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63화 – 재앙이 흘러내린다
#1
세상이 암녹색으로 물든 시각의 탑.
본래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서, 검은 물체가 흘러나왔다.
철퍽-.
슬라임처럼 끈적이고 불길한 마나를 풀풀 풍기는 무언가는 서서히 제 형체를 갖췄다.
[음-!]가면.
그 불길하고 오묘한 존재에서 특유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본래 가면을 쓴 존재들은 탑에 귀속되어야 함이 옳다.
지구라트.
죽음의 신이 권능을 부려 세운 탑은, 세상에 깃든 모든 죽음을 봉인한 곳이라고도 불렸으니까.
[으음-!]철퍽-!
하나의 소리가 더 들렸다.
둘.
아주 미약한 변화였다.
가면은 조용히 암녹색 세상을 유영하다,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탑의 위층이 막혀 있었고, 선택받은 이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또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떼고 있었다.
그들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학생이었으니.
하나라도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저 높이, 짐을 떠받들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
[음음-!] [음!]그들은 어둠 속을 주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건은 평안 속에 일어난다.
두 가면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개의 가면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재앙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아아암-. 하루에 여섯 시간이라도 따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 되게 유리한 것 같지 않아?”
“응. 그러네.”
암녹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두 여인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았다.
위험하긴 했지만, 기숙사는 탑으로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바쁘게 지식을 쌓는 중이었다.
남들은 겪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공부하는 맛이라니.
현대의 많은 학생이 들으면 기겁할 발언과 생각이었지만, 이곳 마법사들은 지식을 탐닉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쏟는다.
시간을 들인다는 건, 곧 강해진다는 말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정말 우리는 축복받았어.’
아나이스는 멜라니와 케일과 함께 월말 평가를 위한 공부 중이었다.
A반이라는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선 밤낮없이 공부해야 하는 위치.
이번 월말 평가는 대련과 필기, 몬스터 사냥.
세 가지 모두 중요한 과목이다.
특히 필기시험은 악명 높기로 소문난 트레일 교수가 직접 낸다고 하니, 마법적 지식을 제대로 습득해야 할 터다.
‘선배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오른 의문이었다.
임무는 잘하고 있을까?
선배라면 월말 평가에서 당연히 수석을 차지하겠지?
“……응?”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케일과 멜라니 역시 멍하니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아나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제안한 것.
모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말대로, 이제 집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해산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나이스는 새근새근 잠든 여인을 바라봤다.
다름 아닌, 자신의 룸메이트였다.
‘얘네들은 꿈에도 모르겠지.’
문득, 선택받은 자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당연하게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나이스는 자리를 정리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불을 끌어안고 눈을 감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어둠에 젖어 갔다.
#2
날이 밝고, 마누스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당당하게 임무 성공을 인증하는 문서를 들고서.
오늘 하루 역시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었다.
[호잉!]부쩍 몸집이 커져, 이제는 손바닥에서 주먹만 하게 변한 솜뭉치가 어깨에 올라와 소리쳤다.
알비온 덕분에 마누스의 이미지가 아주 부드러워졌는지,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학생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그러다 마누스와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똑같았지만.
“마누스, 돌아왔구나.”
“별일 없었나.”
불타는 날개를 가진 피닉스가 눈밭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우스꽝스럽다고 할지 모르나, 감히 학생회장인 알라노와 신수 피닉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마누스가 알라노가 아닌, 피닉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자, 알라노가 마누스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의 눈에 다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알라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여, 여기가 아니면 싫다고 하더라. 뻔히 보지 말아 줄래?”
“미안하군.”
마누스가 웃음 참기에 실패했다.
쿡쿡 새어 나오는 웃음에, 알라노는 더욱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별일이야 없었고, 곧 있을 월말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알라노는 노트 한 권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지난 수업. 월말 평가는 대련, 몬스터 사냥, 필기야.”
“언제나와 같군.”
“그렇겠지만, 아카데미에서 뭔가 변수를 준비할 거야. 나도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어.”
학생회장도 모르는 일이라면, 교수들끼리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리라.
그 어떤 조건을 붙여도 이겨 낼 자신이 있는 마누스는 곧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제 곧 탑의 다음 구역이 열린다.
그 조건은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것.
모두를 불러 모아, 다음에 있을 일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 줘야겠지.
대놓고 얘기하면 좋겠지만, 아직 녀석들은 성장할 때다.
‘이제 고작 한 달. 앞으로 3년은 더 강해져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이 평안한 날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누스 자신도 마찬가지.
“오늘 수업 후에 동아실에서 보지.”
“다 같이?”
“그래. 부탁한다.”
알라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누스가 자신들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노라고 확신했다.
망자의 밤 때도 그랬었지.
이번에도 지침을 내려 줄 것이다.
그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지금 그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임에는 틀림없겠지.
‘조금씩 조사를 하고 싶지만…… 카이사르는 건들지 못하니까.’
카이사르 가문에서도 탑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그에 따른 대항책을 수십 년 동안 준비했다면.
지금 마누스가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알라노는 친구를 믿어 보기로 했다.
“내가 전달해 놓을게. 오늘도 3학년 수업?”
“그래. 이따 보지.”
마누스는 로브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그녀는 서로의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헤어졌다.
이변이 시작된 것은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마누스라는, 거대한 이레귤러의 눈을 피해 일어났다.
자리는 두 개가 비어 있었다.
2학년 A반.
최고의 수재만 모아 놓은 곳에, 빈자리는 정말 어색한 광경이었다.
‘하나는 마누스고…… 다른 하나는 누구지?’
교수가 들어오기 전, 알라노는 누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을 터.
‘가문이 없었고……. 루페라인가?’
평민 중에서도 실력자는 분명 있다.
귀족의 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루페라가 대표적인 예였다.
특히 마누스를 무서워하던 동기였다.
붉은 머리칼에 작은 키.
한쪽 얼굴에 있는 점 하나가 인상적인 친구였다.
조용하고 소심하지만, 마법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친구였다.
‘임무를 수행하러 갔나?’
“모두 반갑다. 월말 평가 때문에 바쁠 텐데, 오늘은 특별 수업을 해 보자꾸나.”
때마침 교수가 들어와 반가운 이야기를 건넸다.
연금 수업.
포션과 약품을 제조하는, 다소 실용적인 학문이었다.
특히 조합법을 외우는 건 필기시험에서 변별력을 기르는 문제들로 출제되었다.
간단한 인사 후에 출석을 부르는 교수님.
알라노는 교수님의 대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누스 학생은 3학년 수업을 들으러 갔으니까, 결원은 없네요.”
“교수님, 루페라 학생이 안 왔습니다.”
알라노가 바로 답했다.
평민이라곤 해도 아카데미 학생이다.
그런데 교수라는 작자가, 그를 잊을 수 있나?
아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성실하기로 소문난 연금술사.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 약재를 달달 외우는 교수였다.
쓰임새부터 생김새, 냄새와 특징 등등.
“음? 루페라? 그런 사람은 우리 아카데미에 없습니다만.”
“-네?”
알라노는 순간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진짜 까먹은 건가?
아니면 마법에 걸렸나?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촉망받던 인재였다.
1년간 같은 A반에 있었고, 교수들과도 나름 친분이 있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루페라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가문에서의 일과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음…… 아무리 생각해도 루페라라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군요.”
“아, 제,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요새 일이 많을 때죠. 쉬엄쉬엄하세요.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알라노는 얼빠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설마 자신과 같이, 루페라를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허나 그 누구도 그녀의 표정과 감정에 공감하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 뭐 잘못 먹었어?’
‘너 오늘 이상해.’
알라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들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왜, 왜 자신만 인지의 부조화를 겪는가.
아니, 다른 이들은 왜 루페라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수업 시간이 지나가는 내내,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이변에 대한 원인을 생각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알라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평소 절대 뛰지 않던 그녀였다.
귀족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았던 알라노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허울, 모조리 집어치우며 3학년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마누스!”
느긋하게 수업을 마치고 3학년 교실에서 나온 마누스를 발견.
그녀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기에, 폭군이라 불리는 마누스의 손목을 덥석 잡고 걸음을 옮겼다.
마누스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던 이들이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본 것도 당연지사.
“어머, 쟤네 둘 뭔가 있나?”
“하긴…… 저 둘이면 제법 잘 어울리지 아마?”
“해리슨이랑 카이사르잖아. 저렇게 친한 것도 이해는 가.”
그런데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올 정도라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가문끼리 혼담이라도 오갔나?
본래 소문은 천리마처럼 빠르게 달리는 법이고, 아카데미에 소문을 좋아하는 이는 많았다.
알라노는 정말로 심각한 일 때문에 움직였지만, 이미 인식이 뒤틀려 버린 사람들은 헛소문을 만들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끌고 가는 알라노를 바라보는 마누스.
그 역시 드물게 당황했다.
“큰일이라도 났나?”
“마누스. 루페라라고, 기억나?”
당연하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으니,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독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도.
A반의 유일한 평민이라서 더욱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누스의 머리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노는 하아-, 하고 깊은 숨을 내뱉었다.
“다행이야.”
“무슨 일이지? 설마…….”
마누스는 이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아직, 아직 그 일이 일어날 시기는 아니었다.
월말 평가 후, 탑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가 시나리오의 시작이었을 텐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알라노에게 물었다.
불길한 예감이 틀리길 바라면서.
하지만,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
“아무도…… 아무도 루페라를 기억하지 못해. 아무도-.”
“…….”
마누스의 인상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