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56
칸 영화제, 상영(2)
호빈은 그렇게 서서히 변해갔다.
“형, 내일 오전 수색 같이 나갈래요?”
“또? 너 오늘 오전 수색도 갔다 왔지 않아?”
“어차피 거점에 있어도 할 거 없잖아요. 같이 가면 일도 줄고 좋죠. 뭐.”
“그럼 나야 고맙지.”
거점에 막 자리 잡은 초기의 호빈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남을 배려하고 항상 적극적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원해 수색을 나가거나 거점을 가꾸는 등 의욕 넘치게 활동했다.
“호빈아 내일 오후 수색 당번인 거 알지?”
“네. 알아요.”
“그래. 그럼 수고해줘.”
“네. 누나도요.”
그러나 강진호 패거리들의 폭력에 노출된 직후의 호빈은 먼저 나서지 않는다.
“아, 맞다. 혹시 이따가 시간 되면 이 씨 할아버지한테 좀 가 줄 수 있을까?”
“네. 알았어요.”
“고마워.”
“아니에요.”
여전히 수색을 다니고, 여전히 예의 바르고, 여전히 남을 챙기지만,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호빈 학생, 오늘 수색은….”
“아저씨, 저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
“그래. 그동안 고생했지. 오늘은 쉬자. 다른 사람 보낼게.”
그리고, 강진호 패거리들의 폭력이 지속되던 시기에는 비로소 일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호빈의 방관 아닌 방관이 폭발한 것은, 제 편이었던 윤우영과 혜인이 죽은 뒤.
“혜인 누나!”
윤우영의 죽음으로 흔들렸던 호빈은 혜인의 죽음으로 완전한 절망에 빠지고 만다.
“혜인 누나! 안 들려요? 혜인 누나!”
호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정혜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에도 호빈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불안함이 잔뜩 배어있었다.
“으으….”
그리고 마침내 호빈이 혜인을 발견했을 때, 그는 마치 언어를 잃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으으으….”
자신을 믿어주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 그것이 호빈의 마지막 이성이었다.
“으아아아…!”
그는 윤우영과 혜인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을 책임지는 길을 택하는 대신 홀로 살아남는 쪽을 택한다.
“이제껏 모아뒀던 식량은 그냥 둘게요. 아껴먹으면 이 주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 후, 거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홀로 생활하며 남은 이들의 빈곤해진 삶도, 전처럼 폭력을 행사하려는 강진호 패거리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하루하루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을, 그저 살아남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야.”
적극, 소극, 머뭇, 방관, 무시, 당연까지. 마지막 직전까지의 여섯 가지의 호빈의 변화가 같은 ‘수색’이라는 환경 아래 조금씩 묻어났지만, 해당 포인트를 눈치챈 관객은 아주 눈치 빠른 소수에 불과했다.
가령, 엘리엇 리베리오 같은 사람 말이다.
호빈의 무엇이 변했는지 갈팡질팡 고민하던 엘리엇 리베리오는 반복되는 상황과 변화에 조금씩 이정이 표현하고자 하는 호빈의 달라진 모습을 알아챌 수 있었다.
‘대단하군.’
호빈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생소하다.
비록 그 뜻은 자막을 통해 전달되지만,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특성상 그 언어가 가진 감정은 때때로 이해하기 힘들다.
단적인 예로, 똑같은 대사라도 어느 언어는 억양이 세고 날카로워 불같이 화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또 어떠한 언어는 느릿하고 부드러워 평범한 대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정은 몸집, 목소리, 어조, 말투, 표정까지 모든 것을 총동원해 관객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호빈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고, 달라져 간다고.
그런데도 그 변화가 절제되어 물 흐르듯 전개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얼핏 보면 그냥 좀 지친 사람 정도로 보이겠어.’
거점의 다른 인물들 역시 계속되는 거점 생활로 인해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호빈의 변화가 더 가려지는 점도 있었다.
그걸 호빈이 잃어버렸던 적극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본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꼬맹이를 봤던 데가 어딘데요.”
“…….”
“아, 어차피 수색 못 나가는 거 잠이라도 자려고 했더니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겠잖아요.”
마지막으로 영찬을 찾으러 가던 것마저 사실은 ‘수색’의 일부라는 것까지. 일곱 가지의 변화가 모두 같은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호빈이 영찬을 밀치고 철골에 대신 꿰뚫렸을 때, 뤼미에르 극장 안에는 차마 소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르는 이마저 있었다.
“네가 살린 거야.”
“그딴 거, 하나도, 안 반가워…. 넌…. 너를 위해 살아….”
묵념하는 강진호와 강진호 패거리들이 서서히 멀어지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관객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 짝! 짝! 짝!
그 소리를 시작으로 뤼미에르 극장 안에 을 향한 환호성과 박수가 가득 울려 퍼졌다.
* * *
칸 지역의 한 고급 저택.
엘리엇 리베리오를 비롯한 총 9명의 심사위원이 긴 테이블에 둘러앉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흐음….”
“음….”
이들이 이토록 고민에 빠져있는 이유는 단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바로 .
“어떻게, 생각 좀 정리하셨나요?”
의 수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공동 수상할 수 없는 두 가지 상. 황금종려상과 남우주연상 중 어느 쪽을 에게 수상해야 할지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있었다.
“아직….”
“저도 아직….”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가 아직 그들의 고민에 확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공동 수상할 수 없는 남우주연상을 제쳐놓고 을 황금종려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이정이 연기한 호빈의 휴유증이 상당했다.
“만약 ‘호빈’이 이이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황금종려상은 이 가져갔겠지만….”
“영화의 퀄리티가 지금과 같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겠죠.”
영화를 씹어먹은 등장인물.
호빈이 바로 그런 캐릭터였다.
“다른 얘기라도 잠깐 할까요? 영향이 미치지 않는 상부터 얘기하죠.”
“뭐가 있지?”
“여우주연상이 있죠.”
만약 이 황금종려상을 받으면 이정은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이정이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면 이 받을 수 있는 상은 각본상, 혹은 그랑프리(심사위원)상.
이들은 암묵적으로 우선 그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작품의 수상을 결정하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일단 다른 것부터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심사위원단의 리더인 엘리엇 리베리오 역시 벨라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주연상이라….”
“저는 의 수잔 마이어가 눈에 띄더군요.”
벨라가 경쟁 부문의 출품작 중 하나인 의 주연 수잔 마이어를 추천했다.
그러자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는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는 다른 의견을 꺼내 들었다.
“흠, 도 좋았지만 전 의 로젠다 보겔의 연기가 더 섬세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 중이던 과 이정에 대한 문제와는 달리 여우주연상에 대한 의견은 금세 모였다.
의 수잔 마이어 혹은 의 로젠다 보겔.
4대 4의 팽팽한 의견 속에서 엘리엇 리베리오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리베리오 선생님께서는…?”
같은 심사위원이긴 하지만, 엘리엇 리베리오는 그들에게도 살아있는 전설, 벨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때까지도 다른 고민을 하던 엘리엇 리베리오가 입을 열었다.
“ 쪽이 마음에 들더군,”
5대 4. 의 로젠다 보겔의 여우주연상 수상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그리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 이들이 조용해졌다.
그들이 지금 고민 중인 작품의 수상 종류가 정해지지 않으면 그 외의 다른 수상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금종려상을 정해야 남우주연상을 정할 수 있고, 남우주연상을 정해야 황금종려상을 정할 수 있다니….”
“예외를 두는 건….”
“안 되겠죠. 그 예외 때문에 생긴 규칙인데.”
여우주연상 후보로 로젠다 보겔을 뽑았던 일라리온 비노그라도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동 수상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렇게까지 마음 아플 수가 없네요.”
벨라의 말에 이번에는 누구의 이견도 없이, 심지어 엘리엇 리베리오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거수하도록 하지.”
엘리엇 리베리오가 테이블 위로 팔을 올리며 말하자 벨라가 대신 심사위원들에게 물었다.
“이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몇 개의 손이 슬며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의 호빈, 아니 이이정이 남우주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또다시 몇 개의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거수 결과 은….”
의 운명이 결정되고, 결과와 관계없이 모두가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냈다.
칸 영화제, 수상
“어후…. 죽겠다. 술 마시는 거보다 떠드는 게 더 힘들어.”
폐막식 당일. 전날 파티에 참석했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난 황용제 감독에게 김윤미 감독이 칸 영화제 사무국에서 온 연락을 전했다.
“정신 차리고 씻고 와. 오늘 폐막식에 참석하라고 연락 왔어.”
“오, 진짜?”
당일, 폐막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은 수상자가 폐막식에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한 개의 상은 수상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뭘 받게 되려나.”
황용제 감독이 하루 만에 자라나 까슬까슬한 수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래도 기대 꽤 해봐도 되지 않겠어? 분위기 좋았잖아.”
현장의 분위기가 꼭 상의 종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눈이 높은 편인 칸 영화제 관객들의 특성상 그들의 분위기가 좋을 때, 심사위원들 역시 호평하는 경우가 많았다.
“황금종려상 기대해도 되려나.”
다른 상도 좋지만, 감독으로서 가장 좋은 상은 역시 황금종려상.
다만, 당당하게 을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라고 지칭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황금이나 그랑프리면 남우주연상은 못 받잖아?”
“그렇지.”
“끄응….”
은 훌륭하다.
본인의 작품이기에 애정을 담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훌륭한 영화였다. 그러나 그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정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려나?”
황용제의 고민에 김윤미 감독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나온 적은 없지?”
“후보에는 오른 적 있지.”
중국, 일본도 남우주연상을 배출한 전적이 있지만, 한국은 후보에 오른 적만 있을 뿐, 정식으로 남우주연상을 탄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정 씨는? 어제 파티 같이 갔지?”
“나만 남고 다들 먼저 돌아갔지.”
어차피 수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김윤미 감독이 다른 호텔 방에 있을 이정을 찾았다.
은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
수많은 애프터 파티에도 초대되었지만, 다들 파티를 썩 좋아하지 않아 황용제만 두고 먼저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 딩동
그때 두 감독이 묵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의 초인종이 울렸다.
― 감독님 저 이이정입니다.
방문 너머로 이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대화 주제였던 이정이 그들은 찾아온 것이었다.
“어! 잠깐만요!”
호텔에 묵는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이정의 방문에 황용제 감독이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별건 아니고 선배님들이 감독님들 점심 안 드시냐고 해서요. 밖에 나가기는 좀 그렇고 그냥 한 방에 모여서 룸서비스라도 시켜 먹자고 하시는데요?”
혹시나 무슨 일이 터진 걸까 심각해졌던 두 감독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어휴 깜짝이야…. 그냥 연락하지 그랬어요.”
“보냈는데 답이 없으셔서 그냥 제가 여쭤보고 온다고 했어요,”
그 말에 김윤미 감독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황용제 감독을 깨우고 대화를 하느라 핸드폰을 볼 틈이 없던 사이에 도착한 연락인 듯했다.
“점심 이미 드셨어요?”
“아뇨. 저희도 아직 안 먹었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은 먹어야겠지? 가요. 이정 씨.”
칸 영화제 폐막식 날. 김윤미 감독이 모든 배우에게 폐막식 참여 요구 전화, 즉 수상 확정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식사를 즐겼다.
“수상은 확정이니까 온 보람이 있네요.”
“이정 씨는 태어나서 처음 칸 영화제에 참석한 기분이 어때요?”
아직 무슨 상인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칸에서 수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곳에 온 보람은 차고 넘쳤다.
* * *
식사 후, 이정을 비롯한 모두는 각자의 스타일리스트들에게 타박 아닌 타박을 받았다.
“수상 확정이라고요?”
“그럼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수상 확정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을 왜 이렇게 늦게 전해줬냐는 이유에서였다.
“이럴 줄 알고 제일 늦게 말한 거지. 미리 말했으면 밥도 못 먹게 했을걸?”
“그러고도 남죠.”
“이정아 기억해 둬. 그나마 칸은 당일 통보라서 그렇지 전날 연락 오면 부어 보인다고 저녁도 못 먹게 할 수도 있다.”
문세록과 고명진은 당해본 바가 있는지 이정에게 당부하며 각자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이끌려 사라졌다.
“이정 씨 이리 와요!”
뜻밖의 팁을 알게 된 이정이 담당 스타일리스트로 따라온 지영에게 이끌려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와 예진, 그리고 테일러샵 인원이 전부 달려들어 완성한 두 번째 정장이 그의 몸을 감쌌다.
“벌써 입어요?”
“네!”
단호한 지영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이정은 눈을 감으라면 감고 뜨라면 뜨며 한참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화보 촬영 때보다 더 공들이는 거 같은데요?”
“당연하죠.”
지영의 기세가 매서웠다.
* * *
“아주 폭죽이네 폭죽.”
차에서 내리자 연달아서 플래시 세례. 문세록이 여유롭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와…. 개막식 때보다 사람 더 많네요.”
“원래 개막식보다 시상이 있는 폐막식이 더 중요하니까.”
개막식의 취재 열기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폐막식은 더했다. 문세록의 말대로 플래시 세례가 마치 폭죽 소리처럼 이어졌다.
“ 팀이다! 여기 좀 봐주세요!”
누군가 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정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 그 행동은 의미를 잃었다.
“ 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황금종려상 수상을 예상하고 계십니까?”
“이이정 씨의 연기가 이번 영화제에서 극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누가 질문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들을 향한 질문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세록과 고명진, 황용제, 그리고 김윤미 감독까지 취재진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눈을 굴려 신호를 맞추고선 이정의 등을 떠밀었다.
“원래 이런 건 막내가 하는 거지?”
“엑.”
그가 애매한 소리를 내며 레드카펫 중간에 멈춰 섰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여유롭게 웃으며 먼저 뤼미에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이정 씨! 여기 좀 봐주세요!”
“생에 첫 영화제로 칸 영화제에 오신 소감이 어떠한가요?”
“어떤 상을 예상하십니까?”
졸지에 레드카펫 끝자락에 서 기자들을 둘러보게 된 이정이 쏟아지는 질문들을 들었다.
대부분의 기자가 영어로 질문한 덕에 알아듣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중, 이정의 귀를 파고드는 한 개의 질문.
“아직 한국은 칸의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욕심나지 않으십니까?”
이정이 고개를 돌려 그 기자를 바라보았다.
욕심?
이정의 욕심은 상이나 명예 등이 아닌 연기 그 자체.
칸에 온 것도, 이렇게 수상 예정작 중 하나로 취재진들 앞에 서 있는 것도 모두 ‘연기’ 욕심으로 파생된 결과일 뿐이었다.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연기합니다. 그게 제 욕심이라면 욕심이겠네요.”
재빨리 받아 적거나 녹음하거나, 다시 질문하는 취재진 사이로 이정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결과가 대답해 줄 차례였다.
* * *
폐막식. 같은 뤼미에르 극장이어도 그 분위기는 천차만별.
개막식이 좀 더 축제를 즐기기 위한 분위기였다면 폐막식은 시상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좀 더 긴장이 흘렀다.
꼿꼿한 엘리엇 리베리오를 비롯한 9명의 심사위원단이 심사위원존에 앉아있었고, 시상자가 수상을 시작했다.
차례로 다른 부문의 시상이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경쟁 부문뿐.
“이제 경쟁 부문밖에 안 남았네요.”
“으…. 윤미야 나 떨려.”
“나까지 긴장되니까 조용히 좀 해봐.”
태연해 보이던 김윤미 감독도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는지 황용제 감독이 그녀의 손을 잡자 김윤미 감독 역시 그의 손을 꽉 잡았다.
― 여우주연상, 의 로젠다 보겔.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경쟁 부문의 시상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여유롭게 웃고 있던 이들도 시상자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각본상.
“음?”
“방금 남우주연상 부를 차례 아니었어?”
여우주연상 다음에는 남우주연상 차례. 그러나 바로 이어진 각본상 호명에 비교적 조용했던 현장이 다시 웅성거렸다.
다들 건너뛰어진 남우주연상에 어리둥절했지만, 시상자와 심사위원들은 태연했다. 의도한 바라는 의미였다.
― 심사위원상 의 김윤미, 황용제.
그사이 김윤미, 황용제 감독이 호명되었다.
건너 뛰어진 남우주연상, 그리고 중복 수상이 안 되는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함께 받을 수 있는 상인 심사위원상.
눈치 빠른 김윤미 감독이 상황을 알아채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뭔데?”
그 웃음이 단순히 심사위원상의 수상이 기뻐서 짓는 웃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황용제 감독이 그녀에게 물었지만, 김윤미 감독은 황용제 감독을 이끌고 짧게 소감을 마쳤다.
“축하드려요!”
다시 자리로 돌아온 두 감독에게 이정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김윤미 감독은 이정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이정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비록 황금종려상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 본상. 황용제 감독은 이미 기뻐하고 있는 반면, 김윤미 감독은 어딘가 절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아직 받을 상이 남은 사람처럼…. 음?’
이정의 생각이 짧게 스쳐 지나간 사이 호명하지 않고 지나간 남우주연상의 수상이 시작되었다.
― 황금 종려상이 작품상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워지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상 최초의 황금종려상 직전의 남우주연상 수상. 게다가 짧지만 강력한 심사평.
수상의 순서를 바꾸고, 황금종려상처럼 심사평을 내릴 정도로 의미 있는 남우주연상이란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 남우주연상.
그리고 심사위원상을 품에 안은 김윤미 감독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생각을 마친 이정이 김윤미 감독과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의 이이정.