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 정복자, 성녀, 황제
#1
라베스는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암녹색의 세상이 걷히고, 다시 평화롭게 변한 세상.
거기에 마누스가 아브렐 가문에서 공격당했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었다.
카이사르 가문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으니.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주님.”
“…….”
고민은 길어졌다.
재촉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가문은, 이 공국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라베스는 조용히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 마누스의 할아버지는 정말 폭군 같은 분이었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하고 정복자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겼지.
그것이 본래 카이사르였다.
[아버지. 저는 제 동생들과의 분란을 원치 않습니다.> [제가 가주가 된다 한들, 그들에게 쏟은 정성과 애정을 거두지 마시옵기를 청합니다.>그들은 라베스에게 커다란 은혜를 얻었다.
공국 밖으로 나가, 혹은 공국 안에서 일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
이따금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카이사르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지 않고 살아가려 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평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
그중 한 명은 이곳, 카이사르 마탑의 관리자로 일하는 중이었다.
라베스의 이복동생, [아란다나].
가주 경합 중에서 최종 선발전까지 올라간, 또 한 명의 마도사였다.
“가족들에게 서신을 보내거라.”
“가족들이라면…….”
“내 동생들을 불러야겠다.”
라베스는 장남이었다.
어렸을 때, 그와 동생들은 정말 친하게 지냈었지.
지금 아들딸들보다 더욱 끈끈한 정을 자랑했었지.
전대 가주의 횡포만 없었다면, 지금도 한 지붕 아래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을 터다.
지금이라도 뭉쳐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그렇게 해야겠지.
그들 역시 하나같이 위대한 가문에 걸맞은 재능을 타고난 이들.
이제 정복자가 움직여야 할 차례였다.
“그들의 아들, 딸, 친척까지 모두 소집하라. 공왕이 직접 움직이겠노라고 말하고.”
“예.”
“아브렐 가문이 그토록 원하는 전쟁이라면, 응당 응해야겠지.”
라베스는 폭군의 기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정진하고 단련하고 수련하여, 그 성정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것일 뿐.
카이사르는 본디, 무자비한 정복자들이었으니.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라베스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어떤 파란을 몰고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직 폭군만이 알고 있을 뿐.
#2
전차 데모니움.
일명, 철기병과의 싸움은 속도전으로 흘러갔다.
드래곤의 힘을 각성한 니아와 두 마투사의 합공은 무시무시한 것이었으니.
푸른 전격과 붉은 화염을 두들겨 맞는 동안, 철기병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싱거운 싸움에, 제니퍼 교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트레버 같은 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덜떨어진 놈이 나타났으니.
그래도 혼자였다면, 녀석을 상대하는데 애 좀 먹었을 거다.
“거, 무식하게 단단하네.”
“갑옷의 사이를 파고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지금 확실하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건 선배가 유일하죠.”
“맡겨 두라고.”
이미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아브렐 가문은 본래 그런 곳이었을까.
도망친 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모아 어떻게든 하려고 하겠지.
그런 생각까지 들자, 니아는 화풀이하듯 마법을 쏴 갈겼다.
[쿠어어억-!]앞을 단단히 가로막은 마누스와 제니퍼 덕분에, 그녀는 마음 놓고 마법을 난사할 수 있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철기병을 두들긴 그녀는 숨을 고르며 연기를 풀풀 풍기는 철기병을 바라봤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갑옷은 그을음으로 가득했고, 거대한 창은 마나에 의해 이리저리 찌그러졌다.
이미 전투 불능이 된 것 같으니, 적당히 마무리하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으니.
“끄으…….”
“그래, 저놈이 있었구나. 어쩔 테냐 니아. 잡아서 심문할 거냐?”
“아뇨. 그럴 필요도 없는 놈입니다. 증거만 뽑아내고 죽일 거예요.”
“드래곤의 힘을 가지고 나선 제법 냉정해졌구나.”
제니퍼의 평가는 꽤 정확했다.
용왕, 암브레시아의 의지를 잇는 니아는 성격 자체가 많이 변한 느낌이었다.
조금 더 과감하고 조금 더 냉철해진 느낌.
손속에 자비가 없어진 것은 당연한 말이었고.
“이놈은 내가 마무리하마. 마석은 네가 챙겨 둬라.”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흐, 이럴 때만 스승이냐? 립서비스는 잘 받아 두마.”
마누스와 니아는 꿈틀거리며 의식을 되찾은 클레아에게로 향했다.
자신의 혈육이라기보단,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눈동자.
니아는 그런 눈빛으로 클레아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후…… 혹시 몰라 배워둔 보람은 있네.”
“녹음은 해 두겠습니다.”
“응, 고마워.”
고개를 끄덕이는 니아.
그녀는 의식을 집중하고 금지된 마법을 사용했다.
저항감이 있었지만, 이내 잠잠해진 클레아.
마누스는 아티팩트를 꺼내 녹음을 켜 두었다.
“아브렐 클레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습니까?”
“……그렇다.”
“왜 그랬습니까?”
“예언자가 말했다. 힘을 가지게 해 주겠다고. 그리고…… 끄르륵.”
“선배, 피해요.”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마누스는 기묘한 마나 패턴을 확인하자마자 니아를 강제로 떼어냈다.
그리고 몸을 날려, 그녀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클레아 안쪽에 잠들어 있던 마나.
예언자가 힘이랍시고 준 것은 결국, 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제물의 트리거겠지.
니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 모습을 보았다.
발작하듯, 떨리는 몸뚱이.
거기에 검붉은 마나가 데모니움에게로 흡수되는 것까지.
“뭐야, 이거 죽여 말아!?”
“교수님도 피하시죠. 이미 막기에는 늦었습니다.”
사람의 몸이 마나로 분해되는 건, 썩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폐부 깊은 곳부터 끌어낸 비명.
이미 반쯤 시체가 되어버린 데모니움 역시 마나로 분해되어 하늘로 솟구치는 중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클레아의 최후는 허무하리만치 깔끔했다.
니아는 허망한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대체,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나려는 거야?
왜, 우리 가족을 이렇게 쉽게 빼앗아 가는 거지?
그녀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마누스가 그런 니아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야 할 겁니다.”
“……알아, 아는데.”
“예언자, 그리고 에레시스까지. 녀석들은 반드시 우리가 해치울 겁니다.”
“그냥은 못 죽이겠어.”
그래,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 줘야지.
하늘로 올라간 마나 덩어리들은 무언가의 형태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것은, 마누스에게 굉장히 익숙한 형태의 무언가였다.
‘세계가 빨라졌다고 하더니…… 벌써?’
진정 끝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바로 멸망의 씨앗이었으니, 점차 최종 국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도들은 어찌 행동할까.’
사도들 역시 이변을 눈치챘을 터다.
얼른 그들을 만나봐야겠네.
마누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3
성녀는 아카데미 근처까지 도착했다.
수많은 영지를 거쳤으며 도시와 마을을 지나왔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또 위기를 극복한 이들이 많았다.
똘똘 뭉쳐 언데드를 몰아냈으니, 사람들끼리 끈끈한 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파멸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인간의 감정이란, 역시 이상한 것이었다.
성녀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저 멀리 보이는 아카데미를 눈에 담았다.
‘본래 내년에 정식으로 입학하려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미리 얼굴부터 익히는 것이 좋겠지.
교황 성하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있던 이들은 이 현상에 미리 맞서고 있다 들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까지 힘을 키웠을까.
일개 학생으로서 재앙에 준하는 세력과 맞섰으니, 과연 강하겠지.
성녀, 엘리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만약 저들이 자신을 무시하면 어쩌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이미지를 각인시켜야겠지.
“성녀님. 마지막으로 조금 쉬어 가시겠습니까?”
“그러죠. 옷매무새도 정돈하고, 여러분께서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시죠.”
“알겠습니다.”
“이번 불침번은 제가 서겠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성녀는 마법을 다듬을 겸, 불침번을 자처했다.
모닥불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은 금방 가니까.
일평생을 성국에서만 살아왔던 아이였다.
이제 다른 빛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성녀님.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아, 맞아요. 사실…… 저는 성국에서만 자라왔으니까요.”
“밖에서도 별다른 건 없을 겁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거든요.”
“그럴까요?”
성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사 문화와 관습만 다를 뿐이지, 다들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기분 나쁘면 짜증 나고, 좋으면 웃고…….
그런 감정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사람 성격이 조금 안 맞을 수는 있겠지.
그래도 계속 대화하고 이해하다 보면, 섞여 들 수 있겠지.
성기사는 딸 같은 성녀가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겠지.
“너무 무리하실 필욘 없습니다.”
“그럴게요.”
엘리스는 작은 미소와 함께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저런 마법을 깔아 두었으니, 침입자는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
제국의 귀족들은 어떤 모습일까.
또, 아카데미를 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그녀의 궁금증이 매우 커졌다.
아카데미로 입성하기 전,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4
“폐하. 아브렐 가문에 도착했습니다.”
“상황은 어떤가.”
“대신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 같습니다.”
“세력을 모으겠군. 반란을 일으키겠지.”
황제는 포털을 타고 아브렐 영지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일단, 영지의 수도로 가야겠지.
황제는 조용히 말을 몰았다.
그의 뒤로 어마어마한 군대가 따라 진격했다.
그의 행차는 판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여러 세력이 뒤엉키기 시작한 정세,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