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ol life that starts with military writing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뮤직비디오를 재생시킨 홍윤아의 눈에 가장 처음 보인 건 회색빛 도시의 풍경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닌데? 그리고… 흑백이라고?’
흑백의 화면.
분명 위어스의 공식 뮤직비디오인 것을 확인했으니, 홍윤아가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요즘 이런 뮤직비디오가 있었나? 시작부터 특이하네.’
인트로가 끝나면 금방 색채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등장한 선우린이 나올 때까지도 흑백의 화면은 계속 이어졌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
정지된 이 시간 속에
피어나는 회색빛 라일락
도심 속 한가운데에 있는 빌딩 위 옥상.
흑백의 화면인지라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곳에, 광활한 도심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선우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늘이 담긴, 미래의 일기 속에
숨겨놓은 내 모습을
천천히 다시 그려봐
화면이 전환되고 학교를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하나의 배경같이 떠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아진의 얼굴이 나오고.
특이한 건 이후로 나오는 멤버들도 모두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
‘무슨 컨셉인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한데…’
흑백의 화면과 초점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멤버들의 모습.
첫 번째 특이점이 나타난 건, 유진킴의 눈빛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을 때였다.
파란색 원을 그리며 빛나는 눈빛.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후렴이 나오며 온통 흰 공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세트에서 춤을 추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With a hero in my eyes
다른 차원 속에 나를 깨워
강렬한 음악과 함께 군무를 추는 위어스의 모습은, 영상미 덕분인지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가운데가 선우린 맞나? 뭔가 확 눈에 띄네.’
춤을 가장 잘 추는 멤버는 따로 있었지만, 눈빛에서 오는 강렬한 분위기 때문인지 뭔가 남다른 포스가 있었다.
1절의 후렴이 끝난 이후에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의 멤버들이 보였다.
다이어리를 꺼내며 무언가를 표시하는 심성하의 모습이 보이고.
우정우는 하염없이 어두운 지하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는 백시현과 박한휘.
이질감에 바로 뒤돌아본 두 사람의 눈빛에 비친, 서로의 파란 눈동자.
그 순간 음악이 멈추고.
거리의 모든 게 정지된 채, 정적이 찾아왔을 때.
-What do they know about us?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유진킴의 말과 함께 서서히 금이 가는 유리창. 그리고 유리에 담긴 유진킴의 모습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와 동시에 백색으로 이루어져 있던 거대한 공간.
그곳에서 춤을 추는 멤버들의 위로 모래가루처럼 떨어지는 입자와 함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벽 너머로 색색의 빛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With a hero in my eyes
다른 차원 속에 나를 깨워
더욱더 강렬해진 후렴의 반주에 맞추어, 격정적인 춤을 추는 일곱 멤버의 모습이 보였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눈빛
이미 너도 깨닫게 된 거야
더 절정으로 치솟을 수 없을 것 같던 음악이, 유진킴과 우정우 두 메인보컬의 경쟁하듯 뿜어내는 고음의 향연에 끝도 없이 절정의 구간을 유지했고.
‘이러면 나중에 어떻게 끝내려는 거지? 이거 라이브로도 가능한 것 맞나?’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런 걱정이 될 만큼 곡은 숨 막힐 듯한 퍼포먼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침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세트장,
흰색의 벽은 수천 조각으로 쪼개진 유리가 되어 춤을 추는 멤버들의 모습을 비추고.
두 개의 차원이 뒤섞이듯 이루어지는 격변 속에.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빛들과 함께, 색을 되찾은 저녁의 도시의 풍경이 비추어졌다.
화면이 전환되며 뮤직비디오의 시작점이었던 선우린이 서 있던 건물의 옥상.
그 위에서 붉은 석양과 함께 마지막 안무가 끝나고.
석양이 비추어지며 멤버들의 얼굴을 반쯤 가릴 때, 카메라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We’re heroes
선우린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화면이 암전되고.
‘얘네가 이제 데뷔한 신인이라고?’
홍윤아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압도적인 영상미야, 뮤직비디오에 얼마나 투자를 했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거니 그렇다 치고.
퍼포먼스나 곡을 소화하는 능력이 전혀 신인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마지막 장면… 다시 보고 싶은데. 라이브는 없나?’
처음의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새 위어스 ‘HERO’ 라이브 영상을 검색하고 있는 홍윤아였다.
***
위어스의 첫 번째 음악 방송 스케쥴은 당연하게도 뮤직넷의 뮤직 스테이션이었다.
목요일에 진행되는 뮤직 스테이션은 모든 음악 방송 중 가장 먼저 방송되는 프로였고.
위어스의 음악방송 데뷔는 이미 뮤직 스테이션의 사전녹화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뮤직 스테이션이 방송되는 날은 쇼케이스 무대 효과로 블루레드의 음원 순위를 한번 따라잡아 보았던 위어스의 팬들이 작정하고 기다리고 있는 날이기도 했다.
-뮤직 스테이션 무대 끝나고 꼭 음원 1위 자리 다시 탈환하자!
-블루레드는 안 나올 테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어.
-비록 방청은 떨어졌지만, 집에서 열심히 스밍돌리고 있을게 ㅠㅠ
-블루레드 음방 뜨기 전에,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팬들이 이렇게 기대하고 있는 이유는, 뮤직 스테이션에 블루레드가 출연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뮤직넷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블루레드의 소속사 문제 때문에, 블루레드는 항상 뮤직 스테이션에서는 컴백 무대를 진행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블루레드가 뮤직 스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화제성은 먼저 컴백 무대를 진행한 위어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팬들이 기대하고 있을 때.
뮤직 스테이션의 방송 이틀 전, 이주의 뮤직스테이션의 라인업이 새롭게 공개되었다.
[COMEBACK! 블루레드]-뭐야…? 저번 주 예고 때는 블루레드 없었잖아?
-저거 라인업 잘못 나온 거 아니야? 블루레드가 왜 뮤직 스테이션에서 컴백을 해?
└아니, 제대로 나온 것 같은데. 블루레드 SNS에도 뮤직 스테이션 출연한다고 방금 떴어.
-그럼… 위어스랑 블루레드랑 같은 날 무대에 선다고?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블루레드가 처음으로 뮤직 스테이션에서 컴백 무대를 예고하고.
목요일 당일.
드디어 블루레드와 위어스가 출연하는, 뮤직 스테이션의 방송일이 찾아왔다.
***
뮤직 스테이션 첫 사전녹화 무대를 앞두고. 우리는 새벽부터 방송국에 나와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뮤직 스테이션은 이미 국민 아이돌 시절에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지만.
새벽부터 진행되는 사전녹화는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아아아암! 지금이 몇 시에요?”
“아직 조금 남았어, 더 자.”
“네에…”
대기실 쇼파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강아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옆에 앉아있던 박한휘가 다시 강아진을 쇼파에 눕히고는 눈에 안대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쇼파에는 심성하와 백시현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형은 안 피곤해요?”
“떨려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
웃으면서 대답하는 박한휘의 옆에는 언제 먹었는지, 우황청심환의 껍질이 보였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뜨끔한 표정을 지은 박한휘가 쓰레기를 감추며 이야기했다.
“아아, 이거? 먹으면 좀 덜 떨린다길래.”
“형, 저번 쇼케이스 때는 이렇게 안 떨었잖아요.”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하나도 안 떨렸는데. 음악 방송은 뭔가 느낌이 좀 다르네…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
처음 보는 박한휘의 모습에, 뭔가 박한휘도 긴장을 하는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사전녹화 무대니까 상관은 없겠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박한휘만 깨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음음-
자는 멤버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대기실 구석에서 조용히 목을 풀고 있는 우정우의 모습이 보였다.
하긴 새벽에 이루어지는 사전녹화인 만큼 지금이 아니면 목을 풀 시간이 없었다.
메인보컬의 숙명이랄까…
그런데.
“유진이 너는 목 안 풀어도 괜찮아?”
나는 우정우와 다르게 아까 전부터 계속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킴에게 말했다.
“네, 괜찮아요.”
이게 바로 재능이라는 건가.
몇 시간 자지도 못했을 텐데, 평소와 다름없이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킴의 말에 괜히 우정우가 뜨끔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물어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같은 메인보컬인데도 스타일 정말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내 말에 유진킴이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유진킴의 핸드폰 화면에는 음원 사이트의 순위표가 보였다.
“계속 이것만 보고 있었던 거야?”
“형도 할 거 없으면, 저희 앨범 스트리밍 같이 해주세요.”
“…”
여러모로 참 대단한 유진킴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내가, 핸드폰을 꺼내 음원 스트리밍에 동참하고 있을 때.
“얘들아. 이제 올라갈 시간이다.”
매니저가 대기실에 들어와 신호를 주자, 잠들어 있던 세 명의 멤버가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무대에 올라간 우리의 앞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꼭두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환호성을 내뿜는 팬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무대 밑에는 쇼케이스 때 나눠주었던 임시 응원봉을 가지고 있는 팬들의 모습과.
응원봉이 없더라도 격렬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사전녹화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멤버들이 나를 따라 같이 인사했다.
사실 의미 없는 감사의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이 새벽부터 이곳에 찾아와준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편하게 대기라도 했지만, 팬들은 계속 이 세트장에서 서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최대한 한명 한명의 얼굴을 내 기억에 담으려 집중해 바라보았고.
그런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는지.
눈이 마주치는 팬들의 얼굴에 기쁨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저희 세트장 너무 멋있죠?”
아진아 네가 더 멋있어!!-
우리 애들이 최고야!!!-
뮤직 스테이션에서 준비한 세트장을 보며 강아진이 말하자, 강아진의 의도와는 다른 팬들의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세트는 진짜 돈 꽤나 쓴 티가 나네.’
수정 같은 재질로 꾸며져 있는 백색의 세트가,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아마 뮤직넷이니까 가능한 세트가 아닐까.
다른 방송국에 가면, 이렇게 대우해주지는 않겠지.
‘아직은 말이야.’
이번 활동이 끝나고, 우리가 블루레드를 이기게 되면…
뭐,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무대에 집중하자.’
팬들과의 짧은 소통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바로 무대를 시작했다.
-With a hero in my eyes
다른 차원 속에 나를 깨워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눈빛
이미 너도 깨닫게 된 거야
‘HERO’의 격한 안무가 이어지고. 그 안무보다 더 격한 팬들의 응원 열기 속에서 우리가 춤을 추고 있을 때.
무대 가장 앞, 나와 호흡을 맞춰 안무를 이어가고 있던 박한휘가 갑자기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어…!
우리가 무대 가장 앞이었기 때문에, 팬들에게 그 장면이 정면으로 보이고 있었다.
박한휘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놀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미끄러지는 박한휘의 팔을 한 손으로 잡아끌었고.
금방 몸의 균형을 되찾은 박한휘가, 마치 미끄러졌던 것 또한 안무의 하나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음 안무를 이어나갔다.
와아아아아아-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모습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물론 실수는 실수였으니, 아마 이 장면은 본방송에서는 편집되어서 나가겠지만.
-We’re heroes
무대를 마치고 나서도 팬들의 환호성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