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 그들의 계획, 그리고 암브레시아
#1
끝없는 증오.
끝없는 죽음 속에 벼려진 증오라는 칼날은, 날카롭고 흉포했다.
무자비하게 적을 도륙할 칼날.
거대한 증오를 풀어내기 위해서 하염없이 걸은 곳 앞엔, 그토록 찾던 이가 존재했다.
수많은 죽음을 안겨준 이.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었지만, 푸른 머리칼에 하늘색 눈동자인 것은 변함없었다.
그를, 그녀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치욕과 인내도 감내하리라 다짐했다.
그때 다가온 한 남자, 아니 죽은 자.
[그대, 목적지를 알려주면 처형을 도와줄 텐가?> [그·렇·다.>거래는 성립되었다.
사도는 직접 개입할 수 없지만, 침입자를 지켜볼 순 있었다.
넌지시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나머지는 이 괴물이 알아서 할 터다.
그렇게 성립된 거래는, 사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얼마나 쫓아다녔는지 몰랐다.
이따금 들린 목소리는 그를 적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지만, 언제나 한발 늦고 말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 했으니, 그는 계속해서 걸었고, 계속해서 찾았다.
드디어, 복수를 완성할 때가 되었다.
[그어어어어어-!]동굴 전체를 울리는 포효가 울렸다.
케일과 일행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트레이스.
그들과는 동료였던 이.
하지만, 지금은 그저 괴물이 되어버린 증오의 집합체였으니.
“어, 어떡하지?”
“일단 선배에게 메시지 보내고, 시간을 끌자.”
“……가능하겠나.”
기예르모 역시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중급 정령과 계약을 마친 멜라니마저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서성이던 정령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건, 위험해.
-당장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맞아, 얼른 피하자.
하급 정령과 달리 지성이 뛰어난 중급 정령들.
그들은 정확히 사태를 인지했다.
저 괴물은 지금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당장 몸을 피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멜라니 역시 알고 있었다.
“트레이스…….”
“마, 말이라도 하면 통하지 않을까?”
“아서라. 저건 지금 괴물이야.”
가만히 보고 있었던 알라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이 에머슨이 마누스에게 연락을 시도,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금방 가지. 현 위치는?
-지금 81층입니다.
-바로 가겠다. 위쪽으로 올라가도록.
지침을 받았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에머슨이 마나를 담아 손뼉을 쳤다.
파앙-!
공기의 울림이 넋이 나가 있던 이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마누스의 의견보다 이들의 의지가 더욱 중요했으니, 에머슨이 적절히 중재에 나섰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싸울 거야? 아니면 피해야 해.”
“……잠시만.”
그때, 알라노가 나섰다.
그녀는 다른 이들을 뒤로 물리고 홀로 앞서나갔다.
다른 이들이 걱정했지만, 알라노는 괜찮다고 말했다.
“선배…….”
“잠깐뿐이니까. 나도 적이란 건 인지하고 있어.”
“조심하셔야 해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 기예르모는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두 존재가 마주했다.
언제든지 마법을 날릴 수 있도록 준비했고, 다른 한쪽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알라노의 입이 열렸다.
“트레이스, 아니…… 마누스. 날 기억하니?”
이미 저 존재가 다른 세계의 마누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
가면을 썼다는 것이 이질적이었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기운은 마누스였다.
사신은 알라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치직-.
알라노의 신형에 순간, 노이즈가 꼈다.
마치 다른 차원의 그녀가 투영된 것처럼.
[너·는·왜·나·를·구·해·주·지·않·았·지?]“그때 자리에 없었으니까. 네가 그럴 줄 알았다면, 난 당장 너를 말렸을 거야.”
[웃·기·지·마.]그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트레이스는 알고 있었다.
멀찍이서 자신을 바라만 봤던 은빛 머리칼을.
자신이 자괴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아무도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았지.
그건 소꿉친구인 알라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오진 않았었지.
그 결과가 이것이다.
수없이 많은 죽음, 수없이 많은 방관.
[너·도·똑·같·다·위·선·자.]콰아앙-!
트레이스가 거대해진 몸집으로 들고 있던 것을 휘둘렀다.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났다.
어째서인지, 이곳은 용암이 차오르지 않았다.
이것도 모두 사도의 뜻일까.
알라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트레이스가 가진 모순을 지적했다.
그래,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그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겠지.
‘하지만…… 현실의 마누스는 바로 이곳에 있어.’
망령일 뿐인 이에게 휘둘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의 단단한 의지가 차가운 냉기처럼 흘러나왔다.
은빛 눈동자가 올곧게 사신을 응시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요청했다면,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었을 거야.”
그 말은 일종의 트리거였다.
분노에 잠식된 괴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도움이 필요한 자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설령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 죽어가더라도 그건, 단순히 상황과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지.
주변 이들의 잘못은 없는 거 아닐까.
옛날이었다면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거야. 트레이스.”
본래 반박할 말이 없는 이들은 폭력이나 욕설을 행사하는 법.
이는 알라노의 말이 정확히 모순점을 꿰뚫었다는 방증이었다.
결과적으로 괴물과 맞붙게 되었지만, 적어도 죄책감에 잡아먹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2
‘벌써 조우하다니, 생각보다 빠른데.’
마누스는 인상을 찌푸린 채 81층을 향해 달려갔다.
벌써 전투가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가 아덴에게 명령했다.
“혹시 모르니 아이들을 보호해 주도록.”
“분부대로 행하겠습니다.”
그녀는 세계관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강자.
이제 마석도 흡수하기 시작했으니, 유저들을 괴롭혔던 베로니카의 명성을 되찾을지도.
그녀를 보냈으니 순식간에 전멸하는 일은 없겠지.
나머지는 트레이스, 사신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지금 처리해야 하나? 그러기엔 아직 전력이 부족한데.’
원작에서 경비병을 7클래스 마법을 배우고 난 뒤에 처리하는 것을 권장했다.
그전에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캐릭터를 죽이고 살리고를 반복하는 작업이라 이곳과 맞지 않는 작전.
마누스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
알라노와의 관계도 생각해야겠지.
“저기 있다!”
니아의 말에 마누스가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무언가를 휘두르고 있는 트레이스와 그걸 피해 달아나는 일행이 보였다.
마법을 쏘아 맞혀도 무용지물.
지금 저 녀석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인물은 네 명이었다.
니아, 케일, 아덴과 자신.
방어 무시 대미지를 꽂아 넣는 니아와 압도적인 화력의 케일.
여러 스킬로 떡칠한 마누스 자신까지.
“물러나세요.”
거리가 좁혀지고, 어쩔 수 없이 기예르모가 방패를 드는 순간 그림자가 나타났다.
콰아아앙-!
가볍게 휘두른 단검에서 뿜어지는 검은빛 오러.
무식하게 공격한 트레이스가 충격을 받고 나동그라질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아덴 님!”
“다들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무사해요.”
“일단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서 마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마저도 지금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으니, 몸을 피해야겠지.
“아쉽지만 지금은 상대해 줄 시간 따위 없다. 알라노! 묶어버려라!”
마누스가 그들에게 합류하며 알라노에게 말했다.
지금 저런 걸 상대하는 것보다 사도를 잡는 편이 훨씬 좋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철저히 준비하면, 머지않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더 빨리 올라가야겠어.’
다음 메인 퀘스트가 벌어지면, 그때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겠지.
그때를 노려 녀석에게 도전하면, 힘들지만 잡아낼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도달할 원동력으로는 사도의 마석과 힘이 필요했다.
사도만 잡아낸다면 6클래스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알라노 전용기 : 아이스 부스트] [프뤼나] [알투스]콰장창창-!
보스마저 얼려버릴 수 있는 군중 제어 스킬.
알라노의 5클래스 마법이 트레이스에게 작렬했다.
[크어어어어-!]어마어마한 냉기는 화염과 다를 바 없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트레이스를 뒤로하고, 일행은 다음 층으로 달렸다.
다음에 만날 땐, 아마도 치열한 전투가 있겠지.
그들은 빠르게 82층으로 사라졌고, 한동안 트레이스의 괴성만 울려 퍼졌다.
#3
암브레시아는 인상을 찌푸린 채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찾아온 불청객을 고깝게 쳐다보고 있는 거지만.
괴물을 보내 침입자를 처단하자는 의견은 아주 유효했다.
문제가 있다면, 사신의 발걸음이 너무도 느리다는 것일까.
첫 조우에 녀석들을 도주하게 만든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으니.
하지만, 눈앞에 있는 불청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제정신이 아니군요.]“뭘 그렇게 빡빡하게 화내고 있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럽니다. 당신은 인과율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르고 있어요.]“그놈의 인과율……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이것도 엄연히 시련이잖아?”
[시련의 기준은 오롯이 사도의 힘으로만 행해져야 하는 것. 그렇지 않다면, 부활을 위한 희생도 없을 겁니다.]“후우…… 그래, 그러니까, 저놈을 당장 치워라?”
불청객, 칸타티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밖에서는 이쪽 세계를 노리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만간 또다시 찬탈하려는 자들이 몰려올 겁니다. 이 세계를 지워버리려는 이들.]“……그래서?”
그것은 어쩌면, 잔혹한 운명일지도 몰랐다.
희생은 곧, 숭고한 부활의 초석이었으니.
칸타티는 위대한 대계(大界)를 위해서 오늘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곧, 전쟁이 시작될 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