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3)
제153화
153화 –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
#1
날이 밝았다.
오늘은 금요일.
4월을 마무리하는 평가가 진행되는 날이기도 했다.
본래 이맘때쯤, 학생들은 들뜨거나 예민해져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문제는 어떤 것이 나올까.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얼마큼 해 왔을까.
오늘 컨디션은 괜찮나 같은 것들의 감정을 느낄 때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아카데미 분위기가 축 처져 있었다.
“케일! 잘 잤어?”
“아니. 졸려어-.”
멍하니 등교하고 있던 케일의 옆에 붉은 머리가 등장했다.
요새 학생회 선출 문제로 고민 중인 아나이스였다.
그녀 역시 꽤 어두운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점 하나 찍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지니 인상도 변한 느낌이었다.
피어슨은 먼저 준비할 것이 있다면서 먼저 등교한 모양.
“너도 들었지? 선배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응, 알고 있어. 단순히 약물만 가지고 올라갈 실력이 아니잖아.”
아마 그를 조금이라도 자세히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느꼈을 거다.
블랙 럼 같은 싸구려 약품으로 마누스처럼 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모두가 고개를 젓겠지.
그럼에도 상황은 좋지 못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여자 기숙사에서도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가문에서 버려진 게 아니냐느니, 실은 그동안 모두에게 사기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냐느니 하는 것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진 오가지 않았지만, 평소 그를 고깝게 보던 이들이 기세등등해졌다.
“징계위원회라니……. 이사장님께 한번 가 볼까?”
“평가 끝나고 가 보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장님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평가는 치러야 하니까,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혀야겠지.
미아 교수가 사라진 뒤, 어떤 문제들이 나올까?
이번에 마법에 관련된 문제들은 교수님들이 나눠서 냈다고 하던데.
그나저나 선배는…… 이번 평가를 잘 볼 수 있을까?
“하아-.”
한숨만 나오는 하루.
오늘, 무사히 평가를 치를 수 있을까?
그리고,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걸까?
걸음에서 뚝뚝 묻어 나오는 걱정들.
두 사람은 말없이 교정을 거닐었다.
오늘따라, 유독 달라붙는 눈빛이 많았다.
아마, 마누스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에서겠지.
#2
쾅쾅-!
이사장실의 문이 오늘따라 격렬하게 흔들렸다.
문 너머에서 자신을 급하게 찾고 있는 소리를 들은 닉스 이사장.
그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어제오늘, 아카데미 이사장직을 맡은 이래 정말 바쁜 날을 보냈다.
특히 교수들의 방문이 정말 잦았다.
차라리 홀로 서류 업무를 보는 것이 나을 정도로.
“-들어오게.”
“실례하겠습니다. 이사장님.”
“알라노 학생, 어서 와요. 혹시 학생도……?”
“맞습니다. 마누스 건에 대해 여쭤보려 왔어요.”
“후…… 역시 그렇군요. 전 마누스 학생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가 보여 주었던 판단력과 실력, 그리고 여러분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단순히 약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알라노의 눈빛에 희망이 돌았다.
하지만, 이사장의 다음 말들은 알라노로 하여금 실망감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어른들의 사정.
절차대로 행하려는 법도.
알면서도 귀찮은 일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녀를 강타했다.
닉스 이사장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그래도 징계위원회는 열릴 겁니다. 그건 저도 막을 수 없어요.”
“마누스는 굉장한 모욕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아카데미의 규칙이기에.”
알라노는 한숨을 쉬었다.
규칙.
그래, 자신 역시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규칙 아래 모든 이가 질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딱딱한 법규와 절차라는 것이 족쇄가 되어 그들을 옭아맬 줄은 몰랐다.
자신들은 떳떳했기에 더욱 억울했다.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만약 마누스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사장님은 두고 보실 건가요?”
“……아직 잘 모르겠군요.”
“그는 우리 동아리 멤버의 구심점이에요. 그가 없다면, 세상도 구하지 못할 거랍니다.”
알라노가 강하게 말했다.
그녀의 어조는 확신에 차 있었고, 다른 이들도 같은 의견일 거라는 의미도 내포했다.
따지고 보면, 동아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모은 이가 바로 마누스 아니던가.
그가 불쑥 없어진다면, 단순히 사기 저하의 문제만 나타나는 건 아닐 터다.
이사장도 그 부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마누스는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꼭 필요한 전력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해 봐야군요.”
“그러지 않아도 그는 결백을 증명할 테지만요.”
알라노는 눈빛을 빛내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녀는 철석같이 마누스를 믿었다.
은빛 회중시계가 부르르 떨리는 걸 본 알라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알라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닉스 이사장.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그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신경 쓰지 않았을 일.
마누스가 해 온 짓은 누군가의 악의를 그러모으기에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달랐다.
그는 없어선 안 될 인재이며, 재앙을 극복하고 비밀을 파헤치는 데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들어 보니, 숱한 위기를 마누스 덕에 넘겼다던가.
지금 아이들의 상태는 말이 아닐 테지.
‘그마나 오늘이 평가 날이라 다행인가.’
그는 한숨을 삼키며 한쪽에 놓인 황금빛 서신을 바라봤다.
어째, 황제라는 작자는 이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달력을 바라봤다.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이래저래 일이 겹쳐,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흐르겠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커다란 사건이 어떻게 종결될까.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3
마누스는 유독 끈적하게 달라붙는 시선들을 무시했다.
들끓는 마음가짐이 당장 그들을 응징하라 부추겼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은 침묵을 지킬 때고, 반전을 위한 관객을 끌어모아야 하니까.
일부러 귀에 마나를 둘러, 소리를 차단했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더욱 기품 있는 걸음걸이를 유지했다.
저들은 뒤에서 욕하겠지만, 감히 앞에서 나대는 작자들은 없었다.
‘일단 평가는 잘 받아 둬야겠지?’
아직 퇴학이든 징계든,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오늘 평가는 동등한 입장에서 치를 수 있겠지.
자신이 평가를 잘 받는 것도 결백을 주장하는 데에 보탬이 될 것이다.
멍청이들이 아니라면 단순히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이미지는 한 번에 반전시킬 수 있지. 아무리 쓰레기처럼 보였던 사람도 금방 인식이 뒤바뀌었으니까.’
대한민국을 떠올려 봐도 그랬다.
수많은 구설수에 오른 연예인, 혹은 정치인.
숨겨졌던 미담이 밝혀지고 ‘사실은 그랬다더라’라는 기사가 쏟아지면 나빴던 이미지가 선한 이미지로 바뀌기 마련.
대중들을 움직이는 전체적인 이미지란, 본래 그런 것이다.
실상이야 어찌 되었든, 대외적인 이미지만 신경 쓰면 사랑을 이끌어 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자신이 그럴 위치에 오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어깨너머로 배웠던 것들을 써먹을 때였다.
그건 그렇고…….
‘설마 조교가 이런 일을 꾸밀 줄이야.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데도 저러나?’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일을 저질렀는지는 관심 없었다.
왜 건드려도 가만히 있던 자신을 건드렸는지…….
마누스는 그렇게 시험 대형으로 변경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다.
지식의 끝자락을 잡은 6클래스.
그걸 실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었다.
6클래스의 지식은 그 양이 방대해, 아무리 카이사르라도 쉽게 도달할 수 없었다.
느긋하게 좇다 보면, 언젠간 도달하겠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면, 불현듯 도달하게 되리라 믿었다.
지금 그에겐 주변의 시선보다 눈앞의 지식이 더욱 가치 있었으니.
“마누스. 잠깐 괜찮아?”
“던전은 무사히 주파하셨습니까?”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래서 괜찮냐고.”
그림자가 드리워져 고개를 들어 보니, 니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순수한 걱정.
그동안 니아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간 사선을 넘어왔더니 동요애가 생겼나.
의심한다, 꼭 밝혀낼 거다 등등의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더니만, 걱정은 되는 모양이지?
그래서 마누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모두를 홀려 버릴 미소가 흘러나왔다.
니아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웃을 기운이 있는 거 보니, 괜찮나 보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최대한 아껴 주십쇼.”
“……왜? 생각이 다 있어?”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인 그녀에게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니아가 음음, 하고 마주 끄덕였다.
역시 마누스라고나 할까.
본인 같았으면 길길이 날뛰며 범인을 찾았을 텐데.
누가 자신을 위해하려고 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을 터다.
위대한 가문에 근접한 아브렐 가문을 욕보이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거다.
“아무튼, 난 가만히 있을게. 평가 잘 보고.”
“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애들은 아닐걸? 이따가 좀 다독여 주고 그래.”
“그러죠.”
이런 일까지 케어해 줄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
그래도 상황은 봐야겠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평가를 망치지 않도록만 해야겠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을 무시하며 밑으로 향했다.
2학년은 알아서 하겠고, 1학년 후배들은 멘탈을 좀 잡아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니.
그가 가는 이유는 하나.
‘애들이 나 때문에 피해 보는 건 싫으니까.’
15세.
아직 어린 친구들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뭐 했더라?
애들이랑 같이 PC방이나 다녔을 시기였지 아마?
환경이 다르다곤 하지만 어디서 똑 부러지게 결정할 정도로 성숙한 자아는 없을 테지.
꼰대같이 보일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살았으니 조언할 거리는 많았다.
그 시기를 겪었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방황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중심을 잡아 줄 수는 있겠지.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그래, 이건 확실한 간섭이지.’
이런 거야말로 진짜 간섭이지.
어린 마음엔 어른들이 했던 말들을 흘려들었었다.
그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간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
하지만 나이가 비슷한 또래가 하는 말이니만큼, 그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아버지, 어머니가 하는 말보단 선배가 하는 말이 와닿는 법.
같은 세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한 하루였다.
“-선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마주치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는지, 떨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 모습.
허나, 그녀는 마누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그리고 마누스를 굳게 믿는 눈빛이 보였다.
마누스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그리고, 그녀가 자신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