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116화 – 여기는 생각보다 가혹하지 않구나
#1
형제.
그것은 참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단어다.
그들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면서도 영역에 침범한 외부인을 가만두지 못한다.
애증의 관계라고 하면 딱 어울리는 표현일까.
티란니스의 감정은 애증보단 증오에 가까웠지만-.
분명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엔 둘은 평범한 형제에 더 가까웠다.
그날만 생각하면, 티란니스의 두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내길 수년.
‘그 덜떨어진 놈이…….’
중요한 임무였다.
그가 가문에서 입지를 확고히 굳힐 수 있는 임무.
호기롭게 따라나선 동생은 제 한 몸 지킬 줄도 모르는 얼간이였다.
항상 공부만 하던 놈이 비뚤어진 것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4클래스의 트리플 캐스팅이라…….”
텅 비어 버린 식당.
티란니스는 턱을 괴고 공허한 눈빛으로 그때를 떠올려 봤다.
이제 고작 16세.
자신도, 그 대단하던 동생도 해내지 못했던 일.
뭘까 이 불안감은.
무얼까…… 이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인비데아는 벌써 마누스를 포섭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 심약한 놈이 악마를 잡았고 수상한 교단의 술수를 막았다.
“후우-.”
식사가 끝나면 자신의 집무실로 오라는 가주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옆에 있던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타오르듯 끓어오르던 감정이 차갑게 내려갔다.
일단 부딪쳐 봐야겠지.
그리고 진위를 확인할 것이다.
카이사르로서 그가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지.
이 가문에서 자랑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원으로 성장했는지.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기꺼이 동생을 용서하리라.
장남, 티란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시험은 가혹할 것이다. 동생아.’
장자에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리라.
그가 내리는 시험과 용서를 받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으리라.
이제 임무를 받으러 갈 차례였다.
“공자님.”
“무슨 일이냐.”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무얼?”
걸음을 옮기며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움브라는 딱 한 명밖에 없지.
티란니스는 구태여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그림자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던진 까닭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난, 저 사고뭉치 동생을 어찌하면 좋을까.
난, 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 용서를 구해 내고 싶을까.
“시련을 준비할까요.”
“……아니, 필요 없다. 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지.”
용서는 능력으로 구하는 것이다.
적어도 티란니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능력 없는 이들은 용서를 구할 새도 없이 한 줌 핏물로 사라질 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떠들었으니, 그 실력을 증명할 수 있겠지.
“명을 받들겠습니다.”
티란니스는 말없이 걸었다.
그가 진정한 용기와 실력을 가졌는지 시험할 좋은 기회였다.
#2
가주, 라베스는 황금빛 양피지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두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게 흘러가는지.
시간을 가속하는 마법이 있었다면 지체 없이 사용하고 싶을 정도.
어쩌면, 황금빛 양피지 안에 있는 내용 때문일지도…….
자신의 오랜 친우는 이따금 불쾌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왔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는 자신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상태.
베니니타스 역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정보인지, 진척이 없었다.
“가주님. 도련님들이 뵙기를 청합니다.”
“들어오라.”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아들이 들어왔다.
무표정한 셋째.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첫째.
모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지만, 가주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역시 필요하겠지.
라베스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건 자녀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하게, 그러나 상처보단 교훈을 주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했고, 할아버지 역시 그리했으니.
“마누스는 조금 있다가 들어오거라.”
“-알겠습니다.”
마누스가 다시 몸을 돌렸고, 웨이 역시 가주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마누스를 이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가주님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신 것 같습니다.”
“동감이다.”
마누스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자신 옆에 선 형제의 표정을 살폈다.
가히 좋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 낼 것처럼 일그러졌던 표정.
가주라면 그런 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어찌 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가 읽었던 소설,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에선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기도 하던데-.
인식과 편견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안쪽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가주님은 잘 타이르는 쪽을 선택하겠지요. 워낙 섬세한 분이시니까.”
“……나에게도 그랬나?”
“예. 개인적으로 공자님이 바른 길로 가고 계신 것 같아, 내심 뿌듯해하실 겁니다.”
웨이가 웃었다.
그 미소를 본 마누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짓는 미소엔, 기쁨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마누스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들.
그 실수와 반항의 반복을 전부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마음잡고 옳은 길로 가는 공자의 과거를 들출 필욘 없었으니.
“마누스, 이제 들어오거라.”
문 너머에서 인자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문을 열고 본 형의 표정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역시 아버지일까.
결국, 돌아와 이야기할 곳은 가족밖에 없다는 걸까.
“앉거라. 이제부터 임무를 설명해 줄 터이니.”
“예.”
“임무는 간단하다. 남부에 있는 마을의 실종 사건을 조사할 것. 기한은 일주일. 마법병단과 기사, 수호자들을 1개 소대씩 뽑아 가면 된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베스는 정갈한 글씨로 끄적인 양피지를 들었다.
아마 임무에 관해서 정리해 둔 것이겠지.
“지휘권자는 티란니스, 마누스 공동이다. 누가 더 권한이 많은 것인가는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다.”
“-네.”
티란니스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자인 본인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정당하겠지만…… 다 뜻이 있겠지.
마누스 역시 의외라고 생각해, 잠시 텀을 두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출발은 내일이다. 오늘 저녁까지 준비를 마쳐야 할 거야.”
일주일의 여정치곤 준비할 기간이 빠듯했다.
마을이 있는 곳을 토대로 동선을 짜야 했다.
인원을 선발해야 했으며 개인 짐도 꾸려야 했다.
현장에 가서 어떤 방법으로 움직일 것인지도 회의해야 했다.
모든 것이 미정인 상황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하는 상황.
티란니스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흘끔, 옆에 앉은 동생을 보니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경험도 없는 네가 여기서 어떤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겠느냐.’
그가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마누스는 이미 머릿속에서 구상을 돌리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
어린 몸속에 들어 있는 찌든 사회인의 정신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90% 이상 가야 하는 군대에서도 나름대로 과정은 있었거든.
그걸 따라가다 보면, 이런 임무도 자연스럽게 길이 보일 거다.
라베스는 벌써 고민을 시작한 마누스에게 시선을 던진 후, 티란니스를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잘해 낼 거라 믿는다.”
“맡겨 주십시오. 가주님.”
“그래. 티란니스는 이만 돌아가고, 마누스는 잠시 나와 이야기를 하자꾸나.”
티란니스는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예를 갖추고 떠나갔다.
이젠 둘만 남은 상황.
라베스가 손을 뻗자, 책상 위에 둘둘 말려 있던 양피지 하나가 스르륵 날아왔다.
마누스는 그걸 보더니 슬쩍 아미에 주름을 만들어 냈다.
저 인장, 저 양피지의 색.
모를 수가 없었다.
모니터로 수도 없이 봤던 양피지의 모양이었으니.
“……황가의 문양이로군요.”
“용케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 황가에서 서신이 왔다.”
황가의 서신.
사절을 데리고 온 황명이 아니기에 가문의 명예를 걸고 해결할 문제는 아닐 터다.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황궁의 힘이 가볍지도 않았다.
대륙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국의 수장이 보낸 서신.
그걸 무시할 신하는 대륙 내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건 제아무리 카이사르 공국이라도 마찬가지.
황제가 친히 보내는 서신을 무시할 순 없었다.
“무어라 적혀 있습니까?”
“두 번째 시험을 내린다고 하더군.”
[간섭이 시작됩니다.] [신중한 선택을 필요로 합니다.]떠오르는 메시지가 마누스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황제는 어떤 말을 하기 위해 손수 전언을 보냈을까.
게임 속, 그는 항상 유저들에게 질문과 고난을 던졌다.
이번에도 과연 그럴 예정일지, 썩 궁금해졌다.
라베스의 입이 열렸다.
“황제는 지금, 무언가를 위해 인재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더구나.”
“황궁에서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황궁은 황제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곳이지. 강력하긴 하지만, 이젠 외부로 나갈 수 없는 힘이 되었단다.”
황궁은 가장 강력한 단체이며 단일 세력으로도 대륙을 호령할 수준의 무력을 갖췄다.
하지만, 억제력이 될 뿐 정복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 대륙이 혼란에 휩싸일 테니까.
그래서 황궁 대신, 황제의 검을 찾고 있는 거였던가.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씩 밝혀졌다.
얽히고설킨 관계는 거대한 비밀을 만들고, 거대한 비밀은 곧 거대한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마누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겠지.
“황제는 잘 연마된 칼을 원하지. 그가 내 오랜 친우였지만, 아직도 속내는 모르겠단다.”
“그 연마된 칼이라는 건…….”
“그래. 우리 위대한 가문들을 이야기하는 거란다.”
마법사, 수호자, 전사의 열 가문.
제국을 지탱하는 열 개의 기둥으로 묘사되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걸까.
마누스는 황제가 보낸 서신의 내용을 듣고 추측해 보기로 했다.
“내용은 무엇이죠?”
“내용은 아까와 같다. 그곳엔 널 꼭 보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
“즉, 이 임무 자체가 황제의 시험이라는 뜻이군요.”
“그래.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제아무리 카이사르고, 재능을 꽃피웠다 해도 마누스는 아직 어렸다.
언제 어디서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라베스는 가주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 걱정을 입에 담았다.
마누스는 잔잔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걱정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는바.
그렇지만 때로는 과감해져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아버지도 알고 계실 것이다.
“저는 제 할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 시험이라면, 당당히 통과해야겠지.”
“형님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겁니까?”
라베스는 묘한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형에게는 이미 말했을 수도 있겠지.
그의 아버지는 아리송한 말을 남길 뿐이었다.
“둘이 잘해 보거라.”
마누스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준비할 시간이었다.
아카데미 밖에서의 시험이라, 못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힘든 일 뒤엔 보상이 기다리는 법.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