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 마지막 수련으로
#1
성녀는 쪽지를 받고 유심히 읽어봤다.
동글동글한 글씨체.
손끝에서 앳됨이 보이는 글씨를 읽어 보니,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지금 아카데미에 가 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음을 깨달은 것.
아카데미에는 적이 없다.
협력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적지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쪽지를 접으며, 그녀가 물었다.
“이건, 누가 쓴 글인가요?”
“제가 모시는 분이 보내는 글입니다. 아카데미는 그쪽에 맡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얼굴이라도 뵙고 싶은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네요.”
“보조하겠습니다. 목적지는 남쪽입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의 여정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수많은 언데드를 물리쳤다.
세계가 돌아가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기사는 성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만남은 없었지만, 더 나은 목표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자, 이제 나아가자.
쉴 만큼 쉬었으니.
“바로 움직일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교단이 잠잠할 때니, 천천히 움직여도 될 겁니다.”
“오늘은 푹 쉬어야겠군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겠습니다.”
“언제든지. 고된 여정이었을 텐데, 푹 쉬어도 좋습니다. 불침번은 저희가 서겠습니다.”
엘리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들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오랜 시간 노숙을 하며 힘이 빠졌다.
오늘만큼은 아무 걱정 않고 푹 쉬어도 되겠지.
내일부터는 다시 언데드가 많은 지역으로 뛰어들어야 하니.
“아 참, 귀하의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성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물었다.
회색 후드를 쓴 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보렌스라고 합니다.”
“보렌스 경.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성녀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림자 가문과 성국.
세계의 빛과 그림자가 한 곳에 뭉쳤다.
이제 새로운 세력이 교단을 위협할 것이다.
그 끝은, 고된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마누스에게로 향하겠지.
돌고 돌지만, 결국 목적지는 한 곳.
이야기의 끝을 보기 위해 나아가는 길일지니.
#2
대기실로 돌아온 마누스.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탑을 올라야 하는 건지, 그렇지 않다면 마석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건지…….
궁금증이 마구 들어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누스는 입을 열었다.
“말은 대충 끝났다만…… 설명해 주는 게 맞겠지?”
“당연하지. 사도들 만나고 온 거야?”
“그래. 예상대로, 사도는 우리 적이 아니었다.”
이들은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증이 많은 피어슨이 손을 들고 입을 열기 위해 움찔거렸다.
사도가 적이 아니라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사도와 싸우고 있었으니.
아무리 실수라 한들, 원한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후환을 남겨둔다면,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거 아닌가?
눈빛만으로 그 생각을 읽은 마누스가 이어 말했다.
“원한이 두려운 건가.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두 사도는 사도들 사이에서도 배척받고 있던 이들 같더군.”
“아…… 그렇다면 그나마 안심이네요.”
“암브레시아는? 그 얘긴 없었어?”
암브레시아.
칸타티는 그를 가리켜 숭고한 희생을 하라 말했지.
아마 사도들도 알고 있을 터다.
모든 것은 누군가의 안배겠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방법을 모르겠다.
조금 연구해 볼까.
일단은 수련이 먼저였다.
지금 이들의 레벨은 60 초반, 낮은 이들은 5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본래 심연의 적정 레벨은 80 이상.
하지만, 버스 형식으로 돌리다 보면 파티원이 주인공 레벨을 따라오는 건 금방이었다.
9월까지 남은 일수는 약 50일.
그 전에, 마지막 수련을 끝내야 할 터다.
‘그나저나, 아직 보상은 안 들어왔나.’
퀘스트가 분명 발생했었는데, 아직 클리어 처리가 안 된 것 같았다.
분명히 아브렐 가문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하는 거겠지.
시간을 쪼개서 니아와 함께 가문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알라노의 각성 퀘스트 역시 마무리 지어야겠지.
‘빡빡한데.’
가장 먼저 무얼 해야 할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기서는 집단 지성의 힘을 좀 빌려 볼까.
“지금부터 일정을 말해줄 거다. 너희들이 무엇부터 할지 골랐으면 좋겠군.”
“듣고 있어요.”
“첫째, 우리는 탑을 오르는 것이 아닌, 지하로 내려간다. 심연이라는 곳이지. 그곳에서 마석을 얻는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오오…….”
강력한 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이들의 눈빛이 ‘당장 수련하러 가요!’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누스 역시 그러고 싶지만, 해야 할 건 해야지.
“그리고 트레이스에 관한 문제가 있다. 알라노, 해리슨 영지에 들르기로 했었지?”
“그랬었지.”
“지금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당장 다녀온다면, 공작님도 반갑게 맞이해 주실 거다.”
“그런가? 하지만…… 어머니도 지금 많이 바쁘실 거야. 편지는 꾸준히 주고받는 중이거든.”
“다음으로 미루겠다 이건가?”
알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리슨 영지에 갈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다음, 평화로울 때 제대로 가는 것이 낫겠지.
알라노는 이미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행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알라노는 강해져서 트레이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의 집합체.
그들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는 빨리 광기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렇다면, 해리슨 가문으로 가는 건 조금 미루도록 하지. 다음은…… 니아 선배에 관한 일입니다.”
“나? 나 뭐 있어?”
“아직 가문의 일을 끝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니아의 한숨이 짙어졌다.
이곳에 오긴 했지만, 아직 아브렐 가문 사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지.
이상한 것이 내려오질 않나, 가신들이 뿔뿔이 흩어지질 않나…….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건…… 내일까지 말해줄게.”
“그래요. 저는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 무엇이든 결정되면 말씀하세요.”
“응. 그럴게. 그런데…… 만약 카이사르가 움직이면 어떡하지?”
마누스는 고개를 저었다.
카이사르 가문 전체가 나선다면, 그건 자신의 소관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무리 원작의 지식을 알고, 마도사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들 아직 절대자나 초월자에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으니.
아버지가 이룩한 경지까진 까마득했다.
아마 2회자, 3회차까지 진행한다면 가능하려나?
애초에 2회차를 하고 싶지도 않지만.
니아까지 결정이 보류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지하에 내려가 심연을 탐험해 보는 것뿐이었다.
준비 똑바로 하고 가야 할 것이다.
그곳은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과는 전혀 다른 놈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니.
“저녁까지 시간을 주겠다. 아공간에 포션을 가득 들고, 가장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산하게 빛나는 마누스의 눈동자는, 결코 단순히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으니.
대답 대신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과 표정으로 답했다.
심연.
최고의 노가다 장소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버스를 어떻게 태워줘야 하나.’
어떻게 하면 아무도 죽지 않고 성장시킬 수 있을까.
마누스의 머릿속엔 그 생각만이 가득 들어찼다.
#3
황제는 아브렐 가문의 수도, 드레고니아를 한 바퀴 둘러봤다.
몇몇 주민들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소문을 듣고 빠져나갔거나, 아니면 꼭꼭 숨어 있겠지.
본디 황제가 행차하면 모두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찮았다.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관리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고, 저 멀리 영주가 기거했던 성은 암녹색 결계가 처져 있었다.
저게 바로 황제가 우려했던, 그리고 대비했던 재앙이었다.
시작이 아브렐 가문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되었다.
“폐하.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뿐인 것으로 아뢰옵니다.”
“그렇다면, 관리자도, 군사들도 전부 빠져나갔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방금 병영까지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끄는 자는.”
황제의 물음에, 보고하는 자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아무것도 파악된 것은 없습니다만, 조속히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음…….”
“폐하, 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또 다른 병사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 순간, 황제가 타고 넘어왔던 포털에서 압도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대기를 짓누르는 마나에, 황제 곁에 있는 이들이 모두 전투 태세를 갖췄다.
황제는 손을 들어, 보고하는 자를 물렸다.
딱히 보고를 듣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으니.
붉은 망토가 휘날리는 군세.
황제의 군을 앞에 두고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백이 느껴졌다.
가장 앞에 서 말을 타고 있는 이와 황제의 눈이 마주쳤다.
“폐하.”
“대공.”
“무탈하셨습니까. 인사드립니다.”
훌쩍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리는 이.
당당하면서도 예의 바른, 황제와는 다른 군주상을 내보이는 이.
카이사르 라베스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황제를 바라봤다.
묻기 전에 답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였으니, 라베스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아브렐 가문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니, 카이사르도 응수해야지.
“아브렐 가문과의 전쟁을 허락받고자 왔습니다.”
“…….”
황제의 눈빛에 수심이 깊어졌다.
드디어, 잠자던 정복자가 깨어났으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