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ol life that starts with military writing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完)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색의 종이를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나는 이내 몇 개의 단어를 적어냈다.
위어스, 멤버들, 나, 우리. 그리고…
그 이후에도 생각나는 단어와 문장들을 멋대로 썼다가 다시 지워냈다.
가사를 쓴다는 게 이런 작업이었나.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멤버들에게. 팬들에게. 그리고 위어스를 지켜봐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만약 마지막이 찾아온다면 내가 전하고 싶은 말.
그렇게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적고 적었다.
이번에는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적어 내려가니 하얀 종이 위에는 오글거리는 문장들이 넘쳐났지만,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이런 내용이면 어떨까.’
언젠가는 끝이 다가오겠지만, 그 끝이 최대한 아름다울 수 있게 지금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렇다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거야.
끝이 아닌 새로운.
마지막 가사 뒤에 점을 찍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니 환하게 빛나는 창문 밖에 불빛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밤을 새워버렸네.’
뭐, 차 안에서 조금 자면 괜찮겠지.
나는 약간 침침해진 눈을 잠시 감았다 뜬 뒤에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다시 살펴보았다.
“음…”
나, 생각보다 작사에 재능이 있을지도?
처음 써본 가사의 결과물이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곡의 제목은.
“이게 좋겠다.”
나는 한 단어를 적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
데뷔한 이후부터는 항상 바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정신없는 하루였다.
왜인지 모르게 평상시보다 정신이 멍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런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캄캄한 어둠이 나를 반겼다.
분명 연습실이었는데? 설마 몰래카메라인가.
멤버들은 어디 있지?
아까까지만 해도 다들 내 옆에 있었는데…
[목표 달성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우린의 행동에서 예상치 못한 오류 발견. 당신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그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그런데 문제 발생? 오류?
처음보는 당황스러운 메시지에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시스템은 나에게 무언가를 쏟아내듯 물음을 던져왔다.
[선우린 당신의 현재 목표는? 왜 목표가 과거와 달라졌습니까? 당신은 성공만을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까?]잠깐만, 하나씩 물어봐!
[…]시스템은 잠시 물음을 멈추었다가 이내 하나의 물음을 내게 던졌다.
[당신은 현재에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까?]현재에 삶에 만족…
그건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찾아가고 있어.
내가 원하는 삶을.
[원하는 삶을 찾아간다. 그건 목표와는 다르다는 겁니까?]달라, 이제는 성공만을 바라지 않으니까.
[그럼 성공이 아닌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그건.
내 행복이야.
나는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하고 행복해. 그리고 더 행복해지길 원해.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어.
[그건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겁니까 아니면…]아니,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야. 다만 이전처럼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내 의지대로 나아가겠지.
내 의지대로 무대에 설 거고. 활동하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을 거야.
그리고 더 노력하겠지.
혼자서는 힘들다면 멤버들과 함께.
그렇다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믿어.
[… 당신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종료합니다.]“그래 그동안 고마웠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져 왔다.
꿈같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래, 꿈일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니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때.
“형…! 린이형!”
“응…?”
“형 설마 졸았어요?”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나를 향해 집중되어있는 멤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동안 고마웠다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꿈이라도 꾼 거야?”
“형, 혼자 어디 가버리면 안 돼요. 저희랑 평생 같이 해먹기로 약속했잖아요…!!”
순식간에 쏟아지는 멤버들의 말에 나는 황급히 머릿속을 되짚었다.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으음, 잠깐 피곤해서…”
나는 변명을 내뱉으려다 멤버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섞인 것을 보고 말을 멈췄다.
“괜찮아요. 린이형.”
“요즘 많이 무리했잖아요.”
“그래, 린이형이 인터뷰에 통역에 전부 담당하고 있으니까. 피곤할 수밖에.”
음… 사실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닌데.
하지만 나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에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 받는다는 게 뭔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다시 얘기할게요.”
그때 유진킴이 우리를 보면서 이야기했고.
그제야 나는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났다.
“일단 보내주신 가사들은 전부 다 꼼꼼히 살펴봤어요.”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자신의 가사에 대한 평가가 궁금한지 긴장된 눈빛으로 유진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총체적 난국이었어요.”
“에..?”
유진킴의 충격적인 발언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우정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총체적 난국이라니…”
“가사랑 멜로디랑 맞지도 않고. 방향성도 중구난방이어서 중간에 주제가 몇 번씩 바뀌고. 그리고 유치하고… 하아.”
한숨을 내쉬는 유진킴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유진킴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우리가 쓴 가사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된 거야…?”
나는 딴청을 피우는 멤버들 대신 유진킴에게 물었다.
“그래도 도움은 됐어요.”
“으응?”
“가사는 비록 도움이 안 됐지만,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그럼…?”
“곡의 대략적인 방향을 정했어요. 피할 수 없는 마지막이라면 최대한 화려하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그게 제가 생각한 마지막이에요.”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화려하게…
나는 유진킴의 말에 가만히 머릿속으로 우리가 만들 무대를 조금씩 그려보았다.
“그리고 곡 제목은 정했어요.”
“정말?”
“제목이 뭔데요?”
멤버들의 물음에 유진킴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날레.”
피날레.
그 단어를 듣고 나는 유진킴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왜냐하면.
‘내가 지은 가사에 붙인 제목이니까.’
“피날레… 멋있는 것 같아요!”
“나도 좋은데?”
“마지막 악장… 킹스 로드의 마지막 무대랑 잘 맞는 제목인 것 같네요.”
“벌써 무대가 기대된다…!”
멤버들이 신나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유진킴이 다시 말했다.
“그럼 빨리 마무리하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네에!”
그렇게 위어스의 비상대책회의가 끝이 나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유진킴에게 다가갔다.
“유진아.”
“네? 아. 곡 제목이요?”
“아니, 그것보다… 내 가사는 어땠어?”
나는 용기내서 유진킴에게 내가 써낸 가사에 대해 물었고.
“음…”
잠시 고민하던 유진킴이 말했다.
“형.”
“응?”
“가사가 너무 오글거려요.”
그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방송국의 편집실.
그곳에서 하나의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어느 남자가 보였다.
그가 보고 있는 화면 속에서는 얼마 전 끝난 킹스로드 4라운드의 결과 발표 현장이 재생되고 있었다.
[피디님!]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는 킹스 로드의 메인 피디를 향해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어? 무슨 일이야.] [파이널 라운드 무대장치 관련해서 연락이 와서요.] [어디서?] [위어스 쪽에서요.] [그래? 그럼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줘. 문제 있으면 나한테 다시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여성은 피디의 대답을 듣고 편집실을 나가려다 멍하니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피디를 보고는 다시 말을 걸었다.
피디의 심드렁한 반응에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걸어 나가고 있을 때.
[그래도 아직 모르는 거야.] [네?] [혹시 몰라, 마지막 무대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놓을지도.]여자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피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피디는 파이널 라운드의 큐시트를 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서에, 곡명은 피날레…]***
“이 느낌. 이 기분! 분명 어디선가 겪어 본 것 같아.”
“저도요.”
“국민 아이돌 파이널 때랑 비슷해.”
“맞네…”
킹스 로드의 파이널 라운드 당일.
언제나 같이 위어스의 대기실은 시끌벅적했다.
“목표는 우승!”
“아자아자!”
“린이형의 우승의 기운을 담아서 저희 다 같이 영차영차 해보죠!”
“영차영차!”
왠지 불길하게 계속 영차영차를 외치는 우정우와 심성하의 모습이 보이고.
“떨려서 숨이 잘 안 쉬어져…”
“최대한 깊게 쉬세요. 후우우우우. 하아아아아.”
온몸으로 긴장됨을 표현하고 있는 강아진과 그 옆에서 같이 심호흡을 도와주는 백시현의 모습.
그리고.
“정신 사납네요.”
“허허허.”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이야기하는 유진킴과 그 옆에서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박한휘까지.
“어어? 어디서 2위의 기운이 몰려오는걸?”
“그러게요. 항상 2위만 하는 LA 출신에 누구누구씨가 방금 정신 사납다고…”
“그만.”
결국 유진킴의 싸늘한 눈빛을 맞고만 심성하가 도와달라는 애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아. 다들 모여보자.”
내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멤버들이 모두 대기실 한가운데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였다.
“아까 국민 아이돌 때 이야기했었지? 그때 파이널 무대… 다들 기억해?”
“당연하죠.”
“아직도 생생하다구요.”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있잖아. 뭔지 알겠어?”
“글쎄요…”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
“아니.”
나는 내 곁을 둘러싼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한 번씩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때는 우리가 팀이 아니었고. 지금은 우리가 한팀이라는 거. 그게 달라졌어.”
긴장한 걸 애써 감추는 얼굴. 그리고 나를 믿는다는 시선.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며 다시 말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우리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거.”
내 말에 멤버들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미소를 보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더 고생하자. 알겠나?”
“넵! 충성!”
“옛썰!”
그러자 나를 보며 같이 웃으며 대답해주는 멤버들.
그리고.
[위어스 이제 대기하겠습니다.]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안내를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오니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에 진동하는 공연장이 느껴졌다.
“엄청나네요…”
누가 한 말인지 모를 만큼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공연장.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무대.
잠깐의 기다림과 두근거림.
마지막 무대.
그리고 그 무대 뒤에 있을 새로운 시작.
[이제 올라가겠습니다.]그 말과 함께 멤버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환호성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린이형!”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
고개를 드니 멤버들이 뒤돌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나는 멤버들을 향해 그리고 무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이 파이널 라운드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이 피날레에 모든 걸 쏟아부을 것이다.
마지막이 가장 화려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