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10화 – 우리밖에 못하는 일
#1
오전 수업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학교는 평화로웠다.
이분법적인 세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은 세계에 적응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케일은 온종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F반.
재능을 개화하기 위해 실습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케일은 이변을 느꼈다.
화르륵-.
“오, 이만큼의 위력이라니. 재능이 상당하군요. 케일 학생.”
“……감사합니다.”
어젯밤 전투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할 수 없었던 기예를 익힌 것 같았다.
일렁이는 화염 마법 안에서 비치는 32개의 마나 줄기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거뿐만이 아니야.’
마나가 흐르는 통로인 선을 가닥가닥 끊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어젯밤, 마누스가 보여 준 기예가 바로 그것이었지.
다른 이들에겐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퍼엉-!
잡념을 끊어 내듯 화염 마법을 던졌다.
마법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활활 타올랐다.
담당 교수가 눈을 치켜떴다.
실로 대단한 위력이다.
어쩌면, 이 아이는 위대한 가문 중 하나의 핏줄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거, 다음 주에 있을 능력 평가가 기대되는군요. 못해도 B반까진 올라가겠어요.”
“…….”
케일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몇몇 시선이 그녀에게 날아와 꽂혔다.
그녀가 눈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자, 시선은 더욱 거칠어졌다.
‘-뭐지?’
순진한 케일은 그저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녀는 인간관계에 얽힌 다양한 감정들을 겪지 못했다.
사소한 행동, 심지어 물려받은 것조차 시기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서, 약속한 장소로 가려 했다.
“거기, 잠깐-.”
“점심 먹으러 가니? 우리랑 같이 먹지 않을래?”
케일은 그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왜 갑자기 친하게 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와 그들은 아무런 접점도 없었으니까.
“선약-.”
“에이, 그러지 말고 가자.”
“맞아, 너 평민이라 돈 없지 않아? 우리가 사 줄게.”
“……장학금.”
“…….”
그들의 웃음에 금이 갔다.
놀랍게도, 케일은 전액 장학금에 보조금까지 나오는 상태였다.
그녀가 아무런 티도 안 내서 그렇지, 굶고 다닐 정도로 돈이 없진 않았다.
물론,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진짜 너, 싸가지가 없구나?”
“그러게- 왜 사람 호의를 받았는데 예의를 밥 말아 먹었니?”
“학교생활 그렇게 하다간 진짜 피곤해질걸-?”
조롱이었다.
자작, 남작 가문의 자제들이 평민을 두고 하는 조롱.
케일은 아나이스와 이들을 비교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전에 만났던 평민들도 있었다.
‘이상하네.’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마법사와 기사의 영역은 다르다.
기사는 오로지 몸으로 경쟁하지만, 마법사의 경쟁 요소 중엔 자금력도 있었으니까.
마법사의 물품은 아주 비쌌고, 특별하게 유통되는 물건도 있었다.
오직 귀족에게만 파는 상인도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지.
수호자와 기사반과 달리, 유독 마법사반은 귀족들의 세력이 강했다.
평민은 돈이 없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었다.
“좋은 말 할 때 따라와,”
위협적으로 그들이 다가왔을 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이일-! 어디 있니이이이-!”
“히익-.”
귀족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음성.
케일을 위협하기 위해 한 발자국 다가왔던 귀족이 화들짝 놀랐다.
이 목소리.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발랄한 귀족의 목소리였다.
“어머, 여기 있었네? 알라노 회장님이 얼른 오래. 너희는 뭐니?”
“아, 아니야-.”
“아, 선약이 아나이스 너였구나, 데, 데려가, 데려가.”
아나이스가 케일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다시 확인시키듯 입을 열었다.
“알라노 선배도 도착했어. 얼른 가자.”
“-응.”
알라노?
그 학생회장 알라노?!
학생들의 입이 벌어졌다.
왜?
‘우리가 들은 거 맞아?’
‘알라노 선배가 쟤를 불렀다고? 왜?’
‘몰라, 괜히 눈 밖에 난 거 아니야?’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왜-?
그 단순한 의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순식간에 케일의 위치가 격상되었다.
아나이스 가문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싸움개 가문이었다.
기사, 수호자, 마법사 할 것 없이 배출한 가문이기도 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문과 엮여, 그을림 하나 생기지 않은 곳이 없다.
자작, 남작 가문 자제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폭풍이 몰아쳤다.
“거기-.”
“네- 누구……. 흐업!”
누군가의 새된 비명이 흘렀다.
아나이스 가문의 출현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당연히 F반 학생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정적-.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한 존재감 앞에, 모두가 짓눌렸다.
검은 머리, 푸른 눈동자.
훤칠한 키로 인해, 지그시 내려다보는 시선.
그 모든 것이 F반 전체를 압도했다.
“-케일이라는 학생, 어디 있지?”
“아, 바, 방금 나, 나갔…… 나갔는-데요.”
“어디로 갔는지.”
“회, 회장님께서……. 엇.”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폭풍은 올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마법사들에게 있어, 검은 머리는 반쯤 우상화되어 있었다.
그런 가문의 직계가 말을 걸어 줬다는 것 하나만으로 신입생은 다리가 풀렸다.
“우와-. 다리 풀린 거 보여?”
“영광인 줄 알아 인마-.”
마누스.
그가 케일을 찾았다.
새로운 가십거리가 늘어 가고 있었다.
케일.
그녀를 찾는 이가 왜 이렇게 많은지.
케일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폭풍의 전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2
알라노는 새로운 둥지인 동아리실을 바라봤다.
가장 작고, 구석에 있는 곳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안락한 느낌을 자아냈다.
후릅-.
오늘따라 차 맛이 혀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향 역시 더욱 진했다.
감각이 예민해서일까, 아니면 긴장해서일까.
달칵, 찻잔 놓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아카데미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자리는, 교수진과 회의할 때 빼곤 느낄 수 없었는데.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선배! 저희 왔어요!”
문 너머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알라노가 손을 까딱이자,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파릇파릇한 신입생 둘.
하지만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기도 했다.
그녀가 일어섰고, 두 사람은 동아리실에 들어오자마자 우뚝 굳었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이 어제 전투를 해결한 학생들이군요.”
“이사장님입니다. 인사드리세요.”
알라노의 부드러운 말이 두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아, 안녕하세요. 플로이스 아나이스입니다.”
“-케일입니다.”
이사장, 맥퍼슨 닉스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풋풋한 학생의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학생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기에.
그는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한 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문제는…….’
비일상에 발을 들일 동기를 만들어 줘야겠지.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주제에, 재능 있는 샛별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꼴이었으니까.
“이 미토스 아카데미에는, 한 가지 비밀이 존재합니다.”
“비밀이라면…… 어제 그 사건을 얘기하는 건가요?”
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지구라트, 이면 세계, 그곳의 주민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사장이 이곳에 온 목적은 동아리 설립을 허가해 줌과 동시에 케일과 아나이스에게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동아리를 설립했고, 거대한 학원의 비밀을 파헤칠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그런데-, 왜 저희일까요?”
아나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밀은 꽤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듯싶었다.
지금까지는 잠잠했다는 이야기인데, 왜 하필?
이곳에 마누스가 있었다면 ‘게임 스토리니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이들은 고작 오락으로 소비되는 캐릭터였으니까.
이사장은 세 사람의 얼굴을 차근차근 뜯어봤다.
더불어 이 자리에 오지 않은 한 학생의 얼굴도 떠올렸다.
비밀이 생겨난 이래, 선택받은 자는 세 명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운이 정말 나쁘면 탑에 잡아먹혀 버리기 일쑤였다.
이사장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답을 해 줄 차례였다.
“글쎄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개교 이래 탑에 올라갈 수 있는 학생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제대로 된 전력도 구축할 수 없었죠. 그리고…….”
어젯밤 등장했다던 거대 괴물.
데몬이라 불리는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존재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사장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탑에서만 존재했던 데몬들과 달리, 그들은 현생에서 학생과 교사를 해칠 존재였으니까.
하루빨리 이 사태를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임시로 그들에게 데모니움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데몬보단 훨씬 큰 존재니까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 상관 없었다.
알라노가 줄곧 궁금해 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어젯밤 그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혼절해서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일단 절대 안정을 취하도록 해 두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다행이다아-.
아나이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들이 원인이 아니라곤 하나, 잘못되었다면 마음이 아주 불편했을 거다.
이사장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착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피해자를 걱정해 주다니, 이 또래 학생이 아니면 제법 보기 힘든 진심이겠지.
닉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때 묻지 않은 이들을 탑으로 올려 보내야 한다니-.’
그가 전투 능력만 출중했다면 직접 올라갔으리라.
이럴 땐 돈밖에 없는 자신이 퍽 원망스러웠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여러분이 탑을 조사해 주십시오. 이건…… 여러분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밖에 할 수 없다니…….”
“-난 할래.”
걱정 투성이인 아나이스와 달리, 케일은 번쩍 손을 들었다.
얘가 왜 이래?
아나이스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어서 더 설명해보라는 눈초리로 케일을 마구 찔러댔다.
케일이 쭈뼛쭈뼛, 그러나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나는 계속 혼자였으니까…….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고 싶어.”
“……너-.”
“어머…….”
아나이스와 알라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사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는 특별한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지요.”
“그랬구나-.”
“설마 그런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알라노의 눈망울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역시 누군가를 지켜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다웠다.
“이 동아리에 있다 보면, 혼자가 아니어도 될 것 같아서 하고 싶어요.”
어쩌면, 부모님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은 곧 끊어졌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한 남자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늦었습니다.”
“오, 앉으세요. 마누스 군.”
등장만으로 주변 공기를 착 가라앉게 만드는 남자였다.
케일과 아나이스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진 뒤, 이사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케일은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머리칼.
마나의 불꽃이 일렁이듯 또렷한 눈동자는 그녀의 머리칼 색을 닮았으니까.
“이야기는 잘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협력해 주기로 했거든요.”
마누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엑? 저도요? 난-.”
“아나이스, 같이 가자.”
케일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아나이스를 자극했다.
으윽-.
잠시 인상을 찌푸렸던 그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으으 알겠어! 같이 하면 되잖아!”
마누스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미소 지었다.
역시 아나이스, 플로이스 가문답게 의리에 약한 타입이었다.
직후, 가만히 앉아 있던 알라노가 마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마누스, 너도 함께하는 건가?”
“서, 선배랑 함께라면 걱정할 건 없겠는데요-.”
아나이스도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허나 기대했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누스는 찻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따로 움직인다.”
“혼자?”
“그래. 알아볼 것이 있다.”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막상 도움을 받을 수 없다니 분위기가 약간 죽었다.
마누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합류한 걸 확인한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괜히 끼어들어 잡생각을 만드는 것보단, 이들끼리의 유대감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낫다.
너무 본인을 의지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원작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광경을, 그들이 성장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함께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무척이나 큰 유대감으로 성장한다.
이 게임의 팬이었던 마누스가 왜 그걸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때로는 멀리서 지켜봐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그는 때를 알았다.
지금은 그들끼리 단단하게 성장할 때다.
마누스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이번엔 기대하마.”
그의 눈은 케일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