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109화 – 주먹다짐이 꼭 그른 건 아니다
#1
면담을 마친 후, 아나이스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머릿속을 헤집었던 무언가가 싹 걷힌 느낌.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꽤 깔끔하게 했다.
[저는, 모두가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습니다.>아나이스가 생각한 아카데미.
앞으로 그녀가 이끌어 나가야 할 학생회의 테마.
그건 조화였다.
마지막에 교수들의 은은한 미소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케일은 어땠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강당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자니, 문득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염치도 없지, 아나이스. 무슨 낯짝으로……. 에휴.’
그래도 받아 주어서 다행이었다.
마누스 선배가 그랬지.
감정이 상한 부위엔 시간을 발라 주면 된다고.
흉터는 남을지언정, 상처는 아물 수 있다고.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둘 사이에 있었던 격렬한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서로를 향한 원망과 증오, 욱했던 감정이 없어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법.
둘은 그렇게 각자를 돌아보았고, 충분히 반성한 뒤였다.
아나이스가 홀로 사색에 잠겨 기다리고 있자, 케일이 나왔다.
꽤나 밝은 얼굴이었다.
“잘 봤어?”
“응, 너는?”
“나도. 할 말은 다 하고 나온 것 같아.”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아나이스의 말에 케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가 끊겼다.
복도는 두 사람이 걷는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케일은 잠시 생각하다, 아나이스에게 말했다.
“누가 이기더라도 이번엔 원망하기 없기.”
“-응. 당연하지. 그땐 내가…… 미안해.”
“나도 잘한 거 없는걸. 사실 그런 마음이 진짜 있었는지도 몰라.”
자신의 허물을 발견한 이들이 어찌 고개를 빳빳하게 들 수 있을까.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기엔, 둘은 자신의 허물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게 더 위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똑바로 직시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이게 친구지.
감정이 상했어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
케일과 아나이스는 친구라는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 중이었다.
“서로에게 나쁜 감정이 있었던 건, 본선에서 털어 버리자.”
“좋아. 지더라도 시원하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한번 물꼬가 트인 화해의 순간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이제 조금 더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두 사람은 서로를 굳건히 믿을 것이다.
#2
한편 그 시각, 마누스는 조교실에 들러 명단을 확인한 후였다.
꼬마의 명찰에 쓰여 있는 이름 ‘그라디.’
하지만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복은 어디서 얻은 거람.
마누스는 왠지, 괜히 이상한 일에 휘말린 것 같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
주변 사람에게 해코지할 아이로는 안 보였으니.
“저기, 마누스!”
도서관으로 향하던 도중, 니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
무슨 일일까.
그녀는 항상 나른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꽤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큰일 났어!”
다급한 표정으로 마누스의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니아.
마누스는 살풋 인상을 찌푸리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고 기억을 헤집었다.
그럴 만한 것이 없는데, 이상하네.
니아는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어제 과제가 생각 안 나. 어떡해?”
“…….”
이 느낌은 뭘까?
한 대 때려야 하나?
마누스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니아가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생각해 둔 건지, 필사적으로 답했다.
저건 진짜다.
괜히 자극했다간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것 같았다.
“아니아니아니! 내 말 들어 봐! 이건 진짜 심각한 일이라니까?!”
“유언은 끝났습니까?”
“흐이이이익! 내 말 좀 들어 봐아아아아-!”
니아는 나름대로 심각한 일로 마누스를 찾은 것이었는데, 반응이 이렇게 격렬할 줄 몰랐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똑똑해야 한다.
마법진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던가.
웬만한 이론은 모두 머릿속에 있어야 하고 수많은 지식을 욱여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마법사가 과제 하나를 까먹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기억하고 있는 걸 홀로 기억하지 못한다니.
“……그러니까, 알려 줘.”
한참을 도망 다닌 후에야 겨우 사정을 말할 수 있었던 니아.
마누스는 그녀가 진짜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자, 진정하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과제부터 알려 줘야겠지.
“과제는 원소 마법의 위력 증폭에 관한 걸 연구하고, 자신만의 마법식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양피지 열다섯 장 분량이군요.”
“아, 그랬나? 기억날 것 같기도 하고……. 알았어. 고마워.”
니아는 혀를 내밀며 눈웃음을 지었다.
몇 발자국 걸어가다, 그녀는 휙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누스가 한 번에 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너, 엄청 수상한 거 알아?”
마누스는 답하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요 며칠, 계속 그를 따라다니던 건 니아였겠지.
그녀는 또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불신하고 있을까.
“난 널 계속 주시할 거야. 그리고 너보다 강해질 거야. 귀여운 애들한테 수상한 짓 하지 말라고.”
“……망상이 지나치면 병입니다.”
“망상 아니거든! 계속 따라다니면서 널 견제할 거야. 혹시 알아? 내가 네 원대한 야망을 막고 영웅이 될지.”
마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몸을 돌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말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요새 이상한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다 싶었다.
두 개의 달이 모두 차오르는 시기.
사람의 감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
아마도 그 영향이지 않을까.
그의 눈에 저 멀리, 나란히 걷는 두 여인이 보였다.
‘그새 화해했나.’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서로의 감정은 생각보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양.
정렬의 붉은 머리.
냉정의 푸른 머리.
상반된 성격의 둘이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거면 된 거지.
원작 속 둘의 관계를 생각하면, 앞으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될 거다.
저 우정이 평생 가길 기원하며-, 마누스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있으면 되겠어.’
지식의 탐닉은 언제나 그를 들뜨게 한다.
예전,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게 해 주는 힘이었으니.
고지가 눈앞이었다.
#3
두 개의 탑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
온통 암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세상에, 한 사내가 등장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보이는 죽음의 탑.
그는 히죽 웃으며 붉게 떠 있는 달을 바라봤다.
삼 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는 두 개의 보름달.
이제 머지않았다.
“아아……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곧, 제물을 바칠 수 있겠군요.”
그는 두 팔을 쫙 벌리며 아름다운 미술품을 감상하듯, 펼쳐진 정경을 바라봤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멸망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발버둥 치며 절규하는 이들의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세상의 경계가 가장 희미해지는 시간.
갇혀 있던 세상의 주민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남자는 그날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물은 어떻게 되고 있죠?”
“적당한 곳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신을 강림시키기 전에, 대변자들부터 내려와야 할 겁니다. 첫 번째 대변자께서, 곧 이 땅에 강림하십니다.”
그러니 실수 없이 철저히 준비하시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두어 걸음을 옮긴 그가 자신 앞에 불쑥 들이밀어진 문서를 바라봤다.
사락-.
별빛이 괴상하게 쏟아지는 밤.
조용히 문서를 넘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샛노란 양피지에 적힌 이름 중, 몇몇은 붉은 선으로 찍찍 그어져 있었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사사건건 방해하는 인물이로군요.”
“그곳에 갔던 이 중, 아무도 살아온 자가 없습니다.”
“마침 그곳의 자제분이 이곳에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아카데미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카이사르.
인류를 지키는 위대한 가문 중 하나.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집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해리슨이라는 가문 역시 이곳에 자제를 보냈다지.
공교롭게도 두 자제의 나이까지 똑같았고.
“……재밌겠어요.”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대가 있었군요.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할 준비는 되었나요?”
고개를 숙인 남자가 긍정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조금 뒤틀려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사람.
실패를 맛보면 분한 감정이 들고 오기가 치솟는 사람이었다.
망가져 있을지언정 아예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그 역시 두 번의 실패로 만회해야겠다는 심정이 그득했다.
오히려 뒤틀려 있기에, 그 감정은 더욱 폭발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집행자시여.”
“좋습니다. 이번엔 조금 더 나은 도구를 준비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집행자라 불린 이는 지도 한 장을 건넸다.
언젠가 건네주려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던 관계로 지금에서야 전달한 지도.
드레이크를 잃은 부하의 심정은 절절하게 느꼈다.
그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을 남기는 부하를 위해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으니.
그는 자비로운 편이라고 믿었고, 부하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진행했다.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
병기로 만들기만 한다면, 지난번과 같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대에 부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떠도는 자여.”
“그럴 겁니다. 아니, 반드시 그리해야 합니다. 저는 못다 한 일이 있으니까요.”
히히-.
반쯤 실성한 듯 웃는 그의 모습이 집행자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떠도는 자, 나그네는 지도를 바라보며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머리를 땅에 대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뜻의 오체투지.
충성의 대가로 나그네는 항상 좋은 것들을 얻어 왔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들도 저분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렇기에 그는 충성을 멈추지 않았다.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은총을 내려 주고 있지 않은가.
“저는 기한에 맞춰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세요.”
망가진 인성이지만, 자신을 보듬어 주는 이 앞에서는 항상 정상처럼 보이고 싶은 나그네.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복수?
아니다,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정당한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거다.
‘기다려라.’
누군가의 독한 마음이 감정을 비틀리게 한다.
비틀린 감정의 끝은 어디일까.
나그네는 오늘도 길을 걸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