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 진실에 한 발자국
#1
컴컴한 공간이었다.
고통도 없이 빨려 들어온 기분이라, 상황을 파악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마누스는 주변을 돌아보며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 만났지만, 모두 아리송한 말만을 던졌던 이가 있던 공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물 안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던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중력이 느껴졌으니.
대체, 암브레시아는 왜 스스로를 희생해서까지 마누스 자신을 이곳으로 날려 보낸 걸까.
“왔나?”
“너는…….”
“그래. 기억할 거라 믿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낯선 모습이었다.
항상 거무튀튀한 무엇인가로 나타났던 존재였지만, 이번에는 뚜렷한 형상을 지닌 채 나타났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간 나와 대화했던 놈이로군.”
“놈이라니. 내가 너보다 두 배는 많이 살았는데.”
“그래서, 무슨 일로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지?”
“너, 우리 ■△● 좀 이어받아라.”
“……뭐?”
다시 노이즈가 낀 목소리.
쯧, 남자는 혀를 차며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조금 풀어서, 마누스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내가 일궈놓은 것들을 물려받거라. 너만 한 인재가 없어.”
“네가 일궈놓은 것들이 대체 뭔데. 또 가로막혀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데.”
“후…… 그래. 그런데, 암브레시아가 통로를 개방했으니, 이제는 이전보다 원활하게 소통 가능할 거다.”
“네 정체는 뭐지? 이것도 비밀인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내 얼굴, 기억 안 나나? 하긴, 그럴 수 있지.”
“난 당신과 엮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기억을 뒤져봐도, 남자와 같이 생긴 사람과 엮인 적은 없었다.
현실, 그러니까 지구에서도 저런 사람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나름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혹시,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까?
기억 조작이라든가, 삭제라든가.
그런 것은 제법 흔하게 일어나는 일 아니겠는가.
묘한 표정을 보고 있던 남자가 허허 웃었다.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군. 이상한 생각도 아니지. 그런 소재야 차고 넘쳤으니.”
“기억에 관한 이야기인가?”
“맞아. 맹세코 나는 네 기억이나 있던 사실을 조작한 적이 없다.”
“그래, 그건 믿는 것으로 하지. 그렇다면, 왜 나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하는 거지?”
본론으로 바로 넘어갈 생각으로 물어본 질문.
남자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너야말로, 우리가 완벽히 그리던 ‘마누스’, 그 자체였으니까.”
“어쩐지, 트레이스가 생각나는군.”
“그래. 그 아이는 폐기물 덩어리지. 자네가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어.”
확실히, 트레이스는 어딘가 비틀린 존재였다.
없애두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도 좋겠지.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스는 말하지 않아도 없애려 했으니.
“그는 말하지 않아도 없앨 생각이었으니, 걱정은 말아라.”
“후후, 좋아. 나는 네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내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다고만 얘기해 두지.”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그때 결정하지.”
“그래. 그럼, 자그마한 선물을 줘야겠군. 이제부턴, ‘최종국면’이니.”
무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린 세계였다.
여기서 더 이상해진다 한들, 더 놀랄 것도 없었다.
남자는 마누스의 뒤편을 가리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기로 나가면 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다음에 만나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진실에 더 다가가길 바란다.”
마누스는 대화를 마치고 몸을 돌렸다.
문고리를 잡으니, 뒤에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몸, 그리고 능력은 네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
마누스는 답하지 않고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환한 빛이 쏟아졌다.
의문점이 많은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은 정했다.
적어도, 지금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은 알았으니 되었다.
#2
“……아직인가.”
격리구역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풀리겠지.
4계층밖에 오지 않았는데 최종국면이라고?
그것도 의문이었다.
3년, 그리고 12계층.
그런 것들은 다 어디 갔는지…….
대체 뭐가 문제기에 이렇게 스토리가 압축되어버렸을까.
말 그대로 DLC라서 그런 건가?
“알 수가 없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도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존재하긴 했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을까?
마누스의 머릿속에 의심이 피어났다.
한 번 피어난 의심은 종잡을 수 없이 커지는 법.
제아무리 마누스라도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피어난 의심은 쉽사리 거둘 수 없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판단일까.
그때, 제법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의 머리를 차갑게 식혀 줄 메시지.
오류로 점철되어 있던 텍스트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
[DLC 스토리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 : 모든 스킬 습득 시간 90% 단축, 드래곤의 정수. ??? 소환권.] [스토리에 혼선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모든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 마누스의 능력은 정상 작동합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무운을 빌겠습니다.]“이건…….”
아직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내용의 메시지였다.
[규합하고, 승천하십시오.] [진정한 의미의 세계를 완성하십시오.]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보상 : 스킬 습득권 2개] [단, 가문의 마음가짐은 제외됩니다.]“이렇게 후하게 주다니, 확실히 뭔가 있긴 있나 본데.”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돌아갔다.
격리구역이 해제되었다는 뜻.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자신을 찾는 목소리였다.
“선배!”
“마누스, 괜찮아?”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갑자기 빛이…… 그리고 저 잭이라는 녀석이 무릎을 꿇던데요?”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을 걱정해 주었다.
잠시 그들에게 답할까 하다가 멈칫했다.
카이사르의 마음가짐은 온갖 정신적인 침입과 세뇌, 은신, 심지어 성격까지 보정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누스 내부에서 흔들리는 감정은 그런 스킬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선배?”
“표정이, 왜 그래? 꼭-.”
“아니, 암브레시아를 상대하다 보니 지친 모양이군. 녀석은 죽었다.”
“정말!?”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본 케일과 니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숭고한 희생을 치렀군요. 나의 주군이시여.”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잭을 한 번 보고, 마누스는 니아에게 드래곤의 정수를 건넸다.
두근거리는 것이, 꼭 심장을 닮은 모양새였다.
그걸 조심스럽게 받아든 니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건 뭐야?”
“용왕, 암브레시아의 정수입니다. 흡수한다면, 그 눈의 힘을 더욱 끌어낼 수 있겠죠.”
“오…… 이런 거, 받아도 되는 걸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전력의 강화는 필수죠.”
“저기, 마석 떨어진 것 좀 봐.”
전리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무릎을 꿇고 한동안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가 그를 보고는 전투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잭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갈 뿐이었다.
“쟤 왜 저래?”
“그러게…… 잔뜩 무게 잡네.”
“어이, 할 말은 없어? 복수라든가!”
우뚝 멈춰 선 잭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자신의 상관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저 평온한 모습에, 일행들은 왠지 모를 기괴함을 느꼈다.
잭의 말투는 더없이 평안했다.
“주군께서는 임무를 완수하셨지. 나도 위로 올라가, 승계 절차를 밟아야 하고. 무엇보다…… 너희들은 적이 아니니.”
“뭐?”
“진실은 머지않았다. 한 계단을 오르면, 너희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멸망의 손을 짊어진 자여, 그대의 선택에, 꽤 많은 것이 달려있다.”
잭은 그 말을 마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풍경이 변했다.
들끓는 용암지대는 어디 가고, 거대한 도시와 같은 풍경으로.
마치, 정말로 죽은 자들의 도시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행은 찝찝한 느낌을 받으며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직후, 그림자가 일렁였다.
“돌아왔습니다. 공자님.”
“상황은 어떻지?”
“교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데모니움이 다수 출현, 교수님들께서 응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문에서도 일이 발생한 것 같았습니다.”
“일단 빨리 밖으로 나가야겠군.”
상황을 보고 온 아덴이 대략적으로 보고했다.
급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모든 세계가 잠식되었다는 것.
아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 세계가 침식되었다는 건, 그들의 보금자리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이니.
모두의 눈이 일렁일 때, 케일이 나서서 말했다.
“어서 나가요.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
“그래. 가자.”
이들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마누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보상으로 받은 스킬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고민해야겠지.
그들은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폭음.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는, 상황이 심각함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교수님들이 싸우고 계신가 봐.”
“왜 이런…….”
“지금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상황부터 해결한 다음, 그다음 생각해 보자.”
“그러는 게 좋겠어요.”
발 빠른 알라노의 판단으로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래.
지금은 일단 눈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해치우는 것이 나으리라.
“그럼, 나도 움직여야겠군.”
마누스는 스킬 습득권 두 개를 바로 사용했다.
어떠한 제한도 달리지 않은 습득권 두 개.
지금은 그 어떤 보상보다 달콤했으니.
‘개 사기 스킬로 도배할 차례로군.’
번뜩 떠오른 스킬은, 정말이지 인상적인 것들이었다.
정신 사납게 날뛰고 있는 놈들부터 처리해야겠다.
고민하는데, 아주 방해가 되는 녀석들이었으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