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6)
제76화
76화 – 열심히 말고 잘
#1
소문이란 건 참 무섭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소문은 더욱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간다.
말이라는 매개체는 오묘하고도 사악한 것이라,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아카데미라는 특성상, 그 소문은 더욱 크게 와전되고, 더욱 깊이 왜곡되었다.
마누스.
최고의 마법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인재가, 드디어 혁명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3학년의 아성에 도전하는 자.
그 위명이 아카데미 내부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마누스. 학생회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
“상관없다.”
오늘도 마누스는 3학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카이사르 가문이기 전에, 그는 2학년 마법사였다.
3학년 입장에선 건방진 후배라는 것.
손윗사람들은 본래 하극상을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그건 3학년도 마찬가지.
특히, 3학년 학생회는 마누스를 고깝게 보고 있었다.
알라노는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마누스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선배는 위험해. 알지?”
“음.”
“정말, 걱정해 주는 보람이 없네.”
“-괜찮다. 이미 우리 둘은 그녀가 갖추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갖췄으니.”
마누스는 정말 태연해 보였다.
알라노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잘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모르는 누가 봤으면, 핑크빛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을 거라 판단할 정도로 물끄러미.
걱정이 많은 자신이 잘못된 것일까.
누군가가 의욕을 불태우고,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알라노 본인에게 쏟아지는 감정은 익숙하지 않았다.
위대한 가문이라 불리는 집안.
거기다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재능까지.
‘부담스러워하는 건가.’
“흠흠-.”
마누스는 시선을 의식하고 눈을 돌렸다.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퍽 귀여웠다.
옛날엔 저런 시선들로 인해 착각했던 적이 있었지.
작은 희망, 혹은 아주 작은 자존감 챙기기.
하지만 이젠 간질간질한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과 스쳐 가고, 그들의 시선과 인식을 받으며 살아간 세상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그렇게 무뎌지게 만들었나. 나도 찌들긴 찌들었나 보네.’
“괜찮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린 더 강해.”
“-응.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뒤에서 말하는 것들에게 가장 좋은 처방전은 직접 보여 주는 거지.”
실컷 떠들라고 해라.
그런 놈들치고 실속을 챙기는 이들이 없더라.
진짜 무서운 놈들은 떠들며 소문을 만들고 다니는 자들이 아니라고.
마누스는 어린아이들의 뜬구름 잡는 헛소문은 애교 수준인 곳에서 살아왔다.
힘이, 마나가, 그 밖에 다른 수단이 없으니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기 위해선 말로 승부를 봐야 했으니까.
정치, 소문, 음해…….
질리도록 경험했던 것에 비하면, 여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3학년이라……. 이길 수 있겠지?”
“그래. 정 불안하면 탑에 다녀오는 건 어떤가. 쓸 만한 아티팩트를 구해서 오는 것도 좋겠군.”
“동의해. 후배들에게 물어봐야겠네. 먼저 일어날게.”
“음.”
마누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멀어져 가는 기척을 느꼈다.
그녀도 나름대로 목표가 생겼을 것이다.
남은 것은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하느냐겠지.
5클래스.
그 너머 6클래스의 정수까지 담겨 있는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기척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후우-.”
오늘 책 읽긴 글렀군.
텁텁한 소리를 내며 닫힌 책이 그의 기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금발의 사내가 곧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저렇게 존재감이 강렬하니,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이봐.”
“…….”
마누스는 턱을 들고 그를 쳐다봤다.
기예르모는 불만이 가득한지,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는 한숨 섞인 말투로 한쪽을 가리켰다.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훈련 같은 걸 말하는 건가?”
“그래. 2학년 중엔 네가 최강일지 몰라도, 3학년부턴 아니니까.”
“웃기는군.”
“뭐?”
빠득-.
뭔가 위험한 소리가 난 것 같았지만, 마누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꺼운 책으로 훈련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웃기지도 않는다.
저게 훈련이라고?
마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마누스에겐 그저 소꿉장난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쏟아 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딴 식으로 훈련할 거면, 저번에 나와 대련했을 때의 움직임을 복기하는 게 백 배는 이로울 거다.”
“지금 수호자와 전사들을 모욕하는 건가?”
“모욕이라는 말도 그만한 긍지와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마누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만히 있자니,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서로의 시선이 부딪쳤다.
기예르모는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려 했지만,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수호자는 누군가를 지키는 자이기에, 지켜야 할 대상에게 증오를 품을 순 없잖은가.
지난날의 관계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
마누스는 그런 기예르모의 눈빛을 아주 정확히 읽어 냈다.
그의 마음을 달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겠지.
‘어떤 말을 해 주는 게 좋을까.’
듣기 좋은 말이 있고, 무작정 내뱉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마누스가 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면, 지금은 조금 달라야 할 터다.
소중한 전력이고, 장차 영웅이 될 인재였으니까.
원작보다 더 성장한 그의 뒤에 서 있으면, 훨씬 든든해지겠지.
그러기 위해 간섭하기로 했다.
마누스는 ‘열심히’와 ‘잘’의 차이점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잘 들어라. 훈련은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하는 거다.”
“…….”
“저렇게 비지땀을 흘려서 뭐가 얻어지지? 체력? 근력? 한계까지 내몰리지도 않는 육체가 성장해 봐야 얼마나 성장하지?”
기예르모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욕은 누가 했던 거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불만이 있었던 건가?
혼란스러운 와중,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단어들이 마누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 아니꼽고 재수 없는 녀석이지만-.
틀린 말을 하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땀을 흘려 시간만 보내는 거라면, 난 사양하지.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데, 왜 더 가치 있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모르겠군.”
“그래도 합은 맞춰야 할 거 아닌가.”
“그건 내가 알아서 맞출 테니, 넌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어처구니가 없군. 마법사가 그런 발언을 해?”
“마법사이기 이전에 리더다. 3학년?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들인지 깨닫게 될 거다.”
기예르모는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설픈 훈련보다,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편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흘끔, 기예르모는 언뜻 보이는 마누스의 책의 제목을 읽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경악했다.
『원소와 5클래스 이상의 마법 이론』
‘괴물 자식.’
보통 학생이라면, 아니 웬만한 마탑의 마법사도 이해하지 못할 서적이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교수가 읽거나 논문을 위해 참고 자료용으로나 사용할 수준의 책.
그러나 마누스는 저런 책을 스스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제야 기예르모는 눈앞의 마법사가 얼마나 까마득한 괴물인지 인지했다.
고개를 돌려 훈련……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체조를 하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예르모가 봐도, 저건 소꿉장난에 불과했으니.
‘잘……해야 한다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세계가 부서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가 해 왔던 것들은 모두 허사였던 걸까?
아마 그건 아니겠지.
의문이 커져 나가는 걸 막은 건 다름 아닌 마누스였다.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넌 열심히만 하면 된다.”
“재능이라는 건가.”
“이해가 빠르군.”
기예르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납득했다는 듯, 선선히 자리를 떴다.
열심히.
잘.
재능 있는 자들이 노력하면 반드시 빛을 보는 이유.
남들은 머리까지 써 가며 골머리를 썩여야 할 때, 그들은 열심히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해리슨이, 버클리가 그랬다.
그 밖에 다른 가문 중에서도 재능 있는 자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재능도 무한한 것이 아니지.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답을 찾아야 할 거다.’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누스의 눈빛이 푸르게 빛났다.
사실 그가 걱정하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조원을 모은 이들은 모두가 합을 맞추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었으니.
하지만 왜일까.
마누스가 보기엔, 그저 놀이에 심취해 있는 것만 같았다.
저들에겐 죄가 없다.
재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일 뿐.
‘나도 마찬가지였지.’
씁쓸한 과거를 삼키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더 거부감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저들을 보고 있으면 보잘것없던 자신이 떠올라서 그런 걸지도.
그는 다소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쾌했던 기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히 가라앉았다.
카이사르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 덕에, 마누스도 냉정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차라리, 이게 나아.’
나약한 자신은 필요 없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하등 쓸모가 없었으니까.
#2
알라노는 준비를 위해 자료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정보력은 어디까지나 2학년에 국한되어 있었다.
3학년은 3학년 학생회가 관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당장 3학년과 붙어야 하는 상황.
특히 이번 평가는 제국에서 크게 후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많이 격해질 테고, 다양한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돼서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을 위해서라도 정보 수집은 필수.
그녀는 학생회가 가진 정보를 이용하기로 했다.
무리수를 둘 필욘 없었다.
이름과 가문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 테니.
마누스, 그리고 자신에겐 그 정도 지식으로도 충분히 대응책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학생회실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알라노, 안녕.”
“……루페라구나.”
“맞아. 평가 때문에 찾아왔어.”
선량한 얼굴로 다가오는 루페라.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것은, 그녀가 그의 치부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일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루페라의 얼굴이, 아주 두꺼운 가면으로 이뤄져 있는 것 같았다.
알라노는 절로 내려가는 입꼬리를 붙잡으며 루페라의 말을 받아 주었다.
일단 대화 자체는 정상적으로 해야 할 테니까.
“혹시, 조원이 없다면 나랑 하지 않을래?”
“-미안. 난 3학년들과 평가를 치르기로 했거든.”
“뭐?”
이번엔 루페라가 놀랄 차례였다.
그의 가면이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부서졌다.
알라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냉철하게 돌아섰다.
얼음 여왕이라는 별명이 떠오를 만큼 단호한 행동이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로 했거든. 그 애랑.”
“…….”
그건, 오해를 아주 많이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