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 Mage in the Game’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97화 – 스스로 내몰린 자의 성장
#1
마누스, 아나이스, 그리고 피어슨은 구내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동아리실로 가려 했으나, 피어슨이 간곡히 부탁해 카페로 오게 된 것.
그곳엔 아직도 케일이 있을 테고, 세 사람이 그곳에 들어갔다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겠지.
피어슨은 눈치가 없어도 그 정도로 벽창호는 아니었고, 마누스를 무사히 카페로 인도하는 데 성공했다.
마누스는 문득, 이곳 커피의 맛이 궁금해졌다.
지구에서 먹던 아메리카노와 어떻게 맛이 다른지.
“난 아메리카노로 하지.”
“넵. 제가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넌 뭐 마실래?”
“……난 그냥 물.”
“으휴, 너 딸기 좋아하지? 알아서 사 온다.”
피어슨이 휑하니 사라졌다.
아나이스는 엉망이 된 몰골로 흘끔, 마누스를 쳐다봤다.
이렇게 보니, 문득 공포감이 몰려왔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그 무심한 눈빛.
엄격하고 불같았던 아버지도 저런 눈빛은 아니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순종적이게 만드는, 잡아먹힐 것 같은 눈빛.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 사실…… 케일이랑 좀 싸웠거든요.”
“음.”
마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싸웠을까?
꽤 케어를 많이 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면의 나약함을 극복하지 못했던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곧 학생회장 선출 기간이었던가.
한 학년의 장을 정하고, 그 장이 4년 동안 이어지는 시스템이다.
1년에 한 번, 연말에 학생회장 자리를 탈환할 기회가 있다.
플레이어는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것도 제법 재밌는 이벤트였지.’
다양한 친구들이 다양한 이유로 참가하게 되는, 일종의 경연이었다.
미토스 아카데미는 경쟁이 모토다.
그러니, 학생회장도 가장 강하고 똑똑하고 지휘를 잘하는 이가 뽑혀야 한다는 것.
회장이 되면 받는 혜택 역시 꽤 되었다.
장학금과 학생회를 꾸릴 수 있는 권한.
각종 행사를 주선하고,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권한 등등.
‘학생회장이 되면 이벤트가 많아지기도 하고, 자금도 원활히 수급되었지. 그래서 편하게 하려면 학생회장을 하는 게 좋은데…….’
“학생회장 건 때문인가.”
“맞아요. 제가…… 좀 심한 말을 했거든요. 선배에 대한…… 얘기도.”
“대충 예상이 가는군.”
“죄송해요. 저는…….”
마누스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직 자존감을 다 찾지 못했는지,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플로이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모습에, 마누스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 줘야 하나 고민했다.
케일이 아무리 다재다능하고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녔다지만, 후반에 아나이스, 알라노가 없으면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주인공을 버퍼 포지션으로 쓰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딜링 능력은 뛰어났다.
그것도 그거지만, 그냥 한 사람으로서 아나이스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옛날이랑은 다르니…….’
그 옛날엔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자기 살기에 급급했고, 워낙 더러운 인간들만 주변에 깔렸었으니까.
그들의 학창 시절, 그들의 성장 과정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냈다는 것이 중요할 뿐.
그에 반해, 이들은 정말 순수한 감정으로 자신을 존경하고 따랐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나쁜 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듬어 주는 것 정도야.
익숙하지 않아 아직도 힘들지만, 말을 들어주고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나에 대해서 얘기한 건 괜찮다. 이렇게 찾아와서 사과할 정도라면 진심이 아니었던 거겠지.”
“죄송해요.”
“저의가 궁금하군. 왜 케일과 싸웠지?”
“후우-.”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마누스가 괜찮다고 하니,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가슴을 짓이기고 있는 친구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케일과의 격차를 알고 싶었어요. 제가 나아갈 방향도……. 걔하고 붙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케일은 착하지.”
“네에, 그래서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 저도 알아요. 친구를 이용하는 나쁜 애라는 거.”
“케일은 뭐라고 했지?”
케일이 진심이라면, 지금의 아나이스는 이기기 어려울 터다.
그녀는 카덴차라는, 희대의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나이스는 ‘약한 것’에 대한 불안감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알라노와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질 정도였으니까.
답은 간단했다.
아나이스에게 억지로 강함을 주입해 주면 되는 거지.
예전 알라노가 그랬던 것처럼.
“그냥…… 엄청 화난 모습이었어요. 그렇게 화를 낸 모습은 처음 봤어요.”
“내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진심으로 덤벼올 거다.”
“…….”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마누스의 말이 비수처럼 푹푹 꽂혔다.
할 말이 없지.
친구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고 일을 저지르니,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금의 넌 케일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는 건가. 나쁘지 않지.”
“……네?”
마누스는 아나이스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여기서 그녀를 비난하면 죽도 밥도 안 되겠지.
밤새 고민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퀭한 얼굴과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진 얼굴.
생기는 없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다.
평소 뽀얗던 피부와 구김 없이 입고 다니던 외투도 엉망이었다.
“어쨌든, 네가 내건 해답이지 않은가. 나에게 직접 사과까지 한 걸 보면, 그 각오는 인정할 만해.”
“아…….”
“얘기 잘하고 있어? 여기, 아메리카노입니다.”
“고맙군.”
마누스는 마나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살짝 식힌 뒤,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음-.
매일 아침마다 마셨던 아메리카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맛.
신 맛도 덜하고, 에스프레소 자체가 연한 것 같았다.
그는 일반적인 아메리카노(2샷)을 먹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항상 연하게 주문을 부탁했었는데, 그와 비슷한 맛이었다.
학생이라고 배려해 준 건가?
“흠, 그래서 강해지고 싶어 날 찾아온 건가?”
“네……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게요. 강해지고 싶어요.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난 항상 말한다. 넌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만족이 안 된다면야.”
방법은 있다.
당분간 홀로 탑을 왕래하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잘된 건가.
알라노는 몇 층을 홀로 올라가고 지쳤지?
그녀는 마누스와 단둘이 파수꾼 하나를 처리했다.
아나이스는 어떨까.
그녀는 어디까지 버티며 올라갈 수 있을까.
붉은 눈동자에 절박함이 보였다.
지금 그녀라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
마누스는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절박한가?”
“……네. 무척.”
“케일에게 사과하는 건 네 역량이다. 어쩌면 평생 그녀에게 미움받을 수도 있겠지.”
“…….”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없는 그녀에겐 이런 짓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우둔한 건지, 아니면 아직 지혜롭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불안했다.
친구와 영원히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녀는 나아가기로 했다.
죄책감을 딛고 강해져서, 다시 돌아가리라.
당당하게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리라.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했다.
“선배.”
“마음이 섰나.”
“네. 제가 심한 말을 했고…… 제가 큰소리 뻥뻥 쳤으니까, 그에 맞는 실력을 가지고 싶어요.”
“네게 지금 가장 부족한 점이 뭐지?”
아나이스는 즉답했다.
“마법…… 그리고 마나의 부족이에요.”
“그렇담 답은 정해졌군.”
마누스는 피어슨과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답은 언제나 탑에 있다. 네가 찾는 답도, 아마 그곳에 있을 테지.”
“……알았어요.”
“피어슨은 하던 대로 움직여라. 아나이스에 대한 건, 얘기하지 말고.”
“넵. 맡겨만 주십시오.”
피어슨이 근엄한 표정으로 척, 고개를 숙였다.
기사들을 흉내 내는 것이,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아나이스는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이기적인 제 욕심을 받아 주셔서.”
“알면 됐다.”
그 무뚝뚝함이 더 따스하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아나이스는 무릎이라도 꿇고 감사하다고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곳이 만약 동아리실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렇게 했겠지.
보답하는 길은 하나뿐.
멋대로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것과 친구에게 사과하는 것.
적어도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법사로 다시 서는 것.
지금 가서 사과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아나이스는 택하지 않았다.
‘다음에 같이 탑을 오를 땐, 내가 도와줄 거야.’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기숙사로 향했다.
마누스의 앞에는 어김없이 메시지가 떴다.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때입니다.]“흠-.”
마누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메시지.
아마, 중요한 분기점이리라.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부담감이 정신을 짓눌렀다.
가뜩이나 벗어난 것이 많아 신경 쓸 것이 많은데, 이미 원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스토리 라인이 빗나갔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원작에 있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
더불어, 변수를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을 만한 힘.
불행한 것들을 막아 내고 예기치 못한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복잡하네.’
“선배, 그럼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마누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마누스는 잠시 고민했다.
2학년, 3학년은 이 사태를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의 발언권은 상당한 수준이니, 아마 말을 하면 들어줄 것이다.
마누스는 잠시 아나이스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라면, 조용히 힘을 키우고 싶겠지.
‘멋대로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케일을 달래 주며 아나이스를 응원하는 것.
그래서 다시 마주했을 때, 서로에게 감정이 남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마누스가 해 줄 수 있는 전부겠지.
“슬슬 패배를 겪을 때도 되었지.”
시련이 없는 주인공은 뭔가 재미없잖아?
마누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동아리실.
두 사람의 극적인 결투를 위해서, 마누스는 연출을 담당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아나이스뿐만 아니라 케일에게도 동기를 심어 줘야겠지.
마누스는 아나이스가 태양처럼 환하고 따스한 빛을 뿜어낼 때까지 밀어줄 생각이었다.
‘너는 그동안, 어떤 빛을 낼 것이냐.’
케일.
너는 더 찬란한 빛으로 승부를 볼 것이냐.
아니면, 아주 잠깐 그림자가 될 것이냐.
마누스는 궁금해졌다.
그녀의 디폴트 성격이 어떤 것인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 그는 분쟁이 시작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