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53
〈 53화 〉 모리건 2회전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는 모리건의 앞에 금발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식당에서 먹을 게 있어? 마족은 생고기를 먹는다고 들었는데.”
사관학교 장르라고 하면 꼭 등장하는 재수 없는 귀족 차별주의자다. 뒤쪽에는 뚱뚱한 녀석이랑 마른 녀석이 있다는 것도 완벽하다. 너무 뻔하다 보니 도리어 가끔은 신선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 주제에 잘 생겨서 인기가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귀족 차별주의자의 이름은 아이작, 하얀 피부와 금발, 오만한 표정만 봐도 제국의 유닛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타입의 유닛이다.
참고로 재수 없는 주제에 성능은 나쁘지 않다. 어차피 남자 유닛은 쓸 생각 없어서 알 바는 없지만.
“생고기를 먹으면 구운 고기는 더 잘 먹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모리건은 아이작에게 몹시 당연한 대꾸를 했다. 딱히 화나지도 않은 귀찮다는 표정이다.
“생고기도 잘 먹으면 굳이 식당의 아주머니를 수고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나가서 사냥이라도 해서 먹는 건 어때?”
“마족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구운 고기가 생고기보다 좋아. 그리고 학생식당의 이용비라면 나도 제대로 냈으니 아주머니를 수고하게 할 권리가 있어.”
얼토당토않은 시비에 대한 모리건은 깔끔한 정론으로 대응했다. 그저 사실의 나열이기에 뭐라고 물고 늘어질 구석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리건을 편들어주지 않고 그저 강 너머 산불처럼 구경하기만 하는 것은, 실제 마족의 이미지가 몹시 나쁜 탓이었다.
누가 봐도 모리건이 피해자고 아이작이 가해자라고 한들 여기에 끼어들어 마족의 모리건을 두둔해봐야 득이 될 일은 하나도 없다.
모리건에게 호감을 사는 일은 이득은커녕 오히려 손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제국의 명가 귀족인 아이작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확실하게 귀찮고 곤란한 일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다. 현대에서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일이다.
“……돌려 말하면 좀 알아들어. 다들 식당에서 입맛 떨어지게 마족을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 눈치껏 사라지라는 거다.”
결국 이렇게 논리의 파탄 끝에 ‘아무튼 꺼져라’라는 식의 말을 하는 꼴을 보고도 아무도 돕지 않는 것을 보면 대륙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고 할 수 있다.
“네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게 더 보기 싫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이작 군.”
그러니 내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원작대로의 흐름이다.
“밥 먹으러 왔으면 얌전히 밥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너는…… 신임 교수인가.”
아이작은 나를 재수 없게 꼬나보며 반말로 말했다. 조용히 하라고 정수리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이 부글부글 인다.
“그러면 나에게는 잘 보이는 게 좋을 텐데. 내 이름이 아이작인 걸 알고 있으면 내가 어느 가문인지도 알고 있을 텐데?”
아이작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정말 멍청하군.’
인자한 교감과 같은 가문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녀석이다. 황녀, 텟샤가 내 제자라는 것도 아마 모르고 있는 것이리라.
실제로 여기에서 천하통일 루트를 타고 있다면 황녀의 이름을 언급하면 간단히 찌그러지게 할 수 있다. 다른 루트를 타는 중이어도 분위기가 고조되던 중에 텟샤가 나타나서 쓴소리를 몇 번 한 뒤에 수습되는 흐름이었다.
‘식당에 텟샤가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지금은 내가 텟샤를 언급해서 찌그러지게 하는 패턴인가.’
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재미없다. 질리도록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재수 없는 놈에겐 그보다 몇 배는 더한 굴욕을 주고 싶다.
“이사벨라는 잘 지내고 있어?”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나와 아이작만이 알고 있는 자의 이름을 말했다.
“……뭐?”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름의 등장에 아이작은 굳어졌다.
“아. 죽었던가.”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 당신,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어……?”
아이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충격과 경악,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몹시도 복잡한 표정이었다.
“잘 알고 있어.”
그야 그럴 법도 하다.
“너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너를 지키다 마족에게 목숨을 잃은 누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초면의 신임 교수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면, 누구라도 저런 얼굴이 될 것이다.
“이 자식이……!!”
아이작이 주먹을 불끈 쥐고 나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타악!
나는 아이작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았다.
막아서 막히는 공격이라는 건 참 좋다. 헤이젠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맞아줘도 별로 아프지도 않겠지. 고양이가 앞발로 콕콕 때리는 거랑 비슷한 감각이다.
“‘네가 마족을 증오하는 기분은 이해는 해.’”
나는 후반의 에피소드에서 텟샤가 아이작에게 했던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같은 마족이라는 것 외에는 상관없는 자를 물고 늘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윽……!!”
“‘더는 네 누이의 죽음을 가볍게 만들지 마. 아이작.’”
“네가, 네가 뭘 알아! 죽여버리겠어!!”
다만 그 에피소드대로는 되지 않았다. 나와 아이작이 딱히 유대감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내 지위가 황녀만큼 높지도 않으니까 당연한 일일까.
귀찮지만 약간 힘을 쓰긴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이작이라고 했지?”
잠자코 있던 모리건이 입을 열었다.
“나는 네 누이를 죽인 마족이 누군지 몰라. 알고 싶은 생각도 솔직히 없어.”
모리건은 들고 있던 접시를 근처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에게 주먹을 잡힌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아이작은 내 손에서 주먹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며 모리건을 째려봤다.
“하지만 사과할게.”
모리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모욕도 도발도 아닌, 사과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 말에 식당이 크게 술렁였다.
“……왜.”
침묵을 깬 것은 아이작이었다.
“왜 네가 사과하는 건데?”
본인이 그렇게 시비를 걸었으면서도, 그는 모리건의 사과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족 타령을 하며 모욕을 주는 유치한 짓거리를 하면서도, 그게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누이가 죽인 마족은 모리건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는 아이작이기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니까.”
그런 아이작에게 모리건은 담담히 대답했다.
마족과 인간 간의 화친을 위해 온 이상, 마족의 잘못에 대해선 사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말이었다.
“…….”
아이작은 반대쪽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퍼억!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
“……윽, 후우, 젠장.”
그것도 코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당황스러운 행동에 나는 무심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아이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손바닥에서 자신의 주먹을 떼고 코를 훔쳤다.
“뭐 하는 거야?”
“……스스로가 때리고 싶을 정도로 한심해졌으니까.”
모리건의 질문에 아이작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숙인 뒤, 뒤돌아서서 조용히 식당을 떠났다. 뒤쪽의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서 있던 뚱뚱한 녀석과 마른 녀석도 당황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냥 자극하려고 던진 말인데 어떻게 잘 되었네.’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후반에 있던 아이작의 각성 이벤트와 흡사한 전개였다.
원래는 더욱 갈등이 커지고 사고도 한 번 친 뒤에야 일어나는 이벤트지만 짜증이 나서 말로 세게 팼더니 알아서 각성해버렸다.
‘아니, 엠블럼이 생겨난 게 아니니까 각성이라 하기도 뭐한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모리건.”
그리고 이제 식어버린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다시 든 모리건을 불렀다.
“……네.”
모리건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저녁 메뉴 추천 좀 해줘.”
딱히 뭐라고 추궁하거나 훈계할 생각은 없다.
아이작 같은 건 솔직히 아무래도 좋다. 학생으로 받을 생각도 없고. 남자 유닛이 각성하든지 말든지.
나는 모리건과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모리건은 새로운 스테이크였고 나는 계속 내버려 둬서 식어 빠진 모리건의 스테이크였다.
“굳이 이렇게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기분이 별로거든. 얌전히 먹어.”
다 식은 걸 우적우적 먹는 모습을 보아봐야 입맛이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식은 고기라면 익숙하다.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많이 주워 먹었으니까.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모리건은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파악한 듯 슥슥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마족이라고 하면 난폭하게 먹는 이미지가 있지만 제법 능숙하고 우아한 움직임이었다.
“……흠. 잘 안 잘리네.”
오히려 이쪽은 꽤 꼴사납게 먹는 중이다. 식어 빠지니까 잘 잘리지도 않는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기를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모리건이 앉은 테이블의 반경 10m엔 아무도 없었다.
좀 전의 일도 그렇고 괜히 접근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기껏해야 흥미 넘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애들이 조금 있는 정도다.
“잘라드릴까요?”
“들어가면 다 똑같아. 신경 쓰지 마.”
나는 포크로 크게 집어 한 번에 반 정도를 대충 씹어 삼켰다. 그런 내 모습을 모리건이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괜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모리건하고는 섹스까지 했지만, 평소 모습은 도리어 낯서네.’
대화라면 그럭저럭 나누었지만 모리건과 섹스한 뒤라는 몹시 특이한 상황이었다. 평범하게 제대로 대화한 적은 학생으로 받은 뒤로 딱히 없었다.
‘관계를 다르게 시작한 탓인지 캐릭터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고.’
원래의 조금 서툰 마족 느낌은 크게 남지 않았다. 쿨한 부분이 더 강해진 느낌일까. 약간 니힐해지기까지 한 게 도리어 신선하고 매력적이게도 느껴졌다.
“교수님.”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고 있자니 모리건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하고도 할 건가요?”
주어는 없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할 건데.”
다들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일단 긍정했다.
“그런가요. 혹시 한 저한테만 흥분하는 변태일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했던 거 같은데. 처음 만났을 때도 꼴린다고 했잖아?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러고 보면 그랬네요. 그냥 새삼스레 신경이 쓰여서.”
모리건은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살짝 입을 벌렸을 때 보이는 작은 송곳니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 묘하게 오싹한 기분이 든다. 예쁘다고도 생각하지만.
“……아비랑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족 하니까 생각난 질문을 던졌다.
“그쪽은 별로 안 좋아해요. 만나기만 하면 성수를 끼얹어대는 사람도 있고요.”
“누군지 알 것 같네.”
교단에는 이단심문관 훈련을 한 달 받고 탈락당했다는 설정의 고물 시스터가 있었다.
자칭 아비게일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는, 심심하면 주변에 성수를 뿌려대는 바보다. 성능은 총체적 난국이지만 조만간 동료가 될 가능성이 꽤 큰 유닛이다.
여자고 귀여우니까 딱히 거절한 생각은 없다.
“째려보면 금방 도망치지만요. 그럴 거면 시비를 걸지 말았으면 하는데.”
“귀엽게 봐줘. 꼬맹이가 다 그렇지 뭐.”
“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교단의 논리는 아주 싫어하지만 아비에겐 딱히 별 감정은 없어요. 교단의 논리를 저에게만 들이대지 않는다면 상관없어요.”
“그렇군. 그 건은 아비한테 말해두도록 할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모리건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만난 어떤 귀족보다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사실은 이런 캐릭터였나. 재미있네.’
원래의 모리건은 이렇게 말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잘 보이는 것’을 그만둔 모리건의 속내는 이랬던 걸까. 난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그런데 오늘 시비를 걸어온 애한테 사과할 줄은 몰랐어. 좋은 선택이라곤 생각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끝날 대화가 아니니까요. 그냥 굽혀주는 게 나아요.”
내 말에 모리건은 포크를 내려놓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스스로 얼토당토않은 시비라는 걸 자각하고 있으면 결국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니까요. 진짜로 멍청한 게 아닌 한.”
“세상엔 진짜로 멍청한 사람도 꽤 많은데?”
“그건 그러네요. 뭐, 이번 상대는 자기가 하는 짓거리가 한심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긴 한 것 같긴 해요. 자기 얼굴을 때리는 짓까지 하는 걸 보면.”
모리건이 잠시 숨을 돌렸다.
“뭐, 어차피 그것도 주변의 평판이 나빠질 걸 고려한 행위겠지만요. 귀족은 약삭빠르네요.”
그리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스테이크를 포크로 헤집으며 말했다.
“보기보다 어른스럽네, 모리건.”
“바보 같은 부분은 전부 다른 쪽에게 빼앗겼거든요.”
모리건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어딘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소악마 같은 웃음이었다. 실제로 마족이긴 하지만.
“……흐음.”
보고 있자니, 좀 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