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0)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50화(50/105)
레이탄이 들개족을 눈앞에서 내쫓은 뒤였다.
그는 시선으로 딸을 찾았다. 눈이 마주친 테온이 숲 쪽을 가리켰다.
‘숲?’
마샬은 레이탄이 베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레이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라고 말했다.
레이탄은 그때마다 자신하며 대답했다.
“저는 얌전한 편이었죠.”
브라운이 들었더라면 황당해할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증인 없는 본웰 마을에서 그의 주장은 완전 범죄나 다름없었다.
레이탄은 몸을 일으켰다. 사실 아까부터 진정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베리가 위험할 뻔했다. 달빛 아래에서 빛난다는 머리핀을 베리에게 달았기에 망정이지.
“⋯⋯.”
숲으로 들어가려던 레이탄은, 나무 사이로 나오는 이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베리가 들개족의 족장과 어린 들개족과 함께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
베리가 손을 흔들었다.
경각심이란 하나도 없는, 해맑은 모습에 레이탄은 마음을 정했다.
‘올해 용돈은 주지 말아야겠군.’
베리라면 그 정도는 해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테니까.
“코코네 아빠가 할 말이 있대!”
“코코?”
“응! 얘가 코코야!”
베리는 같이 온 코코를 안아 들고는 레이탄에게 소개해 줬다.
오들오들. 무서운 인간을 마주한 들개족 아이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베리, 나, 나⋯ 내려 줘⋯.”
급기야 벌벌 떨던 코코가 펄쩍 뛰어 내려가 제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아이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익숙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보다 레이탄이 볼일이 있는 건 제 딸이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베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베리는 아빠랑 이야기 좀 할까?”
“앗, 근데 나 코코가 걱정되니까 갔다 올게! 아빠는 코코네 아빠랑 이야기하고 있어! 아빠한테 할 말이 있대!”
“뭐? 베리베리. 기다려.”
“갔다 올게~!”
하지만 이미 레이탄이 잔소리할 것을 알아차린 베리였다. 베리는 재빠르게 코코를 따라 사라졌고, 남은 건 레이탄과 지칼뿐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한쪽은 바닥을 기어 목숨을 구걸했고, 다른 한쪽은 그 구걸을 강요했던 사이였다.
어색한 공기가 두 남자 사이를 맴돌았다.
정적을 깬 건 지칼이었다.
“큼, 큼. 달이 밝군.”
“할 말이 뭐지.”
레이탄이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일축했다.
지칼이 쩝, 입맛을 다셨다. 그 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숲속.
베리란 인간 아이는 메마른 땅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눈을 빛냈다.
“숲의 정령이 만들어 준 샘이라고요? 그게 말랐어요?”
“그래. 인간들에게 배신당한 우리 선조들은 거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것을 불쌍히 여긴 숲의 정령이 황폐한 산에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 줬지. 우리 종족은 대대로 그 샘을 지켰다. 누구도 우리의 산을 침범할 수 없게.”
원래라면 존재조차 알려서는 안 되는 신성한 샘이었다.
지칼이 이 아이에게 그걸 말한 이유는, 모든 게 끝났기 때문이었다.
더는 지킬 것이 없었다.
한 달 전쯤, 샘은 완전히 말랐다.
물이 없으니, 식물은 말라 죽고, 동물은 떠났다. 들개족만이 남았다. 선조의 땅을 버릴 수 없어 죽어 가는 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인간들이 토지 개발 때문에 자신들의 산에 연금술사들의 약을 풀었다는 걸 알게 됐다.
들개족은 분노했다.
인간. 모든 게 인간 때문이다.
“연금술사들의 약이다. 그게 우리의 샘을 마르게 한 것이다. 인간은 어째서 가만히 있는 우리를 죽이려 들지? 토지 개발이 무엇이길래?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지. 인간들을 잡고, 토지 개발을 막자. 우리의 산을 지키자고.”
“아닐 텐뎅.”
“뭐? 어린 인간. 너도 역시 인간이다. 가증스러운-.”
“연금술사 약 때문이 아닐걸요?”
“우리가 똑똑히 들었다. 산을 죽이는 약을 땅에 뿌렸다고. 우리의 산을 몰래 침입한 놈들이 그랬어.”
크릉. 지칼이 조용히 분노했다.
“하지만 그 샘, 천천히 말라 갔죠? 완전히 마른 게 최근이고?”
“…어떻게 그걸 알지?”
“히히. 그러면 그거, 제가 고칠 수 있을 거 같아요! 90퍼센트 확신!”
아이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했다.
샘을 고칠 수 있다고? 어린 인간이?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이의 설득이 이어질수록 지칼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들개족한테는 샘을 되살릴 방법도 없잖아요! 그냥 있느니 뭐 해요? 밑져야 본전인데~”
“…알겠다.”
“그런데 베리는 일곱 살이라 보호자 없이는 못 가요. 코코네 아빠가 우리 아빠를 초대해야 해요!”
그런 연유로 지칼이 레이탄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레이탄 쿼츠 트라벨.
들개족의 전사인 자신을 바닥에 기게 만든 악독한 인간이다.
하지만, 샘을 되살릴 수 있다면. 산을 지킬 수 있다면-.
“할 말이 뭐지? 나도 볼일이 있어서 빨리 말해 주면 좋겠는데.”
레이탄이 지칼을 재촉했다. 지칼은 무너지는 자존심을 끌어안고, 레이탄에게 말했다.
“코코가 베리랑 친해진 모양이던데….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겠나…?”
“안 가.”
들개족의 전사가 필사적으로 건넨 제안이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런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기에, 지칼은 당황하며 자리를 벗어나려는 레이탄의 옷깃을 붙잡았다.
지익.
날카로운 발톱에 레이탄의 외출복이 찢어졌다. 얼마 전에 새로 맞춘 것이었다.
“…….”
“미, 미안하다. 그런데 자네가 꼭 와 줬으면 좋겠어. 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좋거든. 인간들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지?”
“……됐어.”
“그러지 말고.”
“안 간다고 했어.”
“아, 거 참! 그냥 오면 안 되나?! 자네가 이제 우리 대장인데!”
지칼이 성을 냈다. 답답함에 지른 포효였지만, 레이탄의 의심을 샀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제 아래에 들어와 제 힘에 기생하려는 녀석들.
“이제 알겠군. 그렇게 혐오한다는 인간에게 대장, 대장 거리는 게 이상했는데. 나한테 네 녀석들 산을 지키라는, 그런 귀찮은 일을 떠넘기려고 하는 건가?”
“무슨-.”
“쿨럭, 쿠울럭!”
“컥.”
“켁.”
레이탄의 말에 지칼은 황당해했고, 고기를 먹던 들개족 넷은 사레가 들렸다.
레이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럴 심산이었군.”
“아, 아닐세.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지칼이 손을 내저었다. 레이탄의 안중에 들어오진 않았다.
레이탄은 제 눈을 피하는 들개족을 바라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힘을 바라고 제 아래에 들어오려 하는 녀석들, 받아 줄 수 있지.
“쓸 만하겠네.”
대신 그만큼 굴리겠지만.
***
“볼, 트, 만-! 남작님-!”
이른 아침이었다.
리프 마을 청년, 토마스가 볼트만 남작의 집에 노크도 없이 쳐들어왔다.
“…….”
볼트만 남작은 주방에 있었다.
간밤에 고기 도둑이 들었다. 오늘도 고기 스튜를 끓이려고 일어나자마자 주방을 찾은 볼트만 남작이 허망하게 토마스를 돌아보았다.
“자네인가?”
“네?”
“네가 내 고기를 훔쳐 갔느냐고.”
평소 같으면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한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그런 말도 없이, 다짜고짜 고기 도둑이라니. 볼트만 남작의 흉흉한 눈빛에 토마스가 흠칫했다.
“남작님! 지금 노망드실 때가 아닙니다!”
“내 노망에 네가 뭐 보태 줬나? 그러면 어느 때인데?”
“트라벨 백작가 도련님! 레이탄 님! 안 계세요?!”
볼트만 남작은 고개를 돌렸다. 손님방과 테온의 방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직 안 일어난 모양이네만.”
새벽과 아침이 모호한 시간이었다.
볼트만 남작의 말에 남작 부인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들 집에 없어요.”
“집에 없어?”
“네, 방이 텅 비었네요. 테온도 안 보이고…, 앤은 마샬 부인한테 가 본다고 좀 전에 나갔어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토마스였다.
덩치 큰 청년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들개족이 마을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들개족이라니!”
볼트만 남작이 고함쳤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약속한 기한은 오늘 자정까지이지 않은가!”
“모,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한스가 물레방앗간에서 나오다가 들개족이 단체로 산등성을 달리는 것을 봤대요…! 어찌합니까? 볼트만 남작님, 네? 저희 어쩌면 좋습니까?!”
더 들을 것이 없었다.
볼트만 남작은 검을 잡고 오두막집을 박차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