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31화 – 인생이 망하는 건, 꽤 쉬운 일이다
#1
아나이스와 케일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적들을 무찔렀다.
마석과 아티팩트가 꽤 많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옮기기엔 과할 정도.
“후아…… 이거 어떻게 다 옮기지?”
“주머니에?”
“으- 로브 터지겠네. 일단 되는대로 넣자. 나중에 아공간 주머니도 하나 사고.”
케일은 주섬주섬 마석과 아티팩트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뭔지 알 수 있다면, 좋은 것만 추려서 갈 텐데-.
애석하게도 두 사람은 감정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평생 관련 없을 것 같았던 마법이, 이토록 필요할 줄이야.
같은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은 주변을 정리하고 통신을 넣었다.
“선배? 피어슨? 어디쯤이에요?”
“가고 있는 중-. 너희 둘만 합류하면 돼.”
“길은 알고?”
탑에서 길을 찾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텐데.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경우라면 더욱.
피어슨은 마치 자기가 길을 찾는 것처럼 득의양양했다.
“에헴. 우리에겐 천하무적 만능 해결사, 폭군 마누스 선배님이 있잖아. 잘 찾아가는 중이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셔.”
“그, 그래. 그런데 옆에 계신 거 아니야?”
“맞아. 헉-.”
통신은 그걸로 끝났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보나마나 주책맞은 피어슨이 또 한 소리 들었겠지.
아니면 버려졌거나.
“휴…… 어쨌든 잘 끝난 모양이야.”
“리비는?”
“-나도 잘 모르겠어. 선배가 왜 데리고 왔는지, 또 어떻게 할 건지.”
“버리고 가려나?”
섬뜩한 말이었다.
탑 안에 갇힌다는 건,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그런 걸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나이스와 케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리비는 죄를 지은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죄의 무게를,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2
네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특히 멜라니는 그 소심했던 아이가 맞는지,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마누스는 멜라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 아이가 금지된 약물을 썼더군. 침식이 일어나 이곳으로 끌려온 거다.> [네가 선택받지 않았다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 채 살아갔겠지.>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 공포감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그러면서, 마누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두고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영영 이곳에서 헤매게 될 거다.> [만약 이 탑에서 죽는다면…… 우리 외에는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겠지.>지구라트.
죽음의 신은 이곳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탑의 제물이 된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어 어딘가에 나뒹굴 뿐.
진정한 죽음.
탑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이들 외엔, 그 누구에게도 회자되지 않는 저주가 걸리는 것이다.
이토록 끔찍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네 앞길을 막을 친구 아니야?
-지금부터 싹을 잘라 둬야 해.
-나 같으면 벌써 버리고 갔어!
역시, 정령들은 상당히 극단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죽을 뻔한 자신에게 내리는 상이라고 하면 괜찮을까?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어린 나이에 쉽게 되는 일이었다면, 이 세상 사람들 절반은 날아갔겠지.
멜라니는 정령들을 바라봤다.
‘도움을 주는 건 괜찮은데, 결정은 내가 할 거야. 알겠지?’
-히히 좋아!
-문제없어!
-우리는 네 분신이야. 그러니 편할 대로 해.
멜라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두 명의 학생이 보였다.
아나이스와 케일.
1학년 에이스들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은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이젠 제법, 탑 안에서도 태연하게 움직일 줄 알게 되었다.
“고생했어! 선배도 고생하셨습니다.”
“멜라니. 무사해서 다행이야.”
케일은 가장 먼저 멜라니를 챙겼다.
주인공다운 행보였다.
이런 식으로 동료를 늘려, 나중엔 세계관 최강자 중 한 명이 되지.
‘동아리가 아니라 거의 무력 집단이 되었지.’
멜라니는 케일의 환대를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절망적인 공간에서, 이렇게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이런 친구들 곁이라면, 즐거운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활활 타올랐던 증오심도 사그라들었다.
그래, 일단 내려가서 생각하자.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가득 찼을 땐, 절대로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거라.> [시간이 흐르면, 머리는 자연스럽게 차분해질 것이다. 그때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좋은 조언이었다.
해리 가문이 왜 최고의 상인 가문 중 하나인지 문득 깨달았다.
멜라니는 깊은 한숨으로 안 좋은 생각을 뱉어 냈다.
“고마워. 구해 줘서.”
“친구니까.”
“-응. 친구니까.”
전형적인 게임 안에서의 모습을 보며, 마누스가 작게 웃었다.
모니터 안에서 볼 때도 꽤나 소름이 돋았는데, 막상 옆에서 보니 그저 쓴웃음만 흘러나왔다.
[간섭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습득하고 있는 스킬의 소요 시간이 30일 줄어듭니다.]‘역시, 이런 식의 간섭은 도움이 된단 말이지.’
중요 캐릭터들의 사건을 해결하면, 이렇게 보상이 돌아온다.
그러니까, 결국 적극적으로 간섭해서 최대한 많은 스킬을 배우면 된다는 것.
이제 모두 모였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다.
“시간 없다. 얼른 내려가지.”
“-예.”
리비에 대한 처분은 조금 더 유예하기로 했다.
모두가 그녀를 죽이는 것에 반대했다.
마누스 개인의 일이었다면, 가차 없이 죽였을 것이다.
조금은 답답하고 어리숙해도,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는 지켜보는 자.
강요하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3
어찌어찌, 로비에 도착한 일행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남은 시간은 단 10분.
중간에 1층으로 통하는 포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내일도 수업을 빼먹었어야 했을 거다.
“후아-! 겨우 끝났네. 멜라니! 진짜 잘 싸우던데?”
“고, 고마워.”
“다시 소심하게 돌아왔네. 엄청 귀여워! 케일이랑은 또 다른 매력이네.”
아나이스가 멜라니를 꽉 껴안았다.
멜라니는 쑥스러운 듯, 가만히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리비는 아직도 혼이 나간 듯, 모든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결정해라. 라우어 리비는 어떻게 하고 싶지?”
“……아직 모르겠어요.”
“죽이는 것도 방법이다.”
“아뇨, 그건 싫어요. 하지만…… 벌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어요.”
멜라니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어쩌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벌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악마가 인간에게 내린, 형벌의 도구라고도 말했다.
-계약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영혼을 걸고 하는 계약서.
멜라니는 리비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상인처럼 조치했을 뿐.
“죽어서는 빚을 갚을 수 없거든요.”
“-좋은 생각이다.”
썩 만족스러운 조치였다.
리비는 절망이 드리운 얼굴로 덤덤히 심판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 끝났다.
일행은 무사히 탑을 나섰다.
알라노가 도착하면 탐사를 계속하겠지.
마누스 역시 계속해서 강해질 거다.
‘멜라니. 예상보다 더 빨리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도 내 영향이겠지.’
스토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캐릭터의 성장이 미묘하게 빨라졌다.
탑 위로 올라가는 속도 역시 조금씩 빨라질 거다.
이벤트들이 발생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비를 더욱 단단히 해야 한다.
이제 곧 외부에서도 적이 올 것이다.
아카데미의 적은, 탑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진짜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누구 때문에 아주 난리를 쳐 놔서 말이야.”
“……미안해, 나 때문에-.”
아나이스의 말에 뜬금없이 멜라니가 답했다.
으잉?
붉은 머리의 소녀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너 말고! 저기 쟤 있잖아.”
“…….”
밤은 깊어만 갔다.
세 사람은 조잘조잘 떠들며 기숙사로 향했다.
마누스는 일렁이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곳에 시선을 주었다.
누군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빤히 쳐다봤다.
일렁이는 것은 금방 사라졌다.
마누스는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걸어가는 이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나마 감지 타입은 피어슨뿐인가.’
오직 피어슨만이 고개를 한번 휘휘 돌려, 주변을 훑었다.
허나 마지막까지 발견하지 못한 듯, 다시 대화에 끼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 대한 간섭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미리 싹을 자르기엔 아직 본인이 가진 힘이 너무도 나약하다.
답은 하나.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루트로 캐릭터에 간섭해야 한다.
‘그게 빌런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거라면……?’
마누스의 생각이 차근차근 정리되었다.
베로니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녀 역시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베로니카 본인이 빌런으로 등장하는 데에는 많은 서사가 있다.
마음의 상처.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그걸 해결한다면, 거대한 전력을 우리 쪽으로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도 거대하다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해결책은 작은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
아무도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마누스.
일행은 무사히 복귀했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멜라니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교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밤새 동아리실에 있다가 잠들어서 감기에 걸렸는지…… 낮에 기숙사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그래. 몸은 괜찮은 건가?”
교수는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면서도 일단 그녀를 걱정해 주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변명임은 알고 있었다.
허나 일이 잘 풀리고, 멜라니 역시 아무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이건 미토스 아카데미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교사는 학생의 개인적인 일에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직속 제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면, 깊은 관여는 금물이었다.
“네, 지금은 말끔히 나았습니다. 수업도 열심히 들을게요.”
“좋다. 어제 필기한 내용은 친구들에게 빌리도록. 몸이 안 좋으면 양호실에도 가 보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멜라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여전히 그녀를 뒤에서 욕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고, 상인 가문이라며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멜라니 본인이 달라졌다.
“뭐라고 했니, 지금-?”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 대한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이.
내면에 있던 감정들을 숨기지 않으며 지내기로 한 이상, 멜라니는 이제 소심한 아이가 아니었다.
“잘하고 있군.”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누스가 슬쩍 웃음을 지었다.
캐릭터의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세계의 평화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누스를 지켜보는 이가 또 있었으니.
“……이사장님께 말씀드려야겠군요.”
분홍빛 머리칼이 마누스를 바라봤다.
폭군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은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그녀의 입장으로선 궁금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그 무렵, 마누스는 하나의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누군가의 운명이 비틀리는 걸까.
그걸 알아내는 것 또한, 오롯이 그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