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4)
제134화
134화 – 혼란하다 혼란해
#1
익숙하지 않은 건 누구에게나 벽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심리적인 압박감은 더욱 심하겠지.
흐릿한 존재감을 가졌던 자가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친다면?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던 자신에게, 무수히 많은 관심이 쏠린다면?
평범했던 자라도 동작과 말이 어색해지는 것이 정상.
하물며 그 사람이 소심한 성격을 가진 이라면 어떨까.
“후우, 후우, 왜, 왜지?!”
갑자기 관심이 몰린 당사자, 트레이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빛이 옅은 밤이라, 그의 모습은 아주 흐릿했다.
여, 여기라면 아무도 오지 않겠지?
트레이스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섬뜩한 기분이었다.
어색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했다.
이 기분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여기 있었군.”
“히익!”
저벅-.
피곤하지도 않은지, 여기까지 쫓아온 이가 보였다.
현실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자는 몇 없었다.
그중, 저런 싸늘한 목소리는 딱 한 사람이었다.
푸른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었다.
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상위 포식자 앞에 선 먹잇감이 된 것처럼,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꿰뚫어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동자.
“그…… 왜 그러시나요?”
“침식 지대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그냥,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도 선택받은 존재라는 걸까.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존재.
악역으로 등장했거나 일반 몬스터, 혹은 파수꾼이나 사도로 등장한 이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플레이했던가.
그 기억을 아무리 들춰 봐도 이 소년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DLC에 추가된 캐릭터인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알라노가 이야기 했던 말들을 상기하며.
“아직도 혼자 다니던가.”
“알라노 선배가 계시긴 하는데…….”
“계속 혼자 다닐 건가.”
트레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놀리는 걸까?
아니면 뭐지?
혼란스러움을 감추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마누스는 트레이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친근하다고 해야 할지, 불쾌하다고 해야 할지.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트레이스에게 말했다.
“친구들을 사귀고 싶으면 침식 지대로 와라.”
“어…… 알겠어요.”
“검은 좀 쓸 줄 아나?”
“조금은.”
트레이스의 등허리에 묶여 있는 두 자루의 검.
그 끝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어, 던지는 용도로도 쓸 만한 것 같았다.
마침 근접 딜러가 필요했는데, 전력을 확충하면 좋겠지.
끌어들일 만한 좋은 명분이었다.
침식 지대에선, 모두가 트레이스를 볼 수 있었으니까.
이 아이의 목적은 무엇일까.
무얼 근거로 간섭할 수 있을까.
“혼자가 싫으면 우리가 탑을 오를 때 같이 올라라. 아니면 그저 침식 지대에 있어도 좋다.”
“……왜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 거예요?”
“한계에 몰린 인간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마누스는 그 말을 하곤 망설임 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트레이스는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틈새로 들어가면, 그도 평범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우연이었으며,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했던 자신을 인지했으니까.
“함께…….”
소년은 마누스의 말을 곱씹었다.
그에게 있어, ‘같이’와 ‘함께’는 머나먼 단어였다.
그는 항상 혼자였으며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았으니까.
마누스와 알라노, 그리고 침식 지대는 그에게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선택이 인생을 전부 바꾸리라는 것을.
“나도 평범하게 지낼 수 있는 거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미 대답은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트레이스는 밤하늘을 이고 길을 걸었다.
무거운 짐 덩어리가 그의 어깨를 꾹꾹 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 어두운 밤이 끝나는 순간, 그를 짓누르고 있던 짐도 새하얗게 타 없어질 것이다.
#2
날이 밝았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케일은 어제 있었던 일을 상기하며 등교하는 중이었다.
그 소년.
분명히 이전에 봤던, 기이한 소년이었지.
어째서 그가 침식 지대에 들어오게 된 걸까.
고민해 봤자 나오는 건 없었다.
조만간 4월 월말 평가가 있을 차례였다.
지금은 평가에 집중할 시기였다.
‘이제 4클래스. 5클래스는…… 아직 멀었구나.’
전율적인 광경을 보아서일까.
오늘따라 마누스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선배는, 언제부터 6클래스의 끝자락을 붙잡았을까.
경이로운 재능과 실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작 한 살 차이에 저런 경지에 올랐을까.
그녀는 문득, 어렸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 누군가가 말했던 말이었다.
[네 재능은 결국, 대마도사에 닿을 거란다.> [그러니 끝까지 살아남아 강해지렴. 그렇다면 널 넘어설 마법사는 많지 않을 거란다.>그 기억을 붙잡아 알음알음 마법을 익혔었지.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실제로, 그녀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던 이들 중 좋은 결과를 얻은 이는 없었으니까.
세상은 넓었고, 진짜 강자는 대륙 중앙에 몰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가문, 귀족과 진짜 강자는 변두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이곳에 와서 알았다.
당장 알라노, 마누스 아나이스만 봐도 압도적인 기량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탑으로 가야 해.’
마누스의 말을 기억했다.
답은 언제나 탑에 있다는 말.
그 말을 붙잡고 올라갈 의지가 샘솟았다.
그녀도 마누스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굳건해졌다.
케일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아카데미의 여왕님이 되어 버린 아나이스와 피어슨이 손을 흔들었다.
“케일-!”
“잘 잤어? 우린 어제 기절했다, 야.”
“나도, 어제 기절해 버렸어.”
자연스럽게 나란히 걷는 세 사람.
그 세 사람에게 모이는 시선은 가히 엄청났다.
화제의 1학년.
엄청난 마법을 선보였던 두 사람이 나란히 길을 걷고 있으니, 이목이 쏠릴 수밖에.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은 빛나는 별이었다.
1학년의 별.
오늘부터 아나이스는 무척 바쁠 예정이었다.
학생회장은 자잘한 대소사를 모두 관리해야 하는 자리이니.
“학생회…… 잘 뽑을 수 있겠지?”
“무얼 걱정하냐. 토너먼트에 올라왔던 애들만 뽑아도 한 무더긴데. 나는 사양할게. 아직은 자유의 몸을 유지하고 싶으니까.”
“……너 뽑을 생각도 안 했거든?”
케일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아나이스에게 물었다.
굉장히 무례했고, 굉장히 거만한 동급생.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인 학생.
그의 파벌을 학생회로 끌어들인다면, 아나이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겠지.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목소리엔 진한 궁금증이 담겼다.
“카스트로나 드아린…… 평민 중에서도 강한 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카스트로는 싫어. 드아린은 원한다면 뽑고 싶어.”
1학년 수호자, 전사 중에서 가장 강했던 두 사람.
아나이스는 의외로 딱 잘라 말했다.
두 사람이 교실에 들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꽂혔다.
잠시간의 정적이 찾아오고,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어젯밤, 기숙사에 돌아가기 전 알라노와 니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내일부터 난리가 날 거야.> [너는 이제 마법도 마법이지만, 사람을 더 잘 다뤄야 한단다.>“학생회장! 이번에 학생부 뽑지?!”
“맞아, 나도 좀 뽑아 줄래?”
“충성을 다할 수 있어! 일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황금색 뱀이 수놓아진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회는 권력의 중추였으며 외부의 인사와도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자리였다.
단체 생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다양한 활동으로 스펙을 쌓듯, 이곳에서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었다.
같은 반에서 회장이 나왔으니, 가장 먼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잠깐-.”
“어디 불편한 거 있으면 말만 해. 뭐든지 해결해 줄 테니까.”
“나 플로이스 가문 밑에 있는 남작 가문 소속이야. 알고 있지?”
도떼기시장처럼 와글와글 떠드는 이들.
아나이스의 얼굴이 대번에 질려 버렸다.
피어슨과 케일이 순식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릴 정도로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B반부터 F반까지의 학생들이 모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고작 아카데미 내에서의 알력 다툼이 아니었다.
무려 대륙 최고 교육기관의 실세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아나이스! 플로이스와 우리 가문은- 읍읍!”
“닥쳐! 어디서 급도 안 되는 평민이 학생회를 지원해? 아나이스! 저런 평민하고는 말 섞지 마.”
“맞아, 뭐든 능력이 있는 귀족으로 꾸리는 게 좋지 않겠어?”
“아카데미에선 급으로 나누지 않을 텐데? 그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 거 알고 있어?”
분위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자기네끼리 난리인 꼴이라니.
아나이스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리게 한 멘트는 평민을 깔보는 귀족들의 말이었다.
평민이 뭐가 어쩌고 어째?
당장 눈앞에 있는 케일은?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을까.
“시끄러워어-!”
그 누구보다 목청이 큰 아나이스가 고함쳤다.
싸늘함을 넘어 분노에 가득 찬 얼굴.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추태를 알고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누군가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아나이스를 바라봤다.
난생처음 다양한, 그것도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보게 된 아나이스는 실로 당황스러웠다.
언젠가 마누스가 그런 말을 했었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마누스가 느꼈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
추악한 감정을 숨기고 웃는 가면을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이들.
‘이제 알겠어.’
“다들 돌아가. 귀족이고 평민이고 할 거 없이 내가 알아서 뽑을 테니까. 아 그리고-.”
아나이스의 시뻘건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본능, 저 깊은 핏줄에 새겨진 태양의 DNA가 서서히 깨어났다.
우매한 것들이 감히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쾌했다.
그녀가 이끄는 학생회는 최고의 인원만 선별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마음이 맞는 사람.
적재적소에서 일을 해 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단단한 유대감으로 뭉쳐 있어야 할 사람들을 품을 것이다.
“방금 서로 싸운 애들은 절대 뽑을 생각 없으니까, 알아서 해.”
“뭐어-?!”
“아니,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 줄 알고-!”
누가 감히 가문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아나이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는 마누스를 닮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턱을 들고, 눈은 내리깔았다.
팔짱을 턱, 자연스럽게 낀 채 그 누구보다 위대한 가문의 이야기를 꺼냈다.
“플로이스 앞에서 누가 가문 이야기를 꺼낼까?”
그 모습에, 아무도 반박하는 이가 없었다.
순식간에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휘어잡는 모습에, 저 멀리 떠밀렸던 피어슨이 케일에게 말했다.
“……역시, 마누스 선배가 저렇게 만들어 놨겠지?”
“…….”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케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