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47화 – 막간의 시간 속에서
#1
오늘 평화로운 카이사르 가문.
라베스는 평소처럼 침실에서부터 식당까지의 긴 길을 걸어가며 보고를 들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문득, 옛이야기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선조들은 언제나 전쟁 속에서 살아갔다고 하지.
무어라 불렸더라…….
몬스터는 아니지만, 더 사악한 존재와 대륙을 두고 싸웠다고-.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인비데아가 일을 잘해 주고 있군.”
“그렇습니다. 천재……시니까요.”
카이사르의 가문에서, 천재라는 허들은 제법 높았다.
이곳도 망자의 밤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라베스는 공국의 외곽, 시내, 성내를 직접 내려다보며 마법을 쏘아 냈다.
아들딸, 가신들의 전투 장면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검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가 번뜩일 때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마나가 요동쳤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장남.
유려하면서도 균형 있는 힘을 지닌 장녀.
아직은 서툴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막내.
‘마누스는 홀로 지하 던전 하나를 토벌했다고 했지.’
그곳에 쌓인 시체는 온통 불에 그을려 있었고,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는 바싹 말라비틀어져 있었다고 한다.
열기로 손상된 곳이 여기저기.
안은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텁텁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분명 마나가 별로 없었던 신체였다. 헌데 그런 위력의 마법을 뿜어낼 수 있던가.’
요새 라베스의 고민거리가 된 주제였다.
이곳은 마나가 지배하는 공간.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기할 것 없음을 자각하고는 있다.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고, 이론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요 몇 주.
마누스의 급격한 변화는 나름 이론에 통달해 있다고 자부하는 라베스마저 혼란스럽게 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만한 재능을 숨길 수는 없었을 거다.
다름 아닌 자신의 눈을 피할 순 없었으니.
‘조사를 해 보는 걸로 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거대한 식당의 문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자식들.
그리고 더욱 사랑스러운 자신의 반쪽.
오늘도 이 훌륭한 하루를 완성하게 해 준 하늘에 감사하며, 라베스는 걸음을 옮겼다.
“다들 왔군.”
여느 때와 같은, 그러나 매일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식사는 맛있었고,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허기가 질 때, 혹은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씹는 행위는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푹 쉬고 난 다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 이유가 다 있음이다.
장녀가 입을 열었다.
“디레 교단이 북동쪽에 있는 사막의 사원에 똬리를 튼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벌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북동쪽의 사막이라면, 그래. 녀석들이 좋아하는 위치로구나.”
한때 마법사들이 악마 숭배를 자행했던 곳.
누군가의 저주로 모든 건축물이 토사에 매몰된 지역이자, 강력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모여 있다면, 필시 강력한 망자와 몬스터의 군대를 부리고 있으리라.
악마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사특한 것들을 재료로 활용하는 걸 좋아했으니.
라베스는 물끄러미 딸을 바라봤다.
“할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리고, 마누스에게 의뢰를 요청했습니다.”
그녀 역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수많은 러브 콜을 뿌리치고 다시 가문의 일원으로 돌아온 인비데아.
막내는 이미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마누스는 재능이 부족했다.
다음 세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로서, 그녀는 자신의 오빠와 경합을 치르는 중이었다.
카이사르에서 경합이란,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식사 예절부터 아카데미, 졸업 후의 행방과 가문의 일 등등.
-인비데아는 무섭도록 성장하여, 제 오라비를 위협하고 있었다.
“-너는 아직도 그 반푼이를 믿고 있느냐, 동생아.”
장남이 입을 열었다.
거만하고 여유롭다.
가늘게 뜬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이미 맹수의 눈동자를 가졌으며, 그 압박감은 가히 폭군이라는 이명다웠다.
라베스는 입을 다물고 남매간의 설전을 지켜보기로 했다.
마누스.
안중에도 없던 셋째가 갑자기 부상하기 시작했다.
-퍽 재밌지 않은가.
“저는 성과를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어요.”
“그래. 응원하마. 그가 있으니 난 필요 없겠구나.”
인비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인 티란니스는 마누스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과거, 마누스 때문에 포로로 잡혀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실패하지 않을 임무였고, 실패해서도 안 되는 임무였다.
카이사르가 가는 길엔 결코 패배가 없어야 했으니.
티란니스는 아직까지 마누스가 미웠다.
“난 아직도 그놈을 믿을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하고 말 거다.”
“그럼 제가 잘 키워 보겠습니다. 전 보았거든요.”
가능성.
그녀를 보좌하고, 카이사르 가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
인비데아는 마누스와의 만남에서 확신을 얻었다.
투자할 가치는 분명 있었다.
예상보다, 그는 너무 많이 변해 있었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티란니스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라베스는 그녀에게 일을 맡겼고, 그녀는 승낙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비서가 문을 두들겼다.
“둘째 도련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가져오너라. 차는 여기서 먹도록 하지.”
“바로 내오겠습니다.”
라베스는 가족들에게 이만 일어나도 좋다 말했다.
첫째와 막내는 할 일이 있었기에 일어났고, 인비데아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비서의 말이 없었다면.
“가주님 외에도 첫째 공녀님께도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 그럼 나도 여기서 읽어야겠네.”
그래서 다시 앉았다.
두 사람은 유려한 필체로 자신의 이름이 쓰인 봉투를 하나씩 받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잠시 지나가고 두 사람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가주인 라베스는 헛웃음을 지었고, 장녀 인비데아는 살포시 인상을 찌푸렸다.
인비데아는 편지를 마법의 불길로 태워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마누스가 안 온다고 하던?”
“-네. 생존 평가 이후에 온다고 하네요. 그동안 철저하게 조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라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아이이니, 잘하겠지.
인비데아는 숱한 전장을 다닌 베테랑이었다.
딱히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잘해 낼 터.
그보다, 그는 마누스의 편지에 눈이 갔다.
종종걸음으로 사라진 딸에게서 눈을 뗀 그가 다시 편지지로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께.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망자의 밤엔 별 탈 없으셨는지요.
디레 교단 외에도 다양한 적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중략)
황궁에서 저를 시험하려 하는군요.
조만간 새로운 식구를 소개하러 가겠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길 원하셨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무탈하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마누스-』
“……기특한 녀석.”
아버지로서,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자니 뿌듯함이 차올랐다.
마누스는 많이 변했다.
제법 기특한 소리도 할 줄 알았다.
불과 한 달 전.
그가 편지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보냈던 때가 생각났다.
그것보다, 드디어 황궁에서 움직인 건가.
‘친우여, 내 아들은 만만치 않을 것이네.’
지금쯤 턱을 괴고 제국의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을 친구가 생각나, 웃음이 그려졌다.
항상 전장을 꿈꾸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던 친구.
빛나는 별을 찾아,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는 녀석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두 아들딸에겐 관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셋째에게 관심이라도 생긴 걸까.
그러고 보니-.
‘해리슨 가문의 꼬마도 있었지.’
친구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물론, 아들의 목숨은 빼앗을 수 없을 테지만.
그가 허공을 향해 말했다.
“들으라.”
그림자들이 일렁였다.
제아무리 친우라고 하지만, 엄연히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
그가 선을 넘지 않도록, 적당히 견제하는 것도 아비가 해야 할 일일 터다.
“아카데미에서 황궁의 움직임을 주시하라.”
[명을 받듭니다.]온화한 눈동자는 사라졌다.
맹수의 눈빛이라고 칭했던 티란니스보다 더욱 흉포하고, 정제된 눈빛이 드러났다.
자상한 아버지가 아닌, 대륙을 호령하는 위대한 마법사.
그림자 앞에서 자유로울 단체는 없다.
설령 그것이 황궁일지라도.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베니니타스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도울까요?”
“오랜만에 부탁하겠소. 부인.”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와야겠어요.”
그녀가 일어섰다.
라베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국의 왕비.
평민 출신임에도, 당당히 이 자리에 앉은 베니니타스가 움직인다.
사교계의 여왕이자 귀부인들의 우상.
한번 지적한 목표물을 절대 놓치지 않는 사냥꾼.
어쩌면, 라베스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여인이 움직인다.
“거리에 나갈 거예요. 재단사를 부르고, 새 옷을 맞춰야겠어요. 허락해 주실 거죠?”
“-물론. 오랜만에 부모 노릇을 하겠군.”
“기쁘네요.”
마누스가 모르는 곳에선, 그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누군가는 지식의 탐닉을, 누군가는 앞으로 있을 미래에 대한 대비를.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자 다른 형태로, 다른 크기로 맞물려 돌아간다.
열심히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이 합쳐져,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라베스, 베니니타스, 그리고 어딘가에서 돌아갈 톱니바퀴들이 먼지를 털고 움직였다.
어디를 가리키는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고장 난 나침반처럼.
#2
“그래서, 2학년에게 특혜를 주잔 말입니까?”
“특혜라니요. 엄연한 교칙입니다. 누군가 학생들의 실력을 믿지 못해, 멋대로 결정해 버린 것이지만요.”
미토스 아카데미.
전 학년의 교수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다소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다.
2학년.
실력과 마나가 되는 이들의 사역마 소환 허가.
몇몇 보수적인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지만, 샨들러 교수는 강하고 정확하게 어필했다.
보수적인 교수들 역시 옛 교칙을 들먹이니 할 말이 없어진 모양.
그나마 반박할 수 있는 것이 미숙하다는 점이었다.
“2학년은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사역마를 잘못 다뤄 사고라도 난다면 어쩔 겁니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학생들끼리의 차별 문제가 대두될 수 있습니다.”
그 발언을 한 교수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라며 눈을 끔뻑였다.
실수였다.
반대하고 나섰던 교수 몇몇이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미토스 아카데미에서 차별성을 논한다?
이는 교육자로서 실격이었다.
여긴 그런 곳이다.
더 높은 곳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곳.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려는 이들에게 그에 맞는 지식과 강함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미토스 아카데미일 터.
평등은 없다.
배울 의지와 능력이 되는 이들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 곳이 미토스 아카데미다.
“흘흘, 이사장님.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닉스 이사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분명 미토스 아카데미는 강자를 육성하기 위한 곳.
능력이 되는 이들을 억제할 필욘 없다.
“미토스 아카데미는 나약한 학생에게 베풀 호의는 없습니다.”
그의 무거운 목소리가 교수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미토스 아카데미는 재능 있는 자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는 걸.
“반대로, 재능 있는 자들에게 아낌없는 기회를 줘야 하는 곳이 이곳, 미토스 아카데미입니다.”
“흘흘, 다음 강의에서 좋은 조교로 써먹을 수 있겠군요.”
승리자는 샨들러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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