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38화 – 평화의 끝자락에서
#1
하루.
베로니카는 기숙사 내부를 돌아다니며, 목표의 동선을 파악했다.
이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수들에게 배부된 명부를 바꿔치기했다.
사흘.
황실에서 추가 정보를 받았다.
꽤 도움 되는 정보들이었다.
나흘.
그녀는 누군가와 접촉했다.
살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복귀했다.
닷새.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감시 체계 중 일부를 마비시켰다.
효과는 이틀 정도 지속될 것이다.
엿새째 아침.
뜬눈으로 지새운 탓에, 이부자리는 정돈할 필요가 없었다.
마스터쯤 된다면, 하루 반나절 정도야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으니.
“후우-.”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며 교정으로 등교하는 이들을 바라봤다.
본래라면, 그들이 기숙사를 비운 사이 일하는 하녀들을 감독하고 관리해야 하지만-.
오늘 베로니카의 복장은 사뭇 남달랐다.
딱 붙는 타이즈 위로 덕지덕지 붙은 갑옷 조각들.
코까지 오는 복면에, 그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칼은 검게 쏟아 내리고 있었다.
질끈 묶은 머리칼을 정리하며, 그녀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누스. 제일 먼저 없애야 할-.’
다른 이들의 동선은 모두 파악했다.
황실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교수들 몇몇이 있는 이상, 자신이 일하기 편하게 조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 한 명.
카이사르 마누스를 제외하곤.
[오늘, 아카데미의 상당수가 죽어 나갈 것이오.> [그대는 위기에 빠진 이들을 구하지 않으면 되오. 혹여 눈치챈 다른 이가 있다면, 그들만 처리해 주시오.>황실은 무얼 믿고 이런 일을 꾸미는 걸까.
그저 계약직인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며칠 전에 보니, 마누스가 버클리 가문의 장남과 화해했던 것 같던데-.
한숨이 깊어져만 갔다.
황실은 말했다.
몇 가지 일만 더 이행해 준다면, 자신이 온전히 하녀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다고.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유일한 희망이었다.
피로 얼룩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떠나간 영혼들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타고 흘러가, 누군가를 시선에 담았다.
카이사르 마누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2학년이면서 가장 악랄한 원소학, 그것도 3학년 수업을 듣는 검은 머리가 보였다.
오늘은 하루, 그의 곁에 있으면서 기회를 노려야 했다.
수업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트레일 교수는 수업이 끝나기 전,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밤에 전달받은 사항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 역시 아카데미의 전력이자, 망자를 상대하는 마법사임을 잊지 마십시오.”
“-네.”
“각자 부여받은 임무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미토스 아카데미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안정적인 마법진 아래, 안정적인 지휘 아래 싸우게 될 것이다.
기사와 수호자는 마법사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마법만 쏘면 되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교재를 정리하며, 마누스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기회는 오늘 해가 질 때까지.
그는 서둘러 1학년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에피소드는 자신만 살아남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기에 더욱 노력하고 싶었다.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선, 지금 뒤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도 묶어 두어야겠지.
역시, 그의 생각대로 베로니카가 움직였다.
‘그런데 왜 나지?’
본래 그녀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에게 숨어든다는 텍스트가 나온다.
또 한 번, 나비의 날갯짓이 무언가를 이끌어 낸 모양.
오히려 잘됐다.
굳이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으니.
그는 짐짓 모른 척,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1학년들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선배.”
“오늘 준비할 물품을 알려 주마.”
A반.
그리고 B반에서 나오는 멜라니까지.
바우어 가문의 리비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급히 향했다.
쪽지를 들고 있는 걸 보아, 멜라니에게 어떤 지령을 받은 모양.
그림자, 그리고 마누스는 리비에게 슬쩍 눈길을 준 후 다시 1학년들에게 집중했다.
마누스는 쪽지를 나누어 주었다.
“이걸 준비해서, 해가 질 때까지 동아리실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케일이 슬쩍 손을 들었다.
쪽지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무슨 일이지?
마누스가 눈빛으로 물었다.
“도, 돈이 없어요.”
“여기 있다.”
“-아.”
일단 급한 대로, 마누스는 금화 몇 개를 쥐여 주었다.
케일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그래, 지금 케일은 평민 신분이었고, 당연히 돈이 별로 없었다.
보조금이 나오지만, 그건 딱 식비와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멜라니가 서브 퀘스트를 물어 오기 전까지, 그녀는 수전노로 살아가야 했다.
아티팩트는 정식 절차를 거쳐서 팔아야 하기에 입금까진 시간이 걸리는 상황.
옆에 있던 아나이스와 멜라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케일, 우리한테 말하지 그랬어.”
“맞아. 우리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
케일은 배시시 웃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나이스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언제든지 우리한테 말해. 알겠지? 꼭-!”
“-응.”
“우, 우리는 물품도, 아티팩트도 많이 필요해. 그, 그러니까 도와줄게.”
정 뭐하면 나중에 갚으면 되지.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절대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마워.”
“뭘. 우리 친구잖아. 같은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거야. 나중에 대마법사 돼서 갚으면 되지.”
“응.”
참 훈훈하고 순수한 친구들이었다.
마누스는 그 달달한 모습을 못 견디고 걸음을 옮겼다.
보고 있노라면,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학창 시절이 생각났으니까.
도구점에서 무언가를 사고, 또 기숙사에 들러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챙겼다.
지금 죽일까?
아니야.
기숙사에서 죽인다면, 문제는 커진다.
최대한 망자들의 손에 죽은 것처럼 위장해야 할 터다.
‘그나저나, 이런 시기에도 공부라니-. 역시 뒤에서 노력하고 계셨군요.’
보면 볼수록 아까웠다.
그는 장차, 엄청난 인물이 될 인재였다.
그림자 속에서 염탐하는 자신보다 훨씬 더.
어쩌면, 지금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 칭송받는 라베스마저 뛰어넘을 인재.
황실은 미리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일 수도.
베로니카는 그림자 속에서, 개화하는 재능을 바라봤다.
그의 뒷모습은 거대해 보였고, 또 마성이 깃들었다.
단 한 순간도, 한 걸음, 한 호흡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후-.”
무언가를 잔뜩 적어, 품에 넣는 마누스.
책장에 있던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며 기숙사를 나섰다.
벌써 창밖은 붉게 물들었다.
해가 진다.
동시에 평화도 함께 질 것이다.
“다 됐군.”
짙은 마나의 향이 그림자 속에서도 느껴졌다.
그의 발걸음은 초조한 듯 보였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2
동아리실.
1학년 친구들은 미리 도착해, 사 온 물품들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마누스가 나누어 준 쪽지에는 각자 다른 물품이 적혀 있었다.
보조 마법이 특기인 피어슨은, 일회용 사역마를 소환할 수 있는 스크롤,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보조 마법 아티팩트.
그리고 성수.
광역 마법이 특기이자, 마나 소모가 심한 아나이스는 마나 포션, 방어 마법 스크롤, 일회용 마법 보석을 추천했다.
멜라니는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포션, 피부 자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마법 갑옷, 주변 적들을 밀쳐 낼 수 있는 아티팩트를 사 왔다.
“그러고 보니, 케일. 너는 뭐 사 왔어?”
“-난 이거.”
병 부딪치는 소리가 잔뜩 났다.
달그락거리며 쏟아지는 병.
이것도 병.
저것도 병.
병병병-.
“이, 이게 뭐야. 다 포션이잖아?”
“그러네. 이거 돈 꽤 나갔겠는데?”
“왜, 왜 너한테만 포션을…….”
케일은 멜라니의 물음에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왜 이렇게 사 오라고 했을까.
그건 케일도 제대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새하얀 머리칼이 불쑥 들어왔다.
광란의 밤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알라노가 등장했다.
“어머, 다들 모여 있었구나. 근데…… 이게 다 뭐니?”
“아, 선배. 이건-.”
타고난 입담이 특기인 피어슨이 잽싸게 나서서 설명했다.
모든 설명은 빠르고 장황하게 늘어졌다.
중간에 아나이스가 피어슨의 입을 막지 않았다면,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설명이 끊어지지 않았으리라.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알라노가 작게 감탄했다.
마누스.
그는 자신보다도 더, 이 후배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거다.
아니, 어쩌면 그 비상하고도 괴랄한 머리가 이런 걸 가능케 했을지도.
솔직히, 감격스러웠다.
“정말 놀라운데. 마누스는 아직 안 왔구나. 사실 나도 마누스에게 부탁받은 것이 있단다.”
알라노가 창밖을 내다봤다.
해가 지고, 붉었던 하늘이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공기마저 텁텁한 느낌으로 변해 갔다.
“케일.”
“-네.”
“지금 이걸 익힐 수 있겠니?”
그녀가 내민 것은 3클래스가 적혀 있는 술식집이었다.
-갑자기 여기서?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케일이 유독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 마누스는 학생회실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이 책을 건네주며 부탁했다.
[후배들을 부탁하지. 이번엔 나도 노력하겠다.> [죽음에 대해 민감한 건, 너뿐만이 아니니.>그의 말이, 눈빛이, 표정이, 자신들만 믿으라며 호언장담한 교수들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절친한 친구의 부탁이다.
죽을힘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
책을 받아 든 케일은 책과 널브러진 포션들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사락-.
책을 펼치자, 작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유려한 필체가 돋보였다.
『빛 속성 신성 마법 한 가지 / 각 속성 중에 자신 있는 마법 두 가지를 익혀라. 추천하는 마법은 페이지에 표기해 두었다.』
무뚝뚝하지만 세심한 손길들이 엿보였다.
쪽지는 더 이어졌다.
케일의 눈동자가 글자들을 훑었다.
『네 역할은 최대한 많이 죽이는 거다. 숨겨 왔던 실력을 아낌없이 드러내야 할 거다.』
그 뒤로 점 몇 개가 찍혀 있는 걸 발견했다.
무언가 쓰려는 듯, 하지만 쓰지 않은 흔적이었다.
그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을까.
어느새 케일은 그의 생각을 좇아, 자신도 비슷하게 생각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위명을 들어 왔던 카이사르를 존경했으니까.
마누스가 고민했다는 건, 분명-.
“케일. 너는 웬만큼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면 합류하도록 해.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괜찮아. 그저, 그저 성벽 위에서 막기만 하면 되잖아?”
“최대한 빨리 갈게요.”
파라락-.
말을 마친 그녀가 미세하게 끝을 잘라 낸 페이지를 폈다.
3클래스.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선분이 페이지를 가득 메웠다.
집중을 시작하자, 그녀의 주위에서 푸른 마나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알라노가 1학년 후배들을 이끌고 동아리실 밖으로 나섰다.
성벽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이 사뭇 비장했다.
‘마누스.’
알라노는 마누스를 생각했다.
그가 이곳에 오지 않은 이유.
알라노는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그림자가 날 노리고 있다.』
그는 홀로 볼일이 있다고 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흐르는 강물을 등지고 있어, 망자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곳.
그곳으로 갈 것이다.
감히 누가 카이사르를 노리는 걸까.
친구가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을 믿어 준 친우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수 없는 노릇.
밖은 부산스러웠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평화의 끝자락을 놓자, 기다렸다는 듯 광란이 찾아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죽은 자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