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ol Guide fo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150
엔딩을 위한 아이돌 안내서 150화
웬일로 하선우보다 먼저 눈이 떠져서, 나는 조용히 스트레칭을 하고 방문을 나섰다.
다들 새벽까지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늦게 잠들어서 그런가 거실이 조용했다.
아무도 없나 싶어 소파에 털썩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데, 부엌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아, 윤재 형……!”
딱히 확인하지 않아도 백도하의 목소리였다.
“어, 백도하. 좋은 아침.”
나는 눈을 그대로 감은 채 대충 아침 인사를 건네고 팔 다리를 쭉 뻗었다.
밤 사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팔 다리가 늘어나며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시원한 느낌이 꽤 기분 좋을지도.
[도움! 변태 같아요!]이거 눈꺼풀 안으로 알림 뜨는 거 진짜 짜증나네.
혀를 쯧, 차며 눈을 뜬 나는 어느새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 앉은 백도하를 발견했다.
“왜?”
“아, 그게요 형…….”
속으로 땅굴을 아주 깊게 파고 있는 얼굴이었다.
어젯밤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한건지 이런 기색은 없었는데.
‘지금 보니 완전히 기가 죽었네.’
백도하는 우물쭈물 뭔가 말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하고 있을 백도하를 대신해 먼저 물었다.
“몸은 좀 어때.”
“아……! 괜찮아요 이제.”
“그럼 됐고. 오늘 연습 안 해도 된다니까, 좀 더 쉬어.”
“다들 연습하는데 저도 가야죠……!”
당황한 기색으로 손사래를 치는 백도하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고동색 정수리에 손을 툭 얹었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백도하가 평온을 되찾고 평소의 속도대로 눈을 깜빡였다.
나는 자상한 형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따라와도 되는데, 연습한다고 하면 소파에 묶어 둘 거야.”
[도움! 와 진짜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예상치 못한 말에 벙찐 얼굴로 백도하가 ‘어…….’하고 갈 곳을 잃은 반응을 했다.
쓰러진 사람한테 당연히 휴식이 먼저인 건데, 얘가 착해 빠져서 그런가.
혼자 연습을 빠지는 상황이 벌써부터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래도요…… 컴백도 얼마 안 남았고.”
백도하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만약 내가 전날 쓰러졌는데 연습하겠다고 고집부리면 너 어떨 것 같은데?”
“그건 당연히 안 되죠 형……!”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던 백도하가 민망한 얼굴로 내 눈빛을 피했다.
그니까, 내로남불이냐고.
나는 옅게 한숨을 뱉으며 정수리를 툭툭 쳐 줬다.
“오늘 별 일 없으니까, 일단은 쉬자. 이제까지 연습 충분히 했잖아.”
내 말에 백도하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이해빛이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음, 얘들아.”
이해빛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턱을 매만지더니,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어제 목격담이 떴네.”
“……병원이요?”
이해빛은 답하지 않고 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매니저가 이해빛에게 보낸 한 장의 사진에 모든 게 설명됐다.
[셈알(@SemalsemaL)병원에서 셈페르 봄.. 다들 사색으로 뛰어가던데 ㅎㄹ 설마 누구 아픈거나 쓰러진 거 아님?
(멀리서 흐릿하게 찍힌 셈페르 사진)
(병원으로 들어가는 셈페르 사진)]
“와, 제대로 찍혔네.”
무심코 튀어나온 내 말에 백도하가 황급히 다가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봐도 누가 하선우고 이해빛인지 다 알아볼 수 있겠는데, 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패닉에 빠진 백도하를 두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 가장 소식이 빠른 곳은 하늘새니까.
x셈페르병원
x병원목격담
x셈페르컴백
실시간 트렌드를 찍고 있는 몇 가지 키워드들 전부 영 좋지 못한 낌새를 풍겼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너무 머리가 꽃밭이었던 것 같다.
다급한 마음에 너무 긍정회로를 돌렸던 걸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 봤던 건데.
보통 병원 목격담은 확실한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잘 올리지 않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1%도 안 되는 것 정도야 아주 잘 알고 있긴 했다.
‘회사에 항의 전화 장난 아니겠는데.’
아이돌의 건강에 누구보다 예민한 팬들이 목격담을 보고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갑자기 대역죄인처럼 죄책감으로 흙빛이 된 백도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물어물 중얼거렸다.
“진짜 죄송해요, 형들……. 괜히 저 때문에…….”
“뭘 미안해.”
“그래, 도하야 미안해할 거 하나 없어.”
이해빛이 반사적으로 뱉은 말에도 백도하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뭐라도 올려야 되는 거 아닐까요……?”
“음, 그거야 회사에서 먼저 처리하고 있…….”
사색이 된 백도하의 얼굴을 힐끗 본 나는 이해빛을 툭 쳤다.
이해빛이 바로 말을 아끼며 휴대폰을 내렸다.
애초에 아이돌이 병원에 급하게 간 것부터 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 심지어 컴백은 일주일 남은 상황.
회사에서 우리를 막 굴렸다거나,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건 아니냐는 의심도 분명 나올 수 있었다.
‘스타더스트 이미지가 아무리 좋아도 이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솔직히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팬들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걱정하니까.
꾀병으로 응급실을 많이 다녔던 전 쓰레기를 떠올려 보면, 팬들은 회사에 대한 분노보다 멤버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스타더스트가 우리한테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회사를 구제해 줄 순 없었다.
‘알아서 잘할 텐데, 뭐.’
[도움! 이제 하다 하다 회사까지 믿기 시작한 도윤재, 장하다!]‘……이거 좀 욕 같은데?’
나는 인상을 확 찌푸리려다가 아직 눈 앞에 있는 백도하를 보고 미간을 다시 폈다.
뭐, 여전히 전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못할 건 없다.
백도하를 어떻게든 멀쩡한 꼴로 만들어서 라이브를 시키거나 병원에 연기자를 대기시켜 가짜 병문안 인증을 시켰겠지.
하지만 백도하에게 그렇게까지 시키고 싶진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백도하를 안심시킨 다음에 연습실로 출근하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너 아픈 게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사에서 우리가 잠 못 잘 정도로 막 굴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쓰러졌다고 말 안 해서…….”
나는 백도하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에 손을 얹고 휘적였다.
“뭐, 플로아들이 화라도 낼 것 같아?”
“아, 아뇨.”
백도하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혼자 생각하느라 형들한테도 아무런 말도 못 했고…….”
직감적으로 백도하가 지금 넌지시 말한 내용이 혼자 끙끙 앓던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촉이 섰다.
이해빛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같은 생각을 하기라도 한 건지 이해빛이 백도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도하야.”
“제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게…….”
“백도하.”
내 목소리에 백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팬들은 괜찮을 거고, 우리도 괜찮아.”
항상 이런 식으로 백도하를 달래긴 했었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해빛 쪽으로 힐긋 시선을 돌리자, 멍하니 날 바라보던 이해빛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음, 윤재 말이 맞아. 걱정 말고 회사 믿고 기다려 보자.”
“맞아. 회사에서 알아서 잘 설명해 줄 거야.”
“음, 너무 무책임한 느낌인데?”
“안심은 저희가 시켜 주면 되니까요, 뭐.”
회사에 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분명 이 일도 잘 수습해 두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백도하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니까 백도하 넌 오늘 어떻게 쉬어야 끝내주게 쉴 수 있을지 생각해.”
백도하가 입을 달싹이며 복잡한 심경을 숨기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 이해빛이 평소와 다름 없는 차분한 말투로 말을 돌렸다.
“음, 일단 얼른 준비하고 연습실 가자.”
어제 하선우와 나의 방에서 도모했던 ‘평소 처럼’ 작전.
이해빛의 말을 듣자마자 ‘나 지금 뭐라도 해야 돼’ 상태가 된 백도하가 재빠르게 최현과 연지수의 방으로 향하며 외쳤다.
“그, 그럼 제가 형들 깨울게요……!”
‘일단 됐나.’
짧게 한숨을 내쉬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해빛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요?”
“아니, 그냥.”
잠깐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던 이해빛은 이내 차분한 말투로 덧붙였다.
“도하를 되게 걱정하는 것 같아서.”
되게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툭 뱉었다.
“걱정하죠 당연히.”
[도움! 순순하다……?!]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눈앞에 떠오른 김도움의 창에 나는 멈칫했다.
이해빛을 바라보니, 이해빛의 동공이 파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제가 지금 걱정한다고 말했어요?”
“어, 음. 그랬지?”
“…….”
나 원래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이해빛과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다가, 다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저 먼저 씻어요.”
뒤에서 이해빛이 언뜻 ‘어어.’ 하고 대답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나는 화장실 문을 쾅 닫았다.
민망해서 자리를 피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도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도윤재 씨!]진짜, 절대 아니다.
* * *
꼭두새벽 출근 준비를 하고 광역 버스에 몸을 실은 푸름이 하늘새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셈페르의 응급실 목격담이었다.
누가 쓰러졌는지, 왜 병원에 간 건지, 얼마나 아픈지.
푸름의 늘친인 플로아들은 회사에서 설명을 할 거라며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취했지만, 푸름은 초조했다.
시작은 윤재였지만 지금 푸름은 ‘6-1=0’을 외치는 진성 플로아.
출근길 내내 많이 아프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푸름은 회사 정문을 들어서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루종일 이런 걱정에 가득 차 일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던 푸름은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언제 올라오려나, 포털의 연예기사란과 하늘새, 그리고 커뮤니티까지 접속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그때.
[New][스더 공식 입장 떴다]안녕하세요. 스타더스트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금일 새벽 셈페르의 도하가 연습 도중 어지러움을 느껴 응급실에 내원하였습니다.
의료진에 의하면 도하는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도하의 스케줄 합류 여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병원에 다시 내원하여 스케줄에 참여해도 된다는 의료진의 소견을 받고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스타더스트는 아티스트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도하가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팬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사과드립니다.
(의사 소견서 사진)
-아 엄청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나보네 다행이다..
⌞그래도 응급실 갈 정도면 ㅠㅠ
-컴백 건너뛰고 쉬게 해야되는 거 아닌가…….
⌞스더 원래 진짜 아프면 활동중단 바로 때리잖아 그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짧은 입장문을 후루룩 읽은 푸름은 작고 말랑한 백도하가 응급실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켰다.
컴백까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안 남아 있는데, 병원에 급하게 갈 정도로 아팠다니.
백도하 없이 활동할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과 많이 아픈가에 대한 걱정이 복잡하게 얽히며, 푸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가 붉게 달아오르길 반복했다.
‘그럼 컴백은 도하 없이 가는 건가?’
하지만 아픈 애한테 활동하라고 할 수도 없고…….
‘얼마나 애를 바쁘게 굴렸으면 애가 응급실까지 가.’
푸름이 회사에 대한 분노를 점점 끌어올리던 그때, 다른 플로아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러나 곧바로 업로드된 업스타그램 게시물 하나에 푸름의 분노는 갈 곳을 잃었다.
@Semper.off
[보고셈] 플로아들 걱정했죠ㅠㅠ.. 많이 놀랐을 텐데 지금 저는 괜찮아요! 회사에서는 며칠 쉬라고 했는데 컴백은 꼭 같이하고 싶어서 연습실엔 나왔어요. 내일 병원 다시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ㅠㅠ 고마워요 플로아들 잘 쉬어서 얼른 회복할게요ㅜㅜㅜ x????걱정 마세요 여러분 백도하는 저희가 따끈한 곳에서 손 까딱 안 하게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x????
(셈페르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있는 백도하 사진)
(패딩 산에 파묻힌 백도하 사진)
소파에 앉은 백도하 주위로 어깨동무를 한 채 둘러싼 셈페르 멤버들의 사진.
어딘가 사뭇 진지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백도하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게시글 내용을 보니 백도하한테 쉬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나온 느낌인데…….
‘기특하긴 하다.’
물론 아직 푸름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푸름은 가벼운 말투로 올라온 게시물에서 백도하의 초조함과 멤버들의 걱정을 읽었다.
팬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부러 가벼운 말투를 선택했겠지.
푸름은 한숨을 삼키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과연 이번 컴백이 순조롭게 백도하와 함께 이뤄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푸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