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105화 – 무슨 일 있었니?
#1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방심하던 찰나, 사신이 낫을 들고 목을 그어 버리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
아나이스가 본 광경이 그러했다.
방심했다.
새로운 경지에 닿아, 신나게 마법을 퍼부은 것만으로도 죽을 줄 알았다.
마지막 발악을 저런 식으로 할 줄은-.
“선배! 마누스 선배!”
아나이스의 전신에 분노가 차올랐다.
한 발자국 떼려 할 때, 그녀의 손에 얹어지는 손.
“영애,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가 먹혔잖아요!”
“저길 보세요.”
쿠웅-!
거체가 들썩였다.
분명 안쪽에서 으스러졌어야 할 무언가가, 도리어 엄청난 체급 차이를 극복하고 반항하는 중이었다.
쿠웅-!
뱀의 목구멍이 볼록 솟았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쿠웅–!
다시 한번.
쿠우웅-!
또다시 한번.
거대한 뱀이 꼼짝도 못 하고 얻어맞고 있는 걸 보면, 미증유의 힘이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거겠지.
“……저게 저렇게 쉽게 되는 일이었나요?”
“지금의 공자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아덴이 웃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는 마나가 한 줌밖에 안 되던 사내였는데.
지금은 홀로 괴물을 때려잡고 있지 않은가.
[크으우으으으우으으-!]파수꾼은 기묘한 신음을 흘리며 입을 벌리려 했다.
하지만, 그 턱은 무언가에 꽉 잡힌 듯,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마나로 된 재갈을 물린 것 같은 상황.
콰르르르륵-!
안쪽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대한 뱀의 육체는 불꽃에 휘감겨 잿더미가 되었다.
마치 뱀이 불꽃으로 탈피하듯 없어진 곳엔, 마누스가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선배! 괜찮아요?!”
“-그래.”
마누스는 덤덤하게 답했다.
아나이스는 순간적으로 뿜어졌던 마나를 보곤 속으로 감탄했다.
방금 사용했던 마법은…….
“돌아가지. 고생 많았다.”
“선배야말로, 못난 후배를 이끌어 주셔서……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툭, 어느새 다가온 마누스의 손이 아나이스의 머리에 얹혔다.
정말 잠시였지만, 부드러운 손길에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차올랐다.
“-알면 됐다.”
투덜거리듯, 무심하게 던지는 말에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아나이스는 어렴풋이 그의 표현 방식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래서 케일이 그토록 빠져들었구나.
그녀는 고개를 들고 활짝 웃었다.
마음속에서 그녀를 끌어내리고 있었던 굵은 족쇄가 사라진 것 같았다.
시야가 확 트인 기분.
조금이지만, 어른이 바라보는 눈높이에 자신도 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보여.’
전리품을 챙기고 전송기를 찾는 그의 모습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마나의 잔재.
그것만으로 마누스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눈앞에 있는 작은 것보다 큰 걸 노려야지.
“다음은…….”
딱 1년.
내년, 이 날짜, 이 시각에 선배보다 더 높은 곳에서 올려다볼 수 있길 바랐다.
고된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달려 나가고 싶었다.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생겼다.
그건, 아나이스 본인에게 있어 삶을 살아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정진하지 않으면,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
‘나도,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어.’
그녀가 웃었다.
그건, 너무도 당당하고 화려한 웃음.
플로이스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전투 종료】
[탑 77층>『연인 3 : 비페라』
[아나이스의 레벨이 올랐다.> [아나이스는 전용기 : 디솔루트를 익혔다.> [아티팩트 : 메모라이즈 링을 습득했다.> [아나이스 : 40> [사역마의 레벨이 올랐다.> [알비온 : 28> [강력한 간섭을 확인했습니다.]…….
#2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
마석을 분배하고 오는 길에 쓸 만한 전리품 몇 개를 챙겨 두었다.
이따금, 보스나 강력한 개체들은 ‘감정된 아이템’을 드롭했다.
미아를 죽인 후부터 활성화되는 기능이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77층에 서식하는 파수꾼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고정 보상 : 메모라이즈 링.
많은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했던 ‘메모라이즈’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였다.
77층에서 나온 장비치고는 보잘것없는 효과를 지닌 물건.
‘게임에서는 하루에 한 번, 5클래스까지의 마법 하나를 아무런 리스크 없이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이었지.’
반투명하게 떠오른 창.
그곳에 적힌 것은 마누스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내용의 텍스트였다.
초반에야 3클래스, 4클래스 수준의 마법을 저장하고 쓰겠지.
하지만 이 메모라이즈 링은 버프와 공격 간에 텀을 없애 준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버프를 돌리고 한 턴을 소모.
적의 공격을 버티고, 한 턴을 소모해서 공격.
이런 사이클을 완전히 무너뜨려 주는 아티팩트라는 것.
“다시 생각해 보니,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한데.”
미리 저장해 둔다면, 카덴차로 만든 마법 역시 사용이 가능한 사기 아이템.
막대한 마나 소모를 줄일 뿐만 아니라 그럭저럭 쓸 만한 버프 + 막대한 위력의 공격 마법을 한 턴 만에 조합해서 뿌려 댈 수 있었다.
지금부터 1년 정도는 넉넉하게 쓸 만할 거다.
다가올 보스전에 대비하자는 마음도 있었고.
‘나머지는 뽑기인가.’
아티팩트를 늘어놓으니, 제법 수가 되었다.
이 중에서 원하는 옵션이 뜰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상황.
내일 에머슨에게 감정을 부탁하면 될 테고…… 적당히 분배하면 되겠지.
지금은 아무 장비나 뿌려 주고 나중에 파밍해서 옵션을 맞추는 형태로 진행하면 될 일.
알비온은 마석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보드라운 털을 한 번 쓸어 주니, 기다란 꼬리가 살랑거렸다.
‘나도 이만 잘까.’
자리에 누워 보상 말고 진짜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간섭.
그것도 강력한 간섭이라지.
그에 따른 보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강력한 보상을 확인했습니다.] [아나이스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플로이스 가문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위대한 업적에 한 발자국 다가가셨습니다.] [보상 : 마나 소폭 증가, 화염계 마법 공격력 30% 증가] [보상 : 플로이스의 마음가짐의 효과 추가] [보상 : 플로이스의 마음가짐의 총 습득 시간 70% 감소]‘덕분에 플로이스의 마음가짐 스킬 습득 시간이 9년으로 줄어들어 버렸고…….’
아마 다음 서브 퀘스트를 끝내거나 DLC 스토리를 마무리한 쿠폰으로 바로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점점 더 강해진다.
지구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성장.
지지부진했던, 그래서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성장 속도였다.
이대로라면 주인공 케일을 넘어서 세계관 최강이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 각인된 정복자의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내가 이빨을 드러내면 너무 많은 것들이 어그러진다.’
흉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이성으로 덮었다.
지구에서 살았던 것처럼.
말로 사람들을 죽였던 시대에 살았던 마누스다.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건 퍽 익숙한 일이었다.
사실, 이제 정치적인 것과는 먼 삶을 살고 싶었다.
자신이 아무리 강해져도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들은 꼭 있을 테지.
‘그냥 본편이 끝나면 가문이나 다른 곳에 박혀서 조용히 살까.’
마누스는 눈을 감았다.
수마가 그의 몸을 꿈속으로 끌어 내리듯,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그는 생각했다.
아무도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강해져야겠노라고.
#3
드르르륵-.
경쾌하게 문이 열렸다.
붉은 머리칼이 흩날리며 아나이스가 도도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불과 하루 전, 좀비 같은 모습으로 어기적거리던 그녀였는데-.
지금 보이는 그녀의 피부에는 광택이 좌르르 흘렀다.
은은하게 흐르는 마나는 그 기품을 더했다.
하루 만에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는 건가?
“야- 아나이스.”
“응? 왜?”
피어슨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차가운 반응, 아니면 무시를 감수하고 부른 한마디.
기대와 달리, 돌아온 것은 화사한 눈망울과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피어슨이 기억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너,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 어젠 좀 피곤하긴 했지.”
“그래에-.”
“아 참, 마누스 선배가 오늘 수업 끝나고 동아리실에서 기다린대.”
아나이스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피어슨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흘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보니 케일이 황급히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것이 보였다.
피어슨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됐든, 아나이스가 전보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으니까.
그가 아나이스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바로 앞 자리였으니.
“걱정했잖아. 다음부턴 말 좀 하고 다녀라.”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피어슨은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붉은 머리칼이 찰랑이며 긍정의 답을 내놓았으니까.
아나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피어슨의 마음에 평화를 찾아 주었다.
반면, 케일은 뭔가 변한 것 같은 아나이스를 보며 문득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나이스는 귀족이고, 밝은 성격으로 인간관계를 이어 가던 사람이었다.
함께 아카데미를 거닐면, 꽤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던 장면이 떠올랐다.
붉은 머리칼은 영향력 있는 가문의 상징, 그 자체였으니.
‘아니야. 선배가 이런 생각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제, 그녀가 산송장 상태로 들어왔을 땐 얼마나 걱정스러웠는지 몰랐으니까.
어딜 다녀왔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두 반가워요.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이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케일, 그리고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케일 학생, 아나이스 학생. 학생회장 후보로 신청했더군요.”
“네-.”
아나이스는 대답했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교수는 그 모습을 보더니 오히려 좋은 듯,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어른의 입장으로서 한마디 해 주기로 했는지, 인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교수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야기의 내용은 ‘경쟁을 하다 보면, 친구 사이가 틀어질 수 있으니 항상 유의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 [응? 아니, 자네…….>누군가, 아침부터 그를 찾아왔었지.
항상 냉정하고 무자비했던 그가 직접 찾아와 그런 부탁을 할 줄이야.
참, 자신도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는 것이 확 와닿았다.
“-그러니, 여러분도 항상 그 점을 명심하세요. 미토스 아카데미는 경쟁의 장이지만, 여러분의 인격을 수양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쳐다보고 싶었지만, 둘 다 움찔거리는 것이 교수의 눈엔 다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저 나이 때, 나는 어땠더라?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따금 드는 생각이었다.
이번 1학년은 2학년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재능들을 모아 두었다고 하지.
“경쟁을 하며 서로를 알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자, 그럼 오늘 배울 내용부터 살펴봅시다-.”
교수의 잔잔하고 무덤덤한 말이 경직되어 있던 두 사람의 마음을 두들겼다.
그 이면엔 누가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겠지.
[간섭을 시작합니다.]교수에게 말을 건넸던 ‘누군가’.
그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가, 케일과 아나이스의 마음을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