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ol life that starts with military writing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킹스 로드에 참여한 뒤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3번의 경연을 진행했고, 이제 남은 것은 4차 경연과 마지막 파이널 무대뿐.
띠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제는 익숙한 임시 호텔 방의 모습이 보이고.
나는 뻐근한 목을 손으로 두드리며 나지막한 소리를 내었다.
“바쁘네.”
킹스 로드의 경연 무대가 방송에 나간 뒤부터 우리는 전에 없던 엄청난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순위에서 사라졌던 우리 곡들이 다시 차트 역주행을 하기 시작해 상위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고. 스케줄을 하러 나가면 어설픈 한국어로 ‘리니야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늘어난 인기에 따라 당연하게도 폭발적으로 늘어난 스케줄.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진귀한 경험…들을 하나둘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아련한 눈빛으로 비행기의 창밖을 바라보며 말하던 강아진의 음성이 떠올랐다.
‘린이형 이제는 비행기가 집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뒤로 몇 번이나 비행기를 더 탔을까. 나는 횟수를 세어보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뒤 다시 어두운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조용하다.”
이 미친 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로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멤버들이 드디어 내 방에 쳐들어오지 않게 되었단 점.
드디어 방에 들어와서는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정우도 심성하도 체력의 한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드디어 조금씩 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더 줄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마 두 사람의 수다를 능력치화 시킨다면 능히 S랭크는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허전한 나의 시야 한구석을 다시 바라보았다.
‘없어.’
이미 확인했던 거지만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앞에 존재했던 ‘목표’의 부재가 아직도 어색하다.
나는 방안을 다시 한번 살펴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태창.”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흠… 상.태.창. 상태창! 열려라… 아니 이건 아니겠지. 시스템님? 야!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안 나와?? 안 나오면 쳐들어간…”
띠링-
“!!”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침대 위에서 밝게 빛나는!
“문자…가, 왔네…? 크흠.”
내 핸드폰.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완벽 범죄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혹시 누구 있는 거 아니지..?”
그렇게 말한 후에도 침대 밑과 커튼 뒤까지 철저히 확인하고 나는 이윽고 침대 위에 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선우민 : 님 뭐하심? 바빠?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이름이 화면 속에 보였다.
처음 든 생각은 ‘용돈?’이었지만, 곧 그동안 동생에 대해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한 조그마한 죄책감이 가슴속에 피어났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린 뒤 바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야 오빠가 전화도 걸어주시고.
여보세요보다 먼저 튀어나온 동생의 말에 가슴이 조금 찔려오는 것을 뒤로한 채 나는 대답했다.
“뭐, 용돈 부족해?”
-내가 연락하면 다 용돈 때문인 줄 알아?
“아니었어?”
-아니야! 그냥 잘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한 거라고!!
쩌렁쩌렁 울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때니 ‘어떻게 먼저 연락하는 법이 한 번도 없어…’로 시작한 타령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저번에 연락했을 때, 너 내 문자 읽었으면서 왜 답장 안 해? 문자 봤어 안 봤어, 그것만 말해봐.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바쁜 거 알아. 아는데. 할머니한테는 꼬박꼬박 잘도 연락하면서 나는 왜 연락 한번이 없냐고!!!
대학생이 된 20살 동생의 잔소리는 예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해졌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설마 이런 것들인가.
나는 귀여웠던 동생의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리며 세월의 무성함을 실감하다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뭐라고? 안 들리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처신 잘하라고.
가까스로 동생을 진정시킨 나는 주제를 바꾸기 위해 황급히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학교생활은 어때? 할만해?”
-급격한 화제 전환이 너무 뻔히 보여, 하지만 오빠도 바빴던 거 아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 줄게. 학교는 잘 다니고 있어.
“뭐, 교생 실습 그런 건 언제 하나? 2학년은 되야 하는 건가?”
-오오! 오빠가 그런 것도 알아?
“나를 바보로 아는거야…?”
민이는 교대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으니 이미 반쯤은 이룬 셈이었다.
‘그래,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지.’
민이에게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확실한 꿈이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그 이후로 나는 조용히 민이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자기가 억지로 조장을 떠맡게 되었다든가, 어느 교수님이 자기를 맨날 우민학생이라고 부른다던가, 학교 앞에 맛있는 파스타 집이 있는데 매일 줄이 너무 길어서 못가고 있다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혼자 떠들던 민이의 말수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창밖은 캄캄했고 잊고 있던 피곤함이 조금씩 몰려들었다.
그때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민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
“어떤?”
-어렸을 때 내가 봤던 선생님이 지금의 나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은 거 있지? 그때는 정말 어른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그래.”
-아마 많이 노력했을 거야. 아이들한테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서 말이야. 선생님이란 자리는 그래야 하니까. 힘들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내색하면 안 되고. 뭐든지 다 잘해야 하고…
그런데 문득 오빠 생각이 나더라고. 오빠는 나한테 항상 어른처럼 보였거든.
“…”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제와서야 말이야.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불 꺼진 방안은 고요하고 또 고요했다.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물에 적신 도화지 위의 그림처럼 희미하게 번졌고.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동생에게 해야 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래, 잠이 오지 않던 어린 시절의 그 밤처럼.
“그건…”
-오빠가 노력한 만큼 잘 돼서 너무 좋아. 앞으로는 더 잘될 거고 더 성공하겠지.
나는 두려웠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것이. 그렇기에 끊임없이 되뇌었다. 성공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약해질까 봐. 내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나는 꼭 오빠가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속이며 강한 척을 했었다.
그렇게 어쩌면 나 하나쯤은 속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선우린은 뭘 하든 그냥 선우린이잖아.
그렇게 동생의 마지막 말과 함께 창밖의 어두운 풍경에 하나둘 불빛이 밝아왔다.
***
“드디어 들을 수 있는 건가요.”
“유진킴의 비장의 무.기.”
“헛소리하지 말고 다들 앉아 보세요.”
“네엡!”
피곤함이라는 세글자가 떡하니 얼굴에 쓰여있는 듯한 유진킴의 말에 멤버들이 빠르게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현재 유진킴이 임시로 쓰고 있는 개인 작업실.
4차 경연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연습실이 아닌 유진킴의 작업실에 모인 이유는.
“곡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었어요.”
“오오!”
“신곡이다!”
킹스 로드 파이널 라운드에 발표할 신곡 때문이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킹스로드의 파이널 라운드에는 모든 참가자가 각자 준비된 신곡을 발표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위어스의 신곡은 언제나 그랬듯 유진킴 작곡.
경연 준비에 새로운 곡 작업까지. 너무나 힘든 스케줄이라 유진킴이 전부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지만.
‘믿고 기다릴 수밖에.’
우리는 유진킴의 곡을 묵묵히 기다렸다.
모두 이 경연이 유진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드디어 기다리던 곡이 완성된 것이었다.
모두가 떨리는 마음으로 유진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다시 유진킴의 입이 열렸다.
“일단 곡은 거의 완성이 됐지만, 아직 가사는 붙이지 않았어요.”
“가사가 없다고?”
“네, ”
“그러면 가사는 어떻게?”
“그건 곡을 들려드리고 나서 설명할게요.”
유진킴은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책상에 앉아 준비하고 있었던 음원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어느새 조용해진 작업실 안.
우리는 한껏 집중한 채 유진킴이 준비한 파이널 라운드 곡에 귀를 기울였고.
곧 조금은 익숙하게 들리는 멜로디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노래의 시작을 듣자마자 유진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진킴이 이 노래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익숙함일까?
하지만 노래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새로운 멜로디가 들려왔다.
‘익숙함 뒤에는 새로움… 그리고 그다음은?’
가사가 없는 곡에서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들으며 이 곡을 작곡하면서 고민했을 유진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점점 흘러가는 음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건…’
어느새 절정에 도달한 곡은 그 화려함으로 모든 것을 환하게 밝히며 타올랐다가 이내 빠르게 추락했다.
화려한 무대의 뒤편.
아니 어쩌면 무대에도 서지 못한 이의 뒷모습.
나는 그 서글픈 감정들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모든 감정을 토해내는 멜로디에 끝까지 집중했다.
마침내.
“여기까지예요.”
유진킴의 말과 함께 우리는 모두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와아…”
“이런 곡일 줄은… 몰랐어.”
“대단해요!”
곡에 대한 반응은 모두 같았다.
놀라움.
그동안 유진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곡을 들려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다른 멤버들이 아직 곡에 대한 여운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유진킴에게 물었다.
“그런데… 곡 분위기가 계속 바뀌는 건 무슨 의미야?”
내가 느낀 것이 맞을지, 원곡자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내 말에 유진킴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멤버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처음 곡을 만들 때 든 생각은, 변화였어요.”
“변화…?”
“네, 앞으로 우리 앞에 있을 모든 무대를 끝내고 나면. 분명히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거니까요. 그때의 우리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그 감정은 뭐였어?”
나는 곡의 후반부에 느꼈던 그 서글픈 감정에 대해 유진킴이 더 말해주길 기다렸다.
그렇게 적막한 시간이 지나고.
“그런데 제가 떠올린 건, 변화의 뒤에 있을 또 다른 길이 아니라 마지막이 떠올랐어요. 제가 만든 이 노래가 4분 뒤에 끝나는 것처럼…”
마지막.
유진킴이 얘기한 마지막이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만 생각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에는 언제가 끝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네가 생각한 마지막이란 게…”
“그건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정말 앞만 바라봤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유진킴의 목소리가 이윽고 우리를 향했다.
“그리고 모두가 생각하는 ‘마지막’은 전부 다를 테니까. 그래서 모두에게 묻고 싶어요. 아니 부탁하고 싶어요. 저 대신 모두가 써줬으면 좋겠어요. 이 노래의 가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