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440
〈 440화 〉 월은제약 – 2
만독불침.
그것은 만 개의 독에도 죽지 않는, 독이 통하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단어였다. 무협지에서 몇 번인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감도 굉장히 강하고.
“만독불침을 죽일 수 있는 독이라. 네자는 누굴 죽일 생각인 거지?”
“제가 아는 사람 중 만독불침은 둘밖에 없습니다.”
내 질문에 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숨기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현 귀족 가문의 당주와, 야크샤입니다.”
“……역시.”
유에는 첸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네자가 죽이려는 사람은 당주 아니면 야크샤겠네. 첸, 어떻게 생각해?”
“현 귀족 가문의 당주를 네자가 죽일 이유는 없어요. 최근 야크샤 건으로 몹시 혼났다고는 들었지만 여전히 그가 차기 당주 후보임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야크샤를 죽이려는 것이겠군요.”
가문에서 내쫓는 것만으로 모자라 죽이기려고까지 한다니, 참 각박한 놈들이다.
“그런데 귀족 가문의 당주는 그렇다 쳐도 야크샤까지 만독불침이야?”
“……월은제약은 이미 과거에 귀족에게 독을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첸은 이미 과거에 귀족에게 독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의뢰는, 동족도 죽일 수 있을 강한 독. 하지만 야크샤는 죽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야크샤, 독 내성이 있긴 했던가.’
야크샤 상대로는 초반에는 강한 보스 유닛 상대로 제법 유효하게 쓸 수 있던 따위의 스킬이 전혀 통하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기껏해야 속도와 공격력 디버프 정도가 걸 수 있는 상태이상의 전부였던가.
“결국 독을 의뢰한 귀족은 몇 번이나 왜 듣지 않는 독을 주냐고 행패를 부렸지요.”
“……저, 혹시 죽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약하게 만들거나 했던 건가요?”
이야기를 듣던 울프힐데가 무언가 훈훈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뇨. 굉장히 독하게 만들었습니다. 넣는 병이 부식될 정도로 독하게.”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유에 말대로 그렇게 깨끗한 곳은 아닌 듯싶다. 좋게 말하면 프로페셔널하다고도 할 수 있긴 한가.
“다른 이에게 먹이니 효과가 있었기에, 야크샤가 강한 것으로 이해해주었습니다만.”
하지만 뒤이어 나온 이야기는 굉장히 독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상으로 뒤숭숭한 말이었다.
“네? 도, 독약을 먹인 건가요? 실험한다고 다른 귀족에게?”
“무서운 놈들이네. 마음에 안 들어.”
울프힐데가 첸의 말에 당황했고 모리건이 인상을 썼다. 유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했다.
“누구에게 먹였습니까?”
유에가 물었다. 첸은 잠시 침묵하다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귀족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해독제는 준비해두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쓰는 것을 허락하는 게 늦었기에 시력은 잃고 말았습니다만.”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첸은 독약을 먹은 자에 대해 설명했다.
‘시력을, 잃었다고……?’
시력을 잃은 귀족이 아닌 자.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울프힐데와 모리건에게 마사지를 해줬다는 린린의 언니였다.
‘린린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귀족은 요호족을 마구 학살했던 과거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어린 린린의 언니를 억지로 끌고 와 월은제약의 사람에게 독을 실험하라고 던졌다든지 하는 일도 전혀 없을 일은 아니었다.
“그거, 언제쯤의 일이었어?”
“10년도 전의 일입니다. 귀족이 야크샤를 죽여야 할 일이 생긴 직후의 일이니.”
시기적으로는 그렇게 엇나간 이야기도 아닐까. 그쯤이면 린린도 아직 어리다. 사실을 숨기고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가……. 그랬단 말이지. 다들 그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모릅니다. 타인에게 발설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첸은 지금까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숨겨왔으면서 왜 나에겐 발설한 거야?”
“보아하니,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셨군요.”
그리고 나의 추궁에 피해자가 린린의 언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다른 소리 말고, 질문에 대답해줘.”
“복수하지 못할 원한에 대해선 차라리 모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알아봐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숨기는 게 낫다고.”
“……그런가. 일리 있는 판단이야.”
린린이 어릴 적에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리 득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왜 발설한 거지? 숨겨온 이유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숨긴 이유의 반대입니다. 복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복수하는가, 복수하지 않는가는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만, 경솔한 행동의 대가는 언젠가 치르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좀 더 시원하게 쳐부술 수 있겠어.”
마침 도박에서 린린이 참관인으로 오기로 했다.
클라이막스를 좀 더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다면 즐거울 따름이다.
“그래서, 네자의 의뢰는 어떻게 할 거야? 그보다 의뢰 내용을 이렇게 전부 밝혀도 괜찮아? 너에게 들었다고 떠들 생각은 없지만 해코지를 하려 할 것 같은데.”
“발설하면 죽인다고 했지만, 어차피 제가 죽으면 그런 독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거래에 있어 갑은 저입니다.”
첸은 제법 뻔뻔하게 말했다. 과거에 미약의 대금을 큼지막하게 던진 것도 그렇고 배짱이 두둑하다.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면 지난 회차의 야크샤도 독에 당했던 건가?’
돌아보면 동방연맹 루트의 야크샤는 죽게 되는 최후의 전투에서 능력치가 상당히 너프되어 등장했었다. 완전 괴물로 나왔던 첫 등장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이었다.
첫 등장이 이벤트니까 해치울 수 없게 설계한 것이라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 등장의 능력치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 그대로 첫 등장에 나와도 충분히 이길 수 없었다.
‘그 능력치 하락은 첸의 독에 당하기라도 했던 걸까. 어떤 연유로 야크샤가 독에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만들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첸이 내 생각에 대답하듯 말했다.
“야크샤가 귀족의 무기였던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 야크샤는 샤오 님의 여자입니다. 그리고 귀족의 눈엣가시죠. 죽게 된다면 기뻐할 것은 저들뿐입니다.”
“그렇지. 귀족 내 온건파도 완전히 억눌리게 될 거고.”
“저는 저들이 기뻐할 짓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고 말지.”
첸이 보기 드물게 날카롭게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귀족을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라 다행이다. 첸이 적이었다면 분명 굉장히 성가셨을 것 같다.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알리랑 세르비아는 잘 있어? 들어가도 될까?”
“네. 너무 오래 있었네요. 들어가죠.”
첸은 월은제약의 문을 열며 앞서 들어갔다. 나는 애들을 살폈다. 다들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런대로 파악한 얼굴이었다.
“……눈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언니죠?”
“그런 것 같아. 그 외에는 없는 것 같으니.”
나는 울프힐데의 질문을 긍정했다. 유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 녀석들. 야크샤처럼 말하다보면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쓰레기네. 마족도 그 정도로 뻔뻔하지 않아.”
모리건이 드물게 강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번에 전부 죗값을 치르게 하자고. 확실한 동기가 생겨주니 더 편하게 쳐부술 수 있겠어.”
덕분에 이쪽은 귀족을 쳐부술 의욕이 더욱 샘솟는다. 단순히 도박의 승리 정도로는 끝내주지 않기로 했다.
한약 같은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은월제약의 안쪽에는,
“어. 뭐야? 댁들이 여긴 또 왜 와?”
“앗. 교수님! 모리건이랑 울프힐데, 유에도 왔네요!”
라트가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팔에는 링겔 같은 것을 꽂고 있었고, 그 옆에 앉아있던 세르비아가 우리를 보고 반가운 듯 내려왔다.
“응? 전부 왔네. 좋은 오후야.”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험관을 응시하던 알리도 뒤늦게 인사했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시험관을 들고 있는 모습은 돌팔이 연금술사보단 제대로 된 과학자 같은 느낌이다.
“다들 잘 지내는 것 같네. 그런데 라트,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아르바이트. 왜 여기에 왔냐고는 내가 먼저 물었는데?”
라트가 어이없어하며 대꾸했다. 팔에 붙이고 있는 주삿바늘은 투명한 액체가 든 약병에 이어져있었다. 뭔가 똑똑 흘러들어가는 것이 조금 무섭다.
“라트에게는 약의 임상시험 등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만난 적이 있습니까?”
“도박장 나와서 만났지. 괜찮은 방법이 있다느니 하더라고. 그런데 임상시험? 해로운 거 아니야?”
“……보수는 두둑합니다.”
해로운 듯하다. 뭐 보수가 두둑하다면 괜찮을까.
“가끔 뿅 가는 약도 주니까 괜찮아. 오늘 약은 별 느낌 없지만. 무슨 약이야?”
“그건 저도 모릅니다. 배합의 테스트니까요.”
완전히 실험용 쥐다. 쥐 수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쥐가 실험용으로 많이 쓰이는 이유는 싸고 번식이 잘 되기 때문이란 걸 생각하면 약간 오싹하기도 하다. 본인은 딱히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좀 전에 차를 끓였었는데 아직 안 식었네요. 모두 따라드릴게요.”
세르비아가 수상해 보이는 주전자로 찬장의 비커들을 꺼내 차를 따라서 나눠주었다. 향은 좋지만 괜히 꺼림칙하다. 비커에 이상한 약품이 남지 않았길 바랄 따름이다.
“향은 좋군요. 마시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정확한 실험을 위해서 비커는 깨끗하게 씻고 있어요.”
첸이 세르비아에게 비커를 받고 차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기껏 타준 차를 안 마시기도 뭐하니 나도 입으로 가져갔다. 적당히 미지근해 마시기 좋았다. 향은 다소 강한 편이었지만.
“그런데 둘 다 잠은 잘 잤어?”
“약간 춥지만 괜찮아요. 저는 추위에 강하거든요.”
“나는 세르비아가 따끈해서 괜찮아.”
세르비아랑 알리는 같이 자는 걸까. 이쪽의 모리건이랑 울프힐데 같다. 딱히 야한 짓은 안 할 것 같지만.
“……그런데 다른 사람은? 뭔가 첸이 주인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제가 주인 대리에요.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킬 줄은 몰랐네요. 뭐, 스승님도 다 죽어가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요.”
“스승님?”
“지금은 들어가서 주무시고 계세요. 인사할 만큼 대단한 늙은이는 아니니까 굳이 깨우진 마세요. 괜히 잔소리 듣기 싫고.”
스승의 평가가 상당히 박하다. 싫어하니 굳이 만나진 말까.
“다른 제자는 없는 거야?”
“네. 월은의 기술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좋을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당장 연금술부 동료들이 이것저것 연구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떨까 싶다. 딱딱하고 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는 첸도 동료들에게는 무른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 동방의 약재는 재미있는 게 많아. 위험한 것도 많지만. 약초든 독초든 풀을 캐려면 동방으로 가라는 말이 이래서 있구나 싶다니까.”
“향만 맡아도 효과가 있는 약도 많아서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요. 향신료로 쓸 수 있는 것도 꽤 있어서 재밌어요.”
내가 시선을 보내자 알리와 세르비아가 신나서 말했다.
이쪽이 섹스랑 도박으로 방탕하게 지내는 동안 무척 바람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쪽은 약간 반성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귀족이 독을 만든다면 그걸 어떻게 먹일 생각일까?”
나는 적당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밖에서 묻다 만 이야기를 꺼냈다.
“둘은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았으니까요. 말을 바꿔 참여하겠다고 한 뒤에 축배에 섞거나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간단하면서 알기 쉬운 방식이네.”
흔히 있는 패턴이었다. 보통 무도회나 결혼식에선 한 명쯤 독살을 당하는 법이다.
“……첸, 하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잠자코 있던 유에가 첸을 불렀다.
“뭔가요?”
“그렇다면 그들이 야크샤가 아니라 아예 맹주님을 암살해버릴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유에의 질문에 첸은 잠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