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is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3)
아빠를 살려보겠습니다 83화(83/105)
“피터가 왜 히스포트 타운에 있어?”
아빠가 내 말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터 아저씨는 카드놀이를 좋아하는 본웰 마을의 아저씨였다.
올해 마흔. 키가 작고 마른 체격에 늘 납작한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확실한 건 아니고~ 피터 아저씨가 맨날 쓰고 다니는 모자 있잖아? 어떤 사람이 쓰고 지나가는 걸 봤어! 금세 어디로 사라져서 놓쳤는데, 불러 볼걸 그랬나?”
“아니. 위험하니까 모르는 사람 함부로 부르면 안 돼. 그리고 피터라면 먼저 인사하러 왔겠지.”
“그건 그래. 피터 아저씨는 넉살도 좋고 귀족들한테 겁먹지도 않으니까. 아까 주변에 기사 아저씨들이 있었어도 비집고 들어와서 인사했을걸!”
“피터가 방금 베리 말 들었으면 재밌다고 웃겠네. 피터는 기사들은 무서워 해.”
아빠는 헝클어진 내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그래? 왜?”
“잡힐까 봐.”
나는 그때까지도 빅터 아저씨가 뭘 하고 있는지 고민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아빠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
“흠-. 흐음-.”
사장실에 앉은 요셀의 입에서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벌써 밤이 늦었지만,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잘 있나~”
보고 봐도 또 보고 싶었다.
요셀은 의자에서 스르륵 내려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커다란 월넛 책상 아래에 있는, 철제 금고의 앞이었다.
“내…….”
드르륵. 드륵.
요셀의 손이 익숙하게 금고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 번호를 맞췄다.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린 문.
‘20억!’
지폐가 빼곡한 금고. 요셀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감격한 얼굴을 하며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크흡…….”
헤반트에게 10억짜리 수표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현금 20억. 게다가 이게 다 제 돈복이 열렸기 때문이라니. 밀려오는 감동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동아안…….”
그동안 얼마나 서러웠는가. 레이탄이 있어서 돌멩이 하우스로 별채가 바뀌는 일은 없었지만, 요셀은 늘 3순위였다.
헤반트와 마리안은 늘 저를 한심하게만 보고, 어머니는 가끔 저를 동정하고, 아버지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엑. 아동복 모델? 싫어요.”
“나도 싫어요.”
“마티, 하티. 아버지 새로운 사업 도와드리는 거야.”
“새로운 사업? 그거 하면 다이아몬드 하우스 갈 수 있어요?”
“못 가~ 우리는 계속 에메랄드 하우스야.”
최근에는 천사 같은 자식들에게마저 가장의 위엄을 잃고 있었으나-.
“이젠 아니지.”
요셀의 눈이 번뜩였다.
앞으로는 자신에게도 헤반트나 마리안처럼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줄지어 나타날 거다. 돈은 돈을 낳으니까.
돈은 돈을…….
“…….”
현금 더미를 바라보던 요셀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지폐 다발을 하나 집어서 품에 넣고는, 금고가 잘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 의상실을 나섰다. 마네킹이 입고 있던 회색 코트가 제 몸에 딱 맞았다.
히스포트 타운은 번화한 도시였다.
자정이 가까워졌음에도 손님을 찾는 마차가 길 이곳저곳에 있었다.
평소라면 제일 화려한 디자인의 마차를 탔을 테지만, 요셀은 한 골목을 더 걸어 무난한 검은색 마차를 잡아탔다.
“어디로 가십니까?”
“라드가 28번지.”
목적지를 들은 마부가 익숙하게 말을 몰았다. 상점가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불이 환히 켜진 골목으로 들어왔다.
요셀은 그 골목에 내렸다. 간판도 없는 나무 문을 두드리자, 위쪽에 달린 작은 직사각형의 나무 덮개가 옆으로 밀려났다. 창으로 방문객을 확인한 문지기가 문을 열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누구십니까!”
“오랜만일세. 자리 있나?”
“없어도 있어야지요. 몇 년 만에 요셀 님께서 오셨는데.”
“쉬, 쉬-잇!”
“아, 아직 백작님께서……. 어쨌든, 마침 오셔서 잘됐습니다.”
문지기는 손을 싹싹 비비며 요셀의 비위를 맞췄다.
몇 년 만에 온 큰 단골이었다. 촛대 몇 개로만 밝힌 으슥한 복도를 걸어 들어가 안쪽 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진 공간이 드러났다.
도박 테이블 여러 개와 술을 주문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
문지기는 정면의 공간이 아닌 오른쪽 길로 요셀을 안내했다. 다른 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포커 하시죠?”
“그렇지. 사람 좀 있나?”
“사람도 있고, 촌뜨기도 있습니다.”
“촌뜨기?”
“초저녁부터 와서 다 잃는 중이거든요. 재미 좀 보실 겁니다.”
“오호라.”
그러면 내가 나서야겠군. 요셀이 히죽 웃었다.
***
“베리 아가씨께서는-.”
승마 선생님이 나를 난감한 얼굴로 바라봤다.
“큰 말을 타시기에는 키가 살짝 부족합니다. 위험하니 실습은 내년부터 하시고, 그때까지는 다른 도련님들과 아가씨들의 모습을 견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두웅.
첫 승마 수업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온 내게, 내려진 평가가 신장 미달이라니. 아빠가 맞춰 준 승마복이 무색했다. 모자까지 썼는데.
“조랑말은…….”
“백작님께서 조랑말도 위험, 아니, 조랑말도 타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방금 백작님, 이라고-.”
“아닙니다.”
맞네. 할아버지가 승마는 위험하다고 반대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줄리아 할머니의 병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시니까.’
요즘에도 매번 돌멩이를 잘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셔서, 아큠은 내가 할아버지를 만날 때나 교육관에 갈 때는 잠들어 있기로 했다.
할아버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저번에 지칼이 날 태우고 달렸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어서, 승마 수업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모자를 높은 걸로 바꾸면요?”
“그건-.”
내 질척임에 승마 선생님이 곤란해하던 때였다.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났다. 뻔하지. 칼립스였다.
“다리가 짧은데 상체를 늘려서 뭐 하냐? 바보 아니야?”
“키가 작은 거거든.”
“다리가 짧은 걸걸.”
그러고는 승마장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밟고 가볍게 말에 올라탔다. 시엘은 먼저 들어가 승마장을 돌고 있었다.
칼립스는 굳이 내가 있는 울타리 옆으로 말을 몰고 와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잘 보고 배워. 내가 또 승마 천재라고.”
“어어-.”
상대해 줄 의욕도 안 났다.
대충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칼립스는 신난 표정으로 말고삐를 쥐고 달려 나갔다.
요새 마리안 고모가 공부를 너무 시킨다고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얼굴이 폈다.
‘부러워어.’
잘 달리기는 하네.
울타리 너머로 칼립스와 시엘을 보며 부러워하던 중이었다.
“하티, 우리가 아버지를 말려야 해.”
“맞아. 어머니가 이번에 망하면 큰일이랬어.”
근처에서 본인들의 말이 나오길 기다리던 쌍둥이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망해?’
무슨 소리지? 요셀 작은아버지를 말려야 한다고?
쌍둥이는 나랑 부하 각서를 쓴 뒤로 얌전히 지냈다. 덕분에 괴롭힘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긴 한데-.
오늘은 유독 분위기가 축축 처졌다.
‘궁금한데.’
나는 슬쩍 뒷걸음질하며 쌍둥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마티, 은행에 저금 얼마나 있어? 우리가 대신 투자한다고 할까?”
“많이 없어. 천만 코나.”
어떻게 많이 없는데 천만 코나가 있지…!
내 금화를 다 합쳐도 그만큼은 안 됐다. 대부호 할아버지를 둔 아홉 살들의 금전 감각에 새삼 놀라고 있을 때였다.
“하티 아가씨, 마티 도련님. 들어오세요.”
대화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쌍둥이의 말들이 승마장으로 나왔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다시 부러운 눈으로 말을 타는 친척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내가 있는 울타리 정반대 쪽에 시엘이 말을 탄 채 천천히 움직이는 걸 발견했는데, 시엘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의 형태가 낯익었다.
실루엣만 봐도 잘생긴 저 소년은 분명…….
“어? 테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