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77화 – 질투와 증오는 이따금 무리수를 만든다
#1
학생회실 앞에서, 루페라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방금 들은 소리가 뭔가 싶어서.
혹시, 아직도 그 기묘한 공간에 갇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끝과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생생하게 각인시켰다.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현실이라 이거지?
“하-.”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위대한 가문의 그녀가 그 폭군과 친할 줄은…….
착오가 생겼다.
본래 루페라 본인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알라노.
그리고 레벨리-말리토의 간부 하나를 이용해서 2학년을 장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시작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대체 그놈하고 무슨 연이 있는지부터 알아내야겠어.’
요새 붙어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라노까지 3학년 시험에 지원할 줄이야.
학생회장인 그녀는 2학년의 자리를 고수할 줄 알았다.
아니, 애초에 3학년과 붙는 것은 마누스 혼자가 아니었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비틀비틀, 그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쓸쓸히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된 이상-.’
그는 선택해야 했다.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표출할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으니까.
그는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눈빛은 차가웠으며 목적 없이, 그저 살육을 원하는 맹수와 같았다.
아카데미에는 밝은 면도 존재했지만, 분명 어두운 면도 상당했다.
루페라는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음?”
“여기 올 얼굴은 아닌데.”
“누구였지?”
시선이 느껴졌다.
불량한 이들 특유의, 여기저기서 도태된 자들의 시선.
호기심과 동질감.
그리고 한 명의 희생양이 들어왔구나- 하는 동정심.
루페라는 그 모든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너희들이 나를 멋대로 판단하지?
제대로 적응도 못해, 아카데미에서도 음지를 전전하는 것들이-.
“야.”
한심하고 저열한 것들의 낯짝을 보고 있자니, 알라노에게 당했던 무시가 떠올랐다.
그 더러운 기분이 그의 감정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루페라 안에 있던 폭력성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 위해 발톱을 휘둘렀다.
“야? 너 누구그악!”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들이 왜 눈을 그따위로 뜨고 있는 거지?”
자신은 선택받았다.
너희들은 못 올라가는 곳에 올라갈 수 있다고.
늬들이 뭔데 그딴 눈빛을 뜨고 있는 거야.
루페라의 마법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녀가 준 약은 마나를 대폭 늘려 주었고, 오성을 확대해 주었으니까.
그런 그가 펼치는 폭력은 도태되어 음지에 숨어든 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힘이었다.
“말해 보라니까. 왜 그딴 눈으로 날 쳐다봤냐고-.”
“아니, 난-.”
“그래, 내가 이곳에 왔다고 해서 너희 같은 벌레들과 똑같은 줄 알았지. 하, 이거 기분 더럽네.”
“자,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이거 놔.”
루페라는 그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잘못했다고?
그렇담 벌을 받아야지.
“잘못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응?”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비명이 흘렀다.
아카데미의 음지에서 새로운 폭군이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끔찍하고도 무서운, 그러나 너무도 천한 자였다.
“아주 잘되고 있네.”
아카데미 창문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웃음을 지었다.
루페라가 알고 있다면, 당연히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는 자일 터.
그녀는 폭력의 장면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더러운 귀족 놈들의 뿌리를 뽑을 기틀이 마련되는 거지.
아카데미 내부가 아주 재밌게 돌아갈 거야.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밌단 말이지. 그 건방진 꼬마도 슬슬 폭군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지?”
그녀는 흥얼거리며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처절한 광경을 즐겼다.
그녀의 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2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질 않는군.”
아무도 없는 곳.
마누스는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저 아래를 바라봤다.
마침 맞은편 건물에서 그녀가 아주 잘 보여, 절로 시선이 옮겨 갔다.
그 밑, 개미처럼 아웅다웅하며 움직이는 이들도 보였다.
루페라는 뒷골목을 점령하려는 것처럼 아카데미의 음지를 휘젓고 다녔다.
텍스트로 보고 있을 땐 별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직접 보니 그만큼 추한 몸부림도 없었다.
이래서야, 일진 놀이랑 뭐가 다르단 건지.
“역시, 저걸 먼저 없애야겠어.”
문제는 그녀의 은신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그건 블랙과 화이트에게 물어보면 되려나.
그것도 아니라면, 에머슨에게 탐색을 부탁해야겠지.
그녀와 직접 부딪치는 건 평가가 끝난 다음.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며, 귀족들에게 반감을 품은 이가 몰락하는 건 꽤나 통쾌했다.
저 여인이 주인공에게 나불거렸던 말들이 혹여 변수가 될까, 마누스는 고민했다.
‘애들 관리해 주는 것도 제법 익숙해지긴 했는데-.’
저 여자가 하는 말은 볼 때마다 찝찝했단 말이지.
수도 없이 읽고 들었던 자신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처음 겪는 다른 이들은 어떨까.
저 여자를 제압하고 난 뒤엔 나불거리는 주둥이부터 어떻게 해야 할 터다.
그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원작에서는 흐지부지 넘어갔었지만, 저 여자도 에레시스의 간부 중 하나일 터다.
그런데 나그네와는 정보 공유를 완전히 하고 있지 않았다.
‘저 여자가 탑의 존재를 알아낸 지도 꽤 지났는데, 나그네는 이제야 탑의 존재를 알아차린 걸 보면…….’
둘 사이에 뭔가가 있다든가, 아니면 에레시스 내부에서도 여러 종파가 나뉘어 있든가겠지.
의외로 배경 설정이 친절하지 않았던 게임이었단 말이지.
마누스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소 지었다.
“실컷 웃어 두라고.”
언제나 하늘 위엔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
애석하게도, 저 여자는 그걸 몰랐다.
#3
시간은 흘렀다.
각자가 치열하게 준비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학생들이 자신의 기량을 내뿜는 시간이 도래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중간고사, 기말고사, 연말 평가도 아닌데 북적임이 대단했다.
각지에서 인재를 탐하려는 이들이 속속 모였다.
필기, 대련, 몬스터 사냥.
이 대륙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항목들을 체크하는 시간이었다.
결과와 과정을 모두 평가하며, 교수의 종합 점수로 반이 갈린다.
1학년들에겐 첫 번째로 반 쟁탈전이 벌어지는 시점이기도 하지.
실제로 게임에선 A반에 가까울수록 스킬 익히는 속도가 빨라지게끔 구현했다.
‘교수들이 가르쳐 주는 것도 많아지고……. 어쨌든, 지켜봐야겠군.’
1학년 주인공 일행들이 얼마나 잘해 나갈까.
솔직히 걱정할 건 없었다.
이만큼 떠먹여 주었으면 A반에 계속 머무는 건 알아서 해야지.
변수라고 한다면, 역시 루페라일까.
요 며칠, 루페라의 마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더럽고 끈적한,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날카롭게 찌를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마나.
더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그리고 끝도 모를 정도로 정순한 마누스 본인의 마나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마나였다.
“오, 저 애가…….”
“벌써 대단한 기세를 뿜어내는군요.”
“에잉, 우린 못 먹을 감 아닌가. 어차피 카이사르 마탑으로 들어갈 테니.”
“하긴…… 그렇죠.”
마누스에게 우르르 쏠렸던 시선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누가 감히 카이사르의 자제를 탐낼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가문의 분노를 견뎌 낼 수 있는 놈들만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
마누스에게서 옮겨 간 시선이 닿은 곳은 알라노, 기예르모, 그 밖에 다른 인재들이었다.
알라노와 기예르모 역시 장래가 탄탄한 친구들이었다.
두 팔 벌려 환영할 곳이 있었고, 그곳이 대륙을 호령하는 집단이었다.
‘저런 이들 말고, 어디 없나.’
황궁에서 파견 나온 정보원이 주변을 훑었다.
3학년부턴 데려갈 인재들을 어느 정도 추려 두었다.
3년이라는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었다.
재능과 노력, 성품이라는 건 단기간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떡잎이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 있는 이들은 이미 1학년 때부터 그 싹을 무럭무럭 자라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 위치가 뒤바뀔 일은 극히 드물 터.
그가 진짜 주목하고 있는 이들은 1학년과 2학년.
‘오늘은 1학년에서 좀 찾아볼까. 대련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일단 교수들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가장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을 평가하는 이들이었다.
교수들의 평가야말로 제법 정확하다고 봐야겠지.
다른 이들은 필요 없고, 딱 세 명에게만 물어보면 된다.
원소학의 트레일 교수.
소환학의 샨들러 교수.
그리고 마투학의 제니퍼 교수.
“흠, 그 괴물을 다시 만나야 한다니, 내키진 않지만.”
“누가 괴물이라는 거냐. 멍청한 놈아.”
쾅-!
난데없이 머리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소리 지를 새도 없이 주저앉아 머리를 문지르며 위를 쳐다봤다.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할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정보원은 흘끔, 등 뒤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괴물이 그곳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기척 좀 내고 다니시면 안 됩니까? 대장님의 주먹은 무기라니까요.”
“네놈 주둥이를 탓하거라. 그리고 내가 황궁에서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대장 타령이야?”
허리까지 오는 개량형 외투.
배꼽이 다 드러나 보이는 탱크톱.
움직임이 편한 바지에 단단한 워커를 신고 있는 여인.
처음 캐릭터가 공개되자마자 판타지 세상에 웬 스트리트 패션이냐고 말이 많았던 여인.
하지만, 파격적인 행보와 그녀의 과거 행적 등이 알려지면서 단숨에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헤스 제니퍼.
마투학 교수이자, 평민에서 작위를 수여 받고 귀족이 된 여인.
제국의 철퇴라고 불렸던 자였다.
“어쨌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대장, 아니 교수님.”
“오냐. 황제가 또 일을 벌여서는 골치 아프게 되었구나.”
“하하, 그만큼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인재가 많다.
물론, 자신과는 연이 없는 인재들이었지만.
“트레일 놈이 부러워. 좋은 놈들을 많이 채 가고 있으니.”
“그런가요? 하긴, 교수님 수업은 지옥 그 자체…….”
“뒈지고 싶냐?”
“하하, 농담입니다. 마투학이 인기가 없긴 한가 보네요.”
씁쓸한 말이었다.
마투.
그것은 황궁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술이었다.
병장기를 차고 있지 않은 이들이 방심한 적을 때려눕히기 위해 만들어 낸 무술.
적의 방심을 유도해 치명상을 입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마법사를 인간 병기로 만들어 주는 무술로 발전했다.
하지만 수호자, 전사들의 무학이 있는데 굳이 마투학을 배우려는 마법사는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2학년 중엔 아무도 없더군. 저놈은 좀 탐나던데 말이야.”
제니퍼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무심히 걸어가는 푸른 눈동자의 남자.
근골도 튼튼하고 가지고 있는 마나도 정순하다.
그 깊이는 또 어떤가.
하지만 그는 그녀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쩝,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옆에서 정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1학년 중엔 없습니까?”
“1학년이라……. 내 수업은 2학기부터 잡혀 있긴 한데, 역시 A반에 있는 녀석들이겠지.”
“A반…… 알겠습니다. 커피라도 드시렵니까?”
“오랜만에 옛 부하에게 대접받는 것도 좋지. 가자.”
그녀와 그가 몸을 돌렸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오직 대련과 사냥.
시간이 남는 동안, 든든하게 배나 채울 생각이었다.
‘1학년 A반이라-.’
정보원은 A반을 되새기며 걸음을 옮겼다.
초반부터 제니퍼와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녀의 안목을 살짝 빌리면, 인재들을 찾을 수 있겠지.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