고위 사제들이 아빠를 기다리는 중이니까.
“근처 마을에.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올 거야. 셰리도 본채에 다녀와야 한다니까, 잘 놀고 있을 수 있지?”
아빠는 내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튕겼다. 이건 아빠와 나의 암호였다.
유능한 건 비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철부지처럼 행동하기.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셰리 언니는 본채에 왜 가아?”
“집사장님한테 식재료를 더 뜯어 와야, 아니, 받아 와야 하거든요.”
오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면 몇 시간 동안은 아빠가 없는 데다가, 집사장 아저씨까지 돌멩이 하우스에 신경을 못 쓴다는 거잖아?’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보는 눈이 확 줄었으니 트라벨 저 어딘가에 있을 미래의 조력자와 안면을 틀 기회다.
작은 문제라고 한다면, 여기에 남은 사람 중에 친척들의 첩자가 있다는 거?
“그럼 뭐 하고 놀지-. 아빠랑 셰리 언니가 없으면 심심한데-.”
놀잇감을 탐색하듯 방을 둘러보다가 하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마리안 고모가 심어 놓은 하녀 언니, 앤.’
나는 앤을 향해 방긋 웃었다.
“언니가 나랑 놀아 줄 거야?”
“예? 그럴까요?”
내가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앤은 무방비하게 좋아하는 티를 냈다.
그도 그럴 게, 앤은 돌멩이 하우스에 온 뒤로 마리안 고모에게 보고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해 애가 타는 중이었다.
아빠는 찬바람이 쌩쌩 부니까 만만한 어린이인 나를 공략해 보려고 어제오늘 눈치를 살피는 듯했는데-.
‘약점을 아는 쪽은 나라고~’
앤은 귀여운 거에 몹시 약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기는 쑥스럽지만, 한 달 뒤에 앤은 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할 만큼 귀여워하게 된다.
***
트라벨 백작가의 부지는 30만 평에 달했다.
광활한 땅은 거대한 돌담을 경계선으로 직계들이 사는 공간과 트라벨 백작가에 속한 이들이 사는 공간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트라벨 백작가 소속, 붉은 독수리 기사단.
그들의 훈련소는 돌담 안, 트라벨 백작 저 서쪽에 있었다.
“흐랏챠!”
“하압!”
땀을 흘리는 기사들의 기합 소리가 요란했다. 별관 1층의 실내 연무장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기사들 앞에는 짧은 회색 머리의 렉스 총부단장이 서 있었다.
“집중해라! 기사는 정신력과 체력이다!”
렉스 총부단장의 커다란 외침이 연무장에 가득 찼다.
돌격하는 회색 곰, 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덩치도 컸다. 통나무 같은 팔 근육이 꿈틀거렸다.
“요령 피우다 걸리는 녀석들은 특별 훈련을 실시한다!”
“네!”
특별 훈련.
“전장의 흙바닥이 얼마나 아늑한 침대였는지 기억나게 될 거다!”
절대로 하기 싫다!
“네!”
그러나 힘찬 대답과 달리, 기사들은 조금 전부터 자꾸만 한곳에 신경을 뺏기고 있었다.
뿅. 뿅.
복도 쪽 창문.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무언가.
‘저게 뭐야?’
‘분홍색….’
‘털 뭉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