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1)
제171화
171화 – 뒤틀린 기억을 가진 자들
#1
이제 본격적인 중간고사 준비 기간에 돌입한 아카데미.
마누스는 오늘도 엘레나, 아이든과 함께 리그를 치렀다.
결과는 깔끔한 승리.
세 가지의 스킬을 추가로 익힌 마누스는 이젠 3학년의 경지도 완연하게 벗어났다.
카이사 교수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마누스의 경기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직 조교가 없으니, 이제 슬슬 조교를 뽑아야 할 시기였다.
벌써 그녀를 재촉할 다른 교수들의 얼굴이 생각나, 순간적으로 짜증이 솟아올랐다.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았지만 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닌 듯싶었다.
“잘 싸우네.”
전승.
아이든, 엘레나의 리그 성적이었다.
마누스가 없었다면 저 아이들이 전승이라는 기적을 일궈 낼 수 있었을까?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아직 2학년이긴 한데…… 좀 일찍 키워도 되지 않을까?
카이사 교수 본인이 가진 지식은 제법 특이한 성질의 마법이었다.
공간을 점유하고 아군을 이롭게 만드는 종류의 마법.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마법의 분야.
자신과 함께 연구하고, 지식을 쌓아 나갈 제자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지식을 전수할 수는 없으니.’
권태로운 표정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표정하던 그녀가 블랙 럼 사건 이후로는 의욕이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아카데미라는 곳에 조금 실망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어쨌든, 진실은 오직 카이사 교수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지만.
“교수님. 대련 모두 끝났습니다.”
“어? 어어 그래. 다들 해산~. 중간고사 때는 조교들이랑 붙어야 하니까, 연습 많이 해 둬.”
“예-!”
카이사 교수가 눈을 굴려, 자리를 정리하는 마누스를 바라봤다.
이제 2학년.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쌓아야 할 것도 많은 나이였다.
조교의 일로 묶어 두기엔 그의 시간은 너무도 가치 있는 것이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마누스는 포기하고 4학년 중에서 재능 있는 애나 알아보자.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흘끔흘끔 마누스를 쳐다봤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짝사랑하는 남자를 훔쳐보는 여학생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녀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마누스는 천천히 교수에게 다가갔다.
“어? 마누스 학생. 무슨 일이야?”
“전에 주신 논문, 돌려 드리러 왔습니다.”
“논문? 아…… 그랬었지. 잊어버리고 있었네.”
무언가 이질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마누스는 카이사 교수의 대화에 집중해 보았다.
원작에선 쉴 새 없이 올라가야 하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이런 대화는 나오지도 않았다.
무지성으로 위쪽만을 바라보는 이야기 진행.
절대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정보의 단절들을 야기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설정에 제법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던 것 같았다.
전투와 기본적인 재미가 탄탄해서 수작으로 인정받았지만, 어느 게임에나 부족한 부분은 있는 법.
‘아니, 오히려 게임이라 그럴 수 있는 거겠지.’
현실이 된 지금은 이런저런 일에 신경 써야 하지만, 게임은 선택과 집중을 해서 만드는 편이 나았을 테니.
생각을 정리하며 아공간에서 논문을 꺼내 주는 마누스.
그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교수에게 말했다.
“논문은 잘 읽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주석을 달아 보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까지? 고마워. 꼭 보답해야겠는데?”
“제겐 교수님의 지식을 작게나마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보답이죠.”
어쩜, 말도 이렇게 똑 부러지게 하는지.
카이사 교수는 올라가려는 광대를 애써 잡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 거 아닌가.
“이건 좀 이른 말이긴 한데…… 알다시피 내가 조교가 없잖니.”
“……알고 있습니다.”
“난 아직 마음에 드는 학생이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마누스는 운명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변하는지, 침식 지대 안에서 죽어 버린 이는 어떻게 기억에서 지워지는지.
여기서 기억을 자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척 궁금했지만,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
지금은 흘러가게 두어야 할 시기였다.
아직 거대한 운명에 대항하기엔, 그의 힘이 많이 부족했으니.
마누스는 교수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지금은 잠자코 순리에 맡기도록 하자.
“조교 대신 네가 같이 연구해 주면 안 될까?”
“이번 학술회에 대해서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새로운 조교를 구할 때까지만. 새로운 논문도 준비하고 있고, 여러모로 지식의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거든.”
마누스는 잠시 고민했다.
지구에 있을 때, 대학원생은 곧 노예라고 들었다.
자신은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나름 연락하며 지냈던 친구 녀석 하나가 단톡방에서 항상 투덜거렸으니.
직장인도 아닌데 직장인보다 힘들게 사는 걸 보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꿀 같은 휴일에도 녀석은 교수님과 함께 연구실에 출근해 논문 작성에, 연구에, 교수의 뒤치다꺼리까지 했다던 톡도 기억났다.
그래서 지레 겁먹고 있는지도 모르지.
적어도 전생엔 지식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솔직히 왜 대학원생까지 되어 가며 공부에 목숨을 거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지.’
이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식에 대한 욕망.
탐욕스러운 집착과 더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
광산의 끝에서 더 좋은 광물을 캐기 위해 막장을 파내는 것처럼, 마법에 대한 탐욕이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카이사 교수의 결계 마법.
가문에 있는 마법사가 생각나는 학문이기도 했다.
배워 두면 쓸모가 있겠지.
어쩌면 아이템 대신 쓸 수 있는 마법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마친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도와드릴 순 없을 겁니다.”
“어…… 정말? 정말 같이 연구해 줄 거야?”
“연구라기보단 제가 배우는 입장이겠죠. 새로운 지식을 쌓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역시, 카이사르답구나. 예전에 너랑 비슷한 아이가 있었지. 그 이름이…… 기억은 안 나지만.”
카이사 교수의 얼굴에 볕이 든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이제는 없어진 옛 조교를 보았던 눈빛이 떠올랐다.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이토록 쉽게 채워질 문제던가.
‘언젠가…… 모든 기억이 돌아올 수 있을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기억 조작이라도 당한 듯, 이상하게 행동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탑에게 선택받은 자들은 대체, 어떤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걸까.
체스트힙 사건 이후, 내면에서 커져 가는 근심이 마누스를 짓눌렀다.
특히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 교수를 볼 때면 더욱 괴롭게만 느껴졌다.
자신에 의해 벌어진 일은 아니겠지.
그저, 한 사람이 열등감에 휩싸여 벌어진 일.
하지만 기억과 관계가 날아가 버린 카이사 교수에게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채워 주고 싶었다.
알량한 동정심이라 욕해도 할 말 없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을 뿐.
“일이 필요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그래. 고맙구나. 수업 준비나 같이 하며 얘기해 보자.”
“그러겠습니다. 그럼.”
“논문 고마워.”
마누스는 고개를 슬쩍 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카이사 교수 역시 몸을 돌려 잰걸음으로 연구실을 향해 올라갔다.
카이사르의 지식은 자신보다 월등했다.
제아무리 16살이라 해도 배움에 있어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접목하고 더 효율적으로 성장을 꾀한다.
카이사 교수의 지론이었다.
두근거리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얼른 가서 읽어 봐야지.”
무얼 잊어버렸는지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곧 다가올 학술회를 고대하며.
#2
기숙사로 돌아가던 마누스를 불러 세운 건, 트레일 교수였다.
일전, 그에게 심한 말을 해서일까.
교수의 얼굴은 제법 누그러져 있었다.
무엇이 그의 심경을 변화케 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기세를 죽이고 꼿꼿했던 자존심이 한층 낮아진 것 같았다.
“마누스 학생. 이사장님께서 찾으시더군요.”
“지금 가면 되겠습니까?”
“예. 그리고 저번엔 의심해서 미안했습니다.”
마누스는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고, 누구라도 그리했을 테니까.
교수가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지 않을까.
마누스는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반면 트레일 교수는 이번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아카데미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나날이었다.
어려운 이론의 전달. 압도적인 과제의 양. 그런데도 항상 꽉꽉 차 있는 수강생들.
모든 것들이 트레일 본인의 삶과 방향성이 옳다고 믿게 만드는 지표였다.
하지만, 그의 선택에 있어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그 결과는 한 사람의 부상.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부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죄 없는 트레버 교수를 일개 메이드가 해할 줄은 몰랐지요. 오히려 감사하고 싶군요.”
“……별거 아닙니다. 전 그저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니까요.”
“후후,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군요. 그럼, 어서 가 보세요.”
교수와 헤어져 걸음을 옮기면서도 마누스는 심각한 괴리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진술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내듯 빠른 걸음으로 이사장실까지 도착하자, 아덴이 문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알 순 없지만, 그녀도 상당한 괴리감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앞에 서자,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아덴.
아덴의 목소리엔 서글픔이 묻어났다.
이젠 돌아오지 못할 이들의 기억을 애도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들 많이 변하셨더군요. 개인적으론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많이 일어날 일일 거다.”
더욱 많은 뒤틀림과 많은 비극들이 기다리고 있을 나날들.
이 정도로 무너진다면, 앞으로의 일은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부터 똑바로 정신 차려야겠지.
마누스는 아덴의 어깨를 다독여 준 뒤, 이사장실의 문을 두들겼다.
“이사장님. 마누스 학생이 도착했습니다.”
애써 떨림을 억누른 아덴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사장의 허락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사장이 보였다.
마누스는 간단히 인사 후,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여기, 가문에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중간고사 전까지 카이사르 가문으로 향하시면 됩니다.”
“가문에서의 호출입니까?”
이사장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마누스의 머리 위에도 전운이 드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