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19화 – 소녀는 구원자를 찾는다
#1
그것은 우연이었다.
마누스가 딱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간 사건.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갔다.
교정에서부터 기숙사까지.
그가 생각한 내용은 별것 없었다.
케일과 일행들이 성장할 발판을 어떻게 마련해 줄 것인가.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어떤 길을 걷게 해 줄 것인가.
‘흑마법은 언제쯤 알려 주는 것이……. 음?’
학생 세 명이 보였다.
한 명은 구석에 몰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남은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둘러싸고 윽박지르는 중이었다.
머리가 아파져 올 정도로 지독한 광경이었다.
그 옛날 자신이 생각나기도 했다.
본래의 마누스처럼 폭군으로 생활했던 몸이 아니다.
그는 지배당하는 쪽이었다.
심하게 괴롭힘당하진 않았지만, 존재감도 없었다.
‘그래, 저 아이가 있었지.’
안 그래도 슬슬 접촉하려고 했다.
분홍빛으로 시작해, 오색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특징인 캐릭터.
처음 일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이게 무슨 사람 머리냐!’라고 욕을 많이 먹었더랬지.
하지만 막상 인 게임으로 보니, 상당히 잘 뽑혔던 캐릭터였다.
상인 가문에서 나고 자라, 손익계산에 밝고 정령과도 계약한 천재.
동부 최대 상인 가문인 ‘해리’ 가문의 이단아로도 알려져 있다.
‘가문에 적이 좀 많았지?’
해리 가문은 냉철하고 계산적이다.
그렇기에 사정 따윈 봐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상인은 신뢰가 생명.
그것은 자신이 물건을 내어 줄 때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
제때 대가를 치르지 못하면, 가차 없는 손속으로 유명한 가문이다.
극초반, 이런 배경 때문에 고통받는 캐릭터인 ‘해리 멜라니’.
‘자연스럽군.’
마치 누군가가 짜 놓은 판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니.
아주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야 조금 더 기억하고, 조금 더 찾아오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만해, 그만-.”
“닥쳐 이 쓰레기 같은 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서는-.”
“네 가문 때문에 오빠의 꿈이 좌절됐어. 그리고 어머니는 아직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그게 왜 자신 때문이란 말인가-.
멜라니는 끊임없는 질타와 비난, 핍박에 피폐해져만 갔다.
당장 마법을 쏘아 내고, 이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 줄기, 이성의 끈이 그걸 지탱해 주고 있었다.
냉철한 가문의 인간과는 달리 그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감성이 아주 풍부했기에 평범한 인간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
예를 들면-.
내가 다 쓸어 줄까? 응?
말만 해, 내가 다 죽여 줄게.
이런 쓰레기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있나? 죽여 버려-.
‘아니야-.’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이는 끔찍한 소리.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몸을 꽉 감쌌지만, 그들의 충동질은 멈추지 않았다.
죽여라, 괴롭혀라, 저들에게 고통을 주어라, 녀석들은 너를 업신여기고 있다, 넌 할 수 있잖아,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널 무시하는 건,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저들의 눈을 뽑고, 저들의 혀를 가르고, 배에 있는 것들을 꺼내고, 다시는 올려다보지 못하게 무릎을 꺾어 주고, 네 가치를 증명하고,
“잡것들이 설치는군.”
세뇌하려는 듯, 고통스러운 속삭임 속에서 꺼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멜라니는 꼭 감은 눈을 떴다.
정신없게 만드는 소리도, 육체의 고통을 주는 동급생의 손길도 없어졌으니까.
그곳엔, 거대한 마나로 존재감을 뿌리는 남자가 있었다.
멜라니의 곁에 맴돌며, 항상 살인과 폭력을 부추기는 존재들이 겁을 먹고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녀를 괴롭히던 동급생들이 숨을 삼켰다.
“마, 마누스 선배-.”
“선배! 들어 보세요, 얘는 그 악명 높은 해리 가문이라고요!”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마누스의 푸른 눈동자가 움직였다.
시리고 차가운, 감정이라고는 들어 있지 않은 그 동공은 무자비하게 그들을 응시했다.
-그래서 뭐?
이런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오히려 소리를 높인 쪽이 민망해질 지경.
숨 막힐 정도의 적막이 하나, 둘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핑크빛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여긴 미토스 아카데미 아니었던가?”
“…….”
그가 하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마음가짐을 찢어발기는 비수였다.
이곳은 미토스 아카데미다.
밖에서 어떠한 신분과 과거를 지녔든, 이곳에선 한 명칭으로 불리고 취급받는다.
미토스 아카데미 학생.
이것만큼 간단하고 명료한 정체성이 없다.
이곳은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신분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미토스 아카데미였다.
오로지 학생으로서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곳이지 않던가.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결국, 추해지는 건 본인이니.”
“……가자.”
이를 악물고, 어쩔 수 없는 힘 앞에 퇴장하는 이들.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동기와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동기와 이유가 행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그 사정을 일일이 봐주는 건, 상황을 개판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임을 알고 있었다.
“-사라져라, 너희들이 넘볼 아이가 아니니.”
-넌 뭐야!
우리의 친구를 괴롭히지 마!
이번에야말로 도와줄게!
도와줄게 도와줄게!
“그마아안-! 다 꺼져어-!”
멜라니가 두 귀를 막고 버럭 소리쳤다.
그녀를 괴롭히던 악의적인 목소리가 사라졌다.
허억-, 허억-, 숨을 내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마누스는 그녀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식은땀을 훔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신비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 사람이…….’
폭군.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무자비하고 손속에 자비가 없는, 더없이 귀족 같은 이였다고 그랬지.
그는 오만하고 남들을 벌레 보듯 했지만, 그 실력 하나만으로 아무도 건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자처럼 강했다면, 그 아이들은 날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정령이군.”
“보이시나요?”
마누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멜라니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상인 가문에서 나고 자라, 은원 관계에 민감한 삶을 살았다.
타고난 성격과는 별개로 그런 환경은 멜라니를 변하게 만들었다.
“제가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별것 아니지만, 값은 받아야겠지.”
“저도 그게 편해요.”
마누스는 잠시 생각했다.
해리 멜라니는 이렇게 여리여리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탱커 포지션이다.
거기다 정령을 이용한 딜링도 뛰어난, 그야말로 1티어 국밥 캐릭터였다.
그리고 또 하나.
캐릭터의 능력치를 추가로 성장시킬 수 있는 서브 퀘스트 담당 NPC 역할도 겸했다.
무대가 극히 한정적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해 주는 것.
“그렇다면 지금, 해리 가문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네?”
“마법사가 아닌, 상인으로서 대가를 치러라.”
멜라니는 멍하니 마누스를 바라봤다.
무얼 요구하는 것일까.
자신이 가문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도 빚은 갚아야 한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가문의 힘을 빌리고 싶은 건가요?”
“아니, 네 힘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상인의 일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뭣도 없는 상황.
지식도, 힘도, 자금도 없는 어린 학생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마누스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다리가 되어 주면 된다. 바깥세상에서는 인재를 많이 필요로 하니.”
“아-.”
그녀는 똑똑했다.
이렇게 말하는데도 못 알아들었다면, 애초에 미토스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도 못했을 거다.
멜라니.
아니, 해리 가문으로서 자랑할 것이 하나 있긴 있었다.
-인맥.
상인 가문이라는 특성상, 압도적인 인맥을 갖추고 있었다.
마누스는 서브 퀘스트 라인을 먼저 뚫음과 동시에, 이번에 눈여겨본 임무를 위해 그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멜라니의 시선이 마누스가 들고 있던 작은 종이로 향했다.
2학년들이 한다는 외부 임무 의뢰서.
마누스는 아마, 저 일에 대한 도움을 받고 싶은 거겠지.
그 정도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도와 드릴게요. 가문에 연락만 해 두면 될 거예요.”
“고맙군. 앞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찾아와라.”
마누스는 그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지금은 여기까지.
더 개입한다면 그녀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한 무대가 어그러질 터.
-아쉽지만 마누스는 철저히 외부인이니까.
멜라니는 고요함 속에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듣고 싶어 듣는 소리가 이토록 소중했던가.
“하아-.”
그녀 역시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그들의 속삭임은 더 들리지 않았다.
간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2
기숙사로 돌아온 마누스는 쪽지를 살폈다.
그곳에 적혀 있는 건, 익숙한 가문의 문장이었다.
외부 임무, 유저들이 서브 퀘스트로 불렀던 것들은 등급이 있다.
동색 임무부터, 은, 금, 백금, 루비, 다이아, 미스릴까지.
2학년 기준, 가장 뛰어난 A반이 맡는 임무는 보통 금에서 백금.
이것도 학년 전체를 통틀어 알라노 수준은 되어야 맡을 수 있는 임무였다.
‘거기서도 곁다리 수준이었던가.’
그런 임무에서도 보조, 혹은 견학 수준으로 다녀오는 것이 미토스 아카데미 학생의 역할이다.
그야말로 재능을 보는 곳이었기 때문.
그런데 이건…….
“다이아 임무라니, 카이사르답다고 해야 하나.”
이건 무슨 의미일까.
2학년 한정으로 들어온 임무에, 다이아 등급이라니.
적어도 홀로 성체 오거를 쓰러뜨릴 실력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의미다.
필체가 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본래 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잔재일까, 아니면 화면으로 많이 보았던 필체이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겠군.”
[조사 의뢰> [카이사르령, 기사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으러 갈 것> [임무 수행 : 기사단 호위> [소속 : 카이사르 마법사단> [소요 시간 : 이틀>가문에서 무슨 일이 있는 모양.
마누스는 궁금했다.
최강이라고 칭송받는 카이사르 가문의 모습은 어떠한지.
가족……이라고 불려야 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를 맞이할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아버지는, 과연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도.
그래서 이 의뢰를 골랐다.
곧 있으면 [하이 레스티오]의 습득이 끝난다.
한 턴에 한 번씩 HP/MP를 채워 주는 필수 패시브.
이제 장기전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마석을 바짝 흡수해야겠군.’
출발은 바로 내일이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원작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찬란한 가문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오늘도 탑을 오를 생각이었다.
‘보스…… 잡아 볼까.’
알라노가 빠져 있는 상태에서 탑을 오르진 않을 거다.
오늘 탑은 마누스 본인의 독무대라는 것.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는 가벼운 몸을 이끌고, 탑으로 향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