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
제11화
11화 – 함께 오르면 된다
#1
마누스에게 학교 수업이란, 새로운 유흥이자 취미가 되었다.
천재는 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귓가에 박혀도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다른 인격이었을 때, 그는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이해력이 다르다.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간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다.
이론으로부터 파생된 다른 이론.
응용.
다른 이론과의 접합, 또 그것을 실현했을 때의 문제.
가지가 무성한 고목이 그러하듯, 그의 지식도 쭉쭉 뻗어 나갔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기 가문이네.’
[카이사르의 마음가짐]왜 이들이 세계관 최고의 가문인지 알 수 있었다.
마누스는 필기조차 하지 않았다.
칠판 자체가 머릿속에 턱턱 찍히는데 무슨 필긴가.
녹음기를 재생한 것처럼 교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데 애써 손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두렵기까지 했다.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널린 곳이 바로 카이사르 가문이었으니까.
‘궁금하긴 하네.’
“-여기까지가 오늘 배운 내용입니다. 시범을 보일 사람이 필요한데…… 마누스 군?”
“…….”
마누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배운 내용은 원소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알투스] 마법에 대한 이론/실습이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망성을 그리고 그 위에 알투스 마법진을 덧씌우면 끝.
제대로 성공하기만 한다면 1클래스 마법으로 3, 4클래스 마법의 위력을 낼 수 있는 마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난도는 더블 캐스팅에 버금간다.
그냥 고위력기 한 방이면 될 일을, 굳이 배우는 이유는 간단했다.
“알투스 마법은 더 위로 올라갈 재능이 없는 자들의 빛입니다. 냉정한 현실이지만, 여러분도 꼭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5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하늘이 주신 영역이라고들 한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이들만이 배울 수 있는, 무려 500개가 넘어가는 선분에 마나를 집어넣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한 마법들이었으니까.
화륵-.
마누스는 어렵지 않게 이그니 마법을 펼쳤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마법진 위에, 탑을 쌓듯 알투스 마법진을 욱여넣었다.
그냥 된다.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이 느낌이 낯설고 생소해, 조소가 흘러나왔다.
콰르르륵-!
불길이 거세졌다.
모든 이의 눈길이 조금 커졌다.
“느껴지는 술식은 1클래스의 그것이지만, 위력은 3클래스 마법인 [이그니오]와 맞먹습니다. 알투스는 전략적인 술식으로도 많이 알려졌지요.”
교사는 설명 끝에 마누스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론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마누스 군. 이제 들어가도 좋아요.”
마누스는 눈인사와 함께 착석했다.
오늘 처음 배운 마법을 능숙하게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재능이었다.
이게 가능한 학생은 A반에서도 몇 없으리라.
알라노, 그리고 삼석인 디아즈 가문의 프랭크 정도일까.
하지만 그 누구도 마누스만큼 빠른 속도와 위력으로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부러운 재능이네.’
누군가의 생각으로 수업은 끝났다.
마누스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누구도 건들지 않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마누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알라노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 탑에 본격적으로 올라갈 거야. 같은 동아리니까…… 함께 움직이진 않더라도 모일 수 있겠어?”
“그 정도라면.”
알라노가 생긋 웃었다.
“너무 위험하게 다니지 말고.”
“-괜찮다.”
그녀의 자상함은 실력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누가 보면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이 해리슨이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녀만의 정체성이기도 했고.
마누스는 그녀의 따듯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오르카의 목걸이 개안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터다.
수업이 끝나고 마누스는 탑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마법 물품점에서 회복 포션 두 개를 샀다.
사실 준비는 그게 끝이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나태해지게 만들었다.
‘첫 보스, 파수꾼을 잡고 귀환하려나. 페이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주의 사항 정도만 알려 주면, 나머진 잘하겠지.
평균 몬스터 레벨이 1~3 정도인 구간이었다.
사실 주인공 캐릭터 하나만 들고 가도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었다.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내가 사용하는 게 낫겠고.’
오갈 곳 없는 물건은 자신이 취하는 것이 맞겠지.
운명이라는 걸 믿지 않았지만, 이걸 발견한 사람이 빌런인 것은 막아야 했다.
본래 주인공이 가져가야 할 물품이지만, 인게임에서는 퍼즐을 푸는 용도로만 쓰일 뿐이었으니.
그 시간이 오기까지 빌런의 손에 있는 것보단 나으리라.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이들이 이면 세계의 문 앞에 섰다.
“여기가……,”
“응, 일반 사람들은 보이지 않나 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걸 봤거든.”
“어, 어서 들어가죠.”
“한 번에 통과해야 한다.”
마누스의 통솔 아래, 모든 인원이 죽음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오늘부터 이들의 하루는 남들보다 아주 길어질 터다.
#2
탑 로비.
알라노의 안내로 도착한 이곳은, 여전히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케일, 아나이스.
두 사람은 멍하니 탑 로비를 둘러봤다.
기묘한 기운이 두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
산 자가 머물 수 있는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금빛 시계가 적막을 톡톡 두들겼다.
“건물은 아카데미 본관인데…… 내부는 완전히 달라졌네요.”
“와아…… 엄청 답답하고 으스스하고 그래요.”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라는 말.
아무런 보상도 없었지만, 순수한 학생은 용기와 우정으로 이 탑에 발을 들였다.
“이 위에…… 몬스터가 있다는 거죠?”
“데몬. 죽음의 공간에 서식하는 주민들이다.”
“나오지 못하게 숫자를 줄여야 한다니, 관리하는 사람 같네요.”
아나이스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
부정한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어찌 보면 여기 서 있는 자들은 오물을 치우는 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보상은 제법 짭짤할 거다. 지금부터 설명해 주지.”
밤과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가 차분하게 빛을 발했다.
탑은 위험한 곳이다.
각 아르카나와 트럼프에 맞는 데몬이 나오니, 약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 층에 오래 머물면 [순찰자]와의 전투를 해야만 한다.
중간중간,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이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보스를 클리어하면, 1층으로 돌아올 수 있는 중간 저장 지점이 활성화된다.
“-탐사 목표는 중간 지점까지.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가도 될 거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나이스가 작게 손을 들고 물었다.
마누스가 입을 다물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세요? 아아- 그,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홀로 5층까진 올라갔다 왔다.”
“……역시.”
“그 외에는 너희가 알아가야 할 거다. 나도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진 않으니.”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마누스는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했다.
“여긴 시련의 장소이자, 너희가 강해질 수 있는 곳이다.”
“-알았어요.”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설명은 끝.
나머진 이들이 5층까지 무사히 올라갈 수 있도록 빌어주는 것 뿐이었다.
고작 이런 곳에서 죽진 않을 터다.
이들에겐, 이 세계가 점지해 준 끈끈한 우정과 우월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한 마디 거드는 건 나쁘지 않겠지.
“함께 올라가면 된다. 너희들은 그럴 테지.”
“힘 나는 말이네.”
알라노가 살풋 웃으며 문을 바라봤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그들의 첫 번째 탐사가 시작되었다.
#3
탑에 오른 세 사람을 뒤로하고, 마누스는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목걸이에 영혼을 채워 넣기 전, 만나야 할 NPC가 하나 있었다.
마누스도 이 캐릭터를 만나는 건, 조금 꺼려졌다.
게임에서야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진행하지만-.
이곳은 현실이었으니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벌써 걱정되었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만나야겠지.
본래 악한 인물은 아니니, 말은 통할 것이다.
[아페리오]굳게 닫혀 있는 문.
다른 구조물 속에 파묻혀 있어,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문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히든 피스이면서, 플레이어들이 게임 후반까지 쭉 이용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철컥-.
문이 열렸다.
안쪽은 온통 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문 안쪽에서 몸을 돌리고, 정면에서 문을 닫았다.
다시 몸을 돌리니 보이는 인영.
남자, 그리고 여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남녀가 나란히 포커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까 봐-.”
“훗, 플러시입니다.”
“하…… 이 새끼 또 사기 쳤지!”
우당탕-!
여자 쪽이 테이블을 엎었고, 남자는 여유롭게 덮쳐 오는 나무 덩어리를 피했다.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인지 여자는 온갖 쌍욕을 쏟아부었는데, 그 자막이 꽤 웃겼더랬지.
“이런 ―――――― 같은 새끼야! 너 같은 ―――는 ――해서 ―――해 버린 다음 ――해야 돼! 맨날 사기만 치고 이런 ――――!!”
아주 난리가 났다.
큼-.
마누스가 작게 헛기침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갔다.
붉은 눈동자에 새하얀 머리.
머리에 달린 두 개의 검은 뿔.
검은 슈트 바지 뒤에서 찰랑이는 꼬리는,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어-? 인간?”
“인간이 여긴 어떻게……. 어라?”
남자 : 블랙은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모로 돌렸고, 여자 : 화이트는 붉은 눈동자를 부라렸다.
마누스가 인간이 아닌, 두 존재를 보며 말했다.
“오르카를 찾으러 왔습니다만-.”
“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인데, 일단 앉으시지요.”
블랙은 욕쟁이 여자에게서 벗어날 구실을 찾았는지, 얼른 마나를 일으켜 마누스의 몸을 강제로 이동시켰다.
화이트는 그런 파트너를 한 번 째려보고는 난장판이 된 곳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두 악마 모두 세계관 최강자급의 실력자다.
게다가 DLC의 추가 정보에서, 두 존재랑 한판 붙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고 했다.
진짜 이곳이 DLC의 세계라면, 그것도 가능하겠지.
“오르카의 목걸이를 가지고 왔구나. 그거 어디서 났어?”
“주웠습니다.”
“……구라가 아닌 거 보니까 진짜인 모양인데, 그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냐?”
화이트는 톡톡 쏘아 내듯 물었다.
마누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말고.
“강력한 아르카나의 혼을 사냥해야겠죠.”
“오-. 잘 아네. 그렇다면 여기에 온 목적도 그거 때문이겠네?”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악마] 아르카나의 영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화이트가 킬킬 웃었다.
세계관의 설정상, 화이트는 싸움을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다.
물론 그 싸움을 구경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그녀의 웃음은 진짜 악마처럼 보였다.
“애송이치고는 강단이 제법 있네. 블랙, 그거 아직 살아 있지?”
“물론이지요.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충분합니다.”
마누스가 희게 웃었다.
두 존재는 그의 웃음을 보고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이윽고 깔깔 웃는 화이트.
그녀는 마치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 존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우리들과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 줘야겠지. 탑 위로 올라갈 생각이지? 이번 싸움만 잘한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좋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제법 기대가 되는군요.”
두 존재가 그를 이끈 곳은, 거대한 투기장이었다.
마누스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은 탑에 대해 어떤 비밀을 알고 있을까.
[그르르륵-.]일단, 그건 이 상황부터 해결하고 물어보는 것이 낫겠지.
마누스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투기장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