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49화 – 재앙이 닥쳐온다
#1
“후우-.”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법으로 날려 버릴 수 있었지만, 마누스는 일부러 땀을 듬뿍 흘렸다.
등산은 훌륭한 하체 운동이자 유산소 운동이었으니.
그는 틈틈이 하고 있었던 훈련의 일환으로 몸을 움직였다.
수호자들의 전투를 보고 느낀 것이 많았으니까.
마누스는 옷에 맺혀 있는 땀만 날리는 선에서 계속 몸을 움직였다.
‘그놈의 등산…… 진짜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또 좋다.
역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툭-.
마나를 쏘아,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땄다.
게임에서 익힌 지식은 스토리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쓰이는 아이템과 환경, 다양한 지형까지 통달했다는 뜻.
달콤한 과육을 입 안 가득 머금으며, 마누스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산세.
나무의 결과 방향.
햇볕이 들어오는 강도와 위치 등등.
자연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 단서들은 정말 많았다.
거기에 명석한 두뇌가 합쳐지니, 머릿속에서 지도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곳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서쪽이 어딘지는 알아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로드맵부터 그려 보자고.’
여행을 할 때, 동선을 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생존 평가도 마찬가지.
모험을 하든, 임무를 수행하든, 출장을 가든.
미리 일정을 잡고, 일어날 일들을 대충이나마 예측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고민한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여행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달까.
훈련도 겸해, 그는 손수 목적지까지 올라왔다.
아침에 출발했으나, 벌써 해가 정점을 찍고 기우는 중이었다.
어림잡아 오후 두세 시.
이제부턴 제법 속도를 내야 하겠지.
‘내려가면 냇가가 있군. 오늘은 거기서 묵으면 되겠고…….’
냇가를 건너면 아무것도 없는 초원이 나온다.
광활한 대지를 누비는 초식 몬스터, ‘코모도’가 보였다.
거대한 갑각과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성격이 온순하고 길들이기도 쉽지만, 야생에서 마주친 코모도는 꽤 조심해야 할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이 사는 지대는 얼마 있지 않아 초원이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허나 마누스에겐 저 녀석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겐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지.”
초원 너머, 사막이 보였다.
모래를 헤엄치며 퐁퐁 튀어 다니는 사어(沙魚) 무리도 포착됐다.
그리고 다시 펼쳐지는 수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서 다시 계획을 짜기로 했다.
‘서둘러 움직이자.’
이제 곧 재앙이 찾아올 거다.
한가롭게 수련할 시간은 이제 끝났다.
진짜 생존을 위해 움직일 차례였다.
파직-.
전신에 마나를 둘렀다.
수호자들이 쓰는 마나 이용 방식.
아직 조금은 어설펐지만, 처음 한 것치곤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었다.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린 마누스가 움직였다.
재앙이 시작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2
“으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미안. 나도 사정이 있단다.”
“학생회장이면 다냐 이- 읍읍읍으븝-!”
마나로 움직이는 넝쿨이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했다.
은발의 사냥꾼, 알라노는 완벽하게 전투 불능이 된 동기를 바라봤다.
어느새 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파아앙-!
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이 신호탄은 번호가 새겨져 있어, 학생과 1:1로 매칭된 형태.
신호탄이 터졌다는 건, 곧 해당 학생이 탈락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곧 해가 지니까, 오히려 좋지 않을까?”
“으븡브읍-!”
입이 막혀 있지 않았다면, 험한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을 거다.
눈으로 험한 욕을 마구 쏟아붓는 동기생을 뒤로하고, 어느새 황혼으로 물든 수풀을 거닐었다.
이제 곧 시련이 찾아올 것이다.
그녀는 아직 닥쳐올 시련이, 재앙으로 변했다는 건 알지 못했다.
방금 탈락시킨 이의 임무는 [최대한 많은 식량을 모아라>였다.
그가 모으고 있던 것을 모조리 빼앗았으니, 허기질 염려는 없었다.
‘이제 머물 곳을 찾아야겠구나.’
밤엔 모두가 위험하니 움직이지 않을 거다.
몬스터의 습격도 조심해야 했으며 떨어진 체력을 충분히 보충해야 했으니까.
귀족들은 위생도 신경 쓴다.
-곧, 그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테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사실을 몰랐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이곳도 틈새의 시간이 존재할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알라노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항상 들고 다니던 회중시계가 없으니,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고작 시간을 확인할 수 없을 뿐인데, 이렇게 불편한 일이었나.
‘마누스…… 그리고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마누스는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고, 1학년 후배들은 열심히 탑에 오를 거다.
그녀가 없어도 탐사는 계속되어야 할 거다.
많은 적이 생겨났다.
평화롭던 일상에서, 갑자기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
그 무게감을 나눠 가질 동료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거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일주일.
절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생존해야 하지만, 수련을 멈출 순 없다.
그녀는 주변에 간단한 안전장치를 설치한 뒤 술식을 짜 올렸다.
5클래스.
인간을 뛰어넘는 분기점이자, 일류 마법사들이 발을 들인다는 영역.
천재이기에 넘볼 수 있고, 희대의 재능이기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노력하는 천재이자, 해리슨의 별이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왔다.”
푸르르르륵-!
재앙이 시작되었다.
#3
푸륵-!
푸르륵-!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누스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고는 신비한 현상에, 인상을 살풋 찌푸렸다.
붉은 물.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괴생명체.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개구리를 닮은 생명체.
오돌토돌하게 올라온 돌기, 큰 눈깔은 징그러움을 더했다.
“시련치곤 선을 넘는 것 같은데.”
이러면 난도가 대폭 올라간다.
사흘이나 버티는 자가 있을까?
피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시련이 아니라 재앙이다.
어째, 가는 길마다 운명이 멋대로 날뛴다는 생각이 드는 건 착각이려나?
화르륵-.
“개구리 통구이는 어떤 맛인지 궁금했는데-.”
수풀을 뒤덮는 화염이 몰아쳤다.
후끈한 열기에 닿은 피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역겨운 냄새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푸르르륵-!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 떼.
‘라눙’이라 불리는 생명체였는데, 어른 머리통만 한 개구리였다.
“불타라.”
[이그니라]콰르르르르르-!
화염의 기둥이 솟구쳤다.
내려앉은 어둠의 장막을 가르고, 환한 빛을 뿌렸다.
마법의 불이었기에 옮겨붙는 성질은 없었지만, 열기에 닿은 것이 모두 거멓게 죽어 갔다.
“-아.”
후욱,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었을 땐 주변이 모두 검게 변해 있었다.
피의 강이 졸졸졸 흘렀다.
식수를 자연적으로 구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재가 되어 버린 검은 덩어리들이 널브러져, 돌멩이처럼 굴러다녔다.
쯧, 마누스는 혀를 찼다.
모처럼 식량으로 써먹으려 했건만, 불 조절에 실패했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패시브와 패시브.
위력과 위력이 중첩되어 나타난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훗, 하고 미소가 지어질 정도.
허나 마누스는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손가락으로 붉은 물을 찍어, 살짝 혀를 가져다 댔다.
비릿한 맛이, 틀림없는 피였다.
푸르르륵-!
“무한 리젠도 아니고…….”
경험치나 마석 결정이라도 주면 모를까, 지금 녀석들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맞서 싸워야 할 존재가 아닌, 피해야 할 존재인 것.
마누스는 걸음을 옮겼다.
파앙-!
파아앙-!
어두운 밤하늘에, 아름다운 불꽃이 수놓아졌다.
신호탄.
첫날 밤이지만 족히 열 개가 넘는 신호탄이 하늘 위를 날았다.
뒤이어, 푸른 빛이 해당 지역에서 넘실거렸다.
“변별력 하나는 제대로겠군. 얘는 좀 잘 익었네.”
마누스는 적당히 익은 개구리 뒷다리를 뜯어 보았다.
뿌직-.
식감은 무척 질긴 칠면조 다리를 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대충 허기를 누른 그가 계속해서 서쪽으로 움직였다.
‘이것도 누군가의 개입인가. 아니면…….’
원래 이런 난이도였던 걸까.
당장 알 방법은 없었다.
그저 견디고, 나중에 진상을 파악하면 되겠지.
어느덧 여명이 비쳐 오기 시작했다.
빛을 싫어하는 라눙의 습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햇볕이 대지를 비추자, 개구리들은 다시 냇가로 총총 뛰어 들어갔다.
느긋하게 수련이나 하며 일주일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제법 긴장해야 할 것 같았다.
역시, 미토스 아카데미의 교육 수준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4
생존 이튿날.
강이 피로 변한 채였고, 심한 악취와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마누스는 코모도 한 마리를 잡아, 초원을 질주했다.
생존 셋째 날.
강이 피로 변해 있었고 심한 악취가 맴돌았으며, 야생동물에게서 고름이 피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선 살아 있는 몬스터를 잡아야만 했다.
마누스는 타고 왔던 코모도를 구워 먹었다.
생존 넷째 날.
강이 피로 변해 있었고 심한 악취가 맴돌았으며, 야생동물을 먹을 수 없었다.
거기에 곤충들이 일제히 부화해, 모든 것을 휩쓸었다.
마누스는 불의 장막을 둘러, 곤충들의 접근을 차단한 채 서쪽으로 향했다.
생존 다섯째 날.
강, 악취, 동물, 곤충에 더해, 하늘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작은 얼음 결정으로 변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지금보단 얌전하겠네.”
우박인지 진눈깨비인지 모를 무언가가 대지를 열심히 때리는 중이었다.
비가 내리자마자 무수히 많은 신호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끝까지 남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알라노는 무사히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천재이지만, 생존에 대한 지식은 부족할 테니, 아마 꾀죄죄한 몰골로 안간힘을 쓰고 있겠지.
그래도 탑에서 성장한 경험들은 그녀를 부쩍 강하게 만들었을 터다.
“슬슬 움직여야겠군.”
아직 바다는커녕, 제대로 흐르는 강도 발견하지 못했다.
시련인지 재앙인지 모를 가혹함이 은근히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
코모도를 구워 먹지 않았더라면, 이미 쫄쫄 굶고 바깥으로 쫓겨났으리라.
그는 하늘에서 내리는 거대한 쓰레기들을 뚫고 서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여섯 번째 날.
잠에서 깬 마누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충분히 잔 것 같은데…….”
몸이 말해 주고 있었다.
휴식은 충분했고, 포만감은 없었으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지났으리라.
하지만 왜일까.
왜, 세상은 이토록 어두운 것일까.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역겨운 악취는 그대로였고, 안식처 밖에는 아직도 우박이 떨어지고 있었다.
인공 섬이 아니라 지옥이 아닐까.
그래도 나아가야 했다.
이깟 시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을 보낸 그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었지. 수행평가나 학교 성적 따위는-.’
하지만, 이미 영혼 한구석에 자리한 마음이 허투루 하는 것을 거부했다.
무엇을 하든, 끝까지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빛 한 점 없는 하루.
마누스는 빛의 구체를 띄운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미약한 빛조차 없어,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는 술식을 하나 더 짜 올렸다.
[둑스]이젠 본격적으로 길잡이가 필요한 때다.
쿠우웅-.
그러다 문득, 이질적인 소리를 들었다.
빛이 없는 세계에서, 모든 것이 암녹색으로 바뀌었다.
“침식이…… 일어나지 않을 텐데.”
본디 법칙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게임의 법칙은 ‘아카데미에서만 침식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을 터.
게임의 근간이고, 세계를 형성하는 그 법칙이 깨졌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