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163화 – 새로운 정원사
#1
마누스가 한창 탑을 들쑤시고 다닐 때, 체스트힙은 기묘한 공간에 도착했다.
정원.
아카데미 안쪽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넓은 정원이었다.
작은 저택이 보였다.
집 속의 집이랄까, 굉장히 이질적이지만 안락한 분위기를 내는 곳이었다.
대체 여기까진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또 어떻게 아카데미 안쪽에 이런 공간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대답은 나중에 들을 수 있겠지.
혹은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으리라.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대하고 기괴한 꽃들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은은한 장미 향이 코를 간질였다.
저택의 내부는 콘셉트가 확실했다.
바닥은 아주 좋은 통로를 제외하곤 모두 크고 작은 꽃들로 가득했다.
저택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나무마저 죽은 것이 아닌 생목.
마법의 힘을 빌려 구조를 조정한 듯,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어서 오렴. 내 정원을 지킬 아이야.”
“당신이 그……?”
“그래. 내가 널 여기로 불렀단다.”
분홍빛 가면.
그 아래로 드러난 하관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인이라는 것과 굉장한 미인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식물 줄기를 꼬아 만든 드레스는 척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체스트힙 조교를 부른 여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조교는 무심코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립글로스를 발라 번들거리는 입술과 굴곡이 잘 드러나는 몸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후우……. 그래서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뭐지?”
“기억력이 좋지 않은 걸까? 내가 널 정원사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래, 분명 그랬지.
그 대가로 자신은 미증유의 힘을 얻기로 했지.
그나저나…… 침입자라고 했었나?
마누스도 이곳에 올 수 있다고 했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여인에게 물었다.
“마누스가 이곳에 온다고 했는데, 혹시 그도 내게 준 것을 섭취한 건가?”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가 그러하지. 내 귀한 꽃들을 꺾어, 자기들 멋대로 그 힘을 취해 갔단다.”
“역시-.”
그래.
여기에 비밀이 있었구나.
그 도도한 표정도, 재수 없는 면상도 이런 비밀을 감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
그래, 결정했다.
자신의 죄를 사면받을 방법은 바로 이곳에 있었잖아?
체스트힙 조교는 들뜬 마음으로 여인을 향해 말했다.
굳이 여기서 그를 맞이할 필욘 없지.
저쪽에서 그의 명예를 확실하게 실추시킬 수 있는데, 굳이 무력까지?
“지금 날 밖으로 보내 주면, 카이사르 마누스를 확실하게 끝장내겠다. 이런 비밀을 감추다니…… 아카데미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어머, 무슨 소리니? 나는 분명히 말했단다. 넌 나의 정원사가 되어야 하고, 나는 너에게 무한한 힘을 전해 주기로.”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내가 사는 곳에……. 뭐야, 이거 안 놔?!”
슈르르륵-.
그녀가 손을 뻗자, 굵은 줄기들이 그를 옭아맸다.
체스트힙 조교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마법사라고 해도 마나의 힘을 빌리면 일시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대신 반동은 아주 심하겠지만.
그럼에도 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근육이 끊어지며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끄으으으-! 이거 놔!”
“말을 듣지 않는 정원사로다. 우린 계약을 했다. 그러니…… 계약을 이행해야겠지.”
콰르르르르-!
그의 귀에, 입에, 코에 작은 줄기들이 틀어박혔다.
이질적인 마나를 주입하는 죽음의 줄기.
굉장히 고통스러운 감각에 몸부림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산 자를 증오하는 사도들은 더욱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
체스트힙은 마석을 받아 들 때부터 다시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번 정원사는 딱 21년을 버텼단다. 이번엔 얼마나 버틸까?”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읍-!”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식물들에게 삼켜졌다.
거대한 고치처럼 변해 버린 그를 바라보며, 가면의 여인이 웃었다.
“후후후, 이번에 탄생할 정원사는 예쁜 꽃을 가꿨으면 좋겠구나.”
스르르륵-.
그녀가 허공에 앉자, 나무줄기가 거대한 왕좌를 만들어 냈다.
가면에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끼는 정원사가 죽었으니, 이젠 다시 만들어 정원을 가꿔야겠지.
여인이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
“파수꾼 한 명을 내려보내면 침입자들을 지킬 수 있겠지.”
그녀는 꽃을 가꿔야 하니, 입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흥흥~♪♬
알 수 없는 멜로디가 여인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건, 죽음을 알리는 송가였다.
#2
“흐아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내일은 주말이니, 더 있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우, 나 죽어.”
쉬는 시간.
판저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파밍했다.
무사히 세 사람 모두 판저를 착용하고 휴식 공간까지 도착.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니아는 그대로 퍼져 버렸다.
[둑스]의 빛은 계속해서 위를 가리켰다.이 앞은 파수꾼이 지키고 있는 곳.
아직 케일이 이끄는 파티는 도착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원은 시간이 늘어난 만큼, 맵 역시 굉장히 넓어졌다.
“으…… 이제 겨우 7층인가?”
“체스트힙은 위쪽으로 올라간 모양이군요.”
“좀 자고 가자. 괜찮아?”
니아의 제안에,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휴식 공간의 문이 열리며 꼬질꼬질한 모습의 1학년과 알라노가 들어왔다.
여러 전투를 거쳤는지, 여기저기 찢어진 옷이 인상적이었다.
단정했던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마나를 많이 사용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들은 먼저 들어온 마누스 일행을 발견하곤 반색했다.
“먼저 와 계셨네요.”
“다친 사람은 없나?”
“네. 케일이 준 아이템이 제법 일을 잘했거든요.”
아나이스가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이젠 마음의 짐을 떨쳐 낸 듯, 밝은 얼굴이 보기 좋았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극을 이끌어 가던 여인이었다.
이제야 그 캐릭터가 조금씩 완성되어 보였다.
마누스는 지친 이들을 이끌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침실.
마나 회복 마법이 걸려 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편하게 널브러졌다.
마법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정말 적절한 공간이 등장했다.
“조교는 찾았어?”
“아니, 더 위에 있는 것 같더군.”
“밖에 있는 건 아닐까?”
피어슨이 갑자기 대화에 껴들어, 훈수를 두었다.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제 기가 막힌 촉으로 봤을 때, 조교는 반드시! 여기에 있을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기가 막힌 촉이라니까?”
피어슨의 감은 이 세계관 내의 최고 수준이었다.
모두 못 미더워하는 상황에, 마누스만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둑스]의 빛 역시 탑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피어슨도 서서히 캐릭터의 개성을 잡아가는 중이었다.
엄청난 운, 버프와 디버프, 그리고 길잡이 역할까지.
마누스는 그 방향성을 확고하게 잡아 줄 생각이었다.
“네 촉을 믿어 보지.”
“오…… 정말입니까? 크으, 역시 선배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여기 아나이스는 맨날 믿어 주지도 않는데.”
“대체 믿을 소리를 해야 믿지. 선배, 진짜 얘 말을 믿어요?”
“감은 좋은 편이지.”
아나이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마누스와 피어슨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래, 마누스 선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마나와 체력 모두 회복되어 있을 테지.
모두가 자리에 눕는 것을 본 마누스가 의견을 물었다.
돌아가서 재정비할 것인지, 아니면 하루 더 머물며 조사를 계속할 것인지.
이들이 그저 캐릭터였다면, 지체 없이 조사를 계속했을 거다.
“견딜 만한가?”
“네, 이 정도야 뭐…….”
“의견을 묻고 싶군. 아직 조사는 끝나지 않았으니. 주말 내내 이곳에 있을 건지, 돌아갔다 올 건지.”
마누스의 물음에 모두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체력은 충분한지, 정신력은 괜찮은지, 마나의 회복 수단은 괜찮은지 등등.
모든 이가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마누스는 천장을 바라봤다.
체스트힙은 그렇다 쳐도 시렌…… 그녀는 어째서 마누스와 척을 지려는 것이었을까.
과연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잘잘못은 어디까지 퍼져 있던 걸까.
30대.
수많은 영상과 타인의 이야기.
그리고 일천한 경험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제법 했던 시기였다.
‘대체 얼마나 구제 불능이었으면…….’
“선배! 저희는 남기로 했어요.”
“젊은 애들이라 그런가…… 진짜 쌩쌩하네. 나는 나갔다 오고 싶은데.”
“이번 파수꾼만 잡고 로비에서 재정비는 할 겁니다.”
마누스의 상념을 끊어 내듯 케일이 당돌하게 말했다.
니아는 푸념을 늘어놓았고, 마누스가 답했다.
그녀가 널브러진 채 한쪽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어쩔 수 없지.
난 강해져야 하는걸.
니아는 몽롱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되뇌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안 된다고 했음에도 꾸역꾸역 들어와 들쑤시는 건, 간절함 때문이었다.
‘나약해지지 말자, 아브렐 니아.’
조금만 자면 되겠지.
이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려면, 역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필요한 법이라구.
니아의 의식이 흐릿해지며 나직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깨어 있는 사람은 마누스와 케일뿐이었다.
마누스는 자신의 잊어버린 과거를, 케일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케일은 궁금해진 것이 있어 마누스를 바라봤다.
“선배는 안 피곤해요?”
“그다지.”
“으으으-. 저도 재능이 있으면 마투학을 배우고 싶어요. 운동은 영 힘들어서…….”
“가르쳐 줄 사람은 많지.”
마누스는 선잠을 자는 중인 기예르모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케일은 기예르모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어느새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강한 선배들, 그리고 동료들.
그래, 저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이다.
마누스는 그렇게 말했었지.
믿을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는 자들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좋은 생각이다. 쉬어라.”
“선배도 쉬셔야 해요. 솔직히 조금 겁나기도 하거든요.”
그래.
당연히 겁날 수밖에 없지.
마누스 역시 수많은 마음가짐, 게임 속 지식이 아니었다면 겁에 질려 있었을 터다.
그는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케일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누구나 겁을 먹지. 나 역시 그렇다.”
“…….”
케일의 연한 눈동자 역시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그녀에게 있어, 마누스는 삶의 이정표처럼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방황하지 않게 지켜 줄 것이다.
“지금까지 네가, 그리고 우리가 쌓아 온 것들을 믿어라.”
“네.”
“나 역시 그렇게 버텨 왔으니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일까.
마누스의 시선은 케일이 보지 못하는 곳, 그 어딘가에 닿아 있었다.
케일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았고, 다만 음영이 드리운 마누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 전투를 앞둔 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