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9)
제149화
149화 – 진짜 실력은 남들이 욕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1
블러드 슬라임.
꽤 흔한 이름으로 불리는 붉은색 점액 덩어리는 생긴 것보다 훨씬 끔찍한 능력을 발휘했다.
슬라임 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부식.
점액 덩어리인 슬라임의 몸체는 엄청나게 강한 산성이었다.
금속을 순식간에 부식시킬 정도로 강력한 산이기에, 슬라임은 마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석.
그런데 이 블러드 슬라임은 3클래스까지의 마법을 그대로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다.
일반 슬라임이 악마의 피를 흡수해 만들어진 생명체였으니, 자연스럽게 항마력도 높아진 것.
[폴게트라] [알투스]콰르르르륵-!
그런 블러드 슬라임을 깔끔하게 날려 버리는 방법은 두 가지.
얼음 속성 마법으로 얼리거나, 고열로 태워 버리거나.
게다가 이 녀석들의 주식은 마나, 그 자체였다.
한마디로, 블러드 슬라임을 죽이기 위해선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마나를 때려 넣어야 한다는 것.
실로 소모적인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에 꺼리는 몬스터임에도, 지금 모습은 꽤나 처참했다.
퀴퀴한 냄새가 퍼지며 붉은 점액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으니까.
“마나 안 모자라?”
“아직 괜찮습니다.”
“이거…… 미안하네.”
엘레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외부의 점액이 날아가, 핵이 공기 중에 노출된 슬라임.
딱딱하게 경질되어 죽어 버린 슬라임이 두 3학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믿을 수 없는 위력, 믿을 수 없는 실력이었다.
“좋은 경험이죠.”
[크릉!]마누스는 딱딱하게 대답하곤 앞으로 걸었다.
빛나는 구체를 유지하면서 마법을 사용, 거기다 [알투스]까지 입혔다.
본래는 4클래스 마법으로 슬라임을 태워 버렸지만, 하루가 지나자 3클래스에 [알투스]를 더해 처리했다.
블러드 슬라임의 항마력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그의 사역마 알비온은 점액에 손을 쑥 넣어 핵을 으깨 버렸다.
복슬복슬한 털은 외부의 충격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
북극곰이나 펭귄이 그 추운 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원리와 같았다.
“우리가 할 게 없네.”
“그 방패 버릴 생각으로 지켜. 쟤가 우리 유일한 희망이니까.”
“……그래.”
아이든은 자신의 방패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래, 방패야 언제든지 다시 구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지급한 방패이고, 진짜 무기는 아니었으니까.
여차하면 돌이라도 깎아서 마누스를 보호해야 할 참이었다.
그만큼, 마누스는 이 공략의 핵심 인물이었으니.
난데없이 생각나는 ‘수호자’의 역할.
아이든은 다시 한번 수호자가 어떤 존재들인지 상기했다.
“-내가 지켜야지.”
“이제야 보기 좋네. 가자.”
엘레나 역시 블러드 슬라임을 처리할 방법이 있긴 했다.
화살에 마나를 가득 담아 핵을 꿰뚫으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마누스처럼 엄청난 마나를 가지지도 못했고, 그만큼의 컨트롤 능력도 안 되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의 주의를 끄는 것 뿐.
3학년씩이나 되어서 이 정도도 못하다니-.
한숨이 솔솔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자괴감은 평가 다음에 생각해도 되니까.
‘지금은 집중하자.’
그녀가 잘하는 일을 할 차례였다.
그들은 던전의 끝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2
이튿날.
2학년들이 소식을 듣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알라노는 새빨간 깃털을 가진 피닉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반쯤 감겨 있는 그녀의 눈꺼풀 안쪽엔, 걱정이 잔뜩 담겨 있었다.
인공 던전.
제아무리 마법으로 만들어 낸 던전이라도 실제 몬스터가 서식하는 공간이었다.
하루 만에 탈락한 선배들이 수두룩했다.
3학년 원소학 담당 교수인 카이사가 하루 내내 마법진 연구를 위해 틀어박혔다고 하지.
여러모로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알라노 역시 던전 안쪽으로 들어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알라노, 걱정되나?”
“아무래도 그렇지?”
“최강의 마법사면서, 뭘 그렇게 걱정해?”
“최강이라…….”
알라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얼굴이 되었다.
마누스가 3학년으로 월반을 한 지금, 알라노는 진정한 2학년 최강의 마법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곳에서 최강으로 있어 봤자, 그녀는 일개 학생일 뿐이었다.
더구나 위험한 곳에서 만 하루를 지낸 마누스 역시 걱정되었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몬스터보단 데몬이 상대하기 쉬울 거다. 아직은.>‘더 위험한 곳이라 걱정되네.’
아무리 마누스라도 아직 나흘 연속으로 마나를 사용하며 전투를 치르진 않았을 터다.
자신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팀을 잘 이끌 수 있을까?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1학년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녀석들이라면 끝까지 포기하진 않겠지.
“안전장치도 있으니까, 믿을게. 기예르모도 있잖아.”
“응, 잘해 보자.”
2학년 통합 학생회장이라는 타이틀은 동료에게 무한한 신뢰를 안겨 주는 힘이 있나 보다.
실은 별거 없는데 말이지.
그래도, 다른 이가 자신을 믿어 주고 있었다.
그러니 힘내야겠지.
“……무리하지 마라. 어쨌든, 이건 평가일 뿐이니까.”
“알고 있어.”
같은 조로 편성된 기예르모 역시 알라노를 격려해 주었다.
과도한 부담감은 사고와 행동을 굼뜨게 만드는 법.
알라노 역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는 누가 보더라도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평소엔 얼음 여왕이라고 불리는 그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냉정하고 차분히 지휘하는 그녀의 능력은 위대한 가문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기예르모 역시 그 부분은 인정하는 바.
“…….”
“-가자.”
그는 말을 더 꺼내진 않았다.
마누스는 이럴 때 무어라 말하던데, 기예르모 자신은 그럴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지켜보고 적절한 말을 건네주는 건 의외로 어렵고 귀찮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마법사이자 파티의 리더인 알라노를 옆에서 보좌하는 것뿐이었다.
버클리 가문의 수호자는 예로부터 말이 없기로 유명했다고 했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가문의 핏줄이라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준비된 조부터 입장합니다!”
통솔하는 조교가 언성을 높여 학생들을 인공 섬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알라노 역시 무사히 인공 섬, 지정된 좌표로 안착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교수진들은 그녀가 어떤 실력을 발휘해 줄지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위대한 가문.
얼음 속성 마법에서는 카이사르마저 뛰어넘는다는 해리슨의 저력을 보여 주겠지.
그때, 공통 과목 교수 중 한 명인 트레버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졸업반인 4학년을 제외하곤 모두 던전 공략을 위해 인공 섬으로 가야 하는 주간.
“어. 트레버 교수님? 어서 오세요.”
“하하, 제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가요?”
“아뇨, 그럴 리가요. 역사 교수님껜 이보다 좋은 교보재가 없죠. 어서 오세요.”
다행히, 교수들이 성대하게 환영해 주어, 트레버 교수는 무사히 영상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들어왔다.
내심 차별당하거나 거부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카데미 교수들은 대부분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모양.
그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다른 교수와 나란히 섰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하루를 꼬박 새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트레버는 미토스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을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삼켰다.
“다들 피곤하진 않으신 모양이네요. 저는 하루만 밤새워도 죽을 것 같던데.”
“뭐…… 그만큼 단련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역사에 대해 무지하지요.”
“저도 시간 날 때마다 단련을 해야겠습니다.”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영상을 전송하고 있는 화면으로 향했다.
마법이란 정말 대단하지, 인간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으니.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었다.
평가라는 명목하에 일행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
누군가 본다면 옳지 못한 행위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모순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세계가 너무도 역겨웠다.
#3
눈이 뻑뻑했다.
마법을 오랜 기간 연구하며, 이토록 단시간에 피로감을 느낀 적은 얼마 없었는데.
고개를 까딱이니, 경직되어 있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뚜둑-.
경쾌한 뼈 소리가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이거……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안 그런데. 충분히 개입할 수 있을 정도잖아?”
카이사 교수가 옆에서 들려오는 말에 반박했다.
꼬박 한 달을 매달린 일이었다.
결과는 어느 정도 밝혀졌고, 심각한 문제로 번질 정도까진 아니었다.
던전이 어려워진 까닭은 주요 마법진 중 몇 개의 선분의 순서가 뒤엉켰기 때문.
마법진이 발동하는 와중에 생겨난 오류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조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라면 몇 달을 고생해야 할 정도라는 것.
“천운이지 뭐.”
“다행이네요.”
“결과적으론. 해야 할 일은 끝났으니까 돌아가자. 으으, 회복 마법 걸어 줄까?”
조교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옆에서 시킨 것밖에 한 게 없어 피곤하지도 않았다.
정작 일은 카이사 교수가 모두 처리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일 봐. 난 돌아갈게.”
생긋 미소 지은 카이사 교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감독실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체스트힙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회중시계를 보니, 약속 시각이 훌쩍 넘어갔다.
시렌이 무어라 말할지, 벌써 귀가 따가운 느낌이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마법진을 누가 건들겠냐마는, 오히려 일이 잘 풀리고 있잖아.
몇 시간을 고민하며 끙끙대는 카이사 교수의 모습을 보니,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가서 고생 좀 하라지.’
남의 불행은 곧 자신의 행복.
더구나 자신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그 행복은 배가될 터다.
체스트힙은 그런 기분을 실시간으로 만끽하는 중이었다.
이제 그가 돌아오고 난 뒤, 멋진 선물을 해 줘야지.
클라이맥스를 어떻게 터뜨릴까 고민되었다.
넌지시 교수에게 찌를까?
아니면 하녀장에게 슬쩍 귀띔할까?
‘뭐가 되었든, 카이사르라는 명성에 흠집은 갈 거야.’
그 뒤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지.
페스트힙 조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것이지, 카이사르 마누스의 멸망이 아니었다.
그건 겸사겸사,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던전에서 마누스가 어떤 모습으로 몬스터를 도륙하고 있는지.
오직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의 전형적인 실수였다.
자신이 달려가고 있을 때, 남들은 날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