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4화 – 저 높은 오만의 탑
#1
미토스 아카데미의 탑은 신이 빚어낸 자연을 밀어내겠다는 오만함의 상징이었다.
마법, 검, 그리고 방패를 든 인간들이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함.
그 행태에 분노한 죽음의 신이 저주를 내밀어 만든 지구라트는 높고 험준했다.
이곳에서 ‘데몬’들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게임이 진행된다.
이 세계에서 두 개의 달은 죽음의 신이 뜬 눈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치 늑대인간 설화처럼, 룩스 대륙의 달도 기이한 힘을 가진 채였다.
‘확실히, 공기가 달라.’
마누스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탑을 올려다 보았다.
세계의 이면.
마치 그림자의 세계처럼,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오물통.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모여 단단한 기반을 만들었고, 그곳에 죽음이 내려앉았다.
“음…….”
입구로 들어서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거대한 로비가 그를 반겼다.
중앙에 떡하니 자리잡은 황금빛 시계.
숫자가 여섯 개밖에 없는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임의 초창기, 이면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여섯 시간.
‘벌써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나.’
창밖을 바라보니, 흘러가던 구름도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도 모두 멈춰 있었다.
오직 짙은 마나와 죽음의 기운만이 도사리고 있는 공간.
마누스는 이 괴기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에서도 거침없이 발을 옮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못할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역시, ‘카이사르의 마음가짐’ 덕분이겠지.
‘5층까지의 길은 완벽하게 외워놨으니-.’
5층.
완벽한 튜토리얼 구간이며, 미니 보스가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후 재앙을 막아낼 히든피스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가 볼까.”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죽음의 신은 삭막한 세계에 나름대로의 생명을 내렸다.
각 구역에 자신의 분신을 배치하고 무수히 많이 쌓인 부정적 에너지로 주민들을 쌓아 올린 것.
첫 번째 구역은-.
“-악몽의 미궁.”
그 주민들의 이름은 데몬.
빛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증오하는, 이 게임의 주적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데몬은 플레이어의 뒤를 노렸고, 구불구불한 미로는 저주를 불러일으켰다.
고전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임 어택 시스템도 아주 잘 갖춘, 아주 쫄깃한 게임.
미로는 완전히 랜덤이었지만, 처음 5층까지는 고정된 루트가 존재했다.
물론 마누스는 그 모든 길을 외우고 있었고.
‘실제로 보니 더 으스스하네.’
공포 장르가 포함되어있는 만큼, 악몽의 미궁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저벅-.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데몬들이 낄낄거리며 웃는 모습이 상상됐다.
마누스는 침착하게 마나를 점검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확인했다.
마법은 클래스별로 구분되는데, 딱 1클래스 마법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대 속성인 화염, 바람, 전격, 얼음.
흑마법과 신성 마법으로 명명된 어둠, 빛.
단순히 마나를 이용해 물리적 충격을 주는 물리계 마법.
그리고 히든피스로 배울 수 있는 고대 마법.
마누스의 머릿속에, 이전 몸뚱이의 주인이 쌓아왔던 지식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지식들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역시 확인했다.
[음?] [음음?]“여기다.”
탑의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구역은 타로를, 데몬은 트럼프를 형상화해 제작되었다.
각 구역에 있는 데몬은 구역에 깃든 아르카나에 영향을 받는다.
[악몽의 미궁]은 마법사, 전차, 절제, 법황의 구역.직관적이로 개성 있는 몬스터라며 호평을 받았었지.
[음!] [음음음!] [마법사 – 10> [특기 : 네 개의 팔을 이용한 근접전] [속성 : 불] [약점 : 냉기]게임에서는 턴제로 진행되지만, 이곳에선 실시간으로 전투가 벌어진다.
마누스는 그 괴리감을 채우기 위해 긴장감을 더했다.
멍하니 패드만 누르면 되는 게임이 아니다.
이곳은, 진짜 몸을 움직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주문이 떠올랐다.
얼음 속성 1클래스 마법.
[글라치]까드득-.
손안에서 하얀 꽃이 피어났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이질적이어서, 속이 다 메스꺼웠다.
허나 멈추지 않는다.
그는 카이사르.
위대한 정복자의 핏줄이었다.
[음음-!] [음!]마법사 주제에 이상한 소리나 내뱉는 것이 소름 끼쳤다.
처음 겪는 전투는 제아무리 고인 물이라도 떨렸다.
들뜬 마음과 달리, 몸은 차분하게 움직였다.
시리게 핀 꽃은 적의 가면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그가 내민 꽃도 그렇게 졌다.
쩌억-.
데몬의 얼굴이 갈라졌다.
“이건…… 이거대로 좋군.”
가장 기본적인 마법에 제일 약한 데몬이라지만, 주인공도 두 턴 정도를 소비해야 죽는 녀석이었다.
소량의 마나를 소비해서 만든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주인공 레벨 10 정도에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으려나?
그만큼 패시브가 사기적인 스킬이라는 거지.
데몬 안에 있던 마나가 결정이 되어 흩뿌려졌다.
마석.
성장의 원동력이며 주인공의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녀석.
한창 유행하던 소울류 게임의 시스템을 채용했다.
[마석 결정 S]신기하게도 아이템 이름이 반투명한 상태로 떠 있었다.
이건 또 게임이랑 똑같네.
마누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게임과 현실.
어떤 걸 진짜로 받아들여야 할지-.
‘현실이면 이런 거 다 없애 주든가.’
현실이지만 게임 같은 곳.
그래서 더욱 거침없이 행동하게 되는지도.
마누스는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어차피 이 미궁,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주인공이 먹을 경험치 강탈이라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마누스는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가 빠져나가는 감각, 마법이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각.
적을 죽이는 감각.
‘이 세계에 익숙해지려면, 뭐든지 많이 경험해야지.’
카이사르의 마음가짐.
정복자의 그릇은 크고 거대했다.
그 큰 그릇을 채우려면 막대한 경험과 지식, 힘이 필요하겠지.
마누스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벌써 1층이 끝인가.”
주머니가 두둑했다.
시간은 이제 막 20여 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너무 사긴데?
압도적인 주파 속도를 상기하며,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원작 캐릭터와의 간섭만 아니라면, 느긋하게 스킬이나 익히며 살아도 좋았겠지.
이 세계가, 그리고 그 편지가 자신을 편하게 놔둘 것 같진 않았지만-.
언젠가 올 평화를 기다리며, 그는 계단을 올랐다.
#2
알라노는 거대한 로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
세계가 뒤바뀌고, 흘러가던 공기가 멈췄다.
홀린 듯 따라온 곳은 그녀가 아는 세상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움도 잠시, 알라노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런 곳이…… 여긴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런 세계가 미토스 아카데미에 있는지, 위험 요소는 없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녀는 2학년 학생회장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벌어진 이상현상이라면, 그 존재를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마누스는 이곳을 알고 있었던 걸까.’
“설마…… 카이사르에서 알고?”
아니야, 그럴 리가.
마누스도 그녀와 같은 학생이었다.
암암리에 실력자를 파견했겠지, 아직 학생인 마누스를 이곳으로 파견할 리가-.
마나의 농도가 짙어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의 공간.
이런 위험한 곳에 직계를 홀로 던져 놓는 것은 전력을 깎아먹는 것과 같았다.
알라노는 마치 심연의 입구처럼 쩍 벌어져 있는 계단 위의 공간을 바라봤다.
지옥의 문이 열린다면 저런 느낌이겠지.
로비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누스는 홀로 들어갔을까.
불안감과 궁금증이 확 몰려왔다.
‘지원을 불러야 하나?’
홀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 홀로 이곳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녀는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며 뒤를 계속 돌아봤다.
지난 1년.
마누스는 폭군이 되었다.
경외, 두려움, 존경심…… 그런 감정들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눈빛의 밑엔 짙은 슬픔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의 기억과 재회한 마누스와의 차이가 너무 커,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조금은 무서웠을지도.
마누스는 이상하리만치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려 했다.
그 모습들을 마누스 본인도 알고 있는 듯, 언제나 홀로 교정을 거닐었었다.
왜-?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그는 홀로 이런 곳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을 마다하고…… 그런 사정이라면 일부러 혼자가 되려는 것도 이해가 가.’
알라노는 오래, 그리고 멀찌감치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학년 차석, 그리고 학생회장으로서 동기들은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또한 궁금했으니까.
어렸을 때와 다르게, 왜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이 공간에서 곰곰이 생각하니, 그의 행동이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이 있다.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걸어가는 자.
고독하고 힘듦에도, 우직하게 자신의 짐을 짊어지려는 자.
혹시, 마누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역시, 도와주는 편이 낫겠지.”
그런 이들의 곁엔 사람이 없다.
사랑과 관심을 마다하는 존재 옆에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결국, 인간은 보답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거다.
“소꿉친구잖아? 혼자 둘 순 없어.”
그녀는 카이사르와 비견되는 가문의 장녀다.
마법의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났고, 어떠한 마물이라도 해치울 수 있는 수업을 받았다.
꿀꺽-.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발을 들이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마누스는 태연하게 이곳을 걸어갔겠지.
“해리슨 가문의 장녀잖아. 절대 이런 곳에서 겁먹을 필요 없어.”
다짐하듯 뇌까린 그녀는 성큼성큼 지구라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연이 그녀를 빨아들였다.
#3
5층.
마누스는 마석들을 흡수하며 여기까지 도달했다.
본래 첫 보스를 마주하는 구간이지만, 오늘 목표는 보스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을 틀어, 본래 학교였던 공간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일명 ‘휴식 공간’.
오만과 저주에 물들지 않은, 멀쩡한 학교의 공간이 남아 있었다.
완전한 랜덤이라 어디가 당첨될지 모르는 것이 운빨 요소라면 요소였다.
다용도실, 세탁실, 식당, 주방, 침실, 연구실, 교사실.
“흠…… 이번엔 다용도실인가.”
일곱 가지 방은 특색 있는 버프를 제공했다.
다용도실은 간이 상점.
세탁실은 갑옷과 무기의 내구도 수리.
식당은 체력 회복, 주방은 공격력, 방어력 버프, 침실은 마나 회복, 연구실은 아이템 합성, 교사실은 멤버 교체.
‘딱 맞게 걸렸어.’
끼익-.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것은 긴 탁자와 각종 아이템이었다.
마석을 집어넣으면, 잠김이 풀린다.
하지만, 오늘은 이걸 얻으러 온 것이 아니니 패스-.
“여긴가.”
다용도실의 안쪽.
퀴퀴한 먼지가 쌓인 곳을 뒤적거리자 작은 쇠줄이 잡혔다.
가느다랗고 차가운 감촉.
훗날 누군가가 이걸 발견해, 아주 강력한 물건으로 각성시킨다.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 준단 말이야. 게임이 제법 친절했지.”
빌런이 멍청한 건지 친절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떠벌리고 죽는 것은 국룰인가 보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작은 펜던트.
누군가의 한이 서려 있는, 고대의 아이템.
[오르카의 목걸이] [낡은 목걸이다.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설명은 심플.
알 수 없는 문양이라는 건, 타로의 21가지 그림 중 13개를 상징한다.
오르카의 목걸이의 비밀은, 그 13가지 타로에 있었다.
타로에 속해 있는 네임드 이상의 데몬을 죽이면, 그 영혼을 수확할 수 있는 펜던트.
‘이거라면 가능성을 비틀 수 있겠지.’
마누스는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이 행동으로 변수의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할 거다.
그 톱니바퀴를 통해 달려갈 시곗바늘이 어디서 멈출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허나 본래의 비극적인 사건을 막을 수 있다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은 얼마든지 감내할 생각이었다.
마누스 본인은 엑스트라.
주연이 활약하지 않는 곳에서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자다.
그렇다면, 그 역할에 맞는 일을 해야겠지.
“잘하는 거겠지.”
다용도실을 나서며 뇌까린다.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고, 답도 내려 주지 않았다.
물은 답을 찾는 자는 오롯이 자신이어야 할 터다.
마누스는 조용히 지구라트를 빠져나왔다.
몰랐다.
이미 자신으로 인해 나비들은 날아가고 있었음을.
단 하루.
24시간이 만들어 낸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저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
역시, 그녀는 말을 듣지 않고 그를 따라온 것이다.
마누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