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487
〈 487화 〉 동방의 마무리 – 3
“……설마 진짜로 만들었을 줄이야.”
“불길하고 위험한 것을 만들고 싶어지는 건 이쪽 사람들의 직업병이니까요.”
첸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네자의 의뢰일 때에는 위험하게 쓰일 게 뻔하니 계속 거절했지만, 교수의 의뢰라면 만들어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봐줬다니 기쁜걸.”
적당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막상 완성했다고 하니 괜한 위험한 걸 만들게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어?”
“여기. 아주 소량이에요. 5방울 정도일까.”
첸은 주머니에서 병을 꺼냈다. 그런 위험한 독을 잘도 품에 지니고 있었다. 무슨 라듐을 지니고 있던 퀴리 부인 같은 꼴이 나려고.
“지닌 것만으로 유해하지는 않아요. 제대로 봉인 절차도 거쳤고요.”
“그건 다행이네. ……제조법은 알고 있는 사람 있어?”
“기록하진 않았어요. 일부러.”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첸은 자신이 만든 물건의 위험성은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리가 신경 쓰이는 듯 살짝 기웃대긴 했지만 분위기를 파악한 듯 굳이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야 아직 기억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잊도록 노력할까 싶네요. 더 만들기에는 너무 흉흉한 물건이니까.”
“그게 좋겠네. 나도 이 물건의 존재는 주변에 알리지 않을 테니까.”
의뢰할 때는 만약에 대비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괜히 만들게 시켰나 싶을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여신조차 독살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를, 이 세계 최흉의 독인 것이다.
‘……그래도 얻어졌다는 건 나중에 다 쓸모가 있겠지.’
안 쓸 수 있다면 안 쓰는 게 제일이겠지만. 어쩌면 제국에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받은 독약을 안전하게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다. 여기에 넣어두면 나만이 접근할 수 있으니 누가 훔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한동안은 잊고 지내는 게 속이 편하겠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교수의 물건을 넣고 꺼내는 그거, 마법이야 뭐야? 아티팩트?”
지금까지 신경이 쓰이는 듯 힐끔대던 알리가 물어왔다.
“……대충 권능 같은 거야. 적당히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줘.”
“권능……. 뭐, 그쪽은 내 분야가 아니니 들어도 모르겠다.”
연구가 취미인 알리니 끈질기게 물어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적당히 타협해주었다. 나도 뭐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다행이다.
“그러면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하자. 1시쯤에 출발할 예정이니 인사할 사람에게 인사해두고, 무거운 짐은 나한테 맡기도록 해.”
나는 이외에도 이런저런 사항을 확인해둔 뒤, 돌아갈 예정인 모두에게 말했다.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귀환이지만 다들 예상했던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걸로 동방연맹의 일도 마무리. 남은 건 제국인가.’
이제 동방연맹에서 할 일은 다 끝냈다. 오랜만에 사관학교에 돌아간 뒤, 숨을 돌리고 마지막 목표인 제국으로 가면 된다.
제국에서 앞으로 있을 후환을 제거하는 것으로 제4의 루트,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미래가 완성된다.
‘솔직히 실감은 잘 안 나지만……. 되면 쉴 수 있겠지.’
행복한 기둥서방 생활을 위해, 조금만 더 힘내자.
각각 인사할 사람에게 인사하고 마지막 쇼핑도 끝낸 뒤, 우리는 다시 월은제약에 모였다.
“둘 다 선물을 잔뜩 사왔네.”
“루시아랑 텟샤에게 줄 선물이에요. 그동안 외로웠을 테고, 동방의 물건은 제국에서 귀할 테니까요!”
모리건과 울프힐데는 루시아랑 텟샤에게 줄 선물을 잔뜩 준비해왔다. 울프힐데는 거의 다 먹을 거였고 모리건은 대부분이 책이었다.
“의외로 책을 정말 좋아하네, 모리건.”
“동방의 언어는 잘 몰라서 못 읽지만, 이참에 공부해보려고.”
모리건은 보기와는 달리 의외로 제자 중 제일 독서광이었다. 날카롭고 강해보이는 인상과 달리 의외로 인텔리한 구석이 있다.
정작 책을 많이 읽어서 시력까지 나빠졌다는 울프힐데는 막상 나온 뒤에는 그리 책을 안 보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읽어서 오히려 완전히 질린 걸지도 모르겠다.
“울프힐데는 요즘 책 읽어?”
“네? 음, 예전에는 많이 읽었지만……. 요즘은 책보다 재미있는 게 많으니까요.”
“뭐, 책으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리고 내 뒤쪽, 짐을 잔뜩 가져온 모리건과 울프힐데에 비해 유에는 작은 꾸러미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그 꾸러미는?”
“샤오 님이 주셨습니다. 단도입니다. 마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듣는 순간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동방연맹 루트의 히든 보스인 귀족의 선조를 무찌르는 데 필요한 이벤트 아이템이었다.
“굉장히 귀한 걸 줬네. 잘 보관하도록 해.”
“……그래서 조금 죄송했습니다. 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된 지금에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불길한 물건임에는 사실입니다만.”
유에가 사뭇 심란해했다. 약간 썸이 있을 듯 말 듯 했던 상대가 귀한 물건을 챙겨줘봐야 이래저래 불편하기만 한 따름이긴 하다.
“연금술부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챙기는 거 아냐?”
그리고 그 무렵,
“후우, 후아악, 영차! 운송하는 비용이 없이 갈 수 있다면 최대한 챙겨야지! 교수의 그 끝없는 주머니라면 전부 옮길 수 있잖아?”
연금술부는 가게의 약재들을 거의 다 상자에 담아서 와르르 쌓아뒀다. 가게를 옮기는 준비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대량의 짐이었다.
“으으으……. 흐랴압! 후우, 하아. 하아……. 쌀, 무겁네요…….”
그뿐만 아니라 세르비아가 식재까지 잔뜩 가져와, 이대로 배를 타고 무역에 나서도 될 꼴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예 가게를 새로 차려도 될 정도로 챙길 줄이야.”
“스승님이 제대로 영업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1년간 유지는 될 정도로 남기긴 했어요. 둬봐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썩어갈 운명일 터이니 가져가서 연구라도 하는 게 낫고.”
첸이 자그마한 상자를 짐 위에 추가하며 말했다.
“첸이 문제가 안 된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러면 챙겨야겠네.”
첸이 괜찮다고 하면 안 될 것도 없을까.
박스 단위로 바로 인벤토리로 들어갈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손을 뻗어서 인벤토리를 소환한 뒤 박스를 집고 넣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커다란 박스 하나가 즉시 사라졌다. 확인해보니 인벤토리로 박스 항목까지 생겨서 깔끔하게 들어갔다.
“오오. 이거 대단한걸! 막상 다 쌌는데 안 되면 어떡하나 좀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네!”
“이게 되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리한데.”
인벤토리, 정확히는 창고가 무한인 게임이라 가능한 걸까. 내가 손짓해서 넣었지만 너무 편리한 거 아닌가 싶어졌다.
“전투에 응용하면 상대의 무기를 단숨에 빼앗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 같지만……. 아마 그건 안 될거야. 쓸 수 있는 상황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거든.”
유에가 재밌는 제안을 했지만 인벤토리에 무언가 넣거나 꺼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전투 모드에서만 가능하니 전투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런 규칙을 신나게 무시해왔던 걸 생각하면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테스트를 해볼까.’
상대가 이상한 마검 같은 걸 들고 날뛴다면 확실히 유용할 것 같긴 하다. 나중에 테스트를 좀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 이걸로 전부 다 챙겼나. 바로 가보자.”
나는 쌓아둔 박스들은 전부 인벤토리에 넣은 뒤 말했다.
“듣긴 했지만, 정말 손을 잡고 나란히 있는 것만으로 갈 수 있는 거야?”
교단에서 같이 돌아온 경험이 있는 유에와 모리건, 울프힐데는 태연했지만 워프를 처음 받아보는 연금술부, 특히 알리는 내 말에 정말 가능하냐며 의문을 표했다.
“그래. 사관학교로 돌아가는 건 어디서든지 할 수 있고, 이제 여기도 한 번 들렸으니 다음에 올 때도 바로 날아올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거리가 꽤 있는 탓에 워프하고 난 뒤 24시간 동안에는 재사용하지 못하지만.”
“24시간의 제한이 있다고 해도 평범하게 오면 며칠씩 걸리는 곳이잖아……. 들을수록 엄청난 능력인데. 그것도 권능이야?”
“대충 그렇다고 할까.”
뭔가 설명하기 힘든 건 전부 권능으로 뭉뚱그릴 수 있어서 편하다. 시스템 기능이니 뭐니 하면서 말해봐야 이해시킬 자신은 없다.
“뭔가 불공평하단 느낌마저 든단 말이지…….”
“그래도 손은 제대로 꽉 잡아. 잘못해서 놓치면 혼자 덩그러니 남을 테니까. 아니면 이상하게 반만 날아갈지도 모르지.”
“괘, 괜찮은 건가요?!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알리에게 농담으로 한 말에 세르비아가 히익하고 겁먹었다. 드래곤이면서 배짱이 참 없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가는 방법이 있었으면 종교혁명 때 왜 저는 두고 간 건가요?! 다들 순식간에 사라졌다 싶었는데 이걸로 사라졌던 거군요!”
그리고 뒤늦게 종교혁명 때 자기만 두고 우리가 사라졌던 일을 기억해내며 버럭 화냈다.
“혼자 남아서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그나마 같이 돌아오는 신부님이 친절해서 다행이었지! 너무 서러워서 울 뻔했어요! 아니, 울었어요!”
“같이 온 병사들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지. 그때는 미안했어.”
솔직하게 그냥 까먹었다고 하긴 좀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울었다고까지 하니 좀 진심으로 미안해지긴 한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었겠네요……. 제가 없었으면 분명 제대로 배식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도 말 정도는 미리 해달라고요! 언젠가 노동의 대가를 꼭 받겠어요!”
“그래. 나중에 안아줄게. 그러면 가자.”
“네? 안아준, 후왁?! 어, 어?”
나는 모두 나란히 손을 잡은 걸 확인하고 워프를 사용했다.
그리고 바로 도착했다.
“어, 어라. 여기는 부실……. 부실이죠?”
별다른 이펙트나 마법진 같은 것도 없이 단숨에 이동했다.
“어때, 대단하지?”
“……너무 순식간에 와버리니까 놀라서 감탄할 타이밍을 놓쳤어요.”
“굉장해. 이동하는 순간을 의식하지도 못했어. 이렇게 그냥 오는 거야?”
세르비아가 놀랍다기보단 약간 어이없다는 듯 익숙한 부실을 둘러보았고 알리는 감탄하며 나에게 다시 물어왔다.
“……굉장하네요.”
첸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감상을 말한 뒤 식탁의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좀 더 놀라줬으면 좋겠는데. 당황하거나 경악하는 얼굴이 보고 싶은데 참으로 침착하다.
“돌아왔군요. 동방도 좋지만, 이제는 여기가 더 고향 같은 느낌도 듭니다.”
“막상 돌아오니까 조금 아쉬운 기분도 드네. 좀 더 놀 걸 그랬나.”
“이번에는 바빠서 못 했지만 다음에는 라트랑 같이 쇼핑이라든지 가고 싶네요.”
유에와 모리건, 울프힐데도 이제 태연하다. 뭐 매번 놀라주는 것도 귀찮지만 다들 익숙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살짝 아쉽다. 괜히 생색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재료들은 어디에 둘까? 보관할 장소는 있어?”
“아. 음……. 으음. 그게. 그건……. 생각 안 했어.”
인벤토리에 넣은 재료들을 어떻게 할지 슬쩍 물어봤지만 알리는 막상 가져오는 보관할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습도와 온도를 맞춘 창고를 만들기는 어려우니, 제대로 연구기관으로 자리잡게 될 때까지는 교수님에게 부탁하고 될까요?”
“그런가. 알았어. 딱히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불편한 일도 없으니까.”
첸이 좀 더 가지고 있어달라고 해서 나는 태평하게 승낙했다. 인벤토리야 무한이니 딱히 자리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후우, 다행이다. 역시 교수는 굉장하네. 꼭 연구실장으로 취임해줘!”
“앗. 그러면 식재도 상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나요?! 굉장하네요!! 대단해요!!”
손잡고 워프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반응이 나왔다. 세르비아가 과하게 흥분했다. 뭐 요리인에게 냉장고의 존재란 마법 같은 것이긴 하려니.
“……그러니, 제국에 간 뒤에도 꼭 살아오셔야 합니다. 죽으면 귀중한 약재들이 전부 증발하니까요.”
“그래, 그래. 살아서 올게. 너희는 남아서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
그 와중에 걱정해주는 첸이 은근히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