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68화 – 침입자의 정의
#1
탑.
마누스를 제외한 모두가 탑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여섯 시간.
황금빛 시계가 허락한 시간을 모두 사용했지만, 에머슨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표정은 딱딱해졌고, 말은 점점 없어졌다.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모두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에머슨에 대한 걱정, 다음 희생자가 반드시 나올 것이란 공포, 혹여 그 희생자가 자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에머슨,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케일은 가장 앞에 가는 알라노의 은빛 머리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디 있는 거야-.
에머슨을 찾지 못한다면,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여기 있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사고였음을.
하지만, 어리고 순수한, 아직 학생인 이들에게 이 부담감은 실로 무거운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 말이 많던 피어슨도 무겁게 침묵했을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하아-.”
“조금만 더 찾으면-.”
알라노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찾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계속 이 탑을 오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탐색은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녀의 눈에도 지금 후배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탐색을 강행했다간, 이들도 사고를 당하겠지.
“다들 피곤하니까 일단 쉬어야 해.”
“하지만…….”
“기약 없이 탑을 헤매다 우리도 당하면? 길게 보자 얘들아.”
알라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런 말을 하는 알라노의 눈빛과 표정 역시, 편치 않았음을 모두가 보았다.
멜라니는 분한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케일은 공허한 눈동자로 주변을 훑었다.
‘내일 그녀가 시체로 발견되면 어쩌지-’라는, 끝없는 불안감.
그들의 불안감을 조금 덜어 주기 위해, 아나이스가 애써 입을 열었다.
“괜찮아. 프라이머리 가문이잖아.”
“프라이머리 가문……. 맞아요. 희망은 있겠네요.”
“문제는 다른 한 명이지.”
에머슨은 특유의 능력을 살리면 희망이 보였지만, 문제는 루페라였다.
그는 평범한 마법사.
가문의 피를 물려받지 못한, 전형적인 공격형 마법사였다.
어디에 속해도 제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그 이상 올라가기엔 매우 힘든.
그렇기에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을 거다.
끊임없이 헤매다, 계속 몰려드는 데몬들을 상대할 것이다.
그러다 체력과 마나가 고갈되어 쓸쓸하게 죽어 가겠지.
“-가자.”
“내일은, 꼭 찾아요.”
“그래야지.”
그들은 하루 만에 친구가, 선배가 죽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탑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 알라노는 1학년들에게 당부를 거듭했다.
그녀의 눈길이 지친 영혼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어. 너희들이 지치면 안 돼.”
“선배도, 푹 쉬어야 해요.”
케일의 입이 달싹이며 알라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알라노는 더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꼭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고 헤어졌건만, 머릿속은 왜 그렇게 복잡한 것인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2
다음 날.
케일은 퀭한 눈을 비비며 가까스로 기숙사에서 벗어났다.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감기 기운이 좀 도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여러모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기숙사 앞에서, 아나이스와 멜라니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둘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녕-. 잘 잤어?”
“-아니.”
“우리도 그래. 어휴……. 일단 가자.”
교정으로 향하는 길에, 그들은 피어슨을 만났고 마누스를 마주쳤다.
일부러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우두커니 서 있는 마누스.
귀여운 솜뭉치 하나를 어깨에 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젯밤 지독히도 그들을 괴롭혔던 불안감을 씻어 내는 청량함을 가지고 있었다.
케일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자마자 괜스레 웃음이 피어났다.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숨길 수 없는 생리 현상이랄까.
그녀의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선배에-.”
“왔군.”
오늘따라 케일의 눈이 퀭하고, 표정은 잔뜩 풀어져 있었다.
혹시 어젯밤, 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지 걱정되는 마음에 한마디 건넸다.
“현혹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녜요. 단지, 잠을 못 자서…….”
“걱정 마라. 시체가 나왔다는 보고는 없으니.”
케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침 일찍, 이사장에게 향했다.
시체는 오전 여섯 시에 교정 어딘가에서 발견된다.
다행히도 오늘 아침, 그 어디에서도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일이 생겼다면 아덴이나 이사장이 제일 먼저 그들을 불러냈을 것이다.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수업 잘 듣고, 퍼지지 않게 조심해라.”
“네에-.”
“선배는 괜찮아요?”
걱정해 주는 물음에,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가온 아나이스가 살갑게 물은 것.
요새 부쩍 그녀는 마누스에게 살가웠다.
평소 성격도 친근감이 넘치는 아가씨였지만, 그때의 면담 이후 더욱 쾌활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긍정적인 변화였다.
마누스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들의 표정 속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꼈다.
[간섭을 시작합니다.]이런 말 한마디도 간섭에 포함되는 건가.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
무슨 말, 무슨 표정, 무슨 행동을 해야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라. 알라노나 나에게.”
“-정말요?”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크게 뜬 세 여인과 한 명의 남자.
이들에게 있어, 아직 자신은 어려운 선배일 터.
적당한 거리감은 유지하되, 이들의 정신적인 부분을 캐어해 줄 정도로만 간섭하면 되겠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들어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되었다.’
자신은 알라노처럼 세심한 성격이 아니었다.
허나 이들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
전생에는 하지도 못하고 할 생각도 안 했던 선배 노릇이라는 걸 해 보기로 했다.
한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벌써 부담감을 어느 정도 벗어던진 이들이 보였다.
젊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실패를 겪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설령 너희들이 구하지 못해도, 너희에겐 잘못이 없다. 이 세계가, 탑이, 그리고 데몬들이 잘못했을 뿐이지.”
“……그래도 우리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맞아요. 우, 우리가 실패하면…… 결국 죽는 거잖아요.”
마누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거다. 후회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니.”
그의 이야기는 어린 친구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다.
죽어 가던 눈빛에 생기가 돌아온다.
마누스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간섭을 확인했습니다.]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좋군. 짤막한 상담으로도 보상을 얻을 수 있다니.’
이런 보상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할 생각이 있었다.
조그마한 것들이 쌓이다 보면, 충분히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어쨌든, 오늘은 두 사람이 살아 있는 걸 확인했다.
불안감은 초조함을 만들고, 초조함은 조급함을 만든다.
마누스의 역할은 루페라를 찾는 것과 이들이 잘 버틸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것.
조급함은 언제나 큰 사고를 부르는 법이니-.
“너희들은 잘해 주고 있다.”
“-네.”
후배들이 미소 짓는다.
그래, 지금은 이걸로 되었다.
이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들은 한층 밝은 얼굴로 아카데미 내부로 향했다.
“아, 그리고-.”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월말 평가를 준비함과 동시에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해결해야 하니까.
마누스의 마지막 말을 들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래도 이들은 누군가가 희망과 정의, 약간의 오글거림을 넣어 만든 존재들.
충분히 잘해 내리라 믿었다.
#3
황금빛 시계가 움직이는 시간.
마누스는 블랙과 화이트를 찾아왔다.
나머지는 오늘도 수색에 나선 상황.
한 손에는 유행하는 보드게임이 잔뜩 들려 있었다.
오늘도 지루한 표정으로 카드 패를 바라보고 있던 블랙이 흘끔, 그를 쳐다봤다.
지루함이 뚝뚝 묻어 있는 얼굴에서, 한순간에 밝은 얼굴로 바뀌는 모습이 제법-.
그가 패를 묻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지루한 카드 게임이 끝났다.
“아- 이길 수 있었는데! 너 때문이잖아!”
“선물 가져왔는데, 다시 가져가야겠군요.”
“뭐?! 야 블랙, 너 카드 패 좀 본다. 아…… 이 새끼 또 기술 썼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마누스는 보드게임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본론을 이야기했다.
데몬이 탑 밖으로 나왔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다.
시간의 틈새에 있는 이들이 현세로 나온 것이다.
있어선 안 될 존재들의 침범.
블랙은 은은한 조명의 빛을 받아 푸른 빛을 내뿜는 마누스의 눈동자를 보았다.
“데몬이 탑 밖으로 나왔습니다.”
“-뭐? 그거 불가능한 일일 텐데?”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든, 자력으로 나왔든, 결과가 그렇습니다.”
마누스의 말은 차가웠다.
화이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다니, 어딘가로 향했다.
블랙은 반대로, 마누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그의 눈동자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탑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가 느슨해졌다는 것.
흔히 사람들이 결계라고 부르는 것의 일종이었다.
“화이트가 확인하러 갔으니 곧 이유가 밝혀질 겁니다. 따로 피해를 보신 건?”
“사람 두 명이 실종됐습니다.”
“저런…… 조속히 처리해야겠군요.”
블랙이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외부인은 이 일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세상의 탐욕, 그리고 혼란과 맞설 수 있었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
그래서 더욱 외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길은 저희가 제시하겠습니다. 보상도 두둑이 드리지요.”
“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그런 겁니까?”
블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매하게 올린 입꼬리가 그의 심경을 대변해 주었다.
여기서 붙들고 늘어져 봤자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대신, 마누스는 이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뜯어내기로 했다.
“그렇담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십쇼. 제가 해결할 테니.”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보잘것없는 곳이지만, 성심성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야아아-! 큰일 났어!”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하는 사이, 화이트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경악이라는 감정을 한껏 뿌려 놓은 채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블랙은 화이트의 눈동자가 심히 떨리는 걸 바라봤다.
저자가 이렇게 당황했던 적이 있던가?
아니-.
우리가 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저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던가?
“현실과 틈새의 경계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데몬들이 계속해서 희생자를 만들겠지.”
“우리들의 힘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아마. 외부의 존재와 계속해서 접촉했기 때문이겠지.”
그녀의 두 눈은 마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블랙 역시 마누스와, 그와 함께 탑을 헤집고 다니는 일행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대들은, 구원자인 동시에 재앙을 불러오는 자들이군요.”
“지구라트. 이 틈새에서, 우리는 그런 존재겠지요.”
마누스는 화이트가 했던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영역에서나, 보금자리를 침범하는 이들은 침입자일 뿐이니.
하지만, 그래서 멈추겠냐고 묻는다면 단호히 고개를 저으리라.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아갈 이유와 목적은 충분하니까.”
“-그래?”
화이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그리고 학창 시절에 털털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던 어느 누나가 생각나는 미소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길을 알려 주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거야.”
그녀의 말은, 곧 선전포고였다.
선택받은 자들과 탑.
현세와 지옥 간의 작지만, 치열하고, 끔찍한 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
마누스는 남몰래 두 손을 꾹 쥐었다.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도 잔뜩 일어나겠지.
‘그러니, 뭐든지 다 뜯어내야겠군.’
눈앞에 적극적으로 호구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데몬, 데모니움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지식은 꼭 필요할 터.
마누스는 선언했다.
“당신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꽤 자신만만한데?”
“그렇지 않으면, 탑에 잡아먹힐 테니까요.”
두 사람의 얼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래, 그렇겠지.
탑은 그런 곳이었다.
공포를 먹고, 절망을 마시며 성장하는 곳이었다.
“제 친구를 먼저 찾아야겠습니다.”
“좋아. 우리가 도와주지. 현세에 며칠 못 돌아갈 거야. 괜찮겠어?”
그 전쟁의 전초전이 될 사건.
그건, 루페라와 에머슨을 찾는 일이었다.
마누스는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