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0)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70화(70/105)
아큠이다.
고개를 숙이자 주머니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민 아큠이 보였다.
대신전에서는 힘이 넘친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돌멩이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또 어디 가 버리려는 건 아니지?!’
지난번 기억이 떠올라 나는 주머니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아큠을 미리 붙들어 둘 생각이었지만, 내 손이 닿기도 전에 아큠은 주머니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바람은 입이 너무 험해서 싫어. 나는 다시 잘게, 작은 쿼츠!]‘바람?’
짚이는 건 윈디스였다. 트라벨 백작가에 있을 때도, 아큠은 윈디스와 같은 공간에 있는 걸 꺼려 했으니까. 내가 아빠랑 함께 있을 때는 돌멩이로 돌아간다거나, 땅을 관리하고 온다며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아빠한테로 시선을 옮기니, 아빠는 윈디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큠의 말대로 살벌한 눈빛이었다.
헉. 윈디스랑 싸우기라도 하는 건가? 깜짝 놀라 사제님들의 반응을 살폈다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맞다, 사제님들은 원래 우리 아빠를 제대로 못 쳐다봤지. 무서워서.
“테온은 같이 안 왔구나.”
주신전과 이어진 하얀 자작나무 길을 걷던 때였다. 대교주님이 내게 말을 거셨다.
“테온은 지금 데미안 아저씨랑 같이 있어요!”
“데미안? 데미안 녹스 님?”
고개를 끄덕이자 대교주님의 얼굴에 놀란 빛이 어렸다.
“그분도 제자 양성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인데. 테온이 그랜드 마스터님들께 인기가 좋구나.”
사실 상단주 때문에 같이 있는 거지만.
대교주님한테 미래의 황태자인 테온의 주가를 팍팍 올려놓을 기회였다.
“그쵸? 테온은 인기가 너무 많아요. 재능이 뛰어난가 봐요.”
“베리가 걱정이 많나 보구나.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인기가 많아서.”
“에이, 테온은 친구예요!”
내 대답에 대교주님이 허허 웃으셨다. 어린이를 귀여워하는 어른의 반응이었다. 그냥 농담으로 하신 소리였구나?
아빠가 내 볼을 건드렸다. 나랑 시선이 마주치자, 아빠가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윈디스랑은 화해했는지 아빠의 눈빛은 평소로 돌아와 있었다.
“회복약이 있는 장소는 주신전 내에 있지요. 레이탄 님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주신전의 입구에 다다르자, 대교주님이 말씀하셨다.
“베리는 같이 들어갈 수 없습니까?”
“허허. 그러면 좋겠지만, 원칙적으로 그랜드 마스터와 대교주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최상품 회복약을 성물로 취급하다 보니, 관계자가 아닌 자들의 접근은 금하고 있지요.”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면 대신전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 아닐까?
‘고대어가 또 있을지도……!’
내 반짝이는 눈빛을 읽으셨는지, 대교주님이 내게 제안했다.
“베리는 이번에 체험 학습 안 해도 되니?”
“하고 싶어요!”
“그러면 폭포 광장 위에 있는 축복의 언덕에 올라가 보거라. 지난번과 아주 다른 모습일 테니.”
“다른 모습이요?”
“아우바우트 신께서 인간에게 선물하셨다가, 천 년 전에 메마른 샘이 있지. 최근 누가 신의 사랑을 받았는지, 신성한 샘에 다시 물이 차올랐단다.”
뜨끔!
심장이 철렁했다. 그 샘. 설마 내가 부수입을 얻으려고 수맥을 복구한…….
‘어라?’
순간 대교주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관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기분이었다. 대교주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꼭 보고 오거라.”
***
쏴아아.
교단의 대장님이 보고 오라는데 어떻게 해.
나는 범행 현장에 제 발로 돌아가는 범인의 심정으로 축복의 언덕을 올라갔다.
아우바우트 교단은 어린아이에게도 자립심을 키워 주는 편이었다.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축복의 언덕으로 가는 방법과 조심히 올라가라는 격려가 전부였다.
혼자인 게 오히려 편해서 좋았다.
“아큠, 계속 잘 거야?”
[…….]“지난번에 복구한 수맥, 엄청 중요한 거였대……!”
[흐응…….]대답인지 잠꼬대인지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서 가 봐야지. 찔리지만.
“우와.”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언덕을 오른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샘을 복구했을 때는 금화에 정신이 팔려 물이 차오르는 것까지만 보고 내려왔는데.
볼품없었던 언덕에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래서 지칼이 브로키아가 잘 자랄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건가?’
들개족의 산도 샘이 메말라서 식물이 말라 죽었다고 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샘일지도.
아직까지 산에 심은 브로키아가 시들었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포트 왕국의 기후가 워낙 특이해서 걱정했지만, 이 정도라면……!
‘와. 이파리 광택 봐! 우리 브로키아도 이렇게 자라 주나?!’
발아래 풀밭이 우리 브로키아 밭의 미래 같았다. 상품 회복약이 사방에 좌르륵!
“너무 예뻐…!”
“진짜 예쁘지?”
“끄악.”
인기척 없이 등 뒤에서 말을 걸지 말라는 예법이 있어야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앞으로 거리를 벌리고 몸을 뒤로 돌렸다.
“누, 누구-. 어?!”
내게 말을 건 은발 소년의 모습이 낯익었다.
하얀 피부, 투명한 은안. 고고한 분위기.
성스러움이란 단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 같은 저 소년은, 지난번 윈디스의 폭주로 인한 진동에 몸을 떨던 그 견습 사제였다.
“안녕, 또 만났네.”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그냥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성스러웠다.
지난번에는 다른 사제님들과 다른 사제복을 입었었는데, 오늘은 견습 사제들이 입는 옷이었다.
‘역시 견습 사제였구나?’
아차. 이번에도 신성한 분위기에 홀려서 인사도 못 하는 실례를 저지를 뻔했다.
나는 서둘러 마담 프레아에게 배운 귀족 인사를 실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네가 쿼츠지?”
“어라?”
예상치 못하게 나온 내 이름에, 나는 치마 자락을 잡고 인사하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들었다.
견습 사제는 날 보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누, 눈부셔.’
해도 반대쪽에 있는데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내 눈매가 좁아진 게 웃겼는지, 견습 사제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오호.”
웃음거리가 됐다는 생각에 나는 치맛자락을 놓고 상체를 일으켰다. 견습 사제가 미안하다며 제 소개를 했다.
“나는 유라하야. 만난 건 비밀로 해 줘. 외부인이랑 마주치면 곤란해지거든.”
“곤란? 혹시 혼나요?”
내 질문에 유라하가 웃었다. 신성한데 웃음이 많은 사람인가.
그러고는 마치 손으로 키 재기를 하듯 내 앞으로 걸어왔다가, 뒤로 물러났다.
“몇 살이야?”
“일곱 살요.”
앗.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보는데 순순히 대답해 주다니. 실례를 실례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저 분위기가 문제였다.
나도 유라하에게 물었다.
“사제님은 몇 살인데요?”
“열두 살.”
헤반트 큰아버지의 딸인 시엘 언니보다 한 살 어렸다.
유라하의 하얗고 고운 손끝이 내 머리를 하나로 땋아 묶은 리본을 스쳤다. 테온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너는 너무 어리네.”
무슨 소리지?
나는 유라하를 보며 눈을 깜빡였지만, 유라하는 설명 대신 작별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 것 같아. 가 볼게. 또 봐.”
은쟁반에 진주가 굴러가듯 맑은 목소리였다.
***
같은 날.
대신전 인근 여관.
“오, 오오…!”
빅터는 또렷한 시야에 감격해 몸을 떨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시야는 앞으로도 온전히 제 것이었다.
“만족스럽나? 최상품 물약의 효과는.”
“만족스럽냐 하셨습니까?”
그는 레이탄을 돌아보았다. 레이탄이 대신전에서 골드포트로 오는 시간도 아깝다며, 레이탄이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에 대신전행을 택한 빅터였다.
그만큼 고대한 날이었다. 일평생을 기다린 날.
이 방에 레이탄 쿼츠 트라벨이 없고, 저뿐이었더라면. 빅터는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을 것이다.
지금은 거래 중이었다. 뼛속에 새겨진 상인의 의지가 그의 눈물을 막았다.
“……아니.”
“레이탄 님.”
“오지 마.”
그렇다고 이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탄 쿼츠 트라벨을 둘러업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 자가 나를 살렸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드는 게 아니었다.
빅터는 레이탄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자 아름다운 세공의 흰색 검 손잡이가 제 손을 막았다.
빅터는 불편한 기색이 어린 푸른 눈을 마주하고도, 겁먹은 기색 없이 초승달처럼 눈을 접어 올렸다. 뒤통수에는 땀이 맺혔지만.
“실례합니다. 꺼낼 것이 있어서요.”
“돌아가서 꺼내. 앞에서 이러지 말고.”
“슬쩍 안아 드리고 싶은 맘도 있었는데요.”
“……꺼져.”
레이탄은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빅터는 두 손을 들고 레이탄이 앉은 소파를 돌아, 그 뒤의 테이블에 놓인 사각 가방을 가지고 왔다.
그 안에서 꺼낸 건 일전에 조율을 끝낸 계약서 두 부였다.
“모든 조건이 레이탄 님께 불리하지 않도록 작성됐습니다. 제 서명은 끝났으니, 더하거나 빼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연락 주시죠.”
“알겠네. 살펴보고 연락 주지.”
레이탄은 받아 든 계약서를 훑어보며 물었다.
“아직도 그랜드 마스터로 왔는지, 트라벨 백작의 차남으로 왔는지가 중요한가?”
“중요하지요.”
그 질문에 빅터가 음흉하게 웃었다.
“제가 수족이 될 분을 어떻게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 드려야 할지 생각해야 하니까요.”
“미리 말하지. 나는 가장 높은 곳까지는 갈 생각이 없어.”
계약서까지 작성됐으니, 레이탄은 제 속내를 슬쩍 비쳤다.
다이아몬드 하우스는 필요 없다. 제가 필요한 건 제 수족이 되어, 필요한 경우 짐승들의 눈을 피해 움직여 줄 세력이다.
그 말에도 빅터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고객의 의사가 어떻게 바뀌든, 저는 처음 약속한 것을 제공할 뿐이다. 이 남자를 트라벨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려놓겠다는 약속.
“블루 상회의 푸른색은 희망과 성장을, 모래시계는 지속성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빅터는 레이탄에게 허리를 숙였다.
“후회하시지 않을 거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