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52화 – 혼란과 공포를 딛고 일어서는 법
#1
그날의 공포는 아직도 케일을 괴롭혔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채, 자신을 쫓던 아나이스.
주저앉아 엉엉 울던 피어슨.
마법이 제대로 영창되지 않아, 그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었던 자신까지.
멋대로 향한 대가는 컸으며,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후우-.”
작게 숨을 뱉어 본다.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날숨이 아닌, 잘게 떨리는 한숨.
그날 이후 사흘이 지난 오늘.
마누스와 알라노가 한창 인공 섬에서 재앙을 극복하고 있을 때, 그들은 35층에 올랐다.
케일도 있겠다, 전력도 빵빵하겠다, 그들은 당당하게 파수꾼 앞에서 마법을 휘갈겼다.
단단한 내구로 무장한 보스는 그들의 마법을 견뎌 내고, 한 가지 마법을 시전했다.
‘다시 설 수 있을까.’
강렬한 경험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건 인간이 가진 본성이며, 무의식적으로 끌리거나, 피하는 걸 택한다.
특히 안 좋은 방향으로 형성된 기억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제 손으로 동료를 구할 수 없었던 경험은,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었다.
마법은 꽤 자신 있는 분야였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하지만-.
“케일-. 안에 있어? 자는 거 아니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부르는 동료, 아나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진즉 준비는 끝내 두었다.
미약한 두려움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을 뿐.
눈을 들어, 자신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아나이스의 눈동자를 살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꽤 친해진 케일의 눈에는 보였다.
그녀 역시, 미약한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는 걸.
“-가자.”
“그래. 멜라니는 벌써 내려갔어.”
멜라니는 피어슨과 합류하겠다며 먼저 내려간 상황.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기숙사 밖을 나섰다.
평소 같았으면 조잘조잘 떠들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불쑥 말했다.
“……잘할 수 있겠지?”
“마누스 선배가 같이 가니까-.”
“만약 선배가 우릴 버리고 가면 어떡해?”
아나이스는 불안감을 그대로 표출했다.
마누스.
알라노.
최근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바가 컸다.
물론, 플로이스 가문도 한가락 하는 가문이고, 어디 가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가문이었다.
태양을 부린다는 가문으로 칭송받는 플로이스지만, 그 둘과는 격이 달랐다.
해리슨, 그리고 카이사르.
둘의 재능은 그녀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불안감과 조급함이 커져만 갔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소녀의 감성은 그만큼 예민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어.”
“난…….”
-불안해.
아나이스는 친구가 걱정할까 봐, 뒷말을 쓰게 삼켰다.
그녀의 불안감을 다른 동료에게도 전이시킬 필요는 없다고 느꼈으니까.
케일은 아나이스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나이스.”
“-응?”
“마누슨 선배는…… 우릴 위해 많은 걸 하고 계셔.”
“그, 그렇지.”
케일은 단호하게,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평소의 아나이스를 보는 것 같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러니까 의심하지 마.”
“…….”
아나이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 알고 있었다.
의심은 무슨, 오히려 그에게 엎드려 절해야 할 처지이지 않은가.
“……의심하는 거 아니야.”
천천히, 다시 곱씹어 본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정이 다가오기 전, 아나이스와 케일은 서로를 마주했다.
한 명은 완고한 믿음으로, 다른 한 명은-.
“불안해서 그래. 마누스 선배랑 알라노 선배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럴 사람들이 아니야.”
“나도 알아, 알고는 있어. 하지만…… 그날 기억나?”
망자의 밤.
그날의 일을 조사하고 있던 아나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마누스 선배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불안했어. 우릴 시험하려 드는 건 아닐지-.”
어디서 지켜보며, 그들을 계속해서 품평하고 앞으로의 가치를 가늠하는 건 아닐지.
그래서 35층에 도전하자고 말했던 것도 그녀였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언제고 떠나갈 것같이 멀어져 버린 두 선배.
항상 사랑받고 살아왔던 아나이스에겐, 흔들릴 듯 불안한 관계는 생소한 것이었다.
흔한 귀족 가문의 자녀들이 하는 착각이 있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거.
“-그런 거 아닐 거야.”
“하아…… 나도 모르겠다. 왜 이러는지.”
“……물어볼까?”
케일은 별다른 고민 없이 말한 내용이었지만, 아나이스에겐 아니었다.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켜켜이 쌓여, 곪아 가고 있었기에 행동하지 못했던 것.
확실한 정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생각에, 오해가 깊어졌다.
케일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아나이스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누스 선배에게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더 자신을 드러내면 좋았을 텐데-.
“물어보자. 왜 그랬는지.”
“그, 그래도 될까?”
“-응.”
선배라면, 분명 답해 주리라.
케일은 굳게 믿었다.
앞으로 많은 시일을 함께해야 할 동료이자, 친구였다.
여기서 깨질 인연이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던 것이 나았으리라.
케일은 이 인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잘못된 길로 가는 이를 바로잡아 주는 것도, 친구의 역할이라 배웠으니까.
#2
“……조금 늦는군.”
“차, 찾으러 다녀올까요?”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마누스에게 반응해, 멜라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누스는 고개를 저었다.
중얼중얼-.
갑자기 열띤 학구열을 보이는 피어슨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애써 무시하고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본능이 거부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정신적으로 내몰린 탓이겠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극복해야지.’
더 심한 패턴을 가진 존재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35층은 전초전일 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다면 올라갈 수 없었다.
오늘은 혼란과 공포 위에 서는 법을 알려 줄 것이다.
‘상태 이상을 푸는 방법이야 많지만-.’
보통은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전용 스킬을 사용하곤 한다.
후에 합류하는 동료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다음엔, 상태 이상도 그다지 신경 쓸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
이곳에서의 상태 이상이라는 건,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외상 후 스트레스를 평생 안고 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
아직 어린 학생이기에, 정신과 감정을 조종하는 공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게이트는?”
“아, 28층에 게이트가 있어요.”
“애들이 도착하면, 먼저 가 있어라.”
멜라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멜라니의 성장이 원작보다 빨라서 다행이었다.
정령들도 생각보다 빠르게 협조 태세로 돌입한 것 같아, 믿음직스러웠다.
마누스는 블랙과 화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층을 위해 배워야 하는 마법이 있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 오늘은 그 사기 눈깔 쓰면 뒈진다.”
“그런 거 안 쓰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화이트 정돈 말이죠.”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 두 사람.
구두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느껴진 것인지, 두 존재의 시선이 마누스에게로 향했다.
화이트가 의도적으로 테이블을 난장으로 만들며 일어섰다.
“오-! 오랜만이다!”
“……하아. 오래간만입니다.”
거의 다 이겼던 판이었는지, 물끄러미 테이블을 보던 블랙도 한숨을 쉬며 마누스를 반겨 주었다.
마석 결정 XL.
이거라면 원하는 마법이 무엇이든,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배울 수 있겠지.
“마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뭐 배울 건데?”
“[플람마].”
화이트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번져 갔다.
블랙 역시 마찬가지.
[플람마]는 일반적인 마법이 아니었으니까.인간이 아닌, 드래곤이 만들었다는 마법.
하급 마법이지만, 지금 인간들은 쓰지 않고 있는 고대 마법이었다.
화이트가 블랙을 바라봤다.
“이거…… 배울 수 있냐?”
“그의 역량이면 충분할 겁니다.”
“좋아.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럼 대가는?”
마누스는 품속에서 마석 결정 하나를 꺼냈다.
플람마 마법을 배운다는 것보다, 마석 결정을 보고 취하는 리액션이 더욱 컸다.
“이거 준다고? 너 호구야?”
“당장 가진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만. 뭣하면 적립해 주시죠.”
“좋아. 이 정도면 몇 달은 거뜬하겠는데.”
블랙 역시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고위 데몬들이 가지고 있는 마석 결정일 텐데-.
구하게 된 경위가 궁금했지만, 블랙은 입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이 남자는 특별한 힘을 지녔다.
이곳에 갇힌 자신들과 달리, 남자는 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조용히 받아,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일 터다.
“플람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는데, 어떻게 알았어?”
“저는 카이사르입니다.”
“카이사르…… 아, 카이사르?”
화이트가 놀라 물었다.
카이사르는 들어 본 적 있었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살았던 두 존재가 기억하는 가문.
그만큼 카이사르는 전통 있고 유서 깊은 가문이라는 얘기.
화이트는 유심히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더 잘생긴 것 같기도?
“역시, 천재의 핏줄은 다르네. 기억난다 야. 어쨌든, 플람마라는 거지?”
고대 마법.
숨겨진 요소 중 하나로서, 본래 특정 루트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야 배울 수 있는 마법이다.
2회 차부터는 해당 정보를 미리 알고 있으니, 제한이 풀려 버리는 맹점이 있었다.
마누스는 그걸 이용한 것.
“잘 따라 해. 고대 마법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하니까.”
우웅-.
밝은 빛이 퍼져 나갔다.
흑마법, 신성 마법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마법.
얽히고설킨 기하학적 술식이 마누스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신비롭군.’
마나의 배열, 안에 들어간 마나의 흐름.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기존 클래스 마법과는 또 다른 느낌.
별을 따라 그렸던 선분이, 아르카나의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플람마]그것은 황제의 축복이자, 모든 상태 이상을 제거하는 마법.
거대한 왕관 모양을 본뜬 마법진이 축복을 완성했다.
마누스는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마나를 뿜어냈다.
“-오오.”
다소 어두웠던 공간이 밝아졌다.
마누스는 집중했고, 그 누구보다 완벽한 술식을 재현했다.
카이사르.
그 위대한 혈통의 재능은 고대 마법의 정수를 완벽히 이해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건가.”
“고대 마법은 ‘무속성’ 마법이지. 약점을 찌를 수 없지만, 어떤 마법에게도 방해받지 않아. 익혀 두면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거야.”
화이트는 웬일로 말이 길었다.
마법을 익히는 덴 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플람마는 2클래스 수준의 마법이었으니, 원리만 이해한다면 어려운 마법은 아니었으니까.
시험 삼아 마법을 구현해 본 마누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그녀가 아쉬운 듯, 한 가지 마법을 더 알려 주려 했다.
“이만큼이나 받고 그냥 보내기엔 아까운데, 하나 더 배우는 건 어때?”
“시간이 없습니다.”
“에잉, 그럼 볼일 다 보고 잠깐 들러.”
그녀가 휘휘, 손을 저었다.
이들은 한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킨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마누스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밖으로 나섰다.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먼저 올라간 거겠지.
준비는 끝났다.
이제, 후배들에게 공포를 이기는 방법을 전수해 줄 차례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