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1화 – 내 목숨은 하루 남았습니다
#1
[난 아카데미 수석이다! 평민 따위에게 질 것 같은가?] [신이시여-. 오늘도 더러운 피를 바닥에 흩뿌릴지니, 성스러운 피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게 하소서.] [얘는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모니터 안에서 인상을 찌푸린 남성에게서 나오는 텍스트.
수려한 미모와 일그러진 인상, 그러나 곧 죽어야 하는 인물.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악역이자, 엑스트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지만, 놀라운 점이 많았다.
1학년 수석이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놈의 별명은 ‘폭군’.
공작가의 차남이자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캐릭터.
파벌의 온상이자 악역의 대명사……는 아니고 그냥 엑스트라.
고작 튜토리얼에서 어처구니없게 사망하는 캐릭터.
-카이사르 마누스.
[참, 누가 만들었는지,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네.>DLC 발매 기념으로 정주행하기 위해 처음부터 시작한 게임.
서로 다른 마법을 배우고, 두 개 이상의 마법을 조합해 새로운 마법을 창조한다.
해당 게임의 모토이며 콘셉트.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남자가 살고 있는 조국에서 게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남자 역시 해당 게임을 팠다.
남자가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이야기는 ‘카이사르 마누스가 문제야. 개연성을 다 말아먹잖아.’였다.
[이딴 걸 누가 수석이라고 생각하겠어. 수석이면 실력도 짱짱해야 하는데.>수석이라는 놈이 주인공의 재능 개화나 도와주는 캐릭터라니.
게다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버리기까지 한다.
사인은 추락사.
멍청하게도 ‘옥상으로 따라와’를 시전하다가 된통 당한 녀석이었다.
그 후는 어떻게 됐냐고?
공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도 없어, 주인공 캐릭터는 그저 ‘사고’였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수작으로 꼽히는 게임의 유일한 흠이었다.
“근데 그게 나네?”
남자가 서 있었다.
삐뚜름, 웃음을 지어 보니 단 하나의 일러스트로 표현되던 녀석의 얼굴이 재현되었다.
카이사르 공작가의 차남이자, 아카데미 수석 입학, 1학년 때까지 줄곧 수석.
하지만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이상한 캐릭터.
왜일까.
남자, 카이사르 마누스는 생각했다.
왜 수석 입학을 하였으며, 주인공에게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해야만 했는지.
오늘은 3월 2일.
원래 게임의 주인공이 전학을 와, 기숙사에서 쉬고 있을 날이었다.
내일이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거다.
“……기숙산데 자취방보다 좋긴 하면 뭐 하냐-.”
마른세수를 했다.
고생 한 번 안 해 본 것 같은 부드러운 손바닥의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원래 본인의 거칠고, 꺼끌꺼끌한 손바닥과는 완벽하게 다른 감촉이었다.
그래서 더욱 꿈처럼 느껴지는지도.
남자, 이제 마누스가 된 자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DLC라 이거지. 끝나면 집에 다시 갈 수 있나?”
공허한 물음에 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기숙사를 둘러봤다.
황금빛, 은은한 조명을 비추고 있는 샹들리에.
어쩐지 좋은 냄새가 나는 탁자와 책장.
본래 깔끔한 성격인지, 누군가 정리해 놓은 것인지 모르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여기서 공부하는 과목은 모두 알고 있으나, 관련 내용까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또 한숨.
터벅터벅 걸어가, 제일 위에 있는 서적을 살펴봤다.
『원소 마법의 이해』
파라락-.
솔솔 올라오는 종이 내음을 맡으며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봤다.
글씨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내용은 별개였다.
“뭐라는 거야.”
『화염계 원소는 마찰, 집약, 타오름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 술식의 구축은-.』
텁.
차라리 흉기로 쓰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은 서적이, 답답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마누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법?
그는 과학이 판치던 세상에서 살았고,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을 살았다.
초인과적 현상을 일으키는 마법 따위, 알 게 뭐냐.
가스레인지, 라이터, 성냥…….
불을 일으키는 도구는 많고 많았는데.
똑똑-.
한참 난감한 현실에 빠져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숨을까? 자는 척할까? 하는 고민이 슈퍼카처럼 지나갔다.
돌풍을 일으키며 촤르륵 지나간 고민의 끝은 얌전히 일어나서 문을 열어 주자는 쪽이었다.
“베로니카입니다.”
“-나간다.”
저도 모르게 무뚝뚝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본래 남자의 말투와는 동떨어졌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빙의의 영향인 듯 싶었다.
기억을 떠올렸다.
베로니카.
마누스도 아는 캐릭터다.
분홍색 머리칼이 특이한 캐릭터였지.
달칵, 문을 열자, 하얀색 앞치마가 보였다.
전형적인 메이드 복장인 그녀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마누스는 멀뚱히 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감히 위대한 자 앞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신하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마누스의 발치를 향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천 소리와 함께 고운 손이 내밀어졌다.
“편지입니다.”
“고마워.”
그의 말을 들은 베로니카가 살짝, 찰나의 시간동안 마누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곧 찾아올 격통에 슬며시 눈을 감았지만, 기다리던 건 없었다.
[쓰레기같은 년이 어딜 눈을 마주치나.>그 시리던 목소리 대신, 들려오는 건 정적이었다.
복도를 울리던 천박한 소리 대신, 부드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베로니카는 잠시 자칭 위대한 가문의 위대한 도련님이 들어간 방을 바라봤다.
그녀는 얼얼하지도 않은 뺨을 매만졌다.
“신기하군요.”
위대하신 자가 천것에게 손찌검도 하지 않다니.
거기다 ‘고마워’라고?
누가 들으면 영혼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의 사안이었다.
농담, 혹은 꿈이라고 치부될 정도의 사건.
그래, 사건이었다.
#2
“후……. 일단 볼까.”
마누스는 편지를 꺼냈다.
총 두 장이었는데, 한 장은 카이사르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편지.
그건,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되는 문양이 찍혀 있었다.
마누스는 조심스럽게 해당 편지부터 개봉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DLC 캐릭터에 당첨되셨습니다.
마누스의 비틀린 운명을 바로잡는 것이 당신의 목표입니다.
본편 이후의 사건을 두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생존하세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도와, 진정한 끝에 다다르세요.
그 이후, 당신은 거대한 힘과 함께 자신만의 결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무운을 빕니다.』
『P.S : 주변 인물에 대해 간섭하면, 굉장한 영향력을 얻을 겁니다. 명심하세요.
다 같이 강해져야 이야기의 끝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누군지 모를 농간 때문에 이 세계로 떨어졌다, 이건가.
마누스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징징댄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평소에도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던 남자였다.
거기다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니 그저 체념할 뿐이었다.
게임 속으로 들어왔으니, 멈춰 있으면 안 된다.
살아갈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 문득, 대한민국에서의 처지와 이곳의 처지를 비교해 보았다.
‘오히려 이곳이 상황은 더 나을지도. 그나저나…….’
-사락.
마누스는 다른 한 장의 편지를 펼쳤다.
종이가 펴지는 소리는 저 깊이, 항상 품어 왔던 궁금증을 걷어 내는 소리 같았다.
과연 가문에선 무어라 보냈을까.
『아들아.
너를 위대한 자로 만들기 위해 쓴 공로가 작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 너는 조용히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티도 내지 말거라. 그리하면 아카데미 수석 자리는 항상 네 것이 될 것이다.
지난 1년은 네가 아카데미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날이었지.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저 가만히 있거라.
미토스 아카데미에서 카이사르는 단지 굉장히 가치 있는 명패일 뿐, 해결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들아.
위대한 자로 남기 위해선 정녕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그림자가 널 대신해 모든 걸 해 줄 테니…….
잘 지내거라.
생일 축하한다.』
편지의 내용은 마누스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이 녀석, 부정 입학에 성적까지 조작한 거였나?
그러면 앞뒤가 잘 들어맞네.
“그냥 관심이 없던 애였구만.”
배경 설명에서 카이사르 공작 가문은 위대한 마법의 가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주인공마저 우러러볼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란 설정.
한 가문의 힘으로 능히 재앙을 이겨 낼 수 있는 곳.
마법사 가문 중, 위대한 가문으로 칭송받는 곳이자 대륙 전체를 호령하는 곳이 바로 마누스의 가문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카이사르’라고 정했다지.
‘그런데 이런 반푼이가 태어났으니……, 그래도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던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그냥 가문에서도 버려졌나 보네.’
빙의한 캐릭터의 설정은 대충 이해했다.
혹여 기억나는 것이 있나 뒤져 봤지만, 머릿속은 본래 살던 세계에 대한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마누스라는 놈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는지, 대인 관계는 어땠는지 등등.
전반적인 지식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침대에 벌러덩 누운 마누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편지가 아니었다면, 이 녀석의 상태도 알지 못했을 거다.
그건 그렇고, 그 무시무시한 메이드 암살자를 실제로 보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림자 암살자 베로니카.’
13개의 보스, 그리고 자잘한 미니 보스와 이벤트 보스.
‘탑’에 출몰하는 보스와 갈등으로 인한 보스.
이 게임은 틈만 나면 보스를 던져 주고 싸우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보스 중 하나인 ‘베로니카’였으니.
‘아무것도 안 하길 원한다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걸리는게 있단 말이죠. 새로운 아버지.’
원작대로라면 내일 죽을 운명이었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이상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살다가 원작 스토리나 잘 끝나도록 빌어 주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여기까진 빙의를 당한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겠지.
사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수석이라잖아.
장학금도 빵빵하고, 이 호화로운 기숙사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 편지-.”
마누스는 편지에 쓰여 있는 내용을 곱씹었다.
해석하자면, 스토리에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는 거다.
자신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캐릭터가 가진, 혹은 자신이 가진 재능은 무엇일까?
조언?
아니면…….
‘모르겠다. 일단 날 건드는 놈은 없겠지.’
이 게임에서 ‘공작가’라는 것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작은 나라를 운영할 수 있는 재정력을 지닌 세력.
작은 나라의 정규군과도 붙어 볼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세력.
단신의 무력으로 일천의 기사를 대체할 수 있는 ‘초인’이 있는 곳.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곳이 바로 공작가였다.
내일 하루만 잘 넘기자고 생각하며, 마누스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폭신폭신한 침대에 있으니 더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내일도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이게 바로 돈 많은 백수의 기분인가.”
세상이 멸망할 위기에 처한 것 빼곤, 정말 완벽한 빙의였다.
#3
오늘도 교정은 시끄러웠다.
열다섯.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인 학생들이 조잘조잘 떠들며 거대한 건물로 향했다.
미토스 아카데미.
대륙 중앙에 위치한 종합 교육 시설.
여덟 개의 왕국과 두 개의 제국.
세 개의 공국이 있는 록스 대륙의 유일한 중립 지대.
모든 나라, 모든 재능을 지닌 이들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미토스 아카데미였다.
“더럽게 크네.”
게임 내에서는 빠른 이동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누스는 천천히 아카데미 전체를 훑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그에게 접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수군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일국의 왕자나 되어야 말 한 번 걸어 볼까 하는 존재.
일정한 보폭은 우아함을 더했고, 광이 나는 구두는 성격을 보여 주었다.
싸늘하게 주변을 훑는 눈빛은 마치-.
“야, 야, 눈 깔아.”
“눈 마주치지 마. 절대.”
-먹잇감을 찾는 듯한 눈빛이었으므로.
‘카이사르’란 성은 그런 무게를 지녔다.
걸음걸이, 동작, 눈빛만으로 주변을 압도하게 만드는 단어였다.
뚜벅-.
마누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감으로 다져진 카펫이 깔리는 것 같았다.
‘이거 참, 적응 안 되는군.’
살풋, 인상을 찌푸리자 ‘히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마누스는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치 학창 시절, 학교 짱이라고 하던 녀석이 지나갈 때랑 비슷한 분위기랄까.
-사실 별반 다를 것도 없었지만.
그가 가는 길에는 장애물이 없어야 했고, 여태까지 그래 왔다.
어느 한 여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 전까진.
마누스는 똑바로 걸었고, 여자는 그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저, 저거 전학생 아니야?”
“미친- 빨리 끌어내야…….”
“야, 야! 빨리 나와!”
약간 멍한 구석이 있는 여인.
푸른 머리칼에, 훤칠한 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세계의 주인공.
짙은 마력의 소유자가 멍하니 학교 건물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마치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랄까.
‘녀석이다.’
케일.
세계의 구원자이자 이 게임의 주인공.
본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여기선 여자인 모양이었다.
마누스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이미 주변의 시선이 이상하게 변했다.
낮게 깔린 탄성이 마치 연극 무대에 선 느낌을 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낮고 중후한 음성이었다.
케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선 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일까.
본래 모르는 사람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삼가는 그녀였지만, 저도 모르게 입술이 열렸다.
“-네.”
케일의 대답은 짧았다.
마누스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우뚝 선 두 개의 탑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마누스는 아무런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거야.’
태연하게.
아무 일 없이.
그녀와의 만남은 그게 끝이었다.
본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만으로 옥상으로 불려 갔어야 할 여인은, 평화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그 안전한 하루가, 세상을 뒤흔들 재능을 개화시킬 줄은.
지금껏 그 누구도 관심받지 않았던 아이의 운명이, 곧 새로운 날짜에 도달하고 있었음을.
컴컴했던 오랜 밤이 지나, 여명을 맞이하는 운명이, 세계를 뒤흔들 빛이 되리라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