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7화 – 결속엔 집단이 필요하다
#1
이사장은 이제 막 2학년이 된 마누스를 바라봤다.
뭐랄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1학년 때의 그는 한없이 오만하고 주변을 돌볼 줄 모르는 자였다.
차분하지 못했으며, 약한 이들에겐 가차 없었다.
사용인들에게도 손찌검했지만, 오직 카이사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무언가…… 한층 더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을 짓누르는 이가 있다.
흔히들 제왕의 자질이라고 부르는 기운.
오랜만에 보게 된 마누스는 진정, 카이사르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군요. 그래, 무슨 일이죠?”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짜고짜 도움이라니-.
그 성격은 여전한 것 같았다.
“마누스 학생 같은 사람이 도움이라니, 의외인데요? 무슨 일일까요?”
“동아리 하나를 만들고 싶습니다.”
“동아리? 그래…… 조금 있으면 동아리 시즌이긴 하군요. 정식으로 제출하면 될 텐데, 저에게 굳이 왔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겠죠?”
이사장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무표정한 마누스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넘기며, 그는 후후 웃었다.
그 작은 미소가 항상 꺼림칙했지만, 그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이사장님이 들으시면 바로 승인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제가요?”
“이상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세계가 있더군요. 그 출입구는-.”
“-그만.”
그의 뱀 같은 눈동자가 뜨였다.
아무런 전투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사장, 닉스.
그가 손을 올려 말을 끊은 것만으로 공기가 변했다.
이사장은 뱀 같은 눈빛으로 마누스를 바라봤다.
폭군에 뒤지지 않는 포스가 스멀스멀 공기를 장악했다.
숨이 턱 막힐 위압감이었으나 카이사르는 태연했다.
마누스는 의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사장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요.”
닉스 이사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후우우-.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들고 있던 펜으로 톡, 빈 종이를 두들겼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또 아는 사람은 누가 있죠?”
“알라노가 엮였습니다.”
이사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빈 종이에 찍힌 점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구라트.
예부터 존재해 온 저주받은 탑이자, 아카데미가 방치한 유일한 비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맥이 끊겼을 줄 알았는데.
이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선택받은 자’라고 불렸다.
탑은 항상 제물을 필요로 한다.
‘선택받은 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이들까지도.
선택받은 자들은, 탑의 제물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기도 했다지.
‘하필 카이사르인가. 분위기가 바뀐 것도 이것 때문이었던가?’
이사장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을 이었다.
마누스는 아무런 말 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고민을 마친 이사장이 눈을 떴다.
그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올라가셨습니까?”
“-5층입니다.”
“홀로 5층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탑은 저주만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남겨져 있는 정보.
그곳이 외부의 던전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둘 중 하나의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탑에 먹히거나, 탑을 잡아먹거나.
‘하지만-.’
그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재능 있는 이들은 거만했고, 재능 없는 자들은 탑에 삼켜졌다.
이사장은 그 과정 중 일부를 직접 목격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탑에 들어가는 걸 허락할 순 없습니다.”
“만약, 탐사할 수 있는 전력이 갖춰진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둘이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마누스는 옅게 웃었다.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 거슬린 걸까.
아니면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걸까.
이사장의 한쪽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마누스가 쐐기를 박았다.
“오늘은 두 개의 보름달이 뜨는 날이군요.”
“맞습니다. 바깥출입이 엄금이지요.”
“이사장님은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십니까?”
마누스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고 거침이 없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닉스 이사장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지켜보시고, 최종 승낙을 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렇다면 동아리 설립 원서, 친필 서명만 해 두세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인 이들은 집단을 형성한다.
-협회, -조합, -회, -동아리 등등.
결속을 위해 집담을 형성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본래 알라노가 설립하게 되는 동아리지만, 도움은 미리 구하는 것이 낫겠지.
‘고생을 덜어줄 수도 있으니까.’
알라노는 그런 캐릭터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도 뛰어드는 아이.
온갖 멸시와 무시,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을 받아도 뛰어드는 아이.
그 끈끈한 정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
하지만, 그녀는 동아리의 정신적 지주로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
“동아리장은 마누스 학생, 본인입니까?”
“해리슨 알라노. 그녀가 동아리장이 될 겁니다.”
마누스가 말했다.
아니, 여기서는 임명이라고 봐야 하나.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를 위한 동아리가 창설되는 중이었다.
#2
하아-.
알라노는 한숨을 쉬었다.
수업 내내 집중이 되질 않아 혼났다.
오늘 배운 게 뭐였더라-.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침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정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으-. 이래서야, 학생회장의 체면이…….’
“알라노.”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마누스.
오전 오후 내내 그녀를 괴롭게 했던 장본인.
그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라노의 기다란 눈썹이 휘었다.
쟤는 또 왜 여기에 있는 거람.
그렇게 엮이기 싫어했으면서-.
“잠깐 얘기 좀 하지.”
“후우……그래.”
그녀는 작은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해 빠졌다니까.
마누스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으니.
두 사람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걸어, 쌍둥이 탑 중에 왼쪽으로 넘어갔다.
각종 시설이 있는 왼쪽 탑.
알라노는 어제 그 일이 생각나, 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 변하진 않겠지?”
“맞아.”
“그래서, 용건이 뭐야?”
주변을 둘러본 그녀가 물었다.
마누스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녀의 눈동자가 종이에 쓰여 있는 글자를 빠르게 훑었다.
“동아리 설립?”
“그래.”
아니, 안 그래도 학생회장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갑자기 웬 동아리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녀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이 남자는 도통 생각을 알 수 없다니까.
그녀가 거절하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마누스의 말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이상 현상에 관한 건 이사장님이 알고 계신다.”
“무, 뭐?”
“이사장님의 나이가 몇인지 알고 있나?”
이제 주름이 조금씩 진해지기 시작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그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었더라?
누군가에게 ‘미토스 아카데미의 이사장’을 말하면 하나같이 ‘닉스’라는 이름을 떠올린다는 걸 상기했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조차.
“꽤 오랜 기간 지켜봐 왔겠지.”
“그분이라면,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신청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서명해라.”
“……문화 교류 동아리?”
이름 한 번…….
그래, 그래도 비밀스러운 이름 보단 튀지 않는 편이 좋겠지.
알라노는 찬찬히 서류를 살피다 한 곳에서 멈춰 섰다.
“그런데…… 왜 장 이름에 내가 있는 거지?”
“네가 그 자리에 어울리니까. 활동은 없다. 그저 단원을 모으고 전력을 확충하면 된다.”
“전력이라…… 우리같이 그쪽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생길까?”
마누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으로 가능할까?
알라노는 어젯밤, 그 끔찍했던 미로와 온몸에 공포라는 감정을 새겨 준 괴생명체들이 생각났다.
고작 학생인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녀의 펜 끝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할 수 있다. 너희라면.”
[간섭이 시작됩니다.] [간섭을 확인하였습니다.] [보상 : 마석의 흡수율 상승]마누스의 음성을 듣자, 마법같이 떨림이 멈췄다.
왜 우리가 아니고 너희일까.
알라노는 그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마냥 이끌어 줄 수 없다는 뜻이겠지.
마누스 역시 도움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홀로 그곳을 드나들었으니, 아마도 조사가 목적이겠지.
그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굳이 그 위험한 곳을 가려는 걸까.’
“탑을 내버려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원론적인 이야기.
왜 탑을 공략해야 하고, 그곳에 주기적으로 드나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날카롭고 정석적인 내용에, 마누스는 간단하게 답했다.
“모두가 죽는다.”
“…….”
탑은 희생자를 찾는다.
마누스는 지구에 있을 때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곳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소재가 바로 ‘던전 브레이크’였다.
탑도 마찬가지.
탑의 주민들은 계속 늘어날 테고, 탑이, 세계가 가둘 수 없다면 밖으로 새어 나온다는 것.
그 밖에 여러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장은 둘 뿐이네.”
“전력은 늘어날 거다. 네가 잘 이끌어 줘라.”
“응? 내가?”
진짜 강해져야 하는 건, 주인공인 너희들이니까.
과도하게 마누스 본인이 어든다면, 이들은 절박함을 느끼지 못할 거다.
진정으로 죽음과 맞서고 삶에 대해 고민해야 성장한다.
그게 이 게임의 캐릭터들이었으니까.
한정된 인원.
한정된 자원.
한정된 마법으로 탑을 올라가야 하는 게임.
그래서 더욱 재밌었고, 각 캐릭터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저 성적만을 위해 달려가던 학생들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아가는 과정.
-마누스는 그 성장을 빼앗을 권리가 없었다.
“너희가 강해져야 한다.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을 테니.”
“……알았어. 네 마음.”
마누스는 정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걸 알고 있었으나, 굳이 모든 걸 알려 줄 필욘 없다.
그들을 거대한 절망감에 휩싸이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의 미소는 즐거움이 아닌,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알라노는 그의 지식에 한 발자국 다가가고 싶었다.
언젠가, 빚을 갚을 날이 오겠지.
‘역시, 그간 너는 이 모든 걸 조사하고 있었구나.’
알라노는 덤덤하게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을 보고, 많은 것을 유추했다.
더불어, 어젯밤 들었던 의구심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마누스는 일부러 그랬던 거겠지.
이 제멋대로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들밖에 없다고 하니-.
“좋아, 하겠어.”
해리슨 알라노.
그녀의 이름이 수려한 필체로 적혔다.
완성됐다.
이 게임의 주요 조직 중 하나인 문화 교류 동아리.
‘그 문화 교류가 데몬과의 교류인 게 문제지만.’
출발은 나름 순조로웠다.
다음은 알라노와 주인공 일행과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것만 하면 되겠지.
마누스는 걸음을 옮기기 전, 점잖게 말했다.
“오늘 밤은 밖에 있는 게 좋을 거다.”
“-오늘?”
그녀도 보름달이 뜨는 밤의 전설 정도는 알고 있다.
오늘 밤에 나가는 것이 교칙 위반인 것도.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난 학생회장인데?”
마누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던지고 사라졌다.
이렇게 뜬금없이 사라지지만 않으면 참 좋을 텐데.
폭군의 이미지가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3
해가 지고, 두 개의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키듯, 두 개의 동그란 달이 지평선을 넘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누스는 그 모습을 창밖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스.
전설로만 내려오던 신이 자신의 권세를 떨치는 날.
모든 세계가 뒤집히고, 모르스는 ‘희생양’을 고른다.
99.99%의 인간은 아무런 이상 없이 하루를 보내겠지.
‘선택받은 자와 희생양은…….’
죽음의 신은 희생양을 찾아 하수인을 보내게 되고, 그건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함으로 다가온다.
희생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끌려온다.
석 달에 한 번.
죽음의 신에게 내려진 유일한 수확제였으니.
아무리 강해도 해당 사건 자체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
그와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기도 하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고, 아무도 조언해 줄 수 없는 환경.
오직 그들만의 힘으로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의 활약을 두 눈으로 보겠는걸.’
오늘, 주인공인 케일은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주인공 보정이 내려진, 압도적인 재능.
그 뛰어난 마법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첫 보스를 무찌르게 될 거다.
동시에 비일상으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되겠지.
‘카덴차의 본격적인 활용 시기이기도 하고.’
제법 기대되는 일 아닌가.
마법의 합성.
아득한 체급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기적인 패시브.
본격적인 위력을 본 플레이어들의 열광을 끌어냈던 이벤트가 임박했다.
마누스의 기숙사는 가장 꼭대기.
아카데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오늘은 이곳 로열층에서 느긋하게 이벤트를 감상할 생각이었다.
사실 마누스를 제외한 진짜 튜토리얼 보스라 보면 되는데, 카덴차의 사용 설명과 더불어 기본적인 전투를 학습하는 이벤트.
이면 세계에서 느껴졌던 불길한 마나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 마나가 아카데미의 탑에 닿는 순간-.
“-시작이군.”
두 개의 붉은 달이 완벽하게 원을 그린 밤.
구름 한 점 흘러가지 않는, 완벽하게 멈춘 세계.
죽음의 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먹잇감을 찾는 시간이 도래했다.
그리고-.
[으으으으으음―――――――――!!]녀석이 나타났다.
마법사 – 에이스.
마법사 아르카나의 정점이 바로 이곳에 강림했다.
마법사답지 않게, 검을 들고 있는 녀석.
네 개의 검을 들고,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 등장했다.
마치 중세 시대에 나오는 의사처럼 길죽한 가면을 쓰고 있는 자.
붉은 안광이 지정된 희생양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두 눈으로 보니 알겠어. 녀석들은 확실히…….’
마치 죽음의 신이 내려다보는 듯 환한 두 보름달의 빛을 받으며, 그가 누군가를 바라봤다.
보이는 모든 것을 도륙하는 칼날의 표적은 죽음의 날, 겁 없이 밖에 돌아다녔던 어린 소녀였다.
“어-.”
소녀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내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죽음이 드리운 밤.
-두 명씩 짝을 지어 시작된 담력 테스트 대결.
치기 어린 학생들의 도전은 곧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소심한 그녀는 친구의 소매를 꼬옥 붙잡고 불이 모두 꺼진 기숙사까지 걸어갔다.
콩닥콩닥 떨리는 심장.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눈에 너무 힘을 줘, 관자놀이가 뻑뻑했다.
“이, 이게 뭐야-.”
갈색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다.
그녀와 함께 교정을 거닐었던 친구는 어느샌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보이는 건, 섬뜩한 칼날을 가진 가면의 괴인.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어어-!”
반사적으로 이끌어낸 마나는 요지부동이었다.
먹잇감.
데몬과 데모니움이 사냥감으로 점찍은 이들이 겪는 현상에, 그녀는 무력한 일반인이 되어 버렸다.
눈앞이 흐려졌다.
납득 가지 않는 상황에,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음음-!]담력 테스트가 아니라, 진짜 담력이 필요한 때가 왔다.
하지만 칼을 갈며 다가오는 재앙에, 그녀는 버티지 못했다.
죽음의 공포가 그녀를 덮쳤고, 그녀는 결국 정신을 놓아 버렸다.
공포감을 느끼느니, 편하게 죽겠다는 감정이었을까.
[음-!]마법사 가면 특유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죄악의 팔들이 먹잇감을 겨눴다.
칼을 휘두르고 피를 흘리게 만든다.
가면의 목적의식은 그것뿐이었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태어난 이유.
죽이고, 피를 취해 주인께 진상한다.
그 본능에 이끌려, 모르스의 하수인이 움직였다.
단순한 행동에 사람 목숨 하나가 날아가려고 할 때, 달을 가리는 태양이 나타났다.
[이그니]콰아앙-!
태양처럼 뜨거운 화염이 희생을 막아냈다.
“-당장 그만둬, 이 괴물 자식아.”
붉은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 적발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